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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운 삶의 길 / 간화선과 위빠사나 / 수행의 실천 <2>

일념법진원 2009. 7. 9. 13:28

<요점정리>

 

1. 존경과 숭배

2. 수행의 목적

3. 화두와 만트라, 위빠사나의 요점

4. 일상에서의 가장 쉬운 화두

 

 

--- 존경과 숭배에 대한 오해---

석가모니와 예수 등의 참 자아를 성취한 인물들의 연설은 수천년이 지난 지금에도 의견이 분분하여 정의될 수 없다.

불교는 석가모니의 가르침,.......

인간이 육체에 얽매어 있는 동안 할 수 있는 최상승법을 성취하였기에 그 길을 알리려 노력한 것이다.

그의 말을 바로 헤아리는 사람이 단 한사람도 없었기에 고독하였다.

태양의 고독......

 

인간으로써 인간의 언어를 초월한 말들은 자아(에고, 이기주의)를 넘어선 말들이며 인간에게는 최선의 가르침을 주었기에 존경함은 당연하다.

불교라는 종교의 시작은 제자들의 존경심에서 시작되었다.

 

국내에 또는 인도나 버어마 등의 모든 수련원이나 명상센타 또는 수행자들의 모임에서는 불상을 모셔?놓고 수행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개개인의 자아마다 불경의 어느 한 구절에 집착하여 수행을 하고 있다.

'무아' 를 증득하겠다는 깊은? 뜻을 세우고 참선, 위빠사나, 명상, 화두선...... 가는 곳은 번뇌마에 빠진 정신질환이다.

'자등명' 이라는 말을 이해?하여 참선을 하는 사람들이 '빛'을 보았기에 삼매를 경험했다고 하는 실정이다.

삼매에서는 삼매가 없다.

 

스스로 '불자' '불제자' 라는 상을 가지고 수행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결과는 불보듯 뻔하지 않은가?

무심한 돌덩이 앞에서 합장을 하고 절을 하는 행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수행을 해서는 아니된다.

우상, 형상을 숭해하지 말라고 하였으며, 소리에도 집착하지 말라고 하였다.

종교를 위해 쓰여진 불경과 불립문자라는 말을 앞세우면서도 알음알이의 상을 내는 인물들의 말에 집착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존경을 하되 숭배를 하지 말라는 말이다.

석가모니는 유언을 통해서 나를 믿지말고, 나에 의지하지 말고......

진리에 의존하라고 하였다.

사성제나 팔정도를 진리라고 착각해서는 아니된다.

중도를 이해할 수는 없기에 팔정도를 말하였을 수는 있으나...... 집착해서는 아니될 일이다.

"진리" 라 함은 오직 "일념으로의 집중에 의한 삼매, 즉 '무아'의 증득함" 으로 앎이 올바른 앎이다.

 

 

---수행의 목적---

자아를 버리기 위함이 최종 목적이 되어야 한다.

자아는 이기주의이며 사회적 동물로 세뇌되었기에 태어나서 죽을때 까지 단 한 순간도 평화로울 수 없으며 집착과 욕망에서 벗어날 수 없기에 삶이 투쟁이며 고통의 길이다.

 

사회생활을 통하여 최고로 성공했다는 사람들에게는 행복도 없으며 평화도 없으며 자유도 없다.

자살을 하거나,,,,, 죽음 앞에서 회한의 눈물을 흘릴 뿐이다.

 

온갗 신비로움으로 포장된 언어들....... 사람이 말을 만들어 놓고 사람이 그 말들에 속고 속이는 세상을 보며 미소지을 밖에 없질 않겠는가?

사람들은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아니 자신이 만들어 놓은 언어의 함정에 빠져서 구속되었다며 자유를 갈망한다.

감옥에 갖혀서 자유를 찾아 도망치려는 사람들 처럼....... 분주하게 살아간다.

어디로 가는가?

 

삶과 죽음이 있는 것이 아니며, 불행과 슬픔이 있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만들어 놓은 덫에 걸려서 불행하다며 아우성을 치고 있는 것이다.

밥상 앞에서 배가 고프다고 아우성을 치고 있으니 어쩌란 말인가?

 

마음과 생각의 미묘함에 대해서는 '깨달음의 실체를 밝힌다' 라는 저서와 이곳 카페에 충분히 설명되어 있기에 생략한다.

수행의 목적은 죽어보기 위한 것이다?  

죽음을 경험?하였기에 예수는, 사람이 거듭남이 천국이라고 표현한 것이며 석가모니는 미르바나? 해탈이라 한 것이다.

일체유심조와 반야심경의 핵심......몸이 내가 아니다, 꿈이다, 깨어나라......

 

---화두와 만트라, 위빠사나, 요가 등......

이 모든 행위는 정신을 집중하기 위한 도구라 하였다.

처음 시작부터 '나는 누구인가' 라는 화두를 들더라도 상관은 없다.

이곳 카페의 '정각' 이라는 수행자의 짧은 글에서는 '나는 누구인가' 라는 생각의 끈을 놓지지 않기 위하여 노력한다는 말을 했다. 그것이 수행의 시작이다.

 

---일상에서의 가장 쉬운 화두는---

예수의 '하나님' 이라는 화두이다.

