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모니, 예수, 노자와 장자, 달마, 혜능, 서산대사, 그 이후에 불이 일원론을 책으로 펴낸 인도의 상카라,,,,, 그들 모두는 석가모니의 말과 같은 불립문자로 표현되는 불이법을 연설하였다.
불과 백여년 전의 인물인 인도의 '라마나 마하리쉬' 역시 인도의 종교관과는 다르게 분명한 말들을 하고 있으며 번역된 내용으로는 불성을 '진아' 로 표현하였고,,,,,, 마이스터 에그하르트 역시 그것에 대해서 '참 나' 라고 표현하여 종교로부터 사형?선고를 받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종교라는 집단에 의해서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겪었으면서도 그들의 말인 불이일원론을 이해할 수 없기에 서로가 진리라며 싸움질은 끝이 없다. 지금,,,,,, 이 나라에서도, 이곳에서도......
그것, 즉 불이일원론의 본질을 알리기 위함이다.
라마나 마하리쉬의 '나는 누구인가' 라는 저서의 첫번째의 문장은 진아에 대한 설명이며, 식견있는 불자나 또는 수행을 하던 승려들은 낯설지 않은 책이다.
두번째의 번역본에도 더 자세히 설명되었으며, 불교의 어느 승려에 의해서 번역되어 불가에서 많이 읽혀진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책의 '진아' 에 대한 설명은...... 반야심경과 다르지 않음을 알 수가 있을 것이며,,,, 이 사람이 그 글을 더 자세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였다,,,,,,,특히 "나라는 생각의 뿌리" 에 대해서 어린아이의 사례를 들어서 분명하게 설명하였다......... 마음의 시점에서부터,,,,, 고정관념에 이르기 까지.......
불과 백년 전의 일이지만,,,,,,,, 그 당시에는 책을 구하는 일도 쉽지 않았을 시기이며, 의식이나 지식수준 역시 현 시대와는 차이가 많지만,,,,, 실감할 수는 없는 일이다.
몇 천년이 지난 인물인 석가모니와 예수의 불이일원론의 연설이 종교화 되면서 변질되어 서로가 심각한 대립을 하고 있으며,,,,,,,, 종국에는 옛날 어느시대와 같은 피를 부르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수천년 전의 말로 전해진 것들이 수 차례의 번역을 거쳐서 오는 동안에 변질됨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시대, 원시시대와 유사했던 시대에는 마음과 생각에 대한 설명은 무리였을 것으로 보이기에 그 본질을 설명하려는 것이다.
불경의 핵심이 마음에 대한 것이며,,,,,, 마음의 뿌리는 생각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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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에도 꿈과 생각에 대해서도 설명한 바 있으며,,,,,, 마음에 대해서도 몇 차례 설명한 바 있으나..... 허헛 듣되 들은 바가 없는 듯 하다.
불경을 잘 이해한다는 사람들이 술취한 자의 시비에 덩달아서 춤을 추는 모습을 보면서....... 석가모니나 예수가 얼마나 후회를 하며 한탄할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종교에 의해서,,,,,
석가모니와 예수는 심한 모독을 당하고 있다.
하지만 카페의 몇 사람들은, 사람이 부릴 수 있는 것은 의식 뿐이며,,,, 의식도 생각이다, 라는 분명한 앎을 깨우친 사람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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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근원은 생각이다.
이 전의 글에서는 반야심경의 핵심인 무안이비설신의에 대해 설명하였다.
모든 것은 마음의 작용이지만, 마음은 기억세포의 작용이며,,,,,, 나라는 생각의 뿌리에서 시작된 것임에 대해서는 "깨달음의 실체를 밝힌다" 라는 저서와 카페에 충분히 설명되어 있다.
어린 아이의 행위를 사례로 더 쉽게 설명해 보려 한다.
아이에 따라서 다를 수 있겠지만,
두살 쯤의 어린아이가 신발을 신고 걸어다닐 때의 상황이다.
항상 엄마, 또는 아빠가 신발을 신겨 주어야만 걸어서 다닐 수 있었는데......
어느날,
내가 할거야, 내가 할 수 있어,,,,,,,라고 말을 하였다.
그 동안은 그런 말을 한적이 없기에 황당스럽지만 그냥 내 버려둔다. 혼자 해 보라고.......
스스로 신발을 신음으로서 '나, 즉 육체는 나다, 내가 한다라는 마음이 일어난 것이다.
그 이전에는 '나다, 즉 육체가 나다, 또는 아니다 라는 생각이 없었으며 마음도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 시기의 마음을 '빈 마음' 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아이는 신발을 거꾸로 신기도 하고 바로 신기도 한다.
