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일 전, 그리고 어제...
연지의 집에서...
승현의 집에서... 만났던 사람들...
언어의 허구성을 이해함에서 진리의 길에 들어서는 사람들을 본다.
-사과는 사과가 아니다-
-이것은 귤이 아니다-
대화를 나누던 중... 던진 말들이다.
그 말을 듣고 빙긋이 웃는 사람들이 있었다.
연지.
감로.
승현.
이곳에, 책에 여러차례 설명된 말이기에... 이해하려 한다면 이해는 가능한 일이나,
이해와 오해는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위 삼인의 스승... 스승이다.
심우도를 다시 들여다 보니.
10개의 그림과 설명에서... 견성이 4단계로 표시되어 있었다.
옛 선사들... 명색을 깨우침에 대해서 견성으로 인정하였던 것이다.
초견성은... 올바른 진리의 길.. 을 알아차림... 그것이다.
이곳의 말이 틀리진 않은데... 너무도 당연한 말인데...
그런데도 이해가 안되는 사람들... 자주 보다보면 깨우칠 수 있다.
명색의 깨우침...
사량분별하는 생각으로 이해되는 것은 아니다.
일념이 깊어짐에서 드러나는 동일시의 통찰... 지혜이다.
위 삼인의 스승은... 불행이라는 말... 불행, 성냄, 불편, 부정....
그들에게서는 이런 의심이나 부정적인 말들을 들어볼 수 없다.
몇 시간을 앉아 있어도, 농담을 주고 받아도... 부정적인 표현을 볼 수도 없으며... 얼굴은 항상 밝기만 하다.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가면이 아니다.
일념이 깊어짐... 본성이 들어남으로써의 명색의 깨우침인 지혜가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위 삼인의 스승들을 통해서 가정사를 들을 수도 있었다.
공부하는 이들이여... 그들을 스승으로 보라.
어떤 상황에서도 남들이 아닌.
자신을,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지혜... 그것이 진정한 평화가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