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디로부터 나왔는가?
나는 어디에 있는가?
나는 어디로 가는가?
이런 말들...
나는 누구인가? 라는 말과도 같이 공부를 시작하면서, 처음 물어들어갈 때에는 말도 안되는 소리일 뿐이다.
의구심을 일으켜야할 가치도 없는 것이기에 황당하기만 하다.
나는 어디로 부터 나왔는가? 라는 말... 일반인들에게 묻거나 또는 스스로 생각해 봐도 헛소리로 여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는 "나는 누구인가?" 라는 물음과도 같이...
내가 숨을 쉬고 있음을 당연시 하는 것과도 같이...
그런데...
오랜 동안 화두에 집중하여 화두의 의미, 즉 일념을 깨우칠 무렵 쯤에는 그런 물음들, 말도 안되는 소리들이 조금씩 의구심으로 변해가게 됨을 알게 된다. 스스로 의구심을 일으켜 나가다 보면... 정말 궁금해지는 것이다.
육체가 나다, 라는 앎에 대해서 너무도 당연시 하기에 의심조차 해 볼 수도 없듯이...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내가 어디에 있는지, 내가 어디로 가는 것인지... 이러한 물음들에 대해서 어렴풋이 의구심이 일어날 무렵... 그 즈음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렴풋이 앎이 다기오지만 그것에 대해서 표현할 수는 없다.
처음 내가 어디에서 나왔는가? 라는 물음...
나는 누구인가? 라는 물음 등의 화두를 이어갈 때에는 그야말로 한강에 돌을 던져서 메우려는 듯한 황당함, 어이없음에 대해서 "예수"는 "네 시작은 미약하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라는 말을 하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물론 이치적으로 설명하여 이해될 수 있다.
내가 어디에서 나왔는가. 라는 물음에 대해서 앞서 설명한 바 있으나... 다시 요약하자면...
너무도 당연하게 부모로부터 나왔으며... 그 부모 또한 그 부모로 부터 나온 것이기에 무모를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 자아, 인간, 사람들의 일반적인 생각이며 이에 대해서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하지만...
그 부모의 부모... 계속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전설, 또는 신화로 귀결될 수밖에 없으며.... 단군신화? 하나님의 창조, 신선... 등의 상상의 세계일 수밖에 없다.
창조론, 진화론...
그 어느것도 옳다고 할 수 없기에 인간의 기원... 태초 등의 모든 낱말에는 그 근거, 근원이 없을 수밖에 없지만... 경험에 바탕을 둔 사고방식으로써는 더 이상 알아낼 도리가 없기에 해답이 없다보니... 신을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신, 신이라는 말... 그 말 역시 스스로 만들어 낸 말, 말, 말이면서... 허허헛
진리, 참 나, 진아, 아트만, 부처, 하나님... 도, 등으로 불리는 "생각의 미묘한 이치"를 깨우친 인물들, 즉 해탈이라고 표현했던 "해탈", 진리를 깨우친 인물들에 의해서 본질에 전해졌지만 경험에 바탕을 둔 사고의 영역을 넘어서 있는 말들이기에 왜곡된 것이며 결국은 종교로 변질되면서 서로가 옳다는 주장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나의 근원.
그것을 찾는 일...
모든 언어, 말들은 아무것도 없는 것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진실, 진리일 수 없으나 인간은 말, 말, 말에 의한 세뇌에 의해서 나의 존재를 알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어떠한 사상등에 세뇌를 당하면 그것이 무엇이든 세뇌시키는 정도에 따라서 세뇌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모든 언어, 모든 낱말들... 천국, 지옥, 하늘, 땅, 산, 바다, 영혼, 하나님, 부처, 깨달음... 귀신, 성령... 그대가 아는 앎... 모든 지식으로 알고 있는 낱말들 모두의 근원은 "아무것도 없는 것"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책을 읽고, 이 사람의 말을 들었던 사람들...
글을 보고 이해할 수 있다 하여 "내가 안다"라는 앎...
일념의 집중되는 시간이 길어지는 과정, 즉 삼매의 시간이 길어지면서는 과거의 모든 앎, 기억된 모든 생각들이 무력화되기 때문에 공부가 깊어지는 과정에서는 자신의 기억속에 남아있는 모든 앎은 공부에 장애가 되며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가지만 그 앎에 의해서, 그 알음알이에 걸려서 정신질환자들이 되었던 것이다.
그 앎이라는 것이 그릇된 이해에 의한 앎, 즉 자신의 기억, 지식에 바탕을 둔 이해이기 때문이다.
그릇된 앎의 집착에서 헤어날 수 없는 것이 생각의 속성임을 일깨우기 바란다.
인류의 고통이 바로 앎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겠는가?
공부의 마침?
그것은 내가 내가 아님을 알아차리는 것이기에 나, 즉 몸의 죽음과도 다르지 않은 것이다.
상상할 수도 없으며 경험될 수도 없는 죽음을 경험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죽음에 대한 말을 들는것과는 다른 것이다.
내가 안다는 상을 내는 이들...
그 길을 안다는 앎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그 길을 안내하는 이들...
하나님의 말씀이라며 전도하는 사람들...
부처님의 말씀이라며 전도하는 사람들...
죄인이 있다면 그들이 가장 큰 죄를 짓는 것이 아니겠는가?
수행을 위한 수행... 그것은 아니다.
참 나, 그것의 행방을 찾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큰 목적이지만...
그것은 일시에, 어쩌다가, 실수해서 찾아지는 것은 아니다.
일상을 통해서 자신의 나를 돌아보는 습관... 자신의 행위를 관찰하는 습관...
지금 이 순간... 자신의 나를 잃지 않으려는 노력에 의해서 천천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다.
하루종일 기도하라는 말과 같이...
하루종일 여여한 미소를 잃지 않으려는 노력...
모든 대상을 대하면서 미소부터 짓는 습관... 그것에 의해서 자신 내면의 평화로움에 다가서는 것이다.
모든 것들에 대한 긍정, 긍정, 긍정의 습관과 신뢰... 그것에 의해서 자신의 나에 다가가는 것이다.
나, 그것이 모든 것의 기원임을 망각하지 않음...
항상 진리의 말과 함께 내가 그것이라는 믿음.
내가 그것임을 의심하지 않음.
내가 그것임을 시인하는 용기.
내가 그것이라는 확신.
더 나아가서 화두하나 지니는 행위.
무위...
그것이 곧 그것이다.
진리. 그것이 너희를 자유하게 할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