나에 대한 집착이 일어나기 시작하는 시기이며,,,,,, 좀더 지나면서 부터는 모든 것에 대해서 궁금해 지시 시작하여 귀찮을 만큼 이것은 뭐예요, 저것은 뭐야,,,,,라고 질문이 끝이 없다,
마음의 시작은,,,,,, 내가 할 수 있어라는 말을 할 수 있을 때가 나의 시작, 마음의 근원이며,,,,,,,
이 시기에는,,,,,,,
집중적인 학습에 의해서 어렴풋이 몸이 나다라는 마음이 있을 뿐, 나를 앎을 시작으로 대상을 창조하기 시작하는 시기이다.
이 전의 마음에 대한 설명에서,
골짜기의 물과 같이 하나의 생각, 둘의 생각, 셋의 생각,,,,,,, 이 모여서 강물을 이루듯이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그리고 어린시절의 어느 사건에 대해서 기억할 수 있는 시기가 마음이라는 것이 확고해 지는 시기이다.
옛 선사들의 흔한 말들 중에 하나가......
마음이 어디에 있는고,,,,,, 라는 말이다.
강아지에게 석가야, 예수야, 하나님,,,, 하고 불러버릇 하명 강아지는 자신이 그것임을 알게 되듯이,,,,,,,
아이는 그런 과정을 통해서 대상의 이름을 대상과를 동일시 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회적 동물로 세뇌당한 것이다. 순수의식에서......
이름과 대상과의 동일시에 대해서는 카페에서도 볼 수가 있다.
자신의 마음의 형성 과정을 앎으로서,,,,,,, 고정관념에서 깨어날 수 있으며,,,,,,, 마음을 다스릴 수 있을 것이기에 이치를 설명하는 것이다.
마음은 생각의 집합체이며,,,,, 욕망이며, 고정관념일 뿐이다.
다른 곳에서 만들어 진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기도를 하여 마음이 편해지는 이유 역시 분명하게 설명되어 있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사람들이 종교에 세뇌되어서 가장 소중한 목숨을 불사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마음이라는 것,,,,,, 고정관념인 생각의 가장 깊은 단면의 이름을 잠재의식이라 한다.
인간의 잠재의식은 크게 두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
그 하나는,,,,,,,
순수의식인 근심과 걱정이 없는 자연과 같은 평화와 기쁨으로의 회귀본능이며,
하나는,,,,,,
죽음에 대한 공포이다.
욕망을 아무리 채워도 만족할 수 없는 이유는 망각한 순수의식의 갈망에서 오는 것이며,,,,,,
종교나 유사단체에 세뇌되는 이유는 잠재의식에 도사리고 있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자극 당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마음을 유린하는단체들은,,,,, 성인들의 이름을 악용하여 천국, 지옥, 죄인, ,,,,, 또는 선사들과 그들의 이해를 넘어선 불이론을 진리로 위장하거나, 신비로 조장하여 영원히 번창할 수 있는 사업을 하는 것이다.
종교는 사이비도 없으며 사이비 아님도 없다.
차라리,,,,,,, 정한 수 한그릇 떠 놓고,,,,, 천지신명이시여....... 가 인간적이 아니겠는가.
에고의 삶은 이기주의적이기에 모두가 다르지만 다르지 않다.
그들이 어떻게 살든,,,,, 우주의 견지에서 보면,,,,,,,,, 그야말로 한 티끌에도 미치지 못한다.
종교에 세뇌도어서도 스스로 평화로울 수 있다면 상관 없는 일이다.
다만,,,,,,,,,,예수나 석가모니의 불이일원론의 연설을 악용하는 짓 까지도 상관할 일이 아닐 수도 있으나.......서로가 같은말을 하였는데도,,,,,,,,,투쟁은 끝이 없기에 바로 알리려 하는 것이다.
죽음의 공포에 대한 세뇌를 당한 사람들은 ,,,,,,,,,,, 읽되 읽음이 없을 것임을 모르는 바 아니다.
이곳은 세뇌되지 않은 지식인들이 있을 것이기에,,,,, 그 이치를 전하는 것이다.
석가모니와 예수를 비롯한 소크라테스, 아인슈타인, 노자와 장자, 헤르만 헷세, 등의 인물들이 불이일원론을 연설하였음을 알기 바라며,,,,,, 그 본질에 대한 설명을 참고하기 바란다.
불경의 모든 내용의 핵심은 마음이지만,,,,,,,, 마음의 근원은 "나라는 생각" 을 참고 하시길,,,,,,,
자존심이란,,,,, 내가 존재한다는 마음일 것이다.
내가 존재함도 내가 존재한다는 생각이다.
나를 찾는 일.....
삶의 목적이며,,,,,,
신을 찾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