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없는 것이 있는 것이다.
실재하는 것은 오직, 그것...... "나 아닌 나" 뿐이다.
우주는 없다.
사람도 없다.
신도 없다.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없음도 없다.
아무것도 없으며, 없음이라는 말도 없음에 대해서
싯다르타는 무무명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역무무명진, 역무노사진의 표현이다.
인간이라고 프로그램 된, 로봇의 전원이 꺼졌을때,
로봇에게는 아무것도 없음, 없음도 없음이다.
이는 깊은 잠 속에서의 "아무것도 없음",
나도, 현상계도 없음의 표현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언어로 표현될 수 없음의 표현이다.
우주, 사람, 나, 신..... 실체, 근원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아상, 나라는 생각이 있음 에 의해서 대상이 있는 것이다.
나라는 생각은, 육체가 나다, 라는 생각이다.
육체가 나다, 라는 생각의 오류에 의해서 세상이 존재하는 것이다.
괴로움, 고통...... 본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라는 생각이 있다면 신은 있다.
있다, 라고 생각하면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없다고 생각할 수 없듯이,
우주가 없다, 라고 생각할 수 없듯이......
내가 있다면 모든 것이 있는 것이다.
한 생각의 차이이다.
이 말이,
싯다르타와 예수, 노자와 장자 등의 가르침의 본질이다.
사성제, 팔정도는 사념처를 이해함에서 시작되는 수행의 방법이다.
사념처는 자신의 몸을 관찰하는 방법이며 정신집중을 뜻하는 말이다.
정신집중은 몸과 마음이 하나됨을 뜻하는 말이다.
육체는 생각없이 행위할 수 없으며,
마음은 기억된 생각에 불과한 것이다.
한 생각의 집중이 정신집중이며 정신통일과 같은 뜻이다.
오직 일념......
진리는 일념의 무념처인 삼매에서,
실재하는, 오직 하나로 표현되는 "나 아닌 나"이다.
언어와 생각, 나를 초월한 나이다.
실재하는 것은 오직 그것 뿐이다.
그것,
모든 것의 기원이다.
그것을,
순수의식, 우주의식, 붓다의식이라고 한다.
이 또한 말로 만들어진 사건, 말 변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