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 인간에게 나타나는 모든 질병들의 치유에 꼭 필요한 것이 있다면 단식과 함께 무한 긍정하는 마음이다. 왜냐하면 마음에 의해서 세상이, 천지만물이 창조된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인간은 그런 사실에 대해서 미루어 짐작하거나 상상할 수 없기 때문에 생로병사의 고통을 겪는 것이다.
언어, 말을 창조한 것은 인간이다.
그런데 인간이 언어를 창조했다는 사실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 같은데, 사실은 인간이 언어를 창조했다는 사실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없다. 설령 이런 말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언어가 없는 것에 대해서는 상상할 수 없으니... 알지만 아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왜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일까?
언어가 없다는 말도 언어이기 때문이며, 오직 언어를 통해서만 세상을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본래 무일물이라는 말도 언어이며, 공이라는 말도 언어이며, 텅 비어 있다는 말도 언어이며, '아무것도 없다'는 말도 언어이다.
왜, 불치병 난치병 등의 모든 질병의 치료에 대한 글에서 이런 말들이 필요한 것인지 궁금할 수밖에 없겠지만... 인간들에게 드러나는 모든 문제들의 근본원인이 '자존심'이라는 말에 대한 그릇된 앎에서 기인된 것이기 때문이다.
앞 장에 설명된 '원초적 생명력'이라는 말에 대한 지식의 연구 결과에 의한 말로써는 '유전인자' 또는 '생명인자'이며 인간의 근원으로 본다면 노자의 말로 전해지는 '기', '기운'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어떤 '힘'이다. 그것의 다른 이름이 '도'이며, 또 다른 이름이 있다면 예수의 '성령'이라는 것이며, 석가모니로부터 전해지는 '불성'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모든 것, 즉 인간의 기원이며 천지만물이며, 천지만물의 기원이기 때문이다.
그것에 의해서 우주가 생겨난 것이며, 우주가 있거나 말거나 그것만은 영원한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언어를 창조했는데... '자존심'이라는 말이 인간 스스로가 비참한 종말을 맞기 이해서 창조된 말인 것 같다.
'자존심'이라는 말에 대해서 그져 '내가 존재하는 마음'이라는 뜻으로 표현한 바 있는데, 아니란다. '자존심'이라는 말이... '스스로 자'라는 글자와 '높을 존'자와 '마음 심'자로써 인간은 누구나 스스로 자신이 남보다 더 높다거나, 자신이 남보다 더 존귀하다는 뜻이라는 인간들의 설명이기 때문이다.
이런 말을 하다보니, '빛 좋은 개살구'라는 말과 함께 '모순'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모순'이라는 말... 인간들의 모든 주장과 같이 앞과 뒤가 전혀 맞지 않는 다는 뜻이지만, 인간들의 앎이라는 주장들 모두가 모순이라는 뜻이다. 그나마 고급 지성이라는 학문을 연구한다는 사람들은 언어가 상대적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 같다. 하지만 그들 또한 행복이나 불행이 있다고 믿기 때문에 언어가 상대적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알지만 올바르게 아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이독경일 뿐, 인간들의 모든 앎이 이와 같이 올바른 앎이 아니라는 뜻이다.
인간들은 평화를 갈망하고 행복한 세상을 만들자고 떠들어 댄다.
모순이다.
수 많은 말 중에 다만 '자존심'이라는 말의 뜻에 대해서라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면... 행복한 세상이라는 말과 평화로운 세상이라는 말, 그리고 자유라는 말... 말, 말, 말만 무성할 뿐, 어불성설이라는 뜻이다.
자존심, 자존감... 자신이 남들보다 더 높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평화라는 말, 행복이라는 말, 평등이라는 말을 쓰는 그 자체가 무한한 어리석음이 아니라면 무엇이 무한한 어리석음이겠는가?
지금 이 글을 보는 그대는 어찌 생각하는가?
인간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존심이 있다.
서로가 잘났다고, 서로가 더 높다고 주장해야만 하는 사람들에게 행복이나 자유, 평화라는 말, 말, 말...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아름답게 꾸며진 말을 듣다보면 그럴 듯한 말, 참으로 옳은 말인 것 같은데, 모두가 빛좋은 개살구와 같이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말들이라는 뜻이다.
그대가, 그대의 친구나 가족이 서로가 지가 잘났다고 주장해야만 하는데... 어찌 평평하여 평화로울 수 있겠는가?
그렇다. 서로가 올바르게 아는 앎을 공유할 수 있을때, 그때 비로소 대화로써의 소통이 이루어 질 수 있으며 평평하게 평화로울 수 있다는 뜻이다.
