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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인간과의 관계에 대한 정의

일념법진원 2009. 6. 28. 18:36

1900년대? 즈음에 신지학회, 또는 신지학이라는 명칭이 생겨났다.

인도의 철학?으로 알고있는 '불이 일원론' 을 근거로 하여 미국 등지에서도 한 시절 관심의 대상이었다.

 

유지 크리슈나무르티의 생존시에 있었던 것 같으나 이는 중요한 일은 아니다.

에고는 불법으로 알려진 불이법, 불이 일원론을 이해할 수 없기에 환상의 세계만이 있을 뿐이다.

불이 일원론을 연설한 인물들이 있었으나 석가모니와 예수의 말이 그릇되게 전해지면서 종교화 되었다.

 

이곳에서도 석가모니와 예수의 가르침에 대해서 설명하였으나 자신의 마음의 실체를 헤아릴 수 없는 에고, 이기주의는 오직 자신의 욕망에 의한 무지함을 모르기에 신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인간의 무지 또한 가공되어진 것이다.

 

인간은 육체가 나다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수 없기에 생로병사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불이 일원론을 쓴 상카라는 이를 뱀과 새끼줄을 비유하여 설명하고 있다.

 

인간의 마음은 나약하기만 하다.

스스로 지성체가 되었기에 경험된 지식에 의해서 육체가 나이고 내가 죽을 것이라는 앎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죽음에 대한 공포는 인간의 가장 깊은 내면에 잠재해 있기에 집중적인 세뇌에 의해서 신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

종교나 유사단체들은 인간의 나약한 마음을 유린할 만큼의 지능을 소유한 집단이다.

 

석가모니와 예수의 불이법 연설의 주요 항목에는 인간이 신과 다르지 않음을 설명하고 있다.

성경과 불경을 통해서 인간과 신이 둘이 아닌 하나이다, 라는 말, 즉 불이법에 대해서 충분히 설명하고 있지만 에고는 이를 욕망의 눈으로 보기에 바로 볼 수가 없다.

 

예수는,

진실로 진실로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한다.

석가모니는 인간의 본래성품인 순수의식이 부처이다 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의 실체를 진리라고 말하는 것이며, 

하루종일 기도, 일체처 일체시의 참선을 통하여 삼매에서의 실재와 합일됨으로 깨어남이 그것(진리)이라고 말하고 있다.

 

"깨달음의 실체를 밝힌다" 라는 저서에서도 설명된 바 있다.

인간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의해서 신이라는 말을 창조한 것이다. 라고......

 

창조자, 절대자, 유일자에 대해서는 불이 일원론을 연설했던 인물들에 의해서 충분히 설명되고 있다.

특히 우리가 알고있는 노자의 '도' 에 대한 설명에서는 분별된 언어, 즉 이것이다, 저것이다, 나는 있다, 나는 없다, 나는 기쁘다, 나는 슬프다 라는 따위의 분별된 언어로는 설명될 수 있는 것은 '도' 가 아니다 라고 설명하고 있다.

 

또한 '도' 는 "모든 것의 기원이다" 라는 말로써 창조자, 절대자를 표현하고 있으며, 이와 유사한 말들에 대해서는 이곳의 초월자, 진인의 노래라는 메뉴에 충분히 설명되어 있다.

 

에고에게는 신이 있다.

종교를 믿거나 믿지 않는 사람들 조차도 운명의 신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사람 역시 '운명의 신' 을 찾기 위해서 '라마나 마하리쉬' 의 '나는 누구인가' 라는 저서를 신뢰하였기에 그의 말을 믿고 일념을 성취하였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마음이 무엇인지와 생각의 속성과 이치에서 설명되었다.

 

인간은 육체인 나의 집착에서 벗어날 수 없다.

자연은 나라는 생각이 없기에 삶도 죽음도, 대상도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 알고있는 모든 낱말들,,,,,,,

영혼, 신, 귀신, 창조, 하나님, 부처님,,,,,, 이런 말들은 성장 과정을 통하여 타인으로 부터 들어서 알고 있는 말들이다.

그런 말들, 특히 종교에 세뇌되지 않은 사람들은 부처나 예수에 대해서 관심조차 없으며 그들의 투쟁을 보며 비웃음을 던진다.

 

인간의 욕망은 만족으로 해결될 수 없기에,

욕망이 좌절되거나 믿음이 깨어짐, 즉 자신의 고정관념이 무너짐에 의해서 고통을 당함을 감지하지 못한다.

자신의 마음을 모름에 대하여 당연시 하기에 다른 나의 마음에 대해서 의구심을 갖는다.

 

나라는 집착과 욕망이 있기에 신은 있다.

하나님도 있으며, 부처님도 있으며 영혼도, 귀신도, 조상신도, 산신도,,,,,,, 모두 있다.

하지만 어제도 과거도 내일도 미래도 마음(기억세포의 작용)속에서만 존재한다.

있다라고 믿는 자들에게는 분명히 있다.

없다라고 무시하는 자들에게는 있는 것이 아니다.

 

마음은 어린시절부터 보고 듣고 배웠던 기억세포의 작용이라고 하였다.

생각은 기억세포의 범위, 즉 경험된 기억들에 한정되어 있으면서 그 기억세포를 바탕으로 하여 명멸을 반복하고 있다.

자신의 생각을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있다는 착강에서 벗어나지 못하기에 생각으로 고통을 당함에 대해서도 감지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화두나 또는 만트라를 외우는 일은 기억세포의 행위에 의한 탄력에 의해서 찰나지간으로 일어나는 생각을 억제하기 위한 방법이다.

찰나지간으로 일어나는 생각이 화두나 만트라에 의해서 방황하지 못함에 따라 기억세포의 작용하는 힘이 무력하게 되는 이치를 이용하는 방법이 화두공안이나 또는 위빠사나라는 수행방법이다.

 

이런 모든 방법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찰나지간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생각의 꼬리를 단일화된 생각으로 유도하게 함으로서 기억세포의 작용을 무력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생각은 망념이다.

모든 생각은 잠재의식 가장 깊은 곳에 숨겨져 있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에 누구도 알 수 없는 내일과 미래, 그리고 죽을 때 까지를 생각고 있다.

모든 생각은 근심과 걱정, 불안, 초조, 긴장으로서 정신을 구속하는 것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일어나고 죽고를 반복 순환 하는 생각의 흐름을 생사윤회라고 하는 것이다.

생사윤회를 끊어내는 방법이 일념의 성취이며, 일념의 무념처를 삼매라고 한다.

수행자는 삼매에서 꿈인줄도 모르고 꾸고있던 꿈에서 깨어나는 것이다.

 

성경과 불경에서 강조하는 꿈에서 깨어나라는 말의 뜻이다.

인간이 곧 신임을 알라, 라는 예수의 말이기도 한다.

불이 일원론의 연설이다.

말변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