예수의 뜻이 왜곡되어져서 이기주의의 욕망을 채워줄 것이라는 속임에 빠진 사람들이 종교에 세뇌된 사람들이다.

하나님이나, 신, 조상신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들은 인간과 같이 이기주의자가 아님을 분명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상 관법인 위빠사나를 석가모니가 개발? 하였다면, 화두선은 관법보다 우수한 것이며 예수에 의해 개발된 훌륭한 방법이다. 

다만 그 뜻을 분명하게 이해했을 때에 국한된 것이다.

 

철부지 아이들처럼 하나님, 사탕좀 더 많이 먹을 수 있게 해 주세요, 라고 기도하는 짓을 말하는 것이 아님을 이해할 것이기에......

욕망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거나....... 삶이 힘겹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미지의 어떤 것에 대한 믿음은 큰 희망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어린시절부터 부모에게 의지하던 습관은 항상 잠재의식에 저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을 정도의 수준이면 우상숭배에 대한 허구와 욕망은 결코 만족으로 해결될 수 없음에 대해서는 이해가 분명할 것이기에 요약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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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는 "나는 누구인가"로 시작한다.

내가 누구인 줄을 모르기에......

처음부터 위빠사나 라는 관법으로의 시작은 옳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성공할 수 없다.

석가모니나 달마, 또는 노자와 장자 등과 같이 6년이나 10년 또는 죽을 때 까지 공부하다가 가려 한다면 상관 없는 일이다.

 

'나는 누구인가' 라는 화두를 들면서는 '나는 이런사람이다' 라는 자신의 마음이 고정관념이었음을 충분히 이해하여서 자신의 모든 행위를 조심스럽게 해야만 한다.

화두에 집중을 하려는 노력과 동시에 나는 이렇게 해야 되겠다 라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나는 어떤 사람에게도 화를 내지 않을 것이며 항상 누구에게나 따스한 미소로 대하려 하는 노력이 함께 이루어 져야만 가능한 일이다.

 

지금의 자아는 사회적 동물로 세뇌된 것이며, 참 자아는 세뇌되기 이전, 또는 세상 어느것에 대해서도 분별함이 없는 태양과 같은 신이었음을 스스로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스스로가 사람이다 라고 생각하는 자아의 모든 행위는 오직 자신의 나만을 위한 행위였음을 깨우쳐 나가야 되기 때문이다. 누구를 사랑함도 나를 위한 행위였으며 누구를 돕는 일까지도 자신의 나를 위한 행위이다.

재물을 모아서 남을 도와주는 행위 또한 자신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기 위한 것이며, 가족을 사랑하는 행위도 자신의 나를 위한 행위임을 스스로 깨우쳐 나가야만 되는 것이다.

 

걷는 행위와 운전을 하는 행위, 또는 숙련된 기능공의 작업을 하는 행위, 가정주부가 밥을 짓는 행위, 설겆이를 하는 행위, 밥을 먹는 행위 등의 육체의 모든 행위는 순간순간, 찰나지간에 생멸하며 윤회하는 생각과는 상관 없이 이루어 지는 일 들이다.

이런 모든 행위들에 대해서 전생의 업이라고 하거나 또는 인과와 응보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행위들은 경험에 따른 기억세포에 의한 행위이기에 스스로는 이를 감지할 수 없을 뿐이다.

 

인간의 모든 행위에 대해서 신의 뜻이다 라는 이유에 대해서는 충분히 설명 되었기에 이해가 되었을 것이다.

 

지금은 자아, 즉 육체와 나가 하나인 '나'이다.

사람들은 지성체가 '나'다 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자아가 자신의 본성이었던 신을 찾아가는 길이다.

사람들의 모든 생각이 망념이라는 설명을 하였으며 왜 망념이라고 말을 하는 지에 대해서도 충분히 설명되었으며 수행을 하기 위해서는 충분히 이해 해야만 한다. 

카페에 충분히 설명되었다.  

 

예수도 석가모니도 항상 깨어있으라 라는 말을 하였다.

화두하나 들고 하루종일 깨어있기 위한 노력이 바로 그곳, 미지의 신을 찾으러 가는 길이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잠에서 깨어나서 다시 잠들때 까지의 시간이 15시간이라고 가정할 때에 '화두를 잊지 않고 있었던 시간 동안'과 '내가 지금 미소를 짓고 있음을 분명히 아는 시간' 들이 '깨어있는 시간' 들임을 알고 있다면 바로 이해한 것이다.

 

평화로운 삶을 살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 수행자로서의 삶이다.

나는 '신의 도구이다' 라는 마음,

나에게 이루어 지는 모든 일은 '신' 의 뜻이다 라고 생각하는 마음,

나는 이런사람이다 라는 고정관념이 내가 아님을 알기에 항상 미소를 지으려는 마음,

하루종일 화두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마음...... 

이러한 행위의 이어짐이 "자리이타"의 행위이다.

이런 시간의 길어짐이 무위이며, 무아를 증득하기 위한 진리의 길이다.

 

서두르지 말고.......

순간 순간을 고요함의 기쁨으로 만들어 나가는 길이다.    

 

 

다음편에는,

화두와 위빠사나, 그리고 기타의 방법들과의 공유에 대해서......

삼매에서는 삼매가 없다에 대해서......  

질문 있으면 질문 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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