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력, 신통술, 도술, 도의 경지, 오신통... 그리고 깨달음의 세계라는 말이 있다.
깨달음의 세계에 대해서는 하나님나라, 불국토, 천국, 하늘사람, 불생불멸, 영생, 환생, 재생, 등 사람이 사람의 몸으로 살아있는 상태에서 하늘나라로 들림을 당한다는 등의 실체없는 환상의 세계를 연상하게 된다.
종교 및 유사단체들 역시 깨달음의 세계에 대해서 신비로움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경전을 통해서 신비를 조장할 수밖에 없다.
나라는 생각의 이치에 대해서 설명하지만 일념의 공부을 통해서 언어, 말, 말, 말의 근원, 즉 말변사라는 말의 뜻을 어렴풋이나마 이해하게될 무렵에 비로소 도의 깊이를 짐작할 수 있다.
깨달음. 그것이 진리이며 자유이며 무위자연이다.
이것이다, 또는 저것이다, 라는 상대적일수밖에 없는 언어로 규정될 수 없기 때문에 불립문자라는 말이 생겨난 것이며 방언이라는 말도 생겨났으나... 오직 일념공부에 목적을 둔 수행을 통해서만 그 뜻에 대해서 납득할 수 있게 된다.
사람들은 내 생각이라고 말하지만 일념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에 의해서 생각이라는 것이 결코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앎에 대해서 옛 선사들은 견성이라고 하기도 하였던 것 같다. 그만큼 생각의 이치에 대해서 알아차리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내 마음을 내마음대로 할 수 없다고 알며, 내 생각이지만 내 생각대로 할 수 없다는 것도 안다. 아니 그런 생각조차도 하지 못하고 살아가다가 죽어가는 사람들이 대다수일 것이다.
또한 내 마음이나 내 생각이 내 뜻대로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거나 모르거나 그것이 무엇인지 생각으로써는 찾아질 수 없기 때문에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나라는 생각"(욕망과 집착)에 이끌려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인생은 허무한 나그네란 말인가?
경전을 비롯하여 수많은 길들이 무수히도 많지만 분명한 길을 찾을 수 없기에 인생이 무엇인지도 모르는채로 생로병사의 고통을 겪는다.
내가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채 희로애락을 경험하면서 종국에는 허무한 나그네일 수밖에 없는 것이 인생이란 말인가?
공부를 지어나갈 무렵에 내가 어디에서 왔는가? 라는 자문에 대해서 웃어버린 적이 있다. 부모로부터 태어났음에 대해서 당연시 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부모에 부모를 거슬러 올라가서 인간의 기원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의심조차 해 볼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며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당연시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인간이 인간의 근원을 모르니... 신의 뜻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일 것이다.
신이라는 말 또한 사람이 만든 말이 아니던가?
사람이 사람의 기원을 모른다.
나의 근원을 모르니 모든 앎이 의구심일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내가 내 마음을 모르는데 누가 내 마음을 알 수 있겠는가?
내가 내 마음을 모르는데 어느 누구의 마음을 안다고 할 수 있단 말인가?
내가 내 마음을 모르니 내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는가?
내가 나를 모르니 무엇을 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내가 나를 모르니 어떻게 내 인생이라고 단정지을 수 있단말인가?
경험에 바탕을 둔 사고방식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삶의 결과는 모두가 다르지 않다.
도, 진리를 갈망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설명해 줄 수도 없으며 설명을 하려 하지만 알아들을 수도 없기에 소의 귀에 불경을 읽는다는 뜻의 우이독경이라는 말이 생겨난 것이다.
신비로운 세상은 인간의 세상이며 인간의 삶이다.
언어로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실체가 없으며 실재가 아니지만 모든 것들이 있다는 그릇된 앎에 의해서 무지개를 쫒아가는 아이처럼 살다가 한줌의 흙이되는 것이다.
