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그것은 기억된 생각이며,
생각. 그것은 기억된 생각을 바탕으로 하여 찰나지간으로 생멸을 반복 순환하며 윤회하는 것이다.
일념. 그것은 본념으로 표현될 수 있으며 반복순환하던 생각의 윤회를 멈추는 것이다.
철학은 경험에 바탕을 둔 사고방식으로써의 삶이기에 인간의 기원이 무엇인지, 우주의 기원이 무엇인지...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지, 존재의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해답을 구할 수 없다.
인류.
수천년을 살아오지만... 모든 지식, 앎은 또 다른 의구심일 뿐이기에 분명한 앎은 아무것도 있을 수 없다.
천지만물이 있다고 알지만, 그것이 왜 있는지, 그것이 어떤 원인에 의해서 나타나고 사라지는지에 대해서는 아는 바 없으며, 내가 왜 존재하는지에 대해서도 아는 바 없다.
우주가 있는 것도 아니며 시간과 공간이 있는 것도 아니다.
본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지만... 그것을 있다고 아는 나가 있기에 있는 것이며, 나가 있다고 아는 앎 또한 스스로 일어난 생각에 의해서 아는 것이다.
인간의 삶, 인생이라는 것이 항상 기쁘고 행복할 수 있다면 우주가 있든 말든, 내가 있든 말든 상관 없는 일일 것이지만, 한치앞도 알 수 없는 삶을 살아나가면서,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죽음 앞에서는, 결국 죽기 위해서 고통과 괴로움에 몸부림 쳤던 것이었음을 깨닫게 될 뿐이다.
인간의 삶. 어찌 살던 결과는 매 한가지이다.
자신도 알 수 없는 마음, 자신도 어쩌지 못하는 생각, 욕망에 이끌려서 살아갈 수밖에 없단 말인가?
꼭 그런것만은 아니다.
마음이라는 것이 본래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다.
본래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말은 마음의 근원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경험에 바탕을 둔 생각으로써는 짐작할 수도 없으며 상상할 수도 없기에 말, 말, 말이 무성하지만 생각으로써는 헤아릴 수 없기때문에 불립문자라는 말과 방언이라는 말이 창조된 것이다.
마음은 생각이 모여서 만들어진 "나라는 생각"의 찌거기이며 지금 이 순간에 자신도 모르게 흐르는 생각, 생각, 생각의 윤회에 의해서 더욱더 비대해져가는 것이다.
생각이 많으면 많은 만큼, 지식이 많으면 많은 만큼... 고통은 커져만 가는 것이다.
지식, 앎 등의 생각이 많은만큼 고통이 커져만 가는 이유는 모든 앎, 지식이라는 것이 "본래 아무것도 없는 것"에 바탕을 두고 있음으로써 지식의 결론은 망상이기 때문이다.
지식으로 아는 앎, 경험된 사고방식의 삶에서의 모든 앎은 근원이 없는 것이기 때문에 허구일 뿐 진실된 앎, 진리일 수 없다는 말이다.
인간은 오직 일념의 공부를 통해서 행복과 평화로움을 경험할 수 있다.
마음은 기억된 생각이며 그것은 욕망이다.
그리고 욕망에는 근원이 없으며 실체가 없다.
마음. 그것에는 뿌리가 없기때문에 항상 흔들릴 수밖에 없는 것이며, 흔들리는 생각은 일념에 의해서 윤회를 멈추게 된다.
뿌리, 근거없는 마음인 욕망은 감각기관의 습관에 따라서 끊임없이 윤회하기 때문에 오직 일념에 의한 윤회의 멈춤이 길어지면서는 본념, 순수의식과의 거리가 가까워지게 되며, 점차로 일념의 시간이 늘어나면서 참다운 앎이 드러나게 된다.
일념에 의해서 드러나는 참다운 앎에 대해서 "진리"라는 이름이 지어진 것이다.
진리라고 말하면 이미 진리가 아니다.
언어. 그것은 상대적이기에 진실될 수 없다.
일념의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진 만큼, 꼭 그만큼 진리, 즉 순수의식에 다가가는 것이며 그때 비로소 진리의 기쁨에 눈뜨게 된다.
인간은 본래 없는 마음(욕망)에 의해서 생로병사의 고통을 겪는다.
마음은 기억된 생각에 불과한 것이며...
생각은 기억된 생각에 바탕을 두고 스스로 흐르는 뜬구름과 같은 것이며 인간은 생각에 의해서 고통을 겪는 것이다.
본래마음, 본념, 자성, 참 나, 진아는 먹구름이 태양을 가리듯이 사념, 즉 생각, 생각, 생각으로 가리워져 있는 것이며 한줄기 바람에 의해서 먹구름이 사라지듯이 일념에 의해서 마음, 기억된 생각이 사라져 가는 것이다.
일념... 그것이 의심의 근원에 이르는 길이다.
진리. 그것이 너희를 자유하게 할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