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모셔라 라는 말은 신에게 소원을 들어 달라고 구걸하라는 뜻이 아니다.
자신의 마음을 알지 못함은 자신의 마음과 자신의 몸, 그리고 자신의 생각이 자신의 것이 아님을 일깨워서 자신에게 이루어지는 모든 일이 신의 뜻임을 알고 신을 생각함으로 하여 망념을 잠재움에 따른 기쁨으로 존재하라는 뜻임을 알기 바란다.
신이 있다면 인간과 같이 편협하거나 옹졸하여 사람을 분별하겠는가?
인간이 고귀한 까닭은 인간의 본성이 신이기 때문이다.
2> 석가모니 부처의 불이 일원론
개요
석가모니 (불교) [釋迦牟尼, Sakyamuni, 싯다르타 고타마]
본명은 Gautama Siddhārtha.
? 인도 코살라 왕국 샤키아 공화국 카필라바스투~? 인도 마가다 왕국 말라 공화국 쿠시나라.
BC 6~4세기경에 활동한 불교의 창시자.
석가모니라 칭할 때, 석가(釋迦)는 북인도에 살고 있던 샤키아(Śākya)라 불리는 한 부족의 총칭이며, 모니(牟尼)는 성자를 의미하는 무니(muni)의 음사이다. 따라서 석가모니는 '석가족 출신의 성자'라는 의미이다. 이런 이름으로 불리게 된 것은 그가 세상의 진리를 깨달아 성자로 취급되었기 때문이며, 같은 취지에서 세존(世尊:또는 釋尊)으로도 불리는 등 많은 호칭이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일반적인 것이 '붓다'인데, 중국에서는 이를 음사하여 '불타'(佛陀)라 하고, 더 약칭하여 '불'(佛)이라고도 부른다. 불교 특유의 용어로서 붓다는 '깨달은 자'를 뜻하며, 교리의 전개 과정에서는 신앙의 대상이 되는 구제자로서 다수의 붓다를 상정하여 소위 '부처'로 통용된다. 남방불교에서는 '고타마 붓다'라고 부르는데, 고타마(Gotama:산스크리트로는 Gautama)는 석가모니의 성이다. 일부의 경전에서는 BC 1~AD 2세기 무렵 서북인도에 침입하여 인도에서 널리 사용된 사카력(曆)을 만들어낸 사카(Saka)족도 석가로 쓰는 예가 있으므로 혼동하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다.
부처(불타; 붇다, 산스크리트어: बुद्ध, Buddha)는 불교에서 깨달음을 얻은 사람을 부르는 말이다. 불교에서 모든 생물은 전생의 업보를 안고 살며 그 업보가 사라질때까지 윤회한다고 하는데, 해탈에 이르러 완전한 깨달음을 얻으면 윤회를 벗어난다고 한다. 석가모니 부처는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고 설하였으며 이 부처가 됨을 성불(成佛)이라 한다. 석가모니 부처는 소승불교 교리에서의 28부처 중 하나이나, 일반적으로 부처라 하면 석가모니를 가리킨다.
불이 일원론이 진리이며 진리를 깨달은 인물들 중에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했던 인물이 고타마 붓다이다. 고타마에 의해서 ‘붓다’ 라는 명칭이 고유명사화 되었으며 ‘붓다’ 라는 말은 진리를 깨달음의 대표적인 표현이며 고타마는 깨달음의 경지에 대해서 ‘여래’라는 표현으로 불이 일원론을 연설하였다.
불이 일원론은 일체가 둘로 나뉠 수 없는 하나임을 표현하기 위한 말임과 동시에 일체의 본질은 ‘아무것도 없음’에 대한 연설로써 인류에게 기쁨만으로 존재할 수 있는 최상의 방법론의 연설이다.
고타마는 존재하는 모든 것들, 이름 지어진 모든 것들의 본질은 허공(虛空)과 같기에 집착할 것이 없는 것임에도 사람들은 집착과 욕망으로 괴로움을 당하기에 그 본질을 깨닫기 위한 고행의 과정을 설명하였으며 진리의 길까지 제시하였다.
고타마는 진리를 깨달은 이후에 모든 사람들에게 그 길을 알리려 했으며 인생의 목적은 오직 진리를 깨우치기 위한 것으로 당연시 하였기에 평생을 그 길을 알리기 위해서 노력하였다. 진리를 깨우친 인물들에게는 자아를 초월하였기에 집착이나 욕망이 없으며 오직 해야 될 일이 있다면 인류에게 진리의 길을 알리기 위한 일을 하는 것이 전부이다.
사람들은 꿈인 줄도 모르고 꿈을 꾸면서 실재인 것마냥 괴로워하며 고통 받는 모습들이 안타깝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불이 일원론을 연설했던 진리를 깨달은 인물들 모두는 자신을 ‘나’라고 호칭하지 않았으며 육체를 ‘이것’이라고 표현하였다는 것이다. 이는 육체가 나다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남의 표현이며 삼매의 경지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이며 당연한 것이다.
