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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한이라는 말, 사전에 설명되어 있었다.
예수, 석가모니, 장자와 노자, 그리고 상카라... 모두가 같은 말을 하였으나...
서로가 진리라며 싸움질이다.
진리라는 말은 진실된 이해라고 하였다.
언어는 나로부터 시작된 것이기에 상대적일 수밖에 없는 연유로, 그들의 말이 달리 해석된 탓이다.
불경이 우상숭배로 변질되었으나, 그나마 수행방법이 전수되었기에 가까스로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
관법이라는 말 대신 "위빠사나"라고 알려져 있으며 아직도 이에 집착하고 있다.
우상숭배의 폐혜이다.
붓다 이후에 깨우친 아라한들에 의해서 화두수행이 개발되었으나, 서로가 옳다며 시시비비를 가린다.
아니,
가리지도 얺는다. 너는 너, 나는 나 식이다. 허허헛
이기주의의 실상이다.
성경의 모든 내용이 수행에 관한 직접적인 내용과, 그 비유들이다.
예수의 가르침이 변질되었기에 성경에 쓰여있음에도 바로 볼 수가 없는 것이다.
이 곳에 여러가지로 설명되었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예수는 화두공안과 유사하다.
예수의 말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면, 최상의 수행방법이 될 수 있다.
사람은 어느 누구나 생로병사의 고통에서 해방되어 자유할 수 없다.
괴로움의 원인은 기억할 수 없으나, 망각된 오류에서 시작된 것이며,
그 길이 평화로 가는 길이다.
지금 그대의 생각을 흐르는대로 방치하고 있다.
스스로 흐르는 생각은 근심과 걱정들이기에 망념이며, 계속 같은 망념의 과거를 만들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생각의 미묘한 이치를 깨우치면서는 괴로움은 사라진다.
일념이 지속된 그 자리에는 지혜와 평화로움이 대신 자리잡기 때문이다.
그대의 과거를 돌이켜 보았을 때에...
행복과 평화는 간 곳이 없을 것이다.
일념에서 오는 기쁨과 평화로움은, 경험할 수 없었던 것이다.
성자들 모두는 인생의 길을 안내하는 안내자이다.
죽음을 경험해 보니.... 오직 그 길만이 평화로 가는 길에기에 그 길을 안내하는 것이다.
영원한 평화로 가는 길이다.
늙음도 죽음도 없는 길이기에......
그들의 가르침이 진리이다.
이치를 이해하는 자는 이를 이웃에게 전해야 한다.
그것이 자비이며, 공덕인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http://cafe.daum.net/husimwon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