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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즉시공. 공즉시색 / 반야심경 올바른 이해

일념법진원 2010. 4. 30. 17:11

반야심경의 첫 구절에서는 관자재 보살이 행심반야바라밀다시에 오온이 공임믈 깨우치고 나니,

도일체고액... 으로 시작된다. 

 

도 일체고액에 대해서는 수행체험담의 생각.. 에 설명된 바와 같이 일체의 고통과 괴로움에서 벗어났다, 건너갔다, 라는 뜻이며...

관자재 보살이라는 말의 뜻은 관찰하는 방법으로 수행하는 수행자를 뜻하는 말이다. 고다마 붓다의 말이 한자로 번역되어 전해지면서 해석될 수 없음에 의해서 왜곡되기도 하였으나 어차피 에고의 지식, 생각을 넘어선 말들이기에 이해될 수는 없다.

 

다만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수행자가 생각의 미묘한 이치를 깨우치고 나니...

오온이 공이었으며 모든 번뇌와 망상으로 지어진 고통과 괴로움이 건너갔다, 고통과 괴로움이 본래 있는 것이 아니라, 라는 말이다.

 

오온이 공이다, 라는 말은 무안이비설신의에 대한 설명과 같이 눈, 귀, 코, 혀, 촉감, 의식이 본래 없는 것이다, 라는 말이며 이에 대해서는 생각의 미묘한 이치에서 설명된 바와 같이 인간이 보고 느끼는 모든 감각기관의 행위와 그 행위의 결과는 경험에 의한 기억된 생각에 바탕을 두고 찰나지간으로 반복 순환하며 흐르는 순간생각세포의 작용이라고 설명하였다. 

 

색수상행식이라는 말 또한 오감의 작용에 의해서 아는 모든 앎이 생각의 작용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생각의 미묘한 이치에 대해서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

색도 색이라는 생각이며,

의식도 의식이라는 생각이며,

마음도 마음이라는 생각이며,

영혼도 영혼이라는 생각이며,

.......

이와 같이 모든 것들 또한 모든 것들이라는 생각이다.

 

이 곳의 모든 글들과 저서 "깨달음의 실체를 밝힌다"를 반복해서 읽음으로써 신과 깨달음, 창조, 자아의 근원 등에 대해서 관념적으로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며 이곳의 글들을 보는 일과 일념공부를 병행함으로써 진리에 다가설 수 있는 것이며, 일념을 깨우침에서 비로소 자유와 평화, 행복이라는 낱말의 뜻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는 말은 수행자가 일념의 무념처인 삼매에서 아상(=에고=육체가 나라는 생각)이 일념에 의해서 소멸됨으로써 무아상(육체가 내가 아니라는 생각)으로 깨어난 이후에 도의 관점, 우주의식의 관점, 붓다의 관졈, 지혜의 관점에서 보는 세상을 표현한 말이다. 

이는 육체가 나다, 라는 앎에서 육체가 내가 아니다, 라는 앎... 즉 한 생각의 차이로써 꿈인줄도 모르고 꾸던 꿈에서 께어난 뒤, 이 세상이 말, 말, 말로 지어진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설명한 것이며... 또한 생각의 작용에 의해서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라, 라는 연설이다. 

 

반야심경의 내용들 역시 자아의 본질인 자성에 대한 설명들에 대해서 중복되어 표현될 수밖에 없으나... 좀더 가까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고자 한다.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는 말의 뜻은 있는 것이 없는 것이며 없는 것이 곧 있는 것이다, 라는 말이다.

이는 본래 없었던 것이 보는 자의 생각이 있기에 있는 것이며 보는 자의 생각이 없다면 아무것도 없다, 라는 뜻이며...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인간의 관념으로써만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대가 깊이 잠들어 있는 동안에 대해서는 상상할 수 없듯이.... 세상이 본래 있는 것이 아니라, 라는 말로 해석될 수밖에 없는 것이며

나라는 생각이 죽은 자의 관점에서 보는 현상계에 대해서 설명했던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뿐이다.

 

생각의 이치와 속성에 대해서는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일념의 깨우침에 의해서 아는 앎의 차이는 한 생각의 차이지만 하늘과 땅의 차이만큼이나 큰 것임에 대해서는 여러차례 설명된 바 있다.  

