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라는 것이 어디에서 갑자기 나타난 것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을 모름에 대해서 당연시 한다. 마음의 뿌리는 생각이며 태어나서 부터의 학습에 의한 경험들을 분석하고 해석하여 자신만의 고정관념이 된 것들을 마음이라고 이름지은 것이다.
나는 이런사람이다 라는 고정관념은 항상 변할 수 있는 것들이다.
나는 남자이다, 또는 여자이다 라는 고정관념까지도 바뀔 수 있는 세상이다.
성전환 수술을 한 남자는 남자이지만 여자이다.
수술을 하기까지..... 나는 남자가 아니다 라고 끊임없는 생각에 집중한 결과이지만......
수술을 마치고나서 머리를 기르고 화장을 하고 여장을 하였기에 다른 사람에게는 여자로 보인다.
자신은 남자이면서도 그런 힘겨운 과정을 거치면서 남들에 의해서, 그리고 자신만의 확신으로 여자가 되어 살다가 갈 것이다.
남자로 살아가는 것 보다 더 행복할 수도 있다.
스스로 원했던 일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모두가 앞으로 달려나간다. 미래를 향해서 질주함은 죽음에 다다를 것임을 모른다는 사람은 없다.
사람들은 자신의 기억세포에 저장된 고정관념에 바탕을 두고 생멸하는 순간세포의 작용에 의해서 고통을 받는다.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것들, 즉 기억세포에 저장되지 않은 부분들에 대해서는 상상할 수 없는 것임에 대해서도 감지하지 못하기에 자신의 그릇된 앎에 의해서 고통을 당하는 것이다.
나의 몸,
나의 마음'
나의 생각이기에......
몸도 마음도 생각도 참 자아는 아니다.
나의 소유물도 아니며 나도 아니다.
'나의' 의 나는 참 자아이며 몸과 마음과 생각은 경험에 의해서 인식된 그릇된 앎에 의한 환상들이다.
노자는 참 자아를 '도' 라고 표현하였으며 석가모니는 '불성'이라고 표현하였다.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 라고 하였으며 예수는 '성령'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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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생각세포는 기억세포의 범위를 벗어날 수 없다.
그리고 기억세포는 순간세포의 작용에 의해서 지속적으로 범위가 넓어진다.
순간세포인 생각은 기억세포의 영역에 의지하여 스스로 행위를 하면서도 1초를 5만분의 1로 나눈 정도의 찰나 지간에 기억세포에 간섭을 하고 있다.
마음과 생각을 구분할 수 없는 이유는 순간세포의 작용이 찰나지간으로 작용하면서 찰나가 지남과 동시에 기억세포에 저장되는 것이며 그 저장됨이 마음이기 때문이다.
생각은 신의 뜻에 따라 스스로 행위하는 독립적인 것이기에 감각보다 항상 앞서 있었으며 의식과 무의식까지도 지배하고 있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윤회하는 생각을 망념이라 하였다.
그리고 망념을 쉬게 함이 평화이며 근심 걱정, 고통이 본래 있는 것이 아닌 붓다로 가는 길이라 하였다.
사람들은 화두일념에서는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을 것 같은 불안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기에 설명하려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것이 아니었으며, 생각이 먼저 스스로 일어났기에 그 생각에 이끌려서 고통을 받는 이치를 이해 할 수 있다면 화두를 들면서도 실생활에서는 전혀 문제가 없음을 깨우칠 수 있는 것이다.
몰론 설명을 하더라도 접근하기가 쉬운 것은 아니다. 기억세포(마음)에는 그런 경험이나 지식등..... 저장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산책을 하고 싶어서 산책길을 나섰다.
평소에 다니는 길이기에 편안한 마음으로 어제 다녀왔던 시간, 약 30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는 지점을 목표로 하였다.
생각은 스스로 돌이겨 보지 않는 한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었기에 바로 전의 생각에 대해서 기억할 수가 없으면서도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나면서 희로애락을 경험하게 한다.
그런데 기쁨을 줄 수 있는 생각은 찰나이며 나머지 대부분의 흐르는 생각들은 과거나 또는 남들과 비교, 예측 불가능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 불안, 근심과 걱정들이게 일어나지 않는 편이 훨씬 좋은 것이다.
생각의 미묘함을 이해하면서 망념은 사라진다.
또 사라지게 할 수 있다.
기쁨만 남도록......
산책을 하던 사람에게 기발한 한 생각이 일어났다.
자신이 하고 싶어서 하는 생각은 아니었다. 이웃 부서에서 고민하고 있는 일을 얼핏 들었었기에 관심밖의 일이었음에도 해결할 수 있는 묘법이 떠오른 것이다.
그런 생각이 일어나기 전에는 그런 생각을 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었기에 내가 생각한 것이 아닌 것이다. 생각이 먼저 일어나 있었던 것이다. 내가 하고싶어서 한 생각이 아니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구름처럼 흘러다니는 생각이 갑자기 툭 하고 일어난 것이다.
산책하는 사람은 이제 묘법에 대해서 집중을 하기 시작한다. 자신도 모르게 일어났던 생각, 즉 묘법에 대해서 생각을 지속하고 있다가 그 묘법을 잊고 다시 상념에 들어간다.
