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의 소개글과 같이 이곳의 모든 글은 마음과 생각의 미묘함에 대한 설명이다.
노자와 장자, 석가모니, 소크라테스를 비롯하여 예수, 헤르만 헤세, 라마나 마하리쉬, 아인슈타인을 비롯한 많은 인물들이 마음과 생각의 본질인 진리를 깨우침에 따른 불이 일원론을 연설하였다.
이를 우리말로는 '깨달음'이라고 표현되며,
노자와 장자는 '도'라는 말로 표현하였고,
석가모니는 '불성', '성불', '부처' 등으로 표현하면서 인간의 본래성품이라 하였다.
예수는 '진실로 사람이 거듭나야만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다고 하였으며, 이를 '성령'이라고 하였다.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 라는 말과 함께 '검증되지 않은 삶은 살 가치가 없다'라는 말을 함으로써 깨달음을 강조하였다.
아인슈타인은 '상대성 이론'을 통하여 '보는 자'가 있기에 우주가 있다, 라고 하였으며,
인간의 끝없는 욕망에 대해서 '우주보다 더 무한한 어리석음'이라 하였다.
불경을 이해할 수 없듯이 그들의 본질에 대해서 이해한다는 말은 오해핸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사람들은 '나의 마음'이라고 말하면서 '나의 마음'에 대해서는 무지하다.
'나의 마음'과 '나의 생각'의 관계에 대해서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음이 당연할 것이다.
이곳의 모든 글이 마음의 형성 과정과 생각의 미묘함에 대한 것이라고 하였다.
이 곳의 글들에 대해서 분명하게 이해할 수 없을 것이기에 '마음 다스리기'를 통하여, 수행을 통해서 마음에 평화를 느끼는 사람들이 경험했던 내용, 수행의 만남, 그리고 초기수행 과정을 통해서 누구나 평화로운 삶을 살아가기 위한 길을 안내하려 한다.
욕망은 채우고 싶어서 채워지는 것도 아니며, 버리고 싶다하여 버려질 수 없다.
다만 괴롭다는 생각, 또는 불행하다는 생각의 근원을 알기 전에 생각의 흐름을 바꾸어 나가는 방법이 그 시작이다.
생각의 결론은 또 다른 생각일 뿐이기에 정답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마음을 모른다 함은 생각의 이치를 모름이다.
내 마음과 내 생각을 내가 모른다 함은, 그것들이 나의 것이 아니기 때문임에 대해서는 이곳의 글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
나도 모르게 일어나는 생각, 괴로움 고통......
나도 모르게 일어나는 생각들을 내가 조절할 수도 있음이 생각의 미묘한 이치이다.
자유와 평화를 위해서는 '나도 모르게 일어나는 생각'에 의해서 고통을 당하고 있음을 분명히 앎이 우선되어야 한다.
과거의 고통스러운 날들이나, 끔찍한 사건들...... 절대로 생각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
내가 생각하고 싶지 않은 기억들임에도, 생각이 스스로 일어났기에 괴로움을 당하는 것이다.
내일과 미래에 대한 생각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누구도 모르는 내일과 미래에 대한 생각은 근심과 걱정일 뿐이기에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 망념이다.
내일과 미래에 대한 생각 또한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은 아니다.
생각이 스스로 일어 났었으며 그 일어난 생각에 이끌려서 괴로움을 당하는 것이다.
이런 생각의 미묘함을 이해할 수 있다면......
나도 모르게 일어나는 생각들이 괴로움을 만드는 원인임을 알게 될 것이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일어나는 괴로운 생각의 흐름을 '화두'나 또는 '만트라' 등을 통해서 생각의 흐름, 즉 생각의 윤회를 끊어 나가는 방법이 수행이다.
생각의 미묘한 이치를 이해할 수 있다면...... 마음의 본질을 찾아감으로써 상상을 넘어선 평화로움에 안주하게 된다.
이곳의 위빠사나, 화두공안, 심우도, 마음과 생각에 대한 글들을 충분히 읽음으로써 마음과 생각에 대한 이해와 함께 화두하나 지니는 삶의 여정을 통하여 나머지의 삶이 평화와 기쁨이 되기 바란다.
'마음 다스리기'를 시작으로 하여 깊이가 깊어짐에 따라서 평생 느껴보지 못했던 평화로움과 건강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며 더욱 더 깊어짐에서는 더 큰 평화로움을 느끼게 된다.
열망이 있다면 그대의 본성을 찾음, 즉 붓다가 되는 것이며 진리로 가는 길이다.
모든 질병은 생각에서 비롯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