지금 그대의 꾸며진 모습... 혹시 '빛좋은 개살구'가 아닌지 돌아 보라는 뜻이다.
빛 좋은 개살구... 겉 모습은 보기 좋은 것 같지만, 부패하고 부패한 것은 인간의 마음이라는 예수의 말... 이를 두고 하는 말이라고 안다면, 일념을 깨닫고 더 나아가 많이 아는 거룩한 인물들 뿐일까?
마음 밖에서 구하려는 모든 것들이 이와 같다는 뜻이며, 진정으로 자신에게 이익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 보라는 뜻이다. 예수의 말과 같이 네 안에 하나님이 있기 때문이며, 석가모니의 말과 같이 네 안에 불성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 있다면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이니... 일념법의 실천으로써 참다운 앎으로써... 스스로 천상 천하 유아 독존이라는 사실을 깨달아 앎으로써 진정한 자유와 평화... 무위 자연의 자유를 누리라는 뜻이다.
앞 장에서 설명된 무한 긍정이라는 말은 어린아이의 '순수의식'과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다.
언어는 상대적이다. 그리고 상대적인 것은 주체가 있기 때문에 대상이 있는 것이다. 주체가 사라지면 대상이 사라지는 것이며, 대상이 사라지면 주체 또한 사라질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인간은 습관, 버릇, 관념, 관습, 통념... 등에 의해서 어떤 말이든지 상대적인 개념으로 밖에 인식 할 수 없다. 석가모니와 예수, 노자와 장자, 소크라테스 등... 소위 인간 세상에 성인, 성자로 알려진 인물들의 진리라는 말로 분별되는 말들은 모두 상대적인 개념을 떠난 말들이라는 뜻이다. 그 중에서 석가모니의 가장 핵심적인 가르침이 있다면 '본래 무일물'이라는 말과 '말변사'라는 말이다. 물론 '소리와 형상으로 여래를 볼 수 없다'는 말과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지만...
인간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라는 말에 대해서도 상대적인 관념으로 인식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무'라는 말이나 '공'이라는 말에 대해서도 '우주가 없다' 라거나 또는 하늘과 같이 텅 비어 있다고 인식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사례를 들자면... 인간들 '아무것도 없는 것', '본래 없는 것'이라는 말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다고 여기는 까닭은 일상에서 흔히 사용되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다' 라는 말과 같이... 우리 집에는 아무것도 없어' 라는 말과 같이... 또는 냉장고에는 아무것도 없어'라는 말들에 대해서 당연하게 여기기 때문이겠지만... "냉장고에 아무것도 없어" 라는 말에 대해서 '본래 무일물'이라는 말에 대한 비유를 든다면... '본래 무일물'이라는 말은 '냉장고'도 없으며 '내용물'도 없다는 뜻이니... 우주가 본래 없다는 말이며 그대의 '나'라는 것 또한 '본래 없다'는 말로써...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이며, '생사 이치', 즉 생각의 이치와 속성에 대해서 깨달아 알라는 뜻이다.
인간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훌륭한 사람이라거나 잘난 사람, 똑똑한 사람이라는 말, 말, 말들... 자존심이라는 말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말이라는 뜻이다.
노자의 말 중에는 '훌륭하다는 사람들' 섬기지 말라는 말이 있는데... 역사를 되돌아 본다고 하더라도, 그런 사람들의 자존심에 의해서 자행되었던 일들이 무엇인가? 그렇다. 피를 흘리게 하는 전쟁이며, 서로가 훌륭하다고 주장하는 짓들 모두가 인간과 인간들간에 다툼이며, 경쟁이며 투쟁을 조장하는 일들일 뿐, 인간들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서는 전혀 쓸모 없는, 가치 없는 짓들이기 때문이다.
긍정의 힘이 가장 큰 힘이라고 하는 까닭은, 크게는 언어가 상대적이기 때문에 무한 긍정함으로써 부정적인 사고방식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긍정이 습관화 되어 긍정하는 마음만 남겨지게 되면 그 대상인 '부정하는 마음'이 사라지게 되며, 궁극에는 긍정하는 마음 또한 사라짐으로써 '중도'를 깨달을 수 있다는 뜻이다.
무한 긍정은 또한 어린아이의 순수의식과 같이 있는 현실에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응'하는 것이다. 부정도 아니며 긍정도 아닌 행위에 대해서 '응'이라는 말로 표현하는 것이니... 무위 자연이 곧 응하는 것이라고 안다면 올바른 앎이다.
