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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심경 / 생각의 미묘한 이치

일념법진원 2009. 7. 4. 21:50

불경과 성경의 본질이 다르지 않음에 대해서는 여러가지의 사례를 들어서 설명하였다.

소크라테스와 노자의 '도' 와 비교하여 설명을 하였으며, 이외에도 불이일원론에 대하여도 설명하였으나..... 우상숭배에 익숙해져서 세뇌된 사람들은 어느 한 구절도 바로 이해하지 못하여 욕지거리까지 서슴치 않는다.

 

종교의 역사가 그러하듯이 세뇌당한 사람들은 자신의 소중한 목숨까지도 불사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날 수 없다.

세력을 확장하기 위한 수뇌들에게 이용당하는 것임 조차도 감지하지 못하는 이유는,,,,, 인간의 가장 깊은 잠재의식의 바탕에 있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드러내게 하는 기술자들에게 세뇌된 까닭이다.

 

드라마의 작가나, 또는 소설가, 영화 제작자들이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기도 하는 것과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목숨을 담보로 할 만큼의 세뇌의 기술은 참으로 경탄할 일이다. 

지옥이 있다면 그 종교와 유사단체들의 수뇌들이 가장 우선일 것이다.  

 

종교를 부정하거나 특히 사회를 부정하려는 의도는 없다.

다만 종교들간의 분쟁이나, 전쟁등의 피비린내 나는 역사가 말해 주듯이 종교들간의 문제는 정치적으로 악용되어 왔으며,,,,, 가정에서부터 사회 전반에 이르기 까지 문제화 되고 있음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석가모니와 예수, 노자와 장자, 소크라테스, 아인슈타인,,,,, 이 모든 인물들이 불이 일원론을 연설하였으며,,,, 상카라의 불이 일원론은 석가모니와 예수의 본질에 대해서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사람들의 언어와 생각을 넘어서 있기에 변질됨은 당연한 일이다.

사람들의 모든 행위에 대해서 우주의식으로 본다면,,,,, 사람들이 개미들의 삶을 보는 것과도 다름이 없을 것이다.

불이일원론을 연설했던 석가모니와 예수는 모든 인간들이 서로 사랑해야 되는 이유를 설명하였으며,,,,,, 삶과 죽음이 본래 있는 것이 아님을,,,,,, 고통이라는 것이 본래 있는 것이 아니기에,,,,,, 고통의 소멸함도 없다고 하였다.

 

고통이 본래 있는 것이 아님과 삶과 죽음이 본래 있는 것이 아님을 깨우치기 위한 길까지도 제시하였다.

 

하지만 생각의 이치를 깨달은 불이 일원론의 연설이,  

우매한 사람들에 의해서 종교화 되어서 종교들 간에 논쟁과 투쟁을 끝이 없기에 그들의 가르침을 설명하려 하였다.

 

어차피 해야될 일이 없는 물건이기에 서로간의 반목을 해소하게 하기 위해서 글을 시작하였기에 하나 하나 설명해 나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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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심경은 불경을 가장 간략하게 요약된 것으로 알려졌다.

일체유심조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이 없으나,,,,,,,가장 깊은 뜻--- 일체, 라는 말은 '몸체' 로써 나의 몸, 즉 육체가 나다라는 생각조차도 마음이 지어놓은 환상, 헛개비, 물거품이라는 뜻이며, 일체유심조의 뜻인 "육체가 내가 아니다" 라는 말을 더욱더 세분화 하여 설명하는 글이 '반야심경' 이다.

 

반야심경을 더 폭넓게 설명한 글이 금강경이라 들었으나,,,,,, 모두가 '생각' 생각, 생각의 미묘한 작용에 대한 설명임에 대해서 이해가 가능할 수 있도록 설명해 보려 한다.

 

불경이 한족어로 들여온 까닭에 마음의 작용만이 강조되었기에 '생각' 의 미묘함에 대해서는 해석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일체유심조를 줄임말로 표현된다면 '무아' 이며,,,,,, 한 글자로 표현한다면 '공' 이다.

공을 허공이라고 생각한다면 오해하는 것이다.

깊은 잠에서의 생각,,,,, 죽은자의 생각,,,,,이기에 언어로 표현될 수 없음을 표현하는 말이지만,,,,,, 공, 허공,,,,, 아무것도 없음으로 이해하여도 설명을 하는데는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이 전의 글에서..... 음식의 맛을 보는 것은 혓바닥의 기능이 아니며,,,,,, 과거의 경험된 기억과 순간의 경험과의 비교를 통하여 해석한 생각의 작용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생각)))

 

팔만대장경의 모든 말은 생각의 미묘한 이치에 대한 설명이기에 반야심경의 한 구절에 대해서만 이해할 수 있다면 모든 불경의 본질에 대한 접근이 용이해 질 것이기에 설명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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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tv 에서 실험했던 내용을 비유로 들고자 한다.

---피 실험자 5명을 상대로 하여 생각의 미묘한 이치에 대해서 방영한 적이 있었기에..... 그 사례를 통해서.......

 

5명의 피 실험자들을 관람석을 향하여 나란히 앉게 하고,,,,,,

 

그 앞의 긴 탁자에 열 종류의 싱싱한 과일을 담은 바구니를 올려 놓았다.

과일은 흔히 주스로 마시는 것들이다.

사과, 복숭아, 딸기, 파인애플, 포도, 귤, 바나나, 살구, 매실,,,,,,, 등,

 

피 실험자들에게 문제를 제시한다.

