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마가 동쪽에서 온 이유가 무엇입니까? 라고 붇는 자에게,
답변 ; "차 마시러". 라고 대답했던 인물이 있었다고 한다.
부처가 어디에 있습니까? 라는 질문과도 다르지 않은 질문이며,
하나님이 어디에 있습니까? 라는 질문 또한 다르지 않은 맥락이다.
진리는 단순하다.
한 생각의 차이이지만 그 차이는 삶과 죽음의 차이와도 다르지 않으며 고통과 즐거움, 기쁨과 슬픔의 차이이기 때문이다.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이 아니듯이 삶 또한 살아지고 싶은 대로 살아질 수 없다.
마음이 본래 있는 것이 아니지만 있다고 아는 마음 모두는 욕망이다.
욕망은 결코 만족으로 해결될 수 없기 때문에 행복, 자유, 평화라는 것은 욕망을 버림에서 얻어지는 것이지만... 사람들은 그 길을 알지 못하기에 고통을 겪는 것이다.
마음으로 마음을 이길 수는 없다.
욕망을 조금, 조금 버릴 수는 있지만.. 모두 버려질 수는 없기에 자유와 평화를 갈망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이다.
마음이 어디에 있는가, 라고 찾아볼 때에는, 그것을 찾아보는 동안에는 마음은 없다.
마음이 어디에 있는가, 라는 생각만이 존재한다.
그것을 안다면 일념을 깨우친 것이다.
달마가 동쪽으로 간 이유는 무엇일까? 라는 물음은,
바람이 동쭉으로 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라고 묻는 것과 다르지 않으며, 꺼진 촛불이 어디로 갔느냐, 라고 묻는 물음과도 다르지 않은 것이다.
어리석음이지만 어리석음이라고 할 수도 없다.
이 말은 또한 인생이 무엇입니까? 라는 물음과도 다르지 않은 말이다.
더 깊이 이해한다면... 불이 본래 있었던 것이 아니듯이 "본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라는 것이다.
인생이라는 것, 삶과 죽음이라는 것, 지구, 우주... 고통, 괴로움... 그런 것들이 본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하지만 내가 있으니 세상이 있고 고통과 괴로움도 있다.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이 도를 닦는 일이며 긍정을 배우는 일이다.
일념이 깊어지면서는 자연스럽게 분별심이 사라지기 때문에 긍정모드?로 전환?된다. 허헛
그대가 찾고자 하는 모든 것들... 결국에는 사라져 버릴 것들이다.
어느날 손님처럼 찾아오는 죽음과도 다르지 않은 것이다.
무엇을 구하려 무릎 꿇는가?
무엇을 구걸하기 위해서 기도하는가?
하나님이 어디에 있느냐는 말에 "예수"는 말한다.
네 안에 하나님이 있다. 라고...
사람들은 네 안에 하나님이 있다는 말에 대해서...
내 마음 안에 있으니 기도하면 성령이 내 안으로 들어와서 내가 인생의 승리자가 될 수 있다고 착각하기에 이르렀으며 그런 믿음?에 의해서 믿으면 천국, 불신 지옥이라는 종교 나부랭이들이 생겨난 것이다. 어느 종교. 어느 단체들에 대해서 옳다거나 그르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종교들, 그리고 마음, 명상, 수련 등의 단체들... 그들 모두는 사이비도 없으며 사이비 아님도 없다. 옭고 그르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거나, 편안한 마음, 기쁨으로 존재할 수 있다면, 그리하여 "행복"이라는 낱말의 뜻과 같이 부족함이 없는 만족함으로 마음이 편안한 상태일 수 있다면 무엇이 문제이겠는가?
하나님이 네 안에 있다라는 말은 하루종일 기도하라는 말이 전제되어 있다.
하루종일 기도하라는 말은 하루종일 일념으로 존재하라는 말이며 일념의 성취, 즉 무상삼매를 통해서 궁극에 이르라는 말이다. 그리고 궁극에 이름의 결과에 대해서는 "진실로 말하노니, 사람이 거듭 남이 하나님 나라를 보는 것이며 "성령"이다, 라고 "예수"는 말했다.
사람, 사람, 사람이 같은 사람과 싸우고 이겨서 승리하라는 말이 아니다.
네 자신, 네 마음과 싸워서 승리하는 자가 되라고 한 것이다.
아귀다춤이라는 말은 나와 나의 귀신과의 싸움이라는 뜻으로 설명된 바 있다.
나, 라는 말은 순수의식이며 나의 귀신이라는 말은 경험된 기억에 바탕을 둔 생각. 망념이라는 말이며 그것에 대해서 "마음"이라는 이름이 지어진 것이다.
사람과 사람이 싸워서 이겨야만 성공이며 자유와 행복이라고 아는 앎... 이러한 인간계의 삶에 대해서 "깨달은 자?" "성자?" "성인?" 들은 지옥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공부, 수행, 마음 닦음, 마음 수렴, 정신수련... 등의 모든 행위는 나와 나의 한판 싸움이라는 말로 표현한 적이 있다.
일념, 일념, 일념으로 자신의 생각을 길들여 나가라는 것이다.
가는 길목에서 그대는 삶에서는 경험할 수 없었던, 경험할 수 없는 진정한 기쁨. 평화를 만나게 된다.
그렇기에 무상의 길이며 진리의 길이라고 한 것이다.
달마가 동쪽에서 온 이유를 알아야 할 까닭이 없다.
그대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지 알수 없듯이, 언제 죽음이 찾아올 지 알 수 없듯이, 욕망을 채워서 만족하여 평화로울 수 없듯이... 생로병사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인간에게 자유의지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단 한 순간도 평화로울 수 없는 이유는 생각, 생각, 생각... 그것은 찰나지간에도 변해만 가듯이 한 순간도 머물 수 없기 때문이며 오직 일념, 일념, 일념에 의해서 머물 수 있는 것이며 그때 비로소 그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대의 나를 찾으라.
너 자신을 알라, 라는 말과 다르지 않은 말이다.
그대의 나, 그것이 모든 것의 기원이다.
그것이 하아님이며 성령이다.
그것이 절대자이다.
그것의 이름이 진리, 도, 하나님이며 새 생명이다.
그 길을 통해서,
나의 나라로 오라.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할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