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이일원론의 연설들이 경전을 통해서, 재치문답에 의해서 왜곡된 까닭은,
통찰, 분별없음의 이치를 알음알이로 해석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언어로 표상할 수 있는 道는 참다운 도가 아니다. 라는 말과 같이,
주체가 없기에 대상이 없는 상대적일 수 없음의 가르침이지만 상대적일 수밖에 없는 언어로 표현되었기 때문이다.
분별없음도 분별이며, 분별하지 않음도 분별하지 않음이라는 분별이다.
석가모니와 예수, 노자 등의 가르침이 같은 말이지만 알음알이에 의해서 서로 다르게 해석되었기에 진리가 왜곡된 것이다.
내가, 안다는 상,... 지독한 아상들에 의해서...
이곳의 글들 또한 분별없음의 이치에 대해서 분별된 언어로 표현되는 것이다.
이해와 오해는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라고 하였듯이, 모든 언어는 상대적일 수밖에 없기에 옳지만 옳은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크러나, 작거나, 또는 중간이라거나... 모두가 분별이다.
예를들자면...
끝없는 사막을 해메다가 나무 한그루를 보았다면... 그것을 크다, 작다, 중간이다, 라고 분별할 수 있겠는가?
일만원권 지폐에 대해서 큰돈이다, 작은 돈이다. 중간이다, 라고 분명하게 정의될 수 있겠는가?
수채화를 그리는 사람과, 정물화를 그리는 사람을 비교하여 어느것은 예술이며 어느것은 예술이 아니다, 라고 분별할 수 있겠는가?
천지 자연을 놓과 무엇이 옳다, 무엇이 그르다고 분별할 수 있겠는가?
소아마비에 걸린 아이의 걸음걸이가 옳지 않은 것인가?
자신만의 생각이 옳다고 주장할 수 있는가?
이 세상 어느 누가 있어서, 나는 자유하다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이 세상 어느 누가 있어, 나는 평화롭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이 세상 어느 누가 있어, 나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꿈에서 깨어나라.
분별없음의 이치, 통찰은 일음알이로 해결될 일은 아니다.
자유와 평화, 기쁨 또한 알음알이로는 결코 찾아질 수 없는 것이다.
지식은 순수의식을 억누르는 짐이며 이제 쓸모 없는 것이기에 버려져야 하는 것이다.
말장난, 말재간, 재치문답... 조주어록, 마조어록? 같은 말 장난이 아니다.
어릭석은 자들이 머리로 이해하여 스스로 자아도취에 빠져서 헤매는 것이다.
이곳의 글들에 대해서 충분히 납득하여 스스로 평화로움을 느낄 무렵부터는 일념을 공부해야만 한다.
이 곳의 글을 이용하여 알음알이 상을 내려 한다면 그보다 더 어리석음이 없는 것이다.
일념, 일념..... 여러가지의 방법을 동원하여 일념을 공부해 나아가면서 비로소 참된 지혜가 드러나는 것이다.
참된 지혜는 기쁨이며, 더욱 더 깊어지는 만큼 고요한 평화로움의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됨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일념, 일념...일념만이 진리의 길이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할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