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장.
'도'는 모든 신비의 문.
道可道非常道(도가도비상도) : <도>라고 말 할 수 있는 <도>는 <도>가 아니다
名可名非常名(명가명비상명) : 이름 지을 수 있는 이름은 영원한 이름이 아니다
無名天地之始(무명천지지시) : 이름 붙일 수 없는 것이 천지의 원천이며
有名萬物之母(유명만물지모) : 이름 붙일 수 있는 것이 만물의 모태다
故常無欲以觀其妙(고상무욕이관기묘) : 그러므로 언제나 욕심내지 많으면 그 오묘함을 볼 수 있으며
常有欲以觀其徼(상유욕이관기요) : 언제나 욕심냄이 있으면 그 나타남만을 볼 수 있다
此兩者同(차량자동) : 이 두 가지는 근원 같으나
出而異名(출이이명) : 나타나 이름이 다르다
同謂之玄(동위지현) : 같이 이를 신비롭다고 말한다
玄之又玄(현지우현) : 신비롭고 또 신비로우니
衆妙之門(중묘지문) : 모든 신비의 문이다
노자의 '도관'에 대해서 책. 비밀의 언어에 간략하게 요약 설명되었는데... 중생들의 도덕경에 대한 해설들 보게되니... 어처구니가 없기에 그들, 불이일원론을 역설했던 인물들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제 1 장부터 제 81 장까지 노자의 '도관'을 바탕으로 불이일원론을 역설했던 인물들의 참 뜻에 대해서 설명하고자 한다.
인간들의 앎이라는 것이 무모하여 그들의 깨달음에 바탕을 둔 가르침 마져도 자신들의 알음알이로써 옳거나 옳지 않다거나, 진리라거나, 진리가 아니라거나... 라는 분별을 서슴치 않는다. 무식하고 어리석은 자들이 그들, 불이일원론을 역설했던 인물들에 대해서 시비분별을 하니... 그들의 말을 해석한다는 어리석음이야말로 우주보다 더 무한한 것이지만... 어찌하랴.
제 1 장에서는 '도'는 '도'가 아니며, 이름, 명칭, 언어, 말, 말, 말로 존재하는 것들은 영원한 것이 아니며 끊임없이 변해가는 것들이며... 이에 대해서 석가모니는 '무상한 것'이라고 표현하면서 그토록 '무상한 것은 '나'가 아니다' 라고 했다.
'이름 붙일 수 없는 것'... '그것(도)'이 천지의 근원, 기원이며, 이름 붙일 수 있는 것이 만물의 모태라는 말에서는... 천지만물에 대해서 '천지'와 '만물'로 구분한다면, 인간들이 신비롭게 여기며, 신으로 여기는 하늘은 영원한 것이며, 인간들이 감각기관에 의지하여 보고 느낌으로써 이름지은 것들... 즉 땅, 대지가 만물의 모태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욕심 내지 않으면 그 오묘함을 볼 수 있으며, 욕심 냄이 있으면, 즉 욕망이 있으면 그 나타남 만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름 붙일 수 있는 것과 이름 붙일 수 없는 것의 근원은 같으나 나타나 이름이 다르니... 신비롭고 신비로우니, 모든 신비의 문이다. 라는 말.
'본래 없는 것들', 본래 무일물... 아무것도 없는 것의 완전함... 그것에 대해서 '도'라고 이름 지은 것이며 그것이 모든 것의 기원이라는 뜻으로써, 노자와 장자는 그것에 대해서 '도'라고 이름지은 것이며, 석가모니는 '불타'라고 이름지은 것이며, 예수는 '하나님'이라고 이름지은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천지만물들... 본래 있는 것들이 아니지만 나타나 보이는 까닭은 '보는 자'가 있기 때문이다. 보는 자가 있기 때문에 그것들이 있으나, 보는 자가 없다면 어찌 있을 수 있겠는가?