질병의 치유를 위해서 왜 이런 말들이 필요하겠는가?
자존심이 모든 질병을 비롯한 생로병사의 고통의 원인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목숨보다 자존심을 더 중요하게 여기면서도 또한 욕망 앞에서는 자존심 마져도 버리는 나약한 존재이다. 남들에게 잘난 체 하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면, 진정으로 자신을 위해서 사는 삶일때 그때 비로소 이웃을, 남들을 가족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의 몸 조차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 어찌 남들을 사랑할 수 있겠는가?
무슨 말인가?
자신의 존귀함에 대해서 남들에게 인정 받아야 한다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라는 말이다. 자신의 존귀함을 어찌하여 남들에게 인정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자신 스스로가 깨달아 알아서 남들로 부터 인정 받는 자존심이 아니라 '천상 천하 유아 독존'이 되라는 뜻이다. 석가모니의 말로 전해지는 천상천하유아독존이라는 말에 대해서 오해하여 '내가 잘났다'는 잘난체를 하라는 뜻이 아니라, 스스로 깨달아 알아서 자신 스스로가 모든 것이며 모든 것의 기원이라는 사실... 즉 신을 보라는 뜻이다. 예수의 '네 안아 하나님이 있다'는 말과 같이...
올바르게 알고 공부한다면...
몸에 작은 질병이 있는 사람에게는 작은 희망이 있는 것이며, 몸에 큰 병이 있는 사람은 그만큼 큰 희망이 있는 것이다. 병이 있는 사람은 병이 있기 때문에 걱정을 하는 것이며, 병이 없는 사람은 병이 생길까봐 걱정하는 것이 인간 세상에서 인간들이 아는 그릇된 앎의 결과이다.
하지만 '내가 나고', '내가 살고' 내 마음이고' 내 생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 모두의 인생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감옥에 갇혀서 자유를 갈망하는 죄수와 다름 없다.
죄수가 자유를 갈망하여 목숨 걸고 탈옥하여 도망 치는 것과 같이 인간의 삶이라는 것은 남녀 노소를 막론하고 누구나 죽음을 향해서 달려 나가는 일에 대해서 인생이라고 하니... 인간들의 삶이 탈옥수의 그것과 다름이 없다는 뜻이다.
죽음을 향해 달려나가는 길....
어차피 죽으러 가는 길...
왜 서둘러 가는 것인가?
대체 바쁜 일이 무엇이며, 중요한 일이 무엇이란 말인가?
어차피 맞아야 할 매라면 빨리 맞는 편이 낫다는 말과 같이...
죽음이 두렵기 때문에 빨리 죽으러 가기 위해서 사는 것이 인간들의 인생이라는 것일까?
세상에 가장 중요한 일, 가장 바쁘게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대의 나를 찾는 일 밖에는 바쁘거나 중요한 일이란 있을 수 없다는 말이다.
지금 살아 있고, 또한 이런 글을 볼 수 있는 인연이 주어졌다면...
그대는 인류 역사를 모조리 뒤져 본다고 하더라도 극 소수의 천복을 받은 인간일 것이다.
하늘에 복이 있다면... 그것이 복을 준다고 가정한다면 말이다.
'어린 아이처럼 순수하지 않으면 천국에 갈 수 없다'는 예수의 말... 무한 긍정을 뜻하는 말이다.
말을 배우기 이전의 어린 아이와 같이 무한 긍정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라는 말이다. 일념법을 공부하노라면... 내 생각이라고 당연하게 여겼던 내 생각이 결코 '내 생각'이라고 주장할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깨닫게 될때, 남들로부터 들어서 아는 앎이 아니라, 그렇게 스스로 깨달아 알때 깨달아 아는 앎에 대해서 올바른 앎이라고 하는 것이며, 이에 대해서 '겨자씨 만큼의 앎'이라고 설했던 인물들이 예수와 석가모니 그리고 노자의 도덕경에 소개된 도의 실마리라는 뜻이다.
너 자신을 알라.
그것이 모든 것의 기원이기 때문이다.
다음 편에는 치매와 뇌졸증 등의 뇌의 변화와 질병의 관계에 대해서...
참...
인간의 모든 질병들... 첫째 원인이 뇌의 작용, 즉 생각의 억압에서 비롯된 스트레스이며, 이를 극복하기 위서 하는 일들이 '잘 먹어야 한다'는 그릇된 앎에 따른 과잉 섭취라는 사실... 이런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올바르게 알때... 이미 치유는 시작된 것이라고 안다면, 참으로 올바른 앎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