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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의 실천 / 1. 마음가짐 및 기초수행

일념법진원 2009. 7. 5. 10:21

마음과 생각의 이치에 대해서는 이곳의 글들을 통해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나,,,,,,, 분명한 이해 즉 확신을 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본다.

하지만 모두를 이해를 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눈과 귀, 코와 혀, 그리고 촉감 등의 모든 감각기관의 행위들이 과거의 기억과 현실과의 비교를 통하여 해석하는 생각의 결과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이해가 될 것이며,,,,,,

 

분명한 것은,

설령 이해에 확신이 서지 않는다 하더라도,

예를 들어서, "감각기관의 행위들은 내가 아니며, 생각의 작용이다" 라는 글과 유사한 글, 이해에 확신이 들지 않는 글들을 반복하여 읽고 외워나가는 과정을 반복함으로 하여 집중력이 향상됨과 함께, 스스로 당연시 함으로 여기게 됨...... 등이 수행의 시작인 것이다.

 

이곳의 확신이 서지 않는 글들을 메모하여 그 글을 계속 반복하여 읽는 습관은,,,,,

수행의 시작인 집중을 연습하는 일임과 동시에 무지에서 벗어나는 길이될 것이다.

또한 만트라를 외우는 일이나, 신묘장구 대다라니 같은 뜻을 알 수 없는 글을들 반복하여 암송함으로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집중력이 향상되는 것이며, 이런 방법들에 대해서 '주력'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 같다. 

뜻도 모르면서 불경을 계속 암송했던 사람들은 화두를 드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끊임없는 노력이다.

나라는 생각의 뿌리에 대해서는 저서인 "깨달음의 실체를 밝힌다" 와 이곳의 글들에서 충분히 이해가 될 수 있을 것이며,,,,,, 그 생각의 뿌리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모든 앎인 나, 즉 지성이 소멸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성의 허구에 대해서는 충분히 설명되었을 것이기에 생략하며, 에고의 모든 앎이 가공된 것이지만 무지임에 대해서도 충분히 설명되었다.

 

이곳의 "자리이타" 에 대한 설명을 분명히 이해함이 우선되어야 한다.

 

누차 강조하는 말이지만,,,,,,

어떤 특별한 사람이 되기위한 목적이라면 수행을 해서는 아니된다.

오직 생각을 지배하는 신이 분명히 존재하며,,,,,,

그 신에 의해서 세상이 존재하는 것이며,,,,,,

그 신에 의해서 태어났고,

그 신에 의해서 행위하고,

그 신에 의해서 모든 것이 나타나고 사라지는 것임을 분명히 이해 해야만 한다.

그 신은 행위하지 않지만 만물을 있게 하였으며,,,,, 모든 것의 기원이기 때문이다.

 

신이 있다하여 그 신을 우상으로 숭배하는 자는 어리석은 자이며,

신이 없다고 말하는 자는 무지한 자이다.

 

인간은 모두가 무지하지만, 이 또한 가공되어진 것이다.

그 무지를 벗어난 인물들의 연설이 불이 일원론이지만.......

에고의 생각과 언어 이전의 소식이기에 헤아릴 수는 없다.

 

이 글을 읽고 있는 그대는 이미 수행이 시작된 것이다.

진리의 길에 들어선 것이다.

이곳의 글들을 충분히 숙지하였다면,,,,,, 

열단계로 분류한다면,,,,, 두단계, 또는 세단계까지 진행된 것이다.

 

자신의 앎이 허구였음을 깨우쳤다면,,,,, 세단계까지 진행된 것이나 다름이 없다.

지금 이곳의 운영자, 또는 특별회원 중에는 스스로가 확신을 하여 자리이타의 행을 하고 있다. 

자리이타의 행에 대해서 충분히 이해하였다면 이미 세단계에 접어든 것이다.

 

반복되지만,

인간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일어나는 모든 생각은 망념이다.

신의 뜻에 의해서 태어났으며, 신의 뜻에 의해서 살아지는 것이다.

내 마음대로 태어난 것이 아니기에, 내 마음대로 살아질 수도 없으며, 내 마음대로 죽어질 수도 없는 것이다.

생각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남을 반복하고 있으며,,,,,,, 이를 감지할 수 없기에 신의 뜻이다 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윤회의 본래의 뜻은 "생각"의 반복 순환됨을 표현하기 위한 말이다.

 

깊은 생각에 잠겨서도 걸음을 걷듯이,,,,,,,

골똘히 다른 생각에 몰두하면서도 운전을 하듯이......

