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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나(아트만)의 본질 - 예수어록 - (4~p6)

일념법진원 2010. 3. 2. 00:32

이제 그 당시에 했던 말들에 대해서 다시 설명하나니 왜곡하지 말라. 


1 나의 말이 하나님 말씀이다. 오직 나의 말만을 믿어라.

2 나의 말이 진리이며 생명이다.

3 네 안에 하나님이 계시다.

4 그 날에는 내가 하나님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을 것이다.

5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해라.

6 어린아이와 같이 순수하지 않으면 천국을 볼 수 없다.

7 우상을 숭배하지 마라.

8 하루 종일 기도하라. 꿈에서 깨어나라.

9 네 시작은 미약하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

10 깊은 물에 그물을 던져라.

11 이기는 자, 승리하는 자가 되어라.

12 진실로, 진실로 말하노니 사람이 거듭남이 하나님 나라를 보는 것이며 “성령”이다.

13 성령은 어디에나 있다. 없는 곳이 없다. 쪼개진 장작 속에도.

14 육체는 질그릇과 같은 것이다.

15 예수 그리스도의 적은 언술이 뛰어나 나의 말을 이용하여 사람들을 현혹케 하는 자이다.



1과 2의 오직 나의 말만이 진실 된 말, 즉 진리이며 상대적일 수밖에 없는 언어로는 해석될 수 없는 말이기에 하나님 말씀이라 한 것이며 목숨과도 같이 중요한 말이며 늙음과 죽음이 없는 진리의 말이기에 생명이라 한 것이다.

“나의 말”과 “하나님의 말” 그리고 “진리”라는 말, “생명”이라는 말은 같은 뜻의 다른 표현들이다.

언어는 “나”로부터 시작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부재에 대해서는 상상할 수 없다. 매일 매일 깊이 잠들어 있는 동안에는 자신의 존재를 비롯하여 세상이 없는 상태의 “아무것도 없는 것”의 상태지만 이를 상상할 수 없다.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서, 더 높은 곳을 향해서 달려 나가는 사람들에게 흔히 일어나는  “뇌졸 증”과 “깊은 잠”은 다르지 않은 상태이다. 뇌졸 증은 긍정적인 사고의 억압에 의해서  뇌세포의 기능이 마비되어 생각세포 스스로가 자포자기의 형태로 휴식을 취하는 경우이며 깊은 잠은 자연스러운 생명현상에 따른 생각세포의 휴식이다.

이 두 가지의 상태는 동물들의 “나 없는 나”, 또는 어린아이의 “순수의식”의로써 “나”의 부재와 같은 “아무것도 없는 것”의 상태이다.

소위 우리말로 “깨달음”이라는 말과 “삼매”라는 말로 표현되는 일념의 무념 처에서는 (경험하였으나 기억할 수 없는 어린 시절에 최초로 일어났던 “육체가 나라는 생각”의 앎이)육체가 나라는 생각일 뿐, 육체가 내가 아님을 깨닫게 된다.


그것은 육체가 나라는 생각이 없는 상태(주체와 객체가 둘이 아닌 하나)이며 육체의 얽매임에서 풀려난 정신으로 표현될 수 있으나 상대적일 수밖에 없는 언어(이것이나, 저것, 또는 다른 것, 선과 악, 크고 작음, 아름다움과 추함, 안과 밖, 시간과 공간, 삶과 죽음, 행복과 불행, 성공과 실패, 자유와 구속, 등.......)로는 표현될 수 없기에 창조자, 절대자, 유일신의 뜻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한 것이며 분별없음의 표현이기에 진리라고 한 것이다.


자신의 부재, 즉 깊이 잠들어 있는 상태에 대해서는 상상할 수 없듯이 생각이 있는 동안에는 생각이 없음의 상태를 생각할 수 없기에 인간의 나라는 관념으로서는 “나 없는 나”의 상태(오직 나, 하나님)에 대해서는 나라는 생각이 있는 한 연구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생각의 미묘한 이치로 설명될 수 있다. 예를 들어서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나”라고 생각해 보면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나”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며 이와 마찬가지로 “내 마음이 어디에 있나”라고 생각해보면 “내 마음이 어디에 있나”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이 모든 언어(과학이나 학문 등의 이론과 교리 등)는 실체가 없는 것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기에 진실 될 수 없으며 진리일 수 없는 것이다.


3과 4의 “네 안에 하나님이 계시다, 라는 말과 구원의 그 날”에는 “내가 하나님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함께 할 것이다”라는 말의 뜻은 이러하다.

1과 2의 설명과 같이 그 날에는 “나=하나님=너희”와 같이 모두가 둘이나 셋이 아닌 하나임을 뜻하는 말이다. 천지만물을 포함한 우주가 둘이 아닌 하나이듯이 너희들 모두가 (나와 너, 그리고 다른 사람이 아닌)하나이기에 “5항”의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 하는 것” 만이 인류가 평화로울 수 있다는 가르침이다.

인간의 삶은 투쟁이며 전쟁이다.

인간들 모두가 나, 나, 나들이다. 개체적 자아인 나, 나, 나라고 말하는 사람과 사람이 초등교육부터 서로, 서로가 서로를 상대로 싸워서 이기라는 기술을 가르치고 있다. 오직 성공만이 행복이며 평화일 것이라는 가르침의 결론은 전쟁을 가르치는 것과 다름이 없는 것이다.