글을 충분히 읽고 납득할 수 있다면 일념을 공부해야 하며... 일념을 깨우칠 무렵에는 이곳의 글들이 새롭게 다가올 것이다. 인간은 육체, 몸이 나, 라는 그릇된 앎, 즉 경험의 오류에 의해서 삶과 죽음의 고통을 겪는 것이다.

 

깨닫기 위해서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공부를 해 나간다면 그 또한 욕망이며 욕망이 앞서기 때문에 정신질환이 될 수 밖에 없다고 하였다.

진리의 길을 가는 목적은 자유와 평화, 행복을 위한 것이다.

인간, 인류.... 진리의 길을 벗어난 에고의 삶에서 행복이나 자유, 평화를 논할 수도 없다.

전쟁이 아니면 평화롭단 말인가?

불행이 아니면 행복이란 말인가?

구속되지 않았으면 자유란 말인가?

아니다.

아니다.

아니다.

사람이 나라는 생각에 바탕을 두고 만든 모든 말들은 상대적이며, 상대적인 모든 말들은 같은 뜻의 다른 표현들이기에 어떤 낱말도 정의될 수 없는 것이다. 그 사례에 대해서는 다른 글들을 참고 바라며...

 

여기서는 사랑이라는 낱말에 대해서 정의해 보자.

사랑과 증오는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다.

에고의 사랑은 욕망이며 집착이다. 내가 사랑한 만큼, 아니 내가 사랑한 만큼보다 조금 더 사랑을 받아야만 한다.

사랑하지 않으면 증오할 일이 없다. 증오한다는 것은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에 대해서 강조하는 표현일 것이다. 사랑이 아니면 증오이며 증오가 아니면 사랑이란 말인가?

 

인간은 왜? 끊임없이 행복할 수 없는 것인가? 

행복이라는 낱말의 뜻은 만족하여 편안한 마음이다. 만족한다는 말은 부족함이 없다는 말이다. 

 

생로병사의 고통을 겪어야만 하는 인간이 부족함이 없을 수 있겠는가?  

행복과 자유, 평화... 그런 것이 본래 있는 것이 아니기에 말, 말, 말로 만들어진 것이다.

세상이 그러하듯이...  

인간에게 행복과 자유 평화가 있다면, 그것을 구하려 한다면 오직 진리의 길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그렇기에 무상의 길이라고 하는 것이며 진리의 길을 가라고 하는 것이다.

일념을 깨우치면서 비로소 그것의 의미를 알게 될 것이기에...

 

오래 참고, 인내하는 사랑, 그것은 참다운 사랑일 수 없다.

일념을 공부함으로써 그대는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깨닫게 될 것이다.

인간이 끊임없이 행복하고 자유할 수 없는 까닭은 생각, 생각, 생각.... 그것이 나의 생각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생각. 그것은 신이며... 그것의 행방을 찾았을때에 그대는 신을 창조한 것이 그대의 자성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생각, 나의 생각으로 아는 생각. 그것은 찰나지간에도 경험된 생각을 바탕으로 하여 생멸을 반복 순환하는 윤회를 함으로써 한 순간도 머무를 수 없는 것이다.

감각기관과 감각기관에 의해서 보고 느끼는 모든 것들은 생각의 작용에서 비롯된 것이며 생각은 끊임없이 변해가는 것이기 때문에 기쁨이나 슬픔, 고통과 괴로움 등을 느끼는 마음은 끊임없는 갈등의 연속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진정한 자유와 평화, 사랑을 원한다면... 일념을 공부하라.

자유와 평화, 행복은 오직 진리의 길에서만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욕망은 결코 만족으로 해결 될 수 없다는 말을 상기하기 바라며...

 

진리. 오직 그것이 너희를 자유하게 할 것이니...

다음에 계속...

 

참고. 이곳의 모든 글들이 생각의 미묘한 이치에 대한 글이며 반야심경의 중요한 내용에 대해서도 설명된 바 있다. 글을 충분히 읽고, 일념을 통해서 자유의 길을 가기 바라며... 성경이나 불경 등의 난해한 내용들에 대해서 궁금한 점 있으면 질문하기 바란다.

 

더 자세한 내용은 http://cafe.daum.net/husimwon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