육체는 신에 의해서, 기억세포의 작용에 의해서 행위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한다는 착각에서 깨어날 수 없기에 고통을 당하는 것이다.

꿈에서 깨어나라는 말의 뜻이다.

 

생각의 가장 깊은 곳을 '잠재의식'이라 이름지은 것이다.

잠재의식의 바탕에는 육체가 나다라는,,, 태어나서 가장 처음 일어났던 생각의 집착에 의해서 죽음의 공포가 자리잡고 있었다.

태어남을 기억하지 못하듯이 죽음을 경험할 수 없으면서도, 나는 언젠가는 죽을 것이다 라는 생각이 있을 수 밖에 없기에 생각은 항상 근심과 걱정, 불아감, 초조감, 긴장감에서 해방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생각은 망념이라 하는 것이며,,,,,

그 망념을 떨쳐내기 위한 행위가 위빠사나, 또는 화두공안이라는 이름의 정신적인 행위이다.

 

집중을 연습함이 곧 수행에 들어간 것이다.

자신의 호흡을 관찰 하는 행위,

숫자를 하나에서 아홉까지, 그리고 다시 여덟에서 하나까지를 반복하는 행위,

주력을 하면서 자신의 목소리에 집중하는 행위,

육체의 움직임에 대해서 관찰하는 행위,

이곳의 글들에서 확신이 서지 않는 애매한 문장들을 꾸준히 암송하는 행위,

한 구절의 화두, 즉 나는 누구인가 라는 생각의 끈을 놓지지 않으려는 행위...... 등......

 

이런 모든 행위들이 수행의 행위들이다.

처음부터 화두에 집중하는 일은 쉽게 지쳐버리고 말게 될 수가 있다.

쉽다고 생각하면 쉬운 일이며, 아니된다고 생각하면 아니되는 일이다.

석가모니를 모신다는 생각이 있다면,,,,,, 수행을 해서는 아니된다.

 

이치를 깨우친 인물들이 실존할 때에만 가르침이 가능할 뿐이다.

그들의 말은 전달할 수는 있으되 본질에 대해서 이해하는 일은 불가능 하기 때문이다.

어떠한 미사여구를 동원한다 하더라도 본질이 전해질 수 없기때문에 불경과 성경이 된 것이다.

수행론에 대한 책들은 무수히 많으나, 이치를 깨우친 인물들에 의해서 쓰여진 책은 있을 수 없다.

서산대사의 '선가귀감' 에는 이치를 깨우친 인물들에 의해서 쓰여진, 화두를 드는 방법들이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으되,,,,,, 이를 이해할 수는 없을 지도 모른다.

 

선가귀감의 화두에 대한 가르침은 분명한 이치이지만,,,,,, 그 시대의 것이다.

옳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것만을 고집한다면,,,,,, 고타마의 관법반을 고집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날 수 없다.

고타마의 관법을 전수받아서 깨우친 인물들에 의해서 더욱 발전?된 방법이 화두수행이며,,,,,,, 이 사람의 체험?을 통한 구체적인 방법이 가장 지름길임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고타마의 관법이 도보로 가는 것이라면,,,,,,

화두수행의 방법은 뛰어가는 것이며,,,,,,

관법과 화두, 그리고 지혜를 알고 가는 방법은 자전거를 타고 가는 것과 비교될 수 있다.

또한 깨우친 실존인물이 존재하는 동안에 지도를 받는다면 어긋난 길을 갈 수는 없지 않겠는가.   

 

석가모니를 숭배하는 자들에 의해서 쓰여진 모든 방법은 이미 어긋난 길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부처님이 말씀,,,,, 어쩌구 저쩌구를 따진다면 수행에 임할 수 없다.

그대의 본성이 그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깨달아서 불이법을 연설한 인물들과 석가모니와 다를 것이라는 숭배정신?으로 수행하는 자들은 자신의 아상을 키우는 결과이기에 고통만이 가중될 뿐이다.

 

불이법이다.

너와 나가 다르지 않고, 나와 우주가 다르지 않고, 너와 부처가 다르지 않고, 너와 신이 다르지 않으며,,,,,,, 너의 본성이 바로 그것이었다.

 

지금의 나라는 것은 과거의 기억된 생각 속에서만 있는 것이다.

지금의 나는 가공된 것, 즉 지성체이기에 '나는 본래 그것이다' 라는 확신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그대가 태어나기 전에는 그것, 신이었으므로......

그리고 지금의 나는 조작된 것이므로......

그것이 그대의 본성이므로......

 

다음 편에는--- 수행의 실천...... 체험사례와 함께,.... 

http://cafe.daum.net/husimwon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