11의 이기는 자, 승리하는 자가 되라는 말은 사람과 사람이 서로 싸우고 이겨서 승리하라는 말이 아니다. 너희가 모두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서로가 싸우는 인간세상이 지옥이라고 하였건만 어찌하여 서로가 싸워서 이기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 

“이기는 자, 승리하는 자”가 되라는 말은 일념의 기도를 통하여 자신의 어리석은 마음을 이겨서 승리하라고 한 것이며 “그 날”(하나님과 나와 너희가 하나임을 깨닫는 날이 구원 받는 날)을 위해서 일념으로 하루 종일 기도하라고 말한 것이다. 


8의 “하루 종일 기도하여 꿈에서 깨어나라”는 말은 수행을 뜻하는 말이다. 인간이 잠들어 있기에 깨어나라는 말이 아니다.

6의 “어린아이와 같이 순수하지 않으면 천국을 볼 수 없다”는 말은 8의 하루 종일 기도하여 깨어나라는 말과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일념의 기도를 통해서 “나 없는 나”인 순수의식의 아이와 같은 상태가 되었을 때에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다는 말이었다. 육체가 나라는, 나는 “하나님”의 도구이며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위 되는 물건이라는 생각으로 “하루 종일” 기도하라는 말과 같이 하루 종일 하나님만을 생각하는 일념의 기도를 통해서 깨달음을 성취함이 하나님 나라이며 성령이라고 했던 것이다.


12의 “진실로, 진실로 말하노니 사람이 거듭남이 하나님 나라를 보는 것이며 성령”이라는 말과 같이 사람이 하루 종일 일념으로 기도하여 (육체가 나라는 생각일 뿐, 내가 아님을 아는 앎, 깨달음)꿈에서 깨어남이 “성령”이라고 한 것이다.

마음이 본래 있는 것은 아니다. 경험 및 간접경험을 통한 기억세포에 저장된 관념이라는 표현의 기억세포와 순간생각세포와의 연계된 작용에 대해서 마음이라고 이름 지은 것이다. “선악과”를 따먹음이 원죄라는 말은 선과 악을 분별하는 지식이 죄의 근원이라는 뜻이며 인간의 오직 자신의 나만을 위한 모든 행위가 남과의 투쟁의 원인인 분별 심에서 시작되는 것이기에 선과 악을 분별함이 죄라는 뜻으로 말했던 것이다. 언어는 상대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기에 진실 될 수 없다는 말에 대해서 상기하기 바란다.


개체적 자아는 자기중심적일 수밖에 없기에 이기주의이다. 본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이듯이 세상을 창조한 별개의 신이 있는 것은 아니다. 세상은 인간의 오류에 의한 관념에 의해서 존재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설령 신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인간과 같이 자기중심적이거나 이기주의적일 수는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대학입학 수능시험장의 정문 앞에서, 또는 사찰이나 교회 등의 단체에서 자식들의 합격을 기원하는 기도를 하는 모습을 본다. 인간의 이기주의적인 습성은 그것이 무한한 어리석음인줄도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내 자식만 합격시켜 달라고 우상에게 기도하는 행위는 남의 자식은 떨어지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행위와 다르지 않다는 사실조차 감지할 수 없는 것이다.

7의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는 말의 뜻이다. 오직 나의 말을 믿되 형상 있는 어느 것도 숭배하지 말라고 하였다.

   

9의 “네 시작은 미약하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라는 말은 무슨 뜻이겠는가?

이 말은 기도, 또는 수행의 시작을 뜻하는 말이다.

어린 시절의 학습(세뇌)에 의해 육체가 나라는 오류에서 시작된 생각의 흐름은 감각보다 빠르기에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생각으로는 생각의 미묘함에 대해서 연구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삼매라는 말의 뜻과 같이 인간이 육체에 얽매어 있는 동안에 최상의 정신집중 상태에서 실재와 합일됨이라는 설명과 같이 일념의 무념 처에서는 육체가 나라는 생각이 오류였음을 발견함에 대해서 깨달음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네 시작은 미약하다”는 말은 일념 수행의 시작을 뜻하는 말로써 우상이 아닌 뜻 없는 (예를 들어 “나는 무엇인가”라는 한 구절의 화두에 대한 집중)화두에 정신을 집중하는 일은 바닷물에 돌을 던져서 바다를 메우는 것과도 같이 황당하여 미약하기 이를 데 없으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는 말은 (영문 성경 시편에서의 말, Be still and know that I am God 과 같이)하루 종일 기도의 결과는 “하나님, 신”이 되는 것이기에 “창대하리라”라는 말로 표현된 것이다.


15. "그리스도의 적"이라는 말은 상대적인 언어로 표현될 수 없는 진리임에도 그 뜻을 왜곡하여 사람들을 현혹하는 자를 뜻하는 말임과 같이 “네 시작은 미약하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라는 말이 언술이 뛰어난 어리석은 자들인 그리스도의 적들에 의해서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고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를 믿으면 다른 사람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으며 더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가르침으로 변질됨)변질된 것이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은 너희 모두가 둘이 아닌 하나이기에 서로, 서로가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야만 너희가 평화로울 수 있기에 하는 말이다. 오직 자신의 나만을 위해서 살아가야 하기에 투쟁을 일삼는 이기주의에서 벗어나라고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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