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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위자연과 무아

일념법진원 2010. 5. 2. 09:00

無爲라는 말은 행위가 없다는 말이다.

인간을 비롯한 천지만물은 행위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을 제외한 천지만물은 행위를 하지만 내가, 라는 행위의 주체가 없다.

천지만물이 행위하면서도 행위자가 없는 행위라고 아는 것은 내가 행위한다고 아는 인간, 육체에 한정된, 육체에 얽매인 정신의 인간 뿐이다.  

 

무위라는 말은 주체가 없는 행위이다.

지구가 나는 지구이며 내가 공전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하늘이 내가 하늘이며 내가 푸르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내가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무들이 나는 나무다, 라고 아는 것이 아니다.

동물들이 나는 동물이다, 라고 아는 것이 아니다.

나는 사람이다, 라는 앎은 오직 인간, 나, 나, 나 들의 지식이며 지식, 앎은 기억된 생각이다.

 

흙, 물, 불, 바람으로 만들어진 어떤 것...

그것의 이름이 피와 살이며 피와 살에 지식이라는 앎이 섞이고 뭉쳐진 것이 자아이며 "나는 이런 사람"이 된 것이다.

흙, 물, 불, 바람.... 그것 또한 어떤 것의 이름이지만... 삶, 죽음, 고통과 괴로움은 그것들이 나, 라고 아는 앎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것들에 대해서 나, 라고 아는 앎은 생각이 있기 때문이며 그 생각의 작용에 의해서 내가 있다고 아는 것이다.

일념의 연습을 통해서 내가 생각한다고 아는 앎이 착각, 그릇된 앎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깨우칠 수 있다면 그대는, 인류는 자유와 평화의 길목에 들어선 것이다.   

 

무위와 자연은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다.

우주를 비롯한 천지만물은 자연이며 자연은 곧 자유를 의마한다.

 

인간, 인류의 기원, 창조 같은 것은 없다.

수십억년 전, 수 백억 년 전, 수 천억년 전,...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관념 이전부터 그것들은 존재하고 있었다.

과학은 고생대, 중생대, 신생대를 말하지만 인류의 근원이 무엇인지 밝혀질 수 없다.

수천 수만개의 태양, 수천 수만개의 우주... 어떤 것에 대해서 나, 라고 아는 수 많은 개체적 자아의 숫자만큼 태양과 우주는 있다.

그대가 깊이 잠들어 있는 동안과 같이 그대의 나가 없는 동안에는 아무것도 없다.

 

산에 올라가서 도시를 보라.

우거진 건물들, 그리고 움직이는 것들, 그리고 개미처럼 작게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서 보더라도 그것들은 자연이다.

더 멀리서 본다면 그것들은 보이지도 얺는다.

우주?에서 보면 지구는 작고 아름다운? 행성?... 이다.

좀 더 멀리서 본다면 지구 따위는 보이지도 않는다.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다.

우주에는 우주가 없다. 자연도 없으며 자유도 없으며 사람도 없다.

나도 없다.

아무것도 없다는 말, 말, 말 만이 남는다.

아무것도 없다는 말을 할 수 있는 나, 나, 나 만이 있다.

그 나, 그것이 나라는 앎이 착각이며, 어떤 것에 대해서 나, 라고 아는 경험의 오류에 의해서 고통과 괴로움을 겪는다. 

 

나, 어떤 것을 나라고 알기에 無我라는 낱말이 만들어진 것이다.

무아라는 말은 자아라는 말에서 유래된 것이다.

자아라는 낱말은 자신의 나, 라는 뜻이며 "自我"라는 말에서 "自"라는 말은 자신이라는 말이며 자신이라는 말은 신체, 몸을 뜻하는 말이다.

나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자, 라는 글자 하나로써 완전하지만 언어, 문자, 말, 말, 말은 자아의 我, 라는 글자로써 다른 나가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언어, 말은 나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다.

모든 말의 시작 이전에는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는 말이 전제되어 있다.

자신의 지식, 자신의 관점, 자신의 관념에서 의사표현을 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그것이 행복, 자유, 평화... 나의 이야기, 또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들 까지도....... 오직 자신의 관점에서 볼 수밖에 없기에 인간, 개체적 자아들의 앎은 이기주의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며, 그런 이유로 서로가 서로를 사랑할 수 없는 것이지만 그것이 육체가 나다, 라는 집착과 욕망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무지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무지 또한 가공된 것이지만...

진리의 말과 일념을 통해서 자신의 고통이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었다는 사실을 깨우치기만 하더라도 삶은 가치있는 것이다.

공부가 깊어지면 깊어지는 만큼... 행복, 자유, 평화에 다가간다는 것을 스스로 알게 된다.

혼자만의 환희로움을 느낄 것이며 깨우쳐가는 즐거움에 웃음짓는 일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세상에 중요한 일이 무엇인가?

무엇에 대해서 심각해 하며 무엇에 대해서 걱정하고 근심하는가?

무엇이 두려운가?

무엇을 찾는가?

무엇을 갈망하는가?

 

불성, 성령, 도... 그것이 아니라면 찾아야 할 것이 없다.

그대가 무엇을 찾는다고 하더라도 그대는 끊임없이 만족할 수 없으며 그곳에 행복, 자유, 평화라는 것은 없다.

그대가 갈망하고 부러워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좀더 가까이 가서 그들의 고뇌를 보라.

부와 명예를 쫒는 사람들의 고통을, 고뇌를... 그들의 현실을 바로 볼 수 있다면 그대는 지혜로운 자이다.

 

바람에 나무 뿌리가 뽑혀 썩어가듯이, 곧은 나무가 잘려 나가듯이, 한 송이 꽃이 껵여지듯이... 육체 또한 덧없이 사라지는 것이다. 육체가 나, 라는 앎에 의한 집착과 욕망에 의해서 수많은 말들이 만들어졌다.

천국, 지옥, 윤회, 영혼... 죽음 앞에서 무엇을 소원할 것인가?

막다른 길목에서 누구에게 길을 물을 것인가?

 

지금, 중요한 일, 심각한 일이 있다면 그냥... 내버려 두어보라.

자연이 달라지겠는가?

세상이 변해가는 것인가?

자연이, 세상이 내가 변한다고 말을 하는가?

세상이 자연이 그대에게 뭐라고 묻는가?

 

비워라. 버려라.

모두 비워 져야만 새로운 것을 채울 수 있지 않겠는가?

마음으로 비울 수 있는 것 모두를 비워라.

마음으로 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버려라.

그리고 마음으로 더 버릴 수 없다면 그것은 생각(일념)으로 버려질 수 있다.

모두 버려진다는 생각도 없을 때에... 오직 일념, 하나만이 하루종일 이어질 때에...

그곳이 진리이며 새 생명이다.   

 

그곳에 별개의 나, 라는 것은 없다.

아무것도 없다.

언어로 표현될 수 있는 모든 것들..... 없다. 본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직 남는 것은 "도", "지혜", "불성", "성령"이다.

나와 그것들이 별개의 것이 아니다.

그것을 지혜라고 한다면... 그것만이 남는다.

그것을 도, 라고 한다면... 그것만이 남는다.

그리고 그것이 모든 것의 기원이다.

그것에 대해서 진리라고 한다.

 

진리.

그것이 너희를 자유하게 할 것이니...

 

더 자세한 내용은 http://cafe.daum.net/husimwon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