죽은자에게는 관점이라는 것이 없으며, 관념이라는 것이 없으나... 죽은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아무것도 없는 것'이니... 근원 또한 없는 것이다. 이와같이 '지식, 의식' 등의 앎이 없는 어린 아이 또한 관념, 관점... 이 없으니... 아무것도 없는 것을 경험하지만, 인간의 어린아이 시절의 경험은 '경험자인 나'가 없는 상태에서의 경험이기 때문에 '경험자가 없는 경험'이라고 했다.
지식, 지성, 의식... 등의 인간들의 앎으로써도 천지만물의 근본 원인에 대해서 입자와 파동이라고 아는 바와 같이 천지만물들의 근원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인간의 인간들이 '나'라고 여기는 육체 또한 그렇다고 설명했으니...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인간은 인간의 욕망에 의해서 나타남만 볼 수 있으며, 욕망이 사라지면 나타남과 나타남 이전, 즉 본래 무일물, 아무것도 없는 것, 죽음, 어린아이, 분별없음, 무위, 자연, 무아, 신, 하나님, 부처님, 성령, 영혼... 등으로 표현되는 의심의 근원, 천지만물의 근원의 오묘함을 볼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인간의 마음이라는 것이 육체가 나라는 집착에서 비롯된 욕망이기 때문에 욕심을 없앨 수도 없으며 욕심을 채울 수도 없다는 것이 문제인데... 애석하게도 노자와 장자의 글에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구절이 없다. 아마도 노자와 장자의 가르침이 인간들의 알음알이로써 전해지다 보니, 전해지는 과정에서 사라진 것 같다.
예수의 하루종일 기도하라는 말이 인간들의 관념으로써는 '도를 구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고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듯이... 노자의 수행법 또한 사라진 것이겠지.
노자의 '도덕경'의 해석을 통해서 '도'가 무엇인지 관념으로나마 이해할 수 있다면... 소크라테스가 만족할 만큼은 아닐지라도... 어차피 죽으러 가는 길일 수밖에 없는 인생 여정에서 좀더 가치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지 않겠는가?
제 81장 까지의 노자의 '도관'에 대해 관념으로나마 이해함으로써 '일념법'수행을 병행할 수 있다면... 인간 세상에서 '평화'라는 말의 뜻을 올바르게 전할 수 있는 거룩한 인물이겠지. 인간들의 경쟁과 투쟁, 언쟁, 논쟁에서 비롯된 논란들... 지식의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지식으로써는 '평화'라는 말에 대해서 정의할 수 없다.
자유와 평화란 내가 옳다는 주장이 그릇된 앎이며 편견이며 소견이라는 온전한 앎에서 시작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정을 이루는 부부간에, 부모와 자식간에, 형제간에, 친구간에 더 나아가 이웃간에... 내가 더 뛰어나다는 관념, 개념, 통념, 이상, 사상 등의 편견일 수밖에 없는 마음, 견해, 소견, 생각, 생각, 생각에 의해서 자신도 모르게 튀어 나오는 ... 말, 말, 말들로써 어찌 '평화'로울 수 있겠는가?
하늘에 뜻이 있다고?
세월이 간다고?
세상이 변한다고?
아니다.
하늘에 '나'라는 주체가 있어서, '하늘이라는 것'이,,, '내가 하늘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며, 하늘이라는 것이... '내가 뜻이 있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와같이 '세월이라는 것'이 '나'라는 주체가 있어서,,, '내가(세월)' 간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며, 세상이 내가 세상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며, 내가 변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뜻이 있다고 말하는 것도 '어떤 것에 대해서 '나'라고 알며, 내가 주체라고 여기는 사람이며, 세월이 간다고 말하는 것도, 세월이 아니라... 가는 세월을 원망하는 '나'라고 주장하는 사람이며, 세상이 변한다고 말하는 것도... 세상이 아니라, '육체가 나'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말, 말, 말, 말들이다.
생로병사의 고통과 괴로움은 '나'와 '나 아닌 것'이라는 분별에서 기인된 것이다.
그대의 나는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