열가지의 과일 중에서 각각 세종류의 과일을 믹싱하여 마시고,,,,,, 그 쥬스의  맛을 본 뒤에 누가 더 정확하게 과일의 종류를 알아 맞출 수 있는가? 하는 과제를 던져준 다음.......

 

눈을 가리고 코를 막은 상태에서 마시기로 약속을 하였다.

그리고 답을 맞춘 후에 눈가리개외 코막힘을 열기로......

 

피 실험자들은 눈을 가리기 전에 보았던  과일들에 대해서 생각을 할 뿐,,,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실험자들 앞에 놓여진 주스는,,,,,, 과일이 아닌,,,, 고추와 양파, 마늘로 만들어진 주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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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실험자들은 마늘주스를 마시면서도 과일주스를 마시듯이 맛있다는 표정으로 마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문제에 대하여 답변을 하기 시작하였다.

 

다섯사람 모두가,,,,,,,,,, 자신이 눈을 가리기 전에 보았던 과일들의 이름을 말하고 있었다.

관람객들은 웃을 수 밖에 없으나,,,,,, 결과를 보기 위해서 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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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사람의 피실험자들은 모두가 마늘과 양파를 믹싱한 주스라는 생각을 할 수가 없었기에,

과일주스를 마신 것에 대해서 전혀 의심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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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미묘한 작용에 대한 실재 실험의 사례이다.

반야심경은 감각기관과 그 대상이 없다,,,,, 라는 말로서,,,,,

--무안이비설신의---무색성향미법이라 하였으며......

무안계, 무의식계, 무노사,,,,,,, 라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생각의 미묘한 이치이다.

일체유심조의 뜻과 같이 육체가,,,,, 감각기관이 나라는 것이 생각의 작용일 뿐 실체가 아닌 허상임에 대한 실험이다.

 

생각은 그만큼 미묘하여 그 실체를 헤아릴 수가 없다.

 

맛이 있다, 또는 없다, 또는 짜다, 싱겁다, 쓰다, 달다, 시다,,,,,,,,, 라고 말할때 까지,,,,,, 

그 짧은 순간에 맛을 분석해 내기 위하여 생각은 찰나 찰나간에 일어남을 반복하여 그 결과를 해석하였다.

눈으로 보고, 코를 통해서 냄새를 맡고, 혀를 통해서 맛을 느낌까지..... 얼마나 많은 생각이 반복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상상할 수도 없으며 분석할 수도 없다.

생각의 미묘한 작용이다.

 

눈을 가리고 코를 막으면,,,,,,, 혓바닥은 기능을 하지 못한다......... 다른 감각 기관들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과거의 경험되었던 기억세포의 작용과 순간의 느낌과를 비교하여 분석하는 생각의 작용임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찰나지간에도 오만가지의 생각을 한다는 말이 있듯이...... 자신의 생각이지만 생각의 실체는 미묘하기만 한 것이다.

석가모니의 생존할 시대에는 생각의 이치에 대해서 설명할 수 있을 만큼,,,, 지능이 발달되지 못한 시대였다.

또한 한자로 번역되는 과정과, 종교를 위해 쓰여지는 과정에서 그 본질이 전해질 수 없음은 당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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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불교인들과 종사자들은 '윤회' 라는 말에 세뇌되어 있다. 

소나무의 씨앗에서 소나무가 나오는 것이 윤회라면 옳은 말이다. 

불경을 조금 관심있게 보는 사람은 반야심경의 구절,,,,, '무안이비설신의' 에 대한 설명만으로도 윤회라는 말의 허구성에 대해서 알아듣는다.

 

사람들은 자신의 부재에 대해서 상상할 수 없기에 전생이나 또는 사후의 세계에 대한 의구심을 일으킬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사람은 태어남도 기억할 수 없으며, 죽음도 경험할 수 없다.

깊은 잠에서 깨어나서야 비로소 '나' 가 있고 현상계가 있음을 알지만,,,,,,,, 깊은 잠 속에서의 "아무것도 없음"(무아)에 대해서는 상상할 수 없음과 같은 이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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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통해서 '일체유심조' 와 '무아' 그리고 인체의 오온이라고 설명되어 있는 감각기관이 '생각의 작용' 에 의한 것임을 이해할 수 있다면,,,,,,,,불경의 모든 이치를 이해는 하는 것이다.

 

마음은 생각의 저장고이며,

경험에 의한 고정관념이며, 욕망이다.

생각은 미묘하여 신의 뜻으로 설명될 수 밖에 없으며,,,,,,,,

나라는 생각의 근원을 알기 위해서는, 즉 해탈이라는 것을 하기 위해서는,

석가모니와 예수의 가르침과 같이,,,,,,

 

일체처 일체시,,,,, 하루종일 일념을 유지하는 자리이타의 행위로써 일념의 무념처인 삼매에서 '무아' 를 증득함일 것이다.

 

무상, 고, 무아..... 라는 말은,

누구나 욕망에 끄달리다가 죽음 앞에서는 회한만이 남는 것이기에,,,,,, 열심히 뛰어가는 곳이 죽음이기에 무상한 것이라고 한 것이며,,,,,

이러한 생노병사를 고, 고통이라 한 것이다.

그리고 무아를 증득함이 해탈이라 하여 ,,,,,,, 무상, 고, 무아이다.

 

팔정도나 윤회에 대해서는 이미 충분한 설명이 있었기에......

http://cafe.daum.net/husimwon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