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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고의 삶, 도인의 삶

일념법진원 2010. 5. 2. 10:45

에고라는 말의 뜻은 "육체를 나, 라고 아는 사람"이며 이는 "나라는 생각", 즉 육체가 나라는 생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일컷는 말이다. 에고는 이기주의와 같은 말이며 인간의 삶은 모두가 다르지만 모두가 다르지 않은 죽기 위한 삶이다.

에고, 인간의 모든 행위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안타까운 몸짓에 불과한 것이었음을 깨우칠 수 있다면 그대는 현명한 사람이다.

 

도인수업은 자신의 행위를 관찰하는 일, 즉 위빠사나로 알려진 몸의 행동 하나, 하나를 관찰하는 방법이 가장 쉬운 방법이다. 그런 행위가 자연스럽게 익어질 무렵부터는 이런 행위를 아는 나는 누구인가, 라는 방법으로 일념에 들 수 있다.

에고의 삶은 사랑이라는 말 또한 집착이며 욕망이기에 사랑을 구하지만 끊임없이 행복할 수 없다.

그것을 모르는 사람도 없다.

 

도인수업은 생각을 쉬는 일이며 생각이 쉬어짐은 에고를 죽이는 일이기 때문에 힘겨운 일이지만... 에고는 오직 그 길에서만 자유와 평화를 누릴 수 있다.

 

도인 수업.

일념을 공부하는 사람들 끼리의 삶에서는 갈들이 있을 수 없다.

단 일념에 대한 앎이 아닌, 일념을 깨우친 사람들에게 국한된 말이며, 진리가 무엇인지에 대한 참다운 앎의 높고 낮은 정도에 대해서 납득할 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일념공부에 의해서 순수의식에 가까워짐에 따라 점차적으로 욕망이 사라져 가며, 말 한마디에도 도의 깊이를 짐작할 수 있을때에 그들은 스스로 도의 경지가 높고 낮음에 대해서 분명히 안다. 지식, 즉 알음알이와 참다운 앎의 차이와도 같이 도의 길을 가는 사람들은 군대라는 조직의 계급 사회와도 과도 같이 도의 경지에 따라서 서로를 신뢰할 수밖에 없다.

계급사회와 다른 점이 있다면, 도의 경지가 높은 사람들은 자신의 아상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그 경지를 아는 사람은 도의 경지가 자신보다 높은 사람을 공경하게 됨으로써 그들에게는 논쟁이나 다툼이 있을 수 없다.

 

어린 아이가 그러하듯이...

사소한 욕망이 없는 사람들에게 다툼이 있을 수 있겠는가?

도를 떠난 인생의 목적이 있을 수 있는겠는가?

죽기 위한 삶이 인생의 목적이 될 수는 없지 않겠는가?

 

나이와 성별이 있지만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며,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든지 또한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어느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삶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의 행위는 욕망을 채우기 위한 행위가 아니다.

인간이, 세상이, 몸이... 생각으로 지어진 환상물질이듯이... 음식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지수화풍으로 이루어진 것이며 생각에 의해서 존재하는 환상물질이다. 

좋은 음식이 어디에 있으며 나쁜 음식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좋고 나쁨, 아름답고 추함, 모두가 기억세포의 작용에 따른 분별이다. 버릇이며 습관이다. 그리고 일념이 깊어지면서, 도의 경지가 높아지면서는 그러한 분별심이 자연스럽게 사라지면서 몸 또한 자연과 하나가 되어가는 것이다.

잘 먹는 음식, 몸에 좋다고 생각하는 음식에 의해서 병이 생겨나는 것이며 한 가지의 병에 만가지의 약이 있다는 말 또한 여기서 유래된 말이다. 한 가지의 병에 만가지의 약이 있다는 말은 병이 본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약이 있는 것도 아니라는 말이며 한 생각의 차이에 따라서 병이 되기도 하며 한생각의 차이에 따라서 약이 되기도 한다는 말이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다면 그대는 이미 도인이다.

 

기쁨, 슬픔, 괴로움, 행복, 불행... 모두가 마음의 작용이며 마음이다.

마음 밖에서 마음을 찾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마음이 아픈가?

아픈 마음이 어디에 있는가?

아픈 마음을 마음 밖에서 찾을 수 있겠는가?  

마음 밖에서 찾을 수 있는 모든 것들은 허망한 것이며 무지개와 같은 것이다.

살아오는 동안 내내 싸우고 이겨서 승리하는 자가 되라고 세뇌 된 것이다.

내 마음. 그것을 이겨서 승리하는 자가 되는 날, 그 날, 그 날... 그대가 우주의 창조자이며 절대자이다.

 

도를 공부하기 위해서 산으로 가야 할 필요는 없다.

지금 그 자리에서 일념을 공부해야 하는 것이며 그 이후에는 내면의 힘, 신의 뜻에 따라서 존재하게 될 것이다. 

어디로 떠나든, 아니든... 그것은 내면의 흐름에 따라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일념이 깊어지고 깊어질 무렵이면 진리의 말 한 구절에 목숨을 걸 수 있을만큼 목숨은 하찮은 것이 되어버린다.

달마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 팔을 잘라서 던졌다는 말이 전해지듯이... 진리의 길. 그것은 목숨을 걸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천재지변, 인재에 의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

자유의지가 있다면 왜 죽겠는가?

자유의지가 있다면 왜 행복하게 살지 못하겠는가?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다면 오직 진리의 길에서만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죽음이 두려운가? 

자유를 갈망하는가?

그렇다면 신을 열망하여라.

그대가 신임을 망각하지 말라.

육체. 그것은 순수한 신의 도구라고 생각하라.

스스로 행위하는 모든 일들.... 신의 뜻에 의해서 행위하는 도구라고 생각하라.

자신의 의지에 의해서 숨을 쉬는 것이 아니듯이 내가 숨을 쉬는 것이 아니다.

내가, 나의 몸이 행위자가 아니다.

왜? 그것을 나, 라고 생각하는가?

 

도를 닦는 자여.

자유를 갈망하는 자여.

세상에 중요한 일이란 없다.

그대의 나, 그것의 행방을 찾아라.

너 자신을 알면 모든 것을 아는 것이다.

더 이상 알아야 할 것이 없는 것이다.

 

그대의 나. 그것이 모든 것의 기원이다.

 

진리.

그것이 너희를 자유하게 할 것이니...      

 

 더 자세한 내용은 http://cafe.daum.net/husimwon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