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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의 서. 사후의 세계

일념법진원 2010. 5. 29. 15:46

사자의 서... 사후의 세계...

사람들은 무한한 정보에 대해서 알지만 자신의 나에 대해서는 무지하다.

사람들과 사람들... 그들의 삶은 끊임없는 논쟁과 투쟁 그리고 전쟁이지만 그것을 당연시 하면서도 죽음을 향해 달려 나가지만,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없음에 대해서도 알지만... 대책이 없기에 한치앞도 알 수 없는 내일과 미래를 향해서 달려 나가야만 하는 것이 인생이다. 

 

왜 살아가는 건지,

왜 죽어야만 하는것인지,

어떻게 사는 삶이 올바른 삶인지,

분명한 목적도 없이 내일과 미래를 탐하여 달려 나가야만 하는 인생살이...

무엇을 위해서 투쟁하는가?

 

말, 말, 말...

언어는 "나"로부터 시작될 수밖에 없기에 상태적일 수밖에 없으며, 상대적일 수밖에 없기에 진실될 수 없지만 언어에 세뇌된 탓에 언어의 허구성마저 헤아릴 수도 없다.

삶이 아니면 죽음이며,

행복이 아니면 불행이며,

기쁨이 아니면 슬픔이며,

성공이 아니면 실패이며,

전쟁이 아니면 평화란 말인가?

 

상대적인 그 어떤 말도 정의될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 납득할 수 없는 것인가?

무엇이 선이며, 무엇이 악이란 말인가?

무엇이 정도이며 무엇이 오도란 말인가?

자신의 나만이 선이며, 정도이며... 다른 나들의 말은 악이며 오도란 말인가?

죽을 때까지 싸움질을 하다가 가야만 한단 말인가?

 

 

사후의 세계를 경험한 사람이 있는가?

수많은 책들에 의해서 알고 있는 사후의 세계와 신비의 세계.......

사후의 세계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사자의 서, 라는 책을 쓴 사람은 죽은 사람이란 말인가?

죽은 사람이 생각을 일으켜서 말을 한 것인가?

아니면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듣고 자신의 견해, 자신의 생각을 말한 것인가?

 

사후의 세계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죽은 사람인가?

아니면 살아 있는 사람이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것인가?

 

사후의 세계가 있다, 라고 아는 사람과 사후의 세계가 없다, 라고 아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말을 듣고 옳다, 또는 그르다, 라고 말하며 서로가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누구의 말이 옳고 누구의 말이 옳지 않은가?

 

사후의 세계가 있다라고 말하는 사람과 사후의 세계가 없다라고 말하는 사람... 사후의 세계가 있다라는 말에 동의하는 사람들과 사후의 세계가 없다라는 말에 동의하는 사람들... 그리고 신이 있다라고 믿는 사람과 신이 없다라고 믿는 사람, 영혼이 있다라고 아는 사람과 영혼이 없다라고 아는 사람들이 있다.

 

사람의 근원이 곰이라고 아는 사람, 호랑이라고 아는 사람, 원숭이라고 아는 사람, 그리고 하나님이 창조했다고 아는 사람들... 누가 옳고 누가 그르단 말인가?

하나님이란 말은 누가 만든 것이며... 언어, 말, 말, 말은 누가 만든 것인가?

 

누군가는 옳다고 하며 누군가는 그르다고 한다.

그리고 그 누군가들 끼리 논쟁을 하고 피를 흘리는 전쟁을 하지만, 결론은 있을 수 없다.

 

그대가 그러하듯이 사람들 모두는 자기 자신의 앎만이 옳다며 주장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들 모두의 말은 다른 누구로부터 들어서 알고 있는 앎이지만 그것이 자신의 앎이며 자신의 나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어린시절부터 누구에겐가 들어서 알고있는 앎. 그것들에 대한 지식, 앎이 자신의 나가 되어버린 탓이다.

 

그대의 모든 앎은 올바른 앎이 아니다.

누군가로부터 세뇌되어 아는 앎에 대해서 나는 안다, 라고 말하는 것이다.

인생의 목적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그대의 모든 앎은 또 다른 의구심이다.

의심과 믿음은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다.

믿지 않기에 믿으라 하는 것이며 의심하기에 믿으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죽은 사람이 말을 할 수는 없다.