이것(육체)이 나다 라는 착각에서 깨어났기에 모든 경전에는 ‘꿈에서 깨어나라’ 는 표현들이 많은 것임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고타마와 고타마의 제자인 사리자의 대화에서 이를 엿볼 수 있으며 모든 설법을 마친 뒤에는 ‘나는 행위 한 바 없다’ 라는 말로써 무위(無爲)를 설명하였으며 모든 설법은 말변사이다 라는 말로써 모든 연설이 (이렇게 말하나 또는 저렇게 말하거나) 모두가 깨달음의 다른 표현인 무아(無我)에 대한 설명이었음을 말하였다.
초기경전에서는 고타마가 사리자에게 했던 말이 전해진다.
사리자야. 이렇게 눕고, 않고, 일어나고 하는 것이 ‘여래’는 아니니라 라는 말이다. 사람들에게 이해될 수 없는 말이지만 공부가 깊어진 정도의 수행자들은 어렴풋이나마 짐작을 할 수 있을 정도이다.
무아(無我)라는 말은 삼매의 경지에서 육체가 내가 아님을 알아차림을 표현하는 말이며, 육체가 내가 아님을 알아차림 이후에 더 깊은 삼매에서 ‘육체는 내가 아니지만 아닌 것도 아님’을 깨우침으로써 불이 일원론인 ‘일체가 본래 있는 것이 아님과 함께 없는 것도 아님’을 깨우치게 된다.
“있는 것도 아니며 없는 것도 아님” 이라는 말이 불이 일원론의 핵심이며, 핵심의 근원은 미묘(微妙)법(法) 이며 미묘법은 “생각의 미묘한 작용”을 뜻하는 말이다.
진리를 깨우침의 경지는 수행자 스스로가 미묘법의 분명한 이치를 알아차리는 것이며 알아차림과 동시에 자아로써는 표현할 수 없는 기쁨과 함께 싱거운 웃음을 짓게 된다. 옛 선사들의 깨달음에 대한 인가(認可)라는 말이나 돈오돈수, 또는 돈오점수라는 말 등의 수행에 관련된 모든 말들은 진리를 깨우치지 못한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자아를 벗어나지 못한 어리석은 자들의 논쟁이다.
고타마의 모든 가르침의 핵심은 ‘일체가 있는 것이 아니며 또한 없는 것도 아니다’ 라는 뜻이며 일체가 있는 것이 아니다 라는 말은 과학에 의해 밝혀진 바와 같이 모든 것(천지만물)의 본질은 무(無)(아무것도 없음)이며, 또한 아무것도 없지만 없는 것이 아니라는 말에서 ‘없는 것이 아니다’ 라는 말은 인간의 고정관념(固定觀念)으로 보기에 대상이 존재함에 대한 설명이다.
모든 것(천지만물)은 실재하지 않으며 오직 실재하는 것은 ‘부처’, 여래 등으로 표현될 수 있는 ‘나 아닌 나’, 또는 ‘나 없는 나’, ‘나 이전의 나’이기에 사람으로 태어난 사람이 해야 될 일은 오직 그것(참 자아의 회복)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으며 그것 이외에는 해야 될 일이 없기에 ‘참 자아를 깨달음’은 할일 다 해 마침으로 표현되기도 한 것이다.
인간의 가장 깊은 고정관념은 ‘육체가 나다, 나는 죽을 것이다’ 라는 생각이라고 하였다. 고정관념에서 깨어남 만이 진리이며 자유이며 평화이다. 모든 것들이 본래 실재하지 않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경험에 의해 가공된 습관에 얽매어 있기에 고통과 괴로움을 실재로 여기는 것이다.
고타마의 가르침은 ‘일체유심조’ 한 구절에 팔만 사천 법문이 포함되어 있다. 일체는 몸을 뜻하는 말이며 일체가 마음이 지어서 실재인 것 같지만 꿈이며 환상이라는 설명이다. 이는 현실세계와 몸까지도 마음이 지어놓은 환상이라는 말이며 불경을 간략하게 표현했다는 ‘반야심경’을 통해서 일체유심조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였다.
인체의 감각기관인 눈과 귀, 코와 혀, 감촉 등이 무(無)(=본래 없음)이며 감각기관의 대상, 즉 눈으로 보는 색상, 귀로 듣는 소리, 코로 느끼는 향기, 혀로 느끼는 맛, 신체로 느끼는 감촉 등에 대해서 무(無)(아무것도 없음)라고 설명하고 있다.
또한 공즉시색(空卽是色), 색즉시공(色卽是空) 등 여러 가지의 표현들로서 있지만 있는 것이 아님과 없지만 없는 것도 아님, 그리고 있는 것이 없는 것이며, 없는 것이 있는 것이다 등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는 앞서 설명된 바와 같이 말을 배우기 이전의 어린아이가 보는 현상계와 경험된 기억세포의 작용인 마음(관념
http://cafe.daum.net/husimwon 집필중인 저서, 불이 일원론의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