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과 발전... 무엇을 위한 것인가?
생활 필수품과 다른 물건들을 끊임없이 만들어 내는 진짜 이유는 공포와 불안 때문이다.
그 또한 지성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릇된 앎, 즉 육체가 나라는 착각에서 시작된 노예적인 부자유스러운, 가공되어진 마음, 본능의 산물이다.
본래 생활의 안정을 꾀하기 위해 사용된 지성, 지식이었지만...
"나라는 생각". 그것은 한번 그것이 기동하고 만들어지고 나서는
지성(생각의 윤회) 그자체가 독립된 생명처럼 되면서 지성체로 살기 시작한다.
그렇게 되면 마치 육체가 죽음을 두려워하며 갖가지 물건을 만들어냈듯 지성은 계속 살아남아 활동하면서, 지성 연명과 안정을 위해 예술과 오락과 스포츠를 만들어내는것이다.
결국에는 철학과 종교 나부랭이까지.
이것들이 모두 어디에서 유래하는지 보라.
그것은 인간이 대단하다고 칭송하는 지성의 산물이 아니라
요컨대 <따분함>에 대한 공포 때문이다.
따분함이란 온화한 말이기는 하나 실제 지성체에 있어서는 죽음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따분함이란 사고활동의 정지(죽음), 즉 생각의 죽음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만들어낸 사회, 언어, 과학, 예술은 말할 나위 없이
육체와 지성의 끝없는 생존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것들을 만들어
냈는데, 무엇 하나 사람을 끊임없이 만족시키는 것은 없다.
모든 의미에 있어 인간은 굶주려 있다.
그 굶주림은 먹을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정보와 사고하는 일이다.
인간은 결국 생식, 술, 수다, 오락, 스포츠, 그리고 작은 전쟁(언쟁)과 큰 전쟁(살육)으로 하루를 보내면서 공허함, 허무함, 따분함, 공포, 불안, 불만을 때우고 있는 것이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그리고 삶은 이것들의 끝없는 악순환이다.
악순환인줄을 알지만 그 일을 반복해야만 하는 원인은 육체이건 정신이건 간에
모든 것을 유지하고 보존시키고 살아남기 위해서이기에 비참한 몸부림일 뿐이다.
우주는 정말 그런 일을 필요로 하는 것일까?
인간의 지성이 우주 앞에서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기껏해야 은하계를 120개 가량 횡단하는 정도일 것이다.
우주에 비하면 사막의 모래 한 알과도 같은 것이다. 그러한 것들이 도대체 지구에,
그리고 또 다른 별의 원숭이와 사람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어떤 별의 사람들이 인생과 우주와 신에 대해 또는 사랑과 가족과 예술에 대해 한가로이 즐겁게 논하고 있을 때 혹성이 충돌해 한 순간 그 세계가 멸망하는 일은 우주에서 수없이 일어나는 일이다.
그 속에서 세계, 사람, 원숭이, 과학과 예술, 똑똑한 체하기 위한 학습 따위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별의 존재 가치가 그 정도밖에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너희들 원숭이는 언제나 이렇게 말한다.
“아니아니, 귀찮은 생각은 필요 없어. 그저 즐기면 그만이야”라고.
그러나 무엇을 위한 즐거움인가?
즐기지 않고는 있을 수 없는 건가?
너희는 자신이 즐기기 위해 아무런 사전 양해도 없이 타인을 끌어들이고 쓸데없는 말을 조잘대고 있다.
그것이 대부분 말싸움의 원인이 된다.
국가간에 벌어지는 전쟁조차 처음에는 아주 사소한 문제로 시작하지만 결국 입 때문에 악화되는 것이다.
아니면 시시한 종교 대립에서.......
우주는 인간의 제한적인 시각으로 보이는 것일뿐 그 실체는 없다.
시간과 공간 역시 마찬가지이다.
과학은 인간의 삶의질과 행복을 가장하지만 그 결과는 인류의 종말과 함께 또 다른 태초로 이어질 뿐이다.
진아무지는 인류의 가장 심각한 질병이다.
인류의 종말과 태초는 끝없이 반복되어져 왔으며 이는 계속될 것이다.
이것이 인류의 윤회이다.
끝없는 욕망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함으로 인하여......
무욕이 지혜이다.
지혜로 거듭남이 불생불멸의 신이다.
그대의 나.
그것이 모든 것의 기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