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회라는 말은 자신도 모르게 흐르는 생각의 반복 순환됨을 표현하기 위한 말이지만, 자신의 생각에 대해서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사람, 사람, 사람들에게는 사람이 죽은 다음에 다시 태어남의 반복되는 것이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전생 및 내생 그리고 다음 생 등의 말이 만들어진 것 같다.
수억겁의 전생이라는 말들과 지옥, 천국, 외계 등의 말들 또한 생각의 윤회, 즉 자신도 모르게 흐르면서 감각기관에 따라 반복 순환하는 연속성을 지닌 "생각"의 작용에서 비롯되었음에 대해서는 짐작하거나 상상할 수 없기 때문에 창조된 말, 말, 말이며 실체가 없는 것이기에 "아무것도 없는 것"이라고 하였으며 이에 대해서 無라는 말로 표현되었으나... 아무것도 없는 것이라는 말은 無라는 말 또한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으로 설명되었다.
본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며, 에고의 모든 앎, 지식, 그리고 스스로 일어나서 안다고 알거나, 모른다고 아는 앎 또한 아무것도 없는 것에 바탕을 둔 것이기에 실체가 없으며 근원이 없는 것이다.
있다고 아는 앎, 없다고 아는 앎, 안다고 하는 앎, 모른다고 하는 앎...
이러한 모든 앎의 근원, 뿌리는 "육체가 나다"라는 앎에서 비롯된 것이며 인간의 기원, 우주의 기원, 인생의 목적, 존재의 이유 등의 모든 앎이 또다른 의구심일 수밖에 없는 이유 또한 의심의 근원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류의 고통은 의심의 근원이 "아무것도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수 없음에서 비롯되었다.
인류의 바탕이 된 철학. 그것은 경험에 바탕을 둔 사고방식이며 경험된 기억에서 비롯된 모든 앎은 아무것도 없는 것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올바른 앎이 아니며 허구, 무지, 어리석음이라는 말로 표현된 것이다.
생각의 윤회. 그것은 무안이비설신의에서 설명되었듯이, 인간은 스스로 감정의 동물이라고 알지만 감정이라는 낱말의 근원은 알지 못하는 것 같다.
낱말 중에서 가장 신비로우면서도 해석될 수 없는 낱말이 "생각"이라는 말이다.
어떠한 낱말도 낱말 뒤에 생각이다, 라는 말을 나열해 보면 생각에 불과한 것이다.
천국도 천국이라는 생각이다, 라는 말과 같이...
지옥도 지옥이라는 생각이다.
윤회도 윤회라는 생각이다.
마음도 마음이라는 생각이다.
행복도 행복이라는 생각이다.
불행도 불행이라는 생각이다.
고통도 고통이라는 생각이다.
죽음도 죽음이라는 생각이다.
영혼도 영혼이라는 생각이다.
부처도 부처라는 생각이다.
성령도 셩령이라는 생각이다.
하나님도 하나님이라는 생각이다.
창조도 창조라는 생각이다.
사람도 사람이라는 생각이다.......
한생각의 차이라는 말에 대해서 조차 이해하기가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한 생각의 차이라는 말은 생각의 변화를 뜻하는 말이며 인간은 생각에 대해서 생각할 수 없기 때문에 생각의 미묘한 이치에 대해서 이해할 수 없는 것이며 오직 일념을 통해서만 그 이치를 깨우쳐 나갈 수 있다.
생각의 변화. 그것은 가능하지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또 열망, 열정에 따라서 가능하기도 한 것이기 때문에 깨달음이라는 말이 생겨난 것이며 스스로 생각을 자유자재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이다.
깨달음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생사자유자재라는 말은 생각의 생멸, 즉 생각을 자유자재 할 수 있다는 말과고 다르지 않은 말이다.
자신의 생각을 자신의 의지에 따라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일이라는 말로 표현될 수도 있으나... 스스로 일념의 공부를 통해서 깨우쳐 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에 지혜의 증득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것이며 일념이 깊어짐에 따라서 아는 앎만이 참다운 앎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일념의 공부를 통해서 아는 앎은 자신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한 앎이며 보편타당한 앎이지만 이치를 깨우치지 못한 사람에게는 설명할 수 있으되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방언", "알음알이"이라는 말이 창조되기도 한 것이지만....... (육체가 나다, 라는 앎이 그릇된 앎(無我)이라는 말과 같이... )
한 생각의 차이, 그것은 생각의 변화라고 하였으며 생각의 변화라는 말은 부정적인 생각에서 긍정적인 생각으로의 변화라고 볼 수 있다.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이 있듯이, 나쁜 일이 있으면 좋은 일이 있듯이......
