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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와 지혜, 지식의 앎

일념법진원 2010. 6. 26. 14:47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할 것이다. 라는 말은 예수의 말로 전해지며 모든 경전의 바탕이다.

진리와 자유는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며 자유라는 말은 행위함이 없이 행위하는 천지만물의 존재를 일컷는 말이다.

천지만물은 무위이며 무위라는 말은 인위적인 생각이 없는 행위라는 뜻이다.

인위적인 생각이라는 말은 오직 인간의 행위를 일컷는 말이며 이는 "내가 행위한다"라는 주체가 있는 행위이며 인간을 제외한 천지만물은 인위적일 수 없는 행위이기에 무위자연이라고 하는 것이다.

 

인위적인 행위라는 말 또한 옳은 말일 수는 없다. 

인위적이라는 말은 주체, 주인공, 주인격인 나의 의지에 의해서 행위한다는 말이지만... 육체의 행위는 생각이 없이는 행위될 수 없는 순수한 것이기 때문에, 생각을 내가 할 수 있거나 생각을 내가 할 수 없다는 방식으로서 생각에 대해서 내 생각으로 아는 앎이 올바른 앎이 아니기에 인위적인 행위라는 말 또한 올바른 앎일 수 없다는 뜻이다.

 

생각. 그것의 이치와 속성에 대해서 충분한 선이해가 있어야만 이 말들에 대해서 납득할 수 있다.

일념공부를 하여 일념을 깨우친 인물들에게는 이해가 가능할 것이나... 일념을 깨우치지 못하였다면 우이독경일 뿐이다. 같은 말이지만 알아들을 수 없기 때문에 우이독경이라는 말이 생겨난 것이며, 이는 또한 일부 종교에서 말하는 방언이라는 말과 물립문자라는 말과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다. 

 

일념의 깊이 정도에 따라서 참다운 앎이 드러나는 것이며 일념이 깊어진 만큼(유상삼매) 진리의 말들을 알아들을 수 있는 지혜가 드러나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도의 경지라는 말이 생겨난 것이며... 팔만대장경의 내용들이 모두 생각의 미묘한 이치에 대한 설명으로써 같은 뜻의 다른 표현들이지만 에고의 생각, 사념으로써는 수천년이 지나도록 한 구절도 해석할 수 없듯이 도의 경지, 즉 참다운 앎은 그토록 미묘하기에 무상심심미묘법이라는 말이 만들어진 것이다.

 

진리. 그것의 본체는 "아무것도 없는 것"임을 깨달아 아는 것이다.

우주도 없다, 구도자도 없다. 진아가 모든 것이다, 라는 말과도 같이 천지만물의 근원은 아무것도 없는 것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며 아무것도 없는 것도 없는 것이기 때문에 언어로 표현될 수 없는 것이다.

이는 자신의 부재에 대한 설명이기도 하지만... 나아가서는 나도 없으며 있는 모든 것들은 생각으로 지어진 상상의 세계라는 뜻이다. (일체유심조의 설명과 같이... )

 

꿈은 절대 꿈이라는 사실을 암시하지 않지만 현실은 허벅지를 꼬집어 봄으로써 꿈이 아님을 안다. 하지만 현실 또한 죽음 앞에서는 한조각의 기억들일 뿐 실재하는 것이 아니듯이... 이 세상은 실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에 대해서 현상계는 관념의 산물이라고 설명한바 있다.

관념의 산물이라 함은 기억된 생각에 의해서 실재하는 것처럼 아는 것이지만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실체가 없다는 말이다.

 

지식은 "아무것도 없는 것"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해답이 없는 것이며 지식이 많은 만큼 의구심만이 늘어나는 것이기에 인생이라는 것에 대한 해답이 없는 것이며 인간의 근원, 기원조차 알 수 없는 무모한 것이기에 지식은 쓸모없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지혜라는 말은 지식이 많음에 따른 재치, 재주를 뜻하는 말은 아니다.

일념의 공부를 통해서 드러나는 참다운 앎에 대해서 지혜라는 말로 표현하는 것이며 이는 진리에 다가감으로써 느낄 수 있는 행복과 평화로움을 이르는 말이다.

 

인간은 누구나 말을 배우면서 지식을 습득하게 되며 지식이 많아짐으로써 고통을 겪는다.

일념은 윤회하는 생각을 쉬게 함으로써 의심의 근원에 다다를 수 있는 유일한 길이며 석가모니를 비롯한 예수의 말에서 그 본질을 엿볼 수 있다.

 

지식은 분별이다.

지식을 버리는 것이 지혜이며 이에 대해서 참다운 앎이라고 하였다.

지식을 버리기 위한 유일무일한 방법이 일념이며 일념을 위한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으나 공부의 깊이가 깊어지면서는 오직 일념화두로써 의심의 근원에 다다를 수 있다.

 

지식을 버림이 지혜이며 일념에 의해서 지혜마져 모두 버려졌을때에 비로소 나 없는 나를 만날 수 있으며 그것에 대해서 무아라는 말이 창조된 것이다.

나는 없다, 라는 앎도 그릇된 앎이며 내가 우주라는 앎 또한 그릇된 앎이다.

그곳에 나라는 것은 없다. 그렇다고하여 없다라고 단정지을 수도 없는 것이기에 상대적일 수밖에 없는 언어로 표현될 수 없는 것이며 이에 대해서 진리라는 이름이 지어진 것이다.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다.

우주도 없으며 사람도 없으며... 세상, 천지만물도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이 있는 것이 아니며,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나타난 것들이 있는 것이다.

있는 것은 없는 것이 기원이며 없는 것이 곧 있는 것이며 있는 것이 곧 없는 것이다.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으나,

있는 것과 없는 것의 기원이다.

그것에 대해서 "참 나, 진아, 이트만, 불성, 하나님, 절대자, 창조자" 등의 수많은 이름이 지어진 것이며...

아무것도 없는 것의 기원... 그것에 대해서 진리라는 이름이 지어진 것이다.

 

인류의 자유와 평화. 오직 진리의 길에서 하나될 수 있는 것이다.

진리의 길에서 만날 수 있는 평화. 그것은 욕망을 채움에서 얻어질 수 있는 것과는 비유될 수 없다.

인간은 결코 욕망을 채움으로하여 만족할 수 없기에 죽음앞에서는 회한만이 남는 것이 아니겠는가?

 

진리의 길을 가라.

나의 말을 전하라.

자유와 평화, 영원한 삶을 소원하거든 그 길, 무상의 길을 가라.

오직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할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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