상념이라는 말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일어나는 특별하지 않으면서도 스스로 일어나는 망념을 뜻하는 말이다. 이렇듯 생각은 스스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고 있었다.
잠에서 깨어있는 동안 내내......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다시 묘법에 대해서 다시 생각이 일어났고 이제 더 생각해 보고 싶었다.
자신도 모르는 일어났던 생각이 사건이 되었으며 이제 그 사건에 대해서 집중하기 시작함의 의미는...... 자신의 의지, 뜻, 마음에 의해서 생각을 한 사건에만 몰입하는 것이기에 지금부터는의 생각은 내가 생각하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생각이 주체가 되어 생각에 이끌려 다녔지만...... 이제부터는 내가 생각의 주인이 된 것이다.
지금까지의 모든 생각은 스스로 일어나고 멸하고를 반복하였지만...... 사건에 대해서 집중하기로 마음을 정하고 몰두하는 일은 스스로 일어나는 생각과는 다른 것임을 이해할 수 있기 바란다.
여기서는 이 부분, 즉 생각이 주체였으며 나는 그 생각에 지배를 당하는 상태와.......
내가 생각의 주체가 되어서 생각을 활용하는 것과의 차이에 대해서만이라도 이해하기 바라는 뜻에서......
이렇듯 내가 생각하는 생각은 극 미량에 불과한 것임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하루에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수천만번의 생각이 생멸을 반복함에 대해서 생각의 윤회라고 하였다.
자신의 의지, 뜻에 의해서 여느 사건에 몰입하는 생각만이 내가 생각한다고 말할 수 있는 생각의 미묘한 이치이며 한계이다.
자신이 하고 싶어서 하는 생각은 없다.
자신이 하고싶어서 하는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 즉 어떤 일에 오랜시간 집중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완전하게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오직 일념을 성취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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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세포의 기억세포에 대한 간섭에 대해서 더 이야기 하자.
산책하는 사람이 하나의 사건이 된 묘법에 집중을 하기로 마음먹었기에 그 생각에만 집중을 하고 있었다. 사건에 모든 생각이 집중되어 있지만 몸은 기억세포의 작용에 의해서 의심없이 걸어가고 있다. 앞에 나타난 장애물을 돌아서 가기도 하며 돌뿌리에 걸려서 넘어지지도 않으며...... 걷고 있다.
걷고 있다는 생각이 없이도 행위함이 무위이기도 하다. 걷고 있는 동안 만큼만은 무위이다.
깊이 몰두하다 보니 반환점을 지나치게 되었다.
문득 어? 지나왔네.....라는 생각이 일어나면서 되돌아서 걷고 있으며 생각은 여전히 그 사건에 몰입되어 있었다.
자......... 여기에서......
기억세포와 순간세포가 총 동원되어 사건에 대해서 몰입하고 있다.
산책에서 돌아온 다음에 산책하는 동안에 무슨 생각을 하였는지 되돌아 볼 수가 있다. 되돌아서 생각해 보니....... 사건에 대한 생각과 반환점을 지나쳤음을 알았던 생각이 전부이다.
사건에 대한 생각이 99.999퍼센트이며 반환점을 알아차린 생각은 그 나머지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은 아니다.
순간세포는 의식과 무의식까지 동원하더라도 감지할 수 없는 찰나지간에 한걸음 한걸음을 모두 간섭하고 있었다.
걸음을 걸으면서 돌뿌리를 피해서 갔을때, 사람들을 피해서 갔을때, 장애물들을 요리저리 피해서 갔을때...... 반환점을 놓쳤음을 알았을 때....... 해아릴 수 없는 만큼의 생각들이 몸을 보호하고 있었던 것이다.
인간의 모든 감각기관들은 이와같은 미묘한 생각에 의한 작용이기에 사람들은 감각, 느낌이 우선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며 괴로움을 당하는 것이다.
화두 하나를 지니려는 노력을 하여 화두일념에 들어 있더라도 몸을 보호하기 위한 찰나세포들에 의해서 몸은 보호되는 것이며 일상에서의 필요한 일들까지도 찰나세포에 의해서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 길게 쓴 것이다. 깨우친 모든 인물들은 항상 일념의 무념처에 머물기에 근심이나 걱정 등의 망념이 없음과 모든 이치를 꿰뚫어 알기에 자유하며 존재하는 것이다.
화두하나 지니는 자리이탸의 행을 하는 경우에는 망념은 사라지면서도 현실에서 필요한 생각은 찰나세포에 의해서 포착되기에 평화로 가는 길인 것이다.
수행자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모든 사람들이 이런 생각의 미묘한 이치를 이해하려는 노력과 이해하여 일념을 유지하기 위한 삶을 살아감으로써 마음의 평화로움에 안주하게 되는 것이며,,,,
망념이 비워짐에 따라서 육체는 자연의 회귀 본능과 같이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이런 글들이 쉽게 이해될 수는 없다.
지속적으로 반복해서 습득하려는 노력이 없다면 이해할 수 없으며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모든 깨달은 이들이 전해주고 싶은 말들이다.
그 시대의 현실에 적합한 언어를 통해서......
충분히 이해하여 이웃과 함께 평화로운 나날이 되시길......
화두하나?
나는 마음과 현상계를 초월한 우주의식이다.
나는 세상 어느것에 대한 집착도 욕망도 없는 우주의식이다......
진리로 가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