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일념법진원 2010. 3. 31. 07:27

불성이라는 말은 노자의 도, 예수의 성령, 참 나, 아트만, 브라흐만으로 표현되는 말들과 다르지 않은 말이다.

그것은 어디에나 있다.

도는 어디에나 있다. 벌래에도 가라지에도, 똥에도 오줌에도 있다, 라는 말은 노자의 말일 것이며...

성령은 깨진 기왓장 속에도 있으며 쪼개진 장작 속에도 있다, 라고 하였든가...

불성은 없는 곳이 없다, 라는 말들... 모두 같은 뜻의 다른 표현들이다.

 

그런데, 어디에나 있다, 라고 하였는데...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라는 물음에 조주인가?, 마조인가? 허헛 하여튼 어느 선사가 無라고 하였다고 한다. 

왜 무, 라고 하였는가, 라는 말에 대해서 "무자 화두"가 만들어 졌다고. 

 

중요한 것은 석가모니의 수행은 위빠사나로 알려진 자신의 행위에 대해서 관찰하는 법, 관법으로 해석되어 젼해졌으며 그 이후 중국의 선사들, 아마 붓다 달마 이후에 화두선이 개발? 된 것으로 젼해지는 것으로 보이며 그것이 올바른 길이다.

화두를 드는 이유조차 이해할 수 없는 어리석음에 의해서 위빠사나가 옳다, 화두가 옳다는 등의 분별을 하지만 "생각"의 이치에 대해서 아주 조금만 이해할 수 있다면... 참 자아인 자성을 되찾기 위한 공부는 오직 일념을 성취하기 위한 수단과 방법임을 알면 될 것이다.

 

생각의 이치에 대해서 이해조차 할 수 없는 자들이 부처가 되겠다는 욕망으로 어거지를 써 가며 화두를 들기때문에 상기병을 비롯하여 육체가 병이 드는 것이며 육체가 병들지 않으면 대부분이 정신질환과 다르지 않은 환상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소리와 형상으로는 여래를 볼 수 없다고 하였으나... 해석될 수 없는 말들이기 때문에 과장되게 표현될 수밖에 없는 불경의 몇 구절만을 자신의 알음알이로 이해하여 그 말, 소리를 염두에 두고 화두를 들다보니 생각이 조금 비워질 무렵에는 환상의 세계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삼매을 경험했다는 자들이 부처를 보고, 영혼을 보고, 빛을 보았다는 등의 헛소리들을 하는 이유이다.

 

수행의 입문과 실천을 참고하기 바라며...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라는 물음에 불성은 어디에나 있다고 하였는데 왜, 없다, 라고 하였는지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어야만 한다. 생각의 이치에 대해서, 그리고 말변사에 대해서, 언어의 기원에 대해서 납득할 수 있다면 이해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을 "도"라고 할때에... 이름 지을 수 없는 것이지만...

생각의 미묘한 이치를 사례로 하여 가장 간략하게 설명한다면...  

생각의 유희이며, 본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것에 대해서는 깊이 잠들어 있는 동안의 나도 없으며 우주도 없음에 대한 설명과 같이... 

하지만 나, 내가 있기 때문에 세상이 존재하는 것이며 그것이 생각의 작용이라고 한바와 같이...

있다고 생각하면 있는 것이지만, 없다고 생각하면 없는 것이다. 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천지만물 중에서 어떤 것을 "나"라고 아는 앎에 의해서 고통을 겪는 것은 오직 스스로 사람, 인간, 나라고 아는 개체적 자아이다.

오직 생각, 망념에 고통을 겪는 것도 그대의 나, 나, 나 들이다.

그대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숨이 쉬어지는 것이며... 그것이 언제 어느때 멈추게 될지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 이 순간, 육체와 생각이 하나인 이 순간만이 실재하는 것이다.

 

그대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쉬어지는 숨... 그대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쉬어지지 않으면? 허허헛

오직 지금 이 순간만이 진리이며 실재이다.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일념으로...

 

 

귀신이나 영혼, 마귀라는 말 또한 말변사, 언어의 기원을 이해함으로써 의심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살아오는 과정에서 보고 듣고 배웠던 모든 앎이 "아무것도 없는 것"에 바탕을 두고 있는 까닭에 모든 앎이 또 다른 의심일 수밖에 없기에 고통을 겪는 것이다. 재물이든, 명예든, 지식이든... 많으면 많은만큼 욕망은 더 커져만 가는 것이며 욕망이 많아진 만큼 고통과 괴로움, 근심 걱정 또한 더 커지는 것이기에 욕망으로써는 자유와 평화, 자신의 본성과는 더욱더 멀어지는 것이다.

 

세속을 버리라는 뜻이 아니며, 무소유를 주장하라는 뜻도 아니다.

육체마져도 내것일 수 없는데... 허헛 소유, 무소유... 부질없는 망상이다.

행위하되 내가 행위하는 것이 아님을 아는 깨어있는 삶... 그것이 자리이타의 행이며 진리와 하나되는 길이다.

 

나는 누구인가.

몸이 나이며 누군가로부터 들어서 알고 있는 지식, 과거의 기억이 나이다.

앎이 나가 되어버린 것이다.

허헛, 정녕 그것들이, 앎이, 고거의 기억들이 진짜 그대의 나란 말인가?

아니다.

아니다.

아니다.

숨 한번 들이키지 못하면... (숨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쉬어지는 것이건만...) 썩어서 사라질 것들인 뼈와 피, 살과 하나가 된 지식, 앎... 그것들이 "나"라고 알기에 고통을 겪는 줄도 모르는 것이다.

남들에게 들었던 앎, 지식 나부랭이들이 어떻게 만물의 영장인 "나"란 말인가?

 

그대의 나, 그것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말... 모든 것의 기원이라는 뜻이다.

이 세상 내가 만든 것이다.

 

생각, 생각, 생각...

"나라는 생각의 근원은 무엇인가?"

"나라는 생각은 어디에서부터 나왔는가?"

이 또한 화두이다.

 

우주가 본래 있는 것이 아니지만... 우주의식의 관점에서 본다면, 지구 따위가 있겠는가?

그대의 나, 그것이 모든 것의 기원이다.

진리. 그것이 너희를 자유하게 할 것이니.

 

http://cafe.daum.net/husimwon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