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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수행이라 하는가

일념법진원 2009. 6. 27. 07:43

수행의 목적은,

 

자아의 삶은 이기주이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삶의 결과, 즉 인생은 허무한 나그네일 뿐이다.

 

개체적 자아인 이기주의의 집단이 인류이며, 자아는 자신의 마음을 모름에 대해서 당연시 하기에 고통을 받는다.

 

마음의 바탕에는 유한한 육체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깔려 있기에 모든 행위는 자연스럽지 못하다.

스스로 자신의 마음(경험, 지식, 사상)에 구속되어 '나는 이런사람이다' 라는 허구에서 벗어날 수 없다.

 

 

수행의 목적은,

 

첫째--- 자신의 마음의 형성과정을 충분히 이해하여 '나는 이런사람이다' 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서 나머지의 삶을 자유와 평화로움, 기쁨으로 살아내기 위한 것이며,

 

둘째--- 마음이 무엇인지, 그리고 생각의 속성과 이치, 즉 생각의 윤회에 대한 분명한 이해를 함으로써 자아((이기주의, 고정관념, 경험된 지식))의 고통을 소멸하기 위한 행위이다.

 

고통의 소멸, 또는 열반, 해탈 등의 불교용어들과, 사람이 거듭나야만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다는 예수의 말, 즉 성경의 본질인 참 자아, 진아, 부처, 유일자, 신, 아트만, 노자의 도, 등으로 알려진 불이법의 이치를 깨닫기 위함이다.

 

이곳의 모든 글들은,

자아((육체와 마음인 지성체))를 초월한 자, 지성체가 죽은자, 신비주의자의 말이다.

삼매에서는 수행을 하던 나, 즉 자아를 초월한 다른 나를 발견하게 된다.

이를 예수는 '오직 나' , 하나님, 성령이라고 표현하였으며 석가모니는 '천상천하 유아독존' 부처, 여래 라고 표현하였다.

 

노자는 이를 '도' 라는 말로 표현하였다,

이것이다 또는 저것이다 라는 분별된 언어로 표현 할 수 없는 것이라는 말과, 그것에는 대상이 없으며 '어디에도 있음', '모든 것의 기원' 등으로  ......

 

모든 인간의 순수의식, 또는 본래성품이라고 표현되기도 하는 이유는,

인간의 경험과 분리된 상태와 또는 경험 이전의 그것이기 때문이며 누구나 그 불이법의 이치를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수행을 위해서 노력하지만,

수많은 수행방법에 관련된 책들은 불이법의 이치를 깨우치지 못한 '나는 이런 사람이다' 라는 에고의 표현이기에 그 본질은 분명할 수가 없음이다.

자신만의 생각, 즉 경험된 지식에 의해 쓰여진 말들이기에 혼란스럽기만 한 것이다.

 

특히 석가모니의 초기경전을 통해서 소위 '위빠사나' 라는 방법으로 수행하는 자들이 많아지고 있다.

옳지만 옳은 것이 아님은,,,,,

'나는 이런사람이다' 라는 고정관념에서 '나는 저런사람이 될 것이다' 라는 또 다른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수행을 하기 때문이다.

 

수행을 하고자 한다면,

이곳의 글을 충분히 이해하여서 성경이나, 불경의 세뇌에서 벗어남과 함께 '윤회' 또는 '환생' '구원' '재생' '부활' '천국' 등의 모든 말들이 불이법을 이해할 수 없는 에고의 그릇된 앎임을 깨우침이 우선되어야만 한다.

 

불이 일원론은 에고의 생각을 넘어서 있기에 불경을 이해할 수 없음과도 같이 경험된 지식으로는 해석될 수 없다.

이 사람의 모든 말은 이기주의인 에고를 벗어남에서 나오는 말들이기에 이해한다 할 수 없으나,,,,,,, 지나간 인물들의 말에 대한 해석을 통해서 분별에 의한 확인은 가능할 것으로 본다.

 

이 사람의 말은,

'나는 이런사람이다' 라는 에고의 경험된 기억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다.

'깨달음의 실체를 밝힌다' 라는 저서에서 설명된 바와 같이 경험과 분리된 그 상태에서 전생의 경험되었던 모든 지식이 허구임을 깨달았기에 그 실체를 연설하는 것이다.

 

이를 불가에서는 불이법문이라 한다.

불법은 불이법이며, 불이 일원론의 연설임을 일깨우기 바란다.

 

수행자는 항상 이곳을 통하여 수행의 상태를 점검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물건?(육체)이 존재하는 동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