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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念의 올바른 이해

일념법진원 2010. 5. 8. 10:30

일념과 무념, 그리고 일념과 무상은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다. 

인간, 인류의 고통과 괴로움은 "나라는 생각", 즉 육체가 나라는 생각인 생각의 오류에서 비롯된 것이며 이에 대해서 경험의 오류라고 하였다.

 

깨달음이란 일념을 통해서 생각((육체가 나, 라는 생각))의 뿌리인 경험의 오류시점에 이르러서 자아를 인식하기 전인 순수의식((경험 이전, 또는 분리된 의식))의 상태에서 *육체가 나다, 라는 생각*이 그릇된 앎이었음을 알아차림을 뜻하는 말이다.

 

육체가 나다, 라는 앎도 생각이며, 육체가 내가 아니다, 라는 앎 또한 생각이다.

그렇기에 생각의 이치와 속성, 그리고 마음의 형성과정에 대해서 설명한 바 있다.

((깨달음의 실체를 밝힌다))라는 저서에서...

 

그 상태에 대해서 언어의 기원, 창조의 기원, 모든 것의 기원이라고 설명하였으나... 상대적일 수밖에 없는 언어로 표현될 수 없는 상태에 대한 설명이기에 이해하거나 해석될 수 없을 뿐이다.

불이일원론을 연설했던 인물들, 인류의 스승으로 알고 있는 인물들의 가르침의 바탕이며 근원이다.

 

일념에 대해서는 여러가지의 방편을 들어 설명된 바 있으나... 지식으로 이해하는 일념은 쓸모없는 것이다.

지식. 그것은 자신의 내면과는 단절되어 있기 때문이며 불경을 수천년 연구하면서도 그 뜻을 헤아릴 수 없듯이 지식으로써는 행복과 평화 자유를 누릴 수 없는 것이다.

 

행복, 자유, 평화라는 글자를 연구해서 무엇을 얻을 수 있겠는가?

그런 말들을 알아서 행복한 사람은 없다.

오직 일념을 깨우침에 의해서 비로소 진실된 이해, 즉 진리에 접근하는 것이며 일념에 의한 참된 앎, 내면의 소리를 들음으로써 비로소 행복, 자유, 평화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인류의 스승으로 알여진 인물들의 가르침의 요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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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생각" 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린 "도원"의 일념공부에 대한 체험담을 바탕으로 一念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하고자 한다.

주력, 주의 집중력과, 책과 글을 반복해서 읽어 나가는 방법 또한 일념에 들기 위한 준비 과정이기에 반복 하여 설명하였으나... 도원은 신을 찾고자 하는 열망으로 현명한 방법을 찾았으며 더 높은 곳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다.

 

일념에 들기 위해서 시계의 초침에 집중하는 방법은 지금까지의 모든 방법들에 비해서 가장 훌륭한 방법으로 여겨진다. 

 

참고로 도원의 국적은 미국이며, 미국에 거주하면서 2년여 동안 마음수련원의 4과정을 공부했다고 하며, 4과정을 마친 뒤...

수련원의 원장? 스승? 과의 만남에서 그들의 황당한 말에 실망하였으며, 우연히 이 카페와 인연이 되어 공부를 하였다고 한다. 물론 일념공부의 과정에서 백운과의 메일을 통한 문답, 그리고 이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서 수 차례 공부에 대하여 점검을 받기도 하였다. 

 

마음 수련원에서의 황당한 경험이란...  

강의 중에... 자칭 "하나님"이라는 사람이 수강생들에게 너희들은 용과 봉황이 지나가는 것을 볼 수 없는가? 라고 물으며, 용이 지나가면 생선 비린내와 같이 비린 냄새가 나며, 봉황이 지나가면 닭똥 냄새가 난다고 말을 하더라는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 스승을 넘어서 자신이 "예수", "석가모니" 보다 더 분명한 하늘나라로 가는 길을 안내하는 안내자이며 오직 자신을 통해서만 하늘나라를 갈 수 있다고 세뇌 시킨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들은 도원이 물었단다.

다른 사람들은 분위기에 압도되어서 질문을 할 수 없었으나...

용과 봉황이 실물, 실제로 지나가는 것입니까, 아니면 생각으로 지어서 지나가는 것입니까. 라고 물으니... 분명하게 대답하지 못하고 화재를 바꾸더라는 것이다.

더 이상 마음수련원에 미련을 두지 않고 스스로 공부의 길을 찾다가 우연히 이 카페와 인연이 되면서 다시 시작했다고 한다. 

 

일념을 위한 화두를 들기 전에... 오래 전부터 신을 열망해 왔으며 수많은 책들을 통해서 마음의 준비가 되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 선험과 열망이 있었기 때문에 일념화두에 접근할 수 있는 힘이 생겨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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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의 초침에 집중하면서 일념을 깨우친 과정은 이러하다. 

생각의 이치를 지식으로 이해하는 것과 일념을 깨우침과의 차이는 이해와 오해의 차이라고 하였음을 상기하기 바라며...

 

 "나는 누구인가" 라는 화두만이 궁극에 이를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인 이유는... 공부를 지어나가는 과정에서 내면으로부터 드러나는 앎은 지식으로 해석될 수 없는 지혜이다. 그러한 참다운 앎은 공부가 끝날 때까지 지속적으로 이어지지만 그 앎의 상이 드러나면서는 "내가 심오한 경지에 대해서 안다" 라는 우월감에 압도되어 더 이상의 공부가 진적될 수 없는 까닭에 궁극에 이른 인물들은 극 소소에 불과한 것이다.