죽은 사림이 쓰던 물건은 없다.

살아있던 사람이 말을 한 것이며 살아있는 사람이 쓰던 물건들이다.

살아있는 사람들에 의해서 전해진 말들... 그 말들을 믿을 수 없기 때문에 모든 앎은 또 다른 의심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대가 아는 모든 앎... 그것은 타인으로부터 들어서 아는 앎이기에 참다운 앎이 아니다.

참다운 앎에 대해서 지혜라는 말로 표현하였다.

참다운 앎. 그것은 무지, 또는 지혜라는 말로 분별하는 앎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이해하려 하지 말라.

오해하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오직 일념, 일념, 일념에 의해서 드러나는 참다운 앎에 대해서 지혜라는 말로 표현하는 것이다.

하늘에 흐르는 구름에 의해서 태양이 가리워 지듯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흐르는 생각(망념)에 의해서 지혜가 가리워진 것이다.

시원한 바람에 의해서 먹구름이 사라지면서 태양이 그 찬란한 빛을 드러내듯이...

일념 주력의 힘. 그것에 의해서 망념에 가리워져 있던 자성, 순수의식의 찬란한 빛이 드러난다. 

일념의 집중력에 의해서 드러나는 참다운 앎에 대해서 붓다의 지혜, 참다운 앎이라고 한 것이다.

 

사자의 서, 죽은 자의 말, 사후의 세계, 영혼.......

그것들이 "내가 죽은 자"의 말이라고 말하는가?

영혼이 있어서 "나는 영혼이다", 라고 말하는 것인가?

하나님, 성령이 있어서 그것들이 "내가 성령이며 하나님"이다, 라고 말한 것인가?

하늘이 있어서 내가 하늘이라고 말하는가?

하나님이 있어서 내가 하나님이다, 라고 말하는 것인가?

부처가 있어서 내가 부처님이라고 말하는가?

 

하나님이 행위 하는가?

부처님이 행위 하는가?

기도하는 자의 마음이 행위 하는가?

말하고 행위하는 것은 그대의 나이며. 그대의 마음이며, 그대의 생각이다.

 

이해하려 하지 말라.

이해한다면 오해하는 것이다.

오직 일념을 통해서 내면에 잠재하고 있던 그대의 나, 순수의식의 앎이 드러나는 것이다.

반복은 기술이다.

진리?의 글들, 이해할 수 없으나 부정할 수 없는 글들,

옳지만 납득할 수 없는 글들... 읽고 또 읽고, 반복하여 읽음으로써 조금씩 다가올 것이며,

일념의 시간이 늘어감에 따라서 더욱 더 분명한 앎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참다운 앎이 드러나면서는 스스로 어이없는 웃음이 터져나오게 된다.

 

이해할 수 없으나... 일념의 집중에 의해서 웃음이 터져나온 이후에 비로소 진리라는 것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뿐이다.

지식과 지혜의 차이... 그것은 하늘과 땅의 차이와도 다르지 않다고 설명한 바 있다.

육체가 내가 아님에 대한 앎에서 어이없는 웃음을 날리듯이...

육체가 내가 아님에 대한 앎이 너무도 당연하기에 보편타당한 앎이라고 말했듯이...

 

일념이 깊어지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앎에 의해서 그대는 기쁨을 누릴 것이며 "내가 그리도 무지했었구나" 라며 홀로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대의 일념에 의해서 알아지는 지혜, 참다운 앎은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할 수 있으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없을 것이며 다만 도의 경지가 비슷한 사람들 만이 함께 웃을 수 있을 뿐이기 때문에 "방언, 불립문자"라는 말로 왜곡되어 전해지는 것이다. 

 

본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있는 것은 본래 없었던 것이며, 없었던 것이 있는 것이다.

모든 언어. 그것은 본래 없는 것에 이름 지은 것이기에 모든 언어는 실재하지 않는 것이며 실체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있는 모든 것의 기원이 "그것"이다.

그것. 그것에 대해서 자성, 불성, 성령, 도, 라고 이름지은 것이다.

 

그대의 나. 그것이 모든 것의 기원이다.

 

진리. 그것이 너희를 자유하게 할 것이니.

 

http://cafe.daum.net/husimwon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