산이 높으면 계곡이 깊듯이...
병이 생기면 괴롭지만 병이 낳으면 즐겁듯이, 그 사례들은 일상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들이듯이...
슬픔에 잠겨 울던 사람이 갑자기 웃음을 짓듯이,
웃던 사람이 갑자기 심각해 지듯이...
어떤 말 한마디에 화를 내던 사람이 오해가 풀리면서 웃어버리는 일이 허다하듯이...
일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한 생각의 차이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에 대해서 납득할 수 있다면, 일념의 공부를 통하여 지혜를 증득함으로써 그 실체를 알아차릴 수 있다면 인생은 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다, 라는 말은 무안이비설신의의 설명과 같이 감각기관에 이끌려 다니는 인간의 삶을 뜻하는 말이며, 감각기관에 이끌려 다닌다는 말은,
눈을 통해서 보는 것에 따라서,
귀를 통해서 듣는 소리에 따라서,
코를 통하여 느끼는 향기에 따라서,
혀를 통해서 아는 맛의 좋고 나쁨에 따라서,
신체의 촉감에서 느끼는 감촉에 따라서,
의식적으로 변회시기려는 생각에 따라서 끊임없이 이끌려 다니는 것이 인간의 삶이기에 감정의 동물이라는 말이 생겨난 것이다.
그렇게 살아서.... 감정의 동물로 살아나가는 과정이,
죽음을 향해 달려나가는 삶이 끊임없이 행복하여 평화로울 수 있다면...
죽음이 두렵지 않다면 어찌 살던 무슨 상관이랴.
그런데, 감정. 그것이 생각의 끊임없는 윤회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에 대해서 설명하지만 생각(사념)으로는 생각의 이치에 대해서 짐작하거나 상상할 수 없기 때문에 생각의 이치에 대해서 무상심심미묘법이라는 말이 창조된 것이다.
감정도 감정이라는 생각이며,
느낌도 느낌이라는 생각이다.
윤회. 그것은 의식이 있는 동안에 다섯가지의 감각기관과 그 대상에 따라서 찰나찰나지간에 끊임없이 반복 순환하며 변화되어가는 생각의 흐름을 표현하기 위해서 창조된 말이다.
일념을 유지하는 일이 쉽지 않은 이유는 생각, 생각, 생각... 그것의 윤회하던 버릇, 습관에 대해서 당연시하기 때문이다.
생각, 그것은 내 뜻대로 일념을 유지하기가 어렵듯이 미지의 신의 뜻에 따라서 스스로 행위되어 왔던 것이기 때문이다.
내 생각으로 알지만 결코 내 생각일 수 없는 나의 생각...,
그리고 나의 생각, 즉 경험된 기억을 나라고 알고 있는 나와 나의 마음... 그것에 대해서 나라고 당연시 하는 앎에 의해서 생로병사의 고통을 겪는 것이며 인생에 해답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한 생각의 차이... 생각의 변화이다.
스스로 흐르는 인간의 생각... 그것은 근원이 어떤 것(육체)을 나라고 아는 오류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항상 의심일 수밖에 없으며 의심은 부정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인간은 어떤 경우라도, 어떤 글을 보더라도, 어떤 사람을 만나더라도 먼저 의심으로 대상을 바라볼 수밖애 없으며 부정적인 생각이 앞설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생각, 그것은 항상 부정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기에 행복과 평화로운 삶이 목적이라념 습관, 버릇에서 비롯된 부정적인 생각에서 긍정적인 생각으로의 변화시켜 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긍정을 넘어서 신뢰할 수 있다면 더욱더 발전된 것이며 신뢰라는 말과 저항하지 않음이라는 말은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다.
세상이 나는 변한다,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세월이 나는 간다, 라고 말하는 것이란 말인가?
육체. 그것은 생각에 지배되는 순수한 물건이다.
육체가 늙어서 죽는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직 변화하는 것은 윤회하는 생각, 생각, 생각이다.
그 생각을 하는 나... 그것은 진정한 나가 아니다.
육체와 생각, 그것은 하나이지만 하나일 수 없으며, 둘이지만 결코 둘일 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과 물고기와의 거리가 없으나 없지 않자만 물과 물고기와는 별개의 것이듯이...
나와 참 자아라는 표현의 그것과의 관계 또한 생각의 이치를 깨우침에서는 명백하기에 도, 진리를 깨우쳤던 수많은 인물들이 그 이치를 설명했던 것이다.
그대의 나.
그것이 모든 것의 기원이다.
진리. 그것이 너희를 자유하게 할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