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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나를 보라

일념법진원 2010. 4. 25. 02:53

道를 닦는이들의 삶.

진리의 길을 가는 목적은 궁극에 이르러 천지만물과 분리되지 않은 자아로써 존재하기 위함이다.

일념의 노력에 의해서 유상삼매의 시간이 길어질 무렵이면 스스로 분별심이 사라지면서 자신의 참 모습을 보게 된다.

일반적으로 화두일념이 자연스러워 질 정도, 즉 화두를 들기위한 노력에 의해서 화두를 들 수 있는 만큼 일념이 깊어질 무렵에는 고정관념이 사라지면서 자신의 허물을 보게 됨으로써 겸손해지며 평화로움을 경험하게 된다.

 

일념에 유지되는 시간이 길어진 만큼 알아지는 참된 앎에 대한 기쁨은 자신만의 즐거움이며 지혜를 깨우쳐 나가는데 대한 환희로움을 느끼기도 한다.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사람들이 불과 수개월만에 욕망의 노예에서 벗어나 기쁨으로 존재하는 경우 또한 흔한 일이다.

도를 공부하는 목적, 진리의 길을 가는 이유가 그것이다.

인간의 자유와 평화는 오직 그 길에서만 만나질 수 있기 때문이며 불이일원론을 연설했던 성자, 성인들의 가르침의 핵심이 일념을 통해서 자유와 평화를 찾게 하기 위한 목적이었음을 상기하기 바란다.

 

종교 및 유사단체들과 같이 편을 갈라서 서로가 자신이 옳다며 갈등하고 투쟁하라는 말이 아니다.

서로가 옳다며 주장한다면 어찌 그것이 진리일 수 있겠는가? 불이일원론의 설명을 통해서 성인들의 가르침이 모두가 다르지 않은 것임을 일깨우기 바라며...

 

에고의 삶을 통한 모든 행위는 오직 자신의 나만을 위한 행위일 수밖에 없다. 

모든 행위가 오직 자신의 나를 위한 행위일 수밖에 없기에 이기주의자들이지만 이기주의라는 말을 가장 싫어한다. 이기주의이면서도 이기주의자가 아니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 어느 누구나 이기주의자이며 육체가 나라고 아는 한 이기주의의 삶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대가 누구를 돕는 일도, 그대가 누구를 사랑하는 일도...... 모두가 그대의 나를 위한 행위이다.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착각하는 것이다.  

 

진리의 길에서 평화로운 까닭은 일념이 깊어질 무렵에 비로소 자신이 이기주의자 였음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글을 통하여 내가 안다는 생각의 이해로써는 결코 아상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해와 오해는 같은 뜻의 다른 표현임에 대해서는 일념을 통해서 깨우쳐야만 알 수 있는 것이다. 오직 일념을 통한 지혜가 드러나면서 자신의 나에 대한 본질을 조금 보는 것이며 그것 만으로도 가정에는 웃음꽃이 피어나는 것이다.

 

깨달음에 목적을 둔 일념의 공부가 어긋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지혜의 드러남에 대한 앎에 도취되기 때문이며 그러한 알음알이는 아상을 키우는 결과일 수밖에 없는 까닭에 가치없는 노력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포기할 필요는 없다.

자유의지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오직 진리의 길에서만은 있는 것이다.

인류 역사를 보더라도 궁극의 경지에 이른 인물들은 극 소수에 불과하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능한 일이지만 또한 누구나 가능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나를 죽이는 일이기에 스승의 가르침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닌 듯 하다.

 

견성은 집에서도 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견성... 그것 만으로도 삶은 평화로울 수 있는 것이며 더 깊어지면서 스스로 깨우쳐 나가는 삶을 통하여 궁극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하고자 하는 말은 일상에서의 수행에 대해서이다.

개체적 자아는 모두가 자신의 나만이 옳다는 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자신 스스로는 당연하다고 알지만 그것이 오직 자신만의 고정관념이라는 생각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나는 충분히 양보하고 있다거나, 나는 정말 무난하게 잘 하고 있다는 생각은 누구나 하는 생각이다. 서로가 잘 한다는 생각을 고집할 수밖에 없기에 작은 논쟁을 시작으로 전쟁을 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육십억 인구 모두가 성공해야 된다며 아우성이다.

성공시대라는 프로그램들, 성공 사례들을 보면서 어이없는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다.

칠전팔기라는 말을 써 가면서... 목숨을 걸 만큼 노력하여 재물을 모으는 사람들을 우상화 시키는 일들과 그런 일들에 대해서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보면서... 너도 그렇게 노력하고 투쟁하여 성공해야 된다는 사람들을 보면서... 너도 나도 모두가 대학을 다녀야 되며 서로가 성공해야 된다며, 돈을 많이 버는 것이 행복이라며 당연시하는 사회풍조를 보면서... 웃지 않을 수 없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인류 모두가, 종교들 모두가... 단체들 모두가... 인류의 삶이 이기주의와 이기주의와의 갈등이며 전쟁이다. 거짓 웃음을 흘리면서, 자존심 마져 버려가면서 욕망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 사람, 사람들...