실상은 도의 세계, 깨달음의 세계, 본질의 세계라고 이름지어진 세계보다 더욱더 신비로운 것이 인간의 세계이며 사념의 세계, 나라는 생각, 아상에 의해 살아가는 세상이다.
언어로 존재하는 모든 것이 실재가 아니라고 설명하였듯이 인생이라는 것 역시 환상이며 꿈에 불과한 것이다.
깨달음의 세계, 진리는 단순하다.
한생각의 차이와도 같이 너무도 단순하기에 보지 못하는 것이며 그것을 보기 위해서는 인위적으로 형성된 마음, 즉 생각들이 일념에 의해서 행위할 수 없을때에 너무도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그렇기에 꿈에서 깨어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깨달음의 세계. 천국, 하늘나라, 불생불멸 등...
그것은 언어로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실재하는 것이 아님을 알아차림 이후의 삶에 대한 표현이다.
근심과 걱정, 불안, 초조, 긴장... 삶과 죽음, 행복과 불행, 자유와 평화...
생로병사, 희로애락이 없는 상태의 삶이다.
생사자유자재라는 말의 뜻이며 생각의 흐름에 대해서 자유자재할 수 있는 경지에 대한 표현이기도 하다.
예수의 하루종일 기도하라는 말과 같이...
불경에서 말하는 일체처 일체시... 행주좌와어묵동정이라는 말과 같이 자신도 알 수 없는 생각의 흐름, 즉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습관된 감각기관의 작용에 따라서 끊임없이 반복순환되는 생각의 윤회를 일념의 공부로 끊어서 망념이 사라진 본념에 머무는 것이다. 그것에 대해서 의심의 근원에 이르름이라고 표현하였으며 나라는 생각의 근원, 의심의 근원으로 표현하였다.
생각의 연속성이라는 말로 설명한바와 같이 인간은 생각의 시작을 감지할 수 없으며 생각의 끝을 감지할 수도 없다. 생각의 일어남과 생각의 소멸됨은 찰나지간에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기 때문이며 생각이 있는 동안에는 생각의 끊어짐, 생각의 멈춤, 생각없음의 상태에 대해서 감지하거나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렇기에 도의 깊이, 공부의 정도에 대해서는 언어로 설명될 수 없는 것이며 오직 진리의 길인 일념의 공부를 통해서만 공부가 깊어진 만큼, 꼭 그만큼 조금씩 조금씩 참된 앎이 드러나는 것이다.
나라는 생각, 즉 육체가 나라는 생각으로써의 삶에서는 상상할 수 없기때문에 신비로운 세계일 수밖에 없으나... 일념이 깊어짐에 따라서 알아지는 참다운 앎에 눈뜰무렵에야 비로소 행복이나 평화, 자유라는 말의 뜻에 대한 이해가 다가오는 것이다.
자신의 나를 모르면서 아는 모든 앎은 헛된 것이다.
그대의 나를 알면 더이상 알아야 할 것이 없다.
깨달음의 세계. 그것은 언어, 말의 실체, 근원이 아무것도 없는 것임을 깨달아 아는 삶이다.
육체만이 내가 아님을 아는 참다운 앎이다.
내가 내가 아님을 아는 앎이다.
인간의 모든 앎은 경험에 의해서 기억세포에 저장된 낱말들이다.
기억된 낱말, 언어없이 상상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있을 수 없다.
말, 말, 말로 창조된 세상이다.
세상 또한 말로 창조된 것이다.
우주라는 말, 지구라는 말, 자연이라는 말, 말, 말, 말.......
나의 말을 들으라.
나의 말을 듣고 옳거든 행하라.
나는 내가 아니다.
육체가 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의 말은 그대 자성의 말이다.
그대의 참 나.
그것이 모든 것의 기원이다.
그것이 모든 언어의 기원이다.
나의 말을 전하라.
나의 말이 자유와 평화로 가는 길이며 진리이다.
진리. 그것이 너희를 자유하게 할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