 

이럴때에도, 가령 육체가 내가 아니다, 라는 앎(생각)이 일어나더라도... 육체가 내가 아님을 아는 "나는 누구인가" 라는 방법으로 의심의 근원에 이를 수 있기 때문에 "나는 누구인가" 라는 화두가 중요하다는 것이며 어떤 경험이나 특별한 앎(생각)이 일어나더라고 이것을 아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화두를 통해서만이 궁극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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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념에 대한 이해를 넘어선 일념을 깨우침이 중요하며, 일념을 깨우치기 위해서는 시계의 초침에 집중하는 방법이 가장 효과적일 것이다.

 

시계의 초침에 정신을 집중하며....

1 초에,  "나는"

2 초에,  "누구"

3 초에,  "인가?"      

 

4 초에,  나는

5 초에,  누구

6 초에,  인가?

 

위의 방법으로 일 분 동안, 정신을 집중하여 "나는 누구 인가"라는 한 구절을 생각 한다면 그 상태가 일념의 상태이다. 

불과 1분 동안이지만 "나는 누구 인가"라는 한 생각인 일념을 유지하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알게 될 것이며, 비로소 내 생각이지만 내 생각을 내 뜻대로 할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 납들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방법의 일념 공부를 통해서 내 마음이지만, 내 생각이지만. 그것이 나의 의지대로 될 수 없음에 대해서 깨우칠 수 있을 것이며, 이런 방법으로 꾸준한 연습을 통해서 생각이라는 것의 이치를 깨우치면서는 인생, 삶의 질이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며 참다운 인생의 길에 대해서 어렴풋이나마 알게 될 것이다. 

 

예수의 하루종일 기도하라는 말이 왜곡되어 전해지고 있으나 수행에 대한 가장 중요한 말이 있다.

 

"네 시작은 미약하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라는 말이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화두(기도)의 시작은 참으로 미미하여 시작 단계에서는 황당하기만 할 것이나... 그 길이 진리의 길이기에, 싯다르타는 죽음 앞, 유언을 통해서 "오직 진리에 의존하라" 라고 한 것이며, 예수는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할 것이다, 라고 했던 것이다.

 

일념을 깨우치면서는 이곳의 글들에 대해서 전혀 다른 관점으로 볼 수 있게 될 것이며 이해의 폭이 깊어질 것이다. 

 

위의 방법으로 한 시간 동안만 일념에 집중할 수 있다면 살아오는 동안에는 경험할 수 없었던 지혜를 얻음에 대한 기쁨을 경험하게 되며... 더 긴 시간동안 일념에 듦으로써 진정한 자유와 평화, 행복이 무엇인지 깨닫게 됨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시작은 미약하다는 말과 같이...

불과 1 분 동안에도 바다의 파도와 같이 수많은 생각들이 밀려 들어옴에 대해서 알게 될 것이며.... 처음에는 그것을 느끼지 못한다 하더라도 더욱 더 노력함으로써 생각의 황당함에 놀라게 될 것이다.

 

화두를 들더라도 생각은 끊임없이 일어나며, 화두일념 중에 다른 생각이 일어날 때에는 "이 생각은 내가 아니다", 그럼 나는 누구인가... 라든지... 또는<< "이런 생각이 누구에게 일어났는가?"... "나에게"... "그럼 나는 누구인가">> 라는 방법으로 일어나는 망념들을 물리쳐 나가야만 하는 것이다.

 

더 자세한 설명은 "깨달음의 실체를 밝힌다" 라는 저서와 이곳 메뉴의 "깨달음의 입문과 실천"을 참고하면 될 것이다.

 

인생이라는 것.

죽기위한 여정일 뿐이다.

결국에는 죽기 위해서 사는 것이다.

인간의 모든 행위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안타까운 몸부림에 지나지 않는다.

그대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상관없이 일어날 일은 일어날 것이며 일어나지 않을 일은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근심과 걱정.... 하고 싶어서 하는 사람이 있겠는가?

고통, 괴로움, 불행,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사람이 있겠는가?

 

60여억명의 인류...

사람과 사람이 서로 싸우고 이겨서 승리해야만 성공이라며 아우성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욕망의 노예로 세뇌 된 탓에 죽을 때까지 논쟁과 투쟁, 전쟁을 해야만 하지만... 죽음 앞에서는 후회와 회한만이 남겨질 뿐이다.

그리고 죽음... 그것은 어느 순간 반갑지 않은 손님처럼 다가온다. 

한치앞도 알 수 없는 삶을 살아가면서 죽을 때까지 근심과 걱정에서 벗어날 수 없는 나,

그 나는 누구이며, 나는 무엇인가?

 

지금, 지금, 지금, 이 순간만이 실제이며 나머지는 꿈과 같이 상상(생각)속에서만 있는 것이다.

현실. 그것은 꿈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꿈을 꾸면서 고통과 괴로움에 몸부림 쳐야 할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그대의 순수의식. 참 자아....

그것이 모든 것의 기원이다.

언어의 기원이다.

 

진리. 그것이 너희를 자유하게 할 것이니. 

 

http://cafe.daum.net/husimwon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