서로가 이겨서 승리해야 한다는 사람들, 수천만년 살아오는 동안에 어느 누가 자유하고 평화로우며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욕망을 채워서 행복하고 평화로운 사람은 없었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진리의 길을 가라고 하는 것이다.

자유와 평화, 행복은 오직 진리의 길목에서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빗나갔으나... 사람이 사람과 투쟁해야만 하는 삶이 안타깝기에 하는 말이다.

 

진리의 길에서 일념이 깊어질 무렵이면 누구나 궁금해 하는 문제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리의 길목에서 두가지의 기쁨을 누리게 된다. 그 하나는 자신의 본성에 다가서면서 자신의 고통이 욕망을 채움으로 당연시 되었던 고정관념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을 일깨우게 따라 욕망의 늪에서 벗어났기에 기쁨으로 존재하는 경우이며 두번째는 일념에 의한 참된 앎의 깨우침에 따른 환희로움을 맛볼 수 있다는 것이다.

지식을 넘어선 지혜의 깨우침은 세상사 어떤 기쁨과도 비교될 수 없을 만큼 큰 기쁨이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그대가 같이 하는 사람들로부터 고통을 겪는다면 일념을 공부해야만 한다.

처음 만나서부터 싫은 사람은 없다. 좋은 시절도 있었을 것이다. 다만 살아오는 과졍에서 관념의 차이에 따라서 거리가 멀어진 것이며 서로의 생각이 다르기에 소통될 수 없음에 의해서 고통을 겪는 것이다.

들기엔 너무 무겁고 놓자니 깨지고... 버리고 싶지만 버릴 수도 없는 지경이 되었으니 고통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그렇다고 죽어버릴 수도 없으며 누구에게 하소연 할 곳도 없다. 마음을 비우라고 하지만 비워질 수 없으며 상담을 하더라도 쉬운 일이 아니다.

욕망과 집착에서 벗어날 수 없기에 삶이 고통스러운 것이다.

 

이럴때에 일념을 유지하기 위한 공부를 해야만 한다.

일념이 적당히 익어갈 무렵에는 걷는 걸음 걸이에 맞추어서 자연스럽게 화두를 들 수 있거나 시계의 초침소리가 들리면 그 소리에 맞추어서 화두를 이어나갈 수 있는 유상삼매의 경지가 되며, 그 정도의 경지에서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많은 변화가 일어나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 정도의 경지 이전에 이미 마음은 평정을 찾은 상태이며 "깨달음의 실체를 밝힌다"라는 책의 내용들과 이곳의 글들에 대하여 더 깊이 이해하게 되면서 혼자서 웃는 일이 잦아지게 된다. 그 기쁨은 세상사 어디에도 비교될 수 없는 환희로운 것이다. 그것이 진리의 길에서 얻어지는 지혜의 기쁨이며 묘미이다.

 

이쯤 되면 이미 가정은 예전과는 달리 웃음꽃이 피어날 것이며 모든 갈등이 사라진 뒤이기에 행복과 평화의 깊은 의미를 깨닫게 될 것이며... 

더 중요한 것은 이때에 결정되는 것이다.

그만큼의 경지에 대해서 견성이라고 한다면...

견성 이전에는 고통을 이기지 못하여 우울증에 시달리는 지경이 되면 어디론가 떠나야 하지만, 그런일 조차도 힘겨운 일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견성 이후에도, 즉 자신의 참 모습을 보았음에도 같이하는 사람에게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 경우에는 떠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사람은 모두가 다르지만 다르지 않다.

그 본성, 자성은 순수의식이며 우주의식이기에 대상에 따라서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면서도 상처가 깊은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변할 수 없기도 한 것이다.

자유와 평화, 그것은 마음 밖에서 찾아질 수는 없는 것이다.

 

무지는 이기주의를 표현하는 말이며 지혜의 밝음은 이기주의에서 벗어남과도 다르지 않은 말이다.

깨달음. 그것이 이기주의에서 벗어남과도 다르지 않다고 말하는 이유는 육체가 나라는 주체가 사라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주의식이라 함은 우주가 주체라는 뜻이 아니며 순수의식이라는 말 역시 주체가 있다는 뜻은 아니다. 육체가 나다, 라는 생각이 있는 한 죽음이 있기에 고통이 없을 수는 없으나... 누구나 죽어야만 되니 걱정할 일은 아니다.

 

반복하지만 자유와 평화는 오직 진리의 길에서만 만날 수 있기 때문에 그 길을 가라고 말하는 것이다. 인류의 자유와 평화. 오직 진리의 길에서 만날 수 있다.

 

서두르지 않고 이 순간, 순간을 살아가는 삶을 통해서 진리와 하나되는 것이다.

진리. 그것이 너희를 자유하게 할 것이니... 

 

 http://cafe.daum.net/husimwon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