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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념화두와 안심입명. 꿈과의 관계

일념법진원 2010. 1. 16. 22:06

경험에 바탕을 둔 사고방식의 삶에서는 꿈에 대해서 해석할 수 없다.

왜 꿈을 꾸는지, 또는 꿈과 현실과의 관계는 어떠한 것인지... 생각으로써는 해결할 수 없는 것이다.

생각은 미묘하여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기 이전에 이미 행위를 하고 있었으나 인간은 이를 감지할 수 없기에 과학이나 의학은 꿈에 대해서 정의할 수 없는 것이다.

 

불경의 어디엔가는 꿈에 대한 구절이 있다고 한다.

꿈을 꾸는 자는 성불할 수 없다는 구절이 있기에 꿈꾸는 자는 들어오지 못한다, 라는 간판을 걸어둔 곳도 있다고 한다.

꿈은 생각이 휴식을 취하기 위해 육체를 잠들게 하며 휴식이 끝남과 동시에 깨어나 행위를 시작하면서 잠들기 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흐르던 사념, 망념들에 대해 기억해 내는 것이 꿈이며, 잠들기 전의 망념에 대한 기억을 시작으로 하여 다시 생멸의 행위를 시작하는 것이기에 생각의 이치를 이해할 수 있다면 꿈은 신비하지만 신비한 것이 아니다.

꿈은 생각의 미묘한 연속성에 따른 작용중의 일부일 뿐이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듣고 보았던 모든 것들은 기억세포에 저장되어 있으며 이런 것들이 현실과의 비교를 통해서 스스로 고통과 괴로움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공부가 깊어진 상태에서는 꿈을 꿀 수 없는 시기가 다가오게 된다.

잠들기 전까지 화두일념이 이어져 있었다면 꿈을 꿀 수가 없는 것이다.

어떤 공부인이 꿈속에서 목숨에 위협을 느끼는 상황에서도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다며 그런 상황에 대해서 깨달음이라는 확신을 갖기도 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무수자성, 무유공포. 등의 불경에 쓰여진 말들과 육체가 나라는 생각이 없기에 죽음이 없는 것이다, 라는 말들 통해서 스스로 세뇌시킨 결과가 꿈으로 나타난 것이지만 이에 대해서 깨달음이라고 착각하여 스스로 합리화 시키기 위한 다른 글들을 찾아다니게 된다.

이는 스스로 자기 최면에 빠진 경우이며 공부인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일이다. 

 

석가모니의 말들에 대해서 연구하는 단체들이 무수히도 많으나... 모두가 부질없는 행위임을 감지하지 못한다.

나라는 생각, 육체가 나라는 생각의 "아상"으로써는 어느 한 구절도 해석될 수 없는 것이다.

 

인생...

죽을 때까지 욕망(생각)에 이끌려 다니며 죽음을 향하여 달려나가는 길이거나,

더 재미있는 것, 더 즐거운 것, 더 맛있는 것들을 찾아다니며 죽음을 향해 달려나가거나....

죽기 싫어서, 더 오래 살기 위해서 무엇을 찾아다니거나... 모두가 가는 길은 다르지 않은 것이다.

마음대로 태어난 것이 아니듯이 마음대로 살아질 수도 없는 것이며 마음대로 죽어질 수도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자유의지... 그것은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만들어진 말이다.

욕망은 채위질 수 없는 것이기에 인간은 결코 만족한 삶을 살아나갈 수는 없는 것이다.

인간이 자유의지에 의해서 달성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하나, 안심입명에 드는 일 뿐이다.

인간이 500년을 살든 천년을 살든 죽음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에 어떤 상황에서도 만족하여 평화로울 수 없는 것이다.

 

지금 존재함을 천국으로 생각할 수 없는가?

지금 지옥이라는 생각으로 사는 사람이 어찌 천국으로 갈 수 있겠는가?

지금 천국이라고 생각한다면 항상 천국에서 사는 것이다.

 

붓다 예수의 말처럼...

나, 내 가족 말고, 이웃을 나같이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음이 천국이 아니겠는가?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의 뜻이다.

 

그대의 본성. 그것이 모든 것의 기원이다.

그대의 나가 없으면 이 세상은 나타날 수 없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순간 내가 붓다임을 잊지 않으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사람. 사람, 사람, 사람이 왜 사람과 다투고 싸워야 하는가?

 

순간, 순간 모두를 긍정하는 여유로운 미소와 일념화두로 안심입명을 위한 길을 가야하지 않겠는가?

그것이 태어난 목적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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