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론 - 잘사는 삶 · 올바른 삶

너 자신을 알라 / 우리가 존중해야 하는 것은 단순한 삶이 아니라, 올바른 삶이다

일념법진원 2014. 6. 30. 06:51

'하늘의 도는 만물을 이롭게 하고, 성인의 도는 행함에 있어서 다툼이 없다'는 말이 노자의 도덕경에 기록된 말이다.

 

인간의 삶에 있어서 존중해야 할 것이 있다면 부와 명성을 따르는 자가 아니며, 포기하고 단순하게 사는 자도 아니며 다만, 올바른 삶을 사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올바른 앎에 바탕을 두고 항상, 나날이 소요유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 존중되어야만 세상이 평화로울 수 있다는 말이다.

 

세상이 항상 시끄러운 이유는 서로가 옳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사실 세상 사람들 누구나 인생에 대한 해답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없다. 인생의 해답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삶을 경험하고 죽음도 경험해야만 한다. 죽음을 경험 해야만 삶이 무엇인지, 죽음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기 때문이다.

 

인생이, 삶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 그들 모두가 오직 자기를 주장하기 때문에 시끄러운 것이다.

 

인간세상이 평화로울 수 없는 까닭은 모두가 부와 명성을 쫒기 때문이다.

사실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삶을 사는 사람들이 부와 명성을 얻기 위해서 사는 사람들이다. 

 

만약에 동물들과 같이 오직 먹을 것만을 쫒는 사람이 있다면, 그의 삶은 단순한 삶이며, 도를 구하겠노라고 세상을 등지는 사람들 또한 단순한 삶을 사는 사람들일 뿐, 가치 있는 삶을 사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가치 있는 삶, 올바른 삶이란 어떤 사고방식으로써 사는 삶을 이르는 말일까? 

 

그렇다. 

석가모니의 말로 전해지는 '일일 시호일'이라는 말과 같은 맥락이다. 

세상에 부자는 많지만, 마음이 부자인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다. 

세상에 명성을 얻은 자는 많지만, 마음이 평화로운 자 또한 단 한사람도 없다.

 

무지몽매하여 단순하게 사는 삶이 올바른 삶이 아니라, 올바른 앎에 바탕을 둔 단순한 삶이 가치 있는 삶이라는 말이며, 올바른 삶이라는 말이다. 최소한 자신의 작은 이익을 위해서 남들과 다투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다.   

 

 

흔히 볼 수 있는 말이 '일일 시호일'이라는 말이다.

모두 아는 말인 것 같지만, 그뜻에 대해서 올바르게 이해 하는 사람은 보기 드물다. 왜냐하면 일념을 깨달아야만 비로소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기 때문이다. 일일시호일 이라는 말의 '시' 자가 "옳을 시" 자이다. 날이면 날마다 즐거운 날이어야 하는데, 올바르게 즐거운 날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부처님을 믿어서 올바르게 즐거운 날이라는 뜻이 아니라, 올바른 앎으로써의 올바르게 즐거운 날로 매일 매일을 재 창조해 나가라는 뜻이다. 사실상 지금이나, 이 순간이라는 말, 말, 말은 있으되 그것이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 허구적이라는 사실에 대한 이해로써 스스로 행복한 삶, 평화로운 삶을 창조하라는 뜻이다.  

 

 

인간이 어리석어 올바른 앎이 아니기 때문에 '내일'과 '미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실 지금 이 순간이라는 말이 있을뿐,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그 말을 생각함과 동시에.... 이미 지나간 과거지사이다. 이런 앎이 올바른 앎이기 때문에 순간순간을 기쁨으로 존재하라는 뜻이 곧 단순한 삶이 아니라 올바른 삶이라는 뜻이다.

 

 

세상천지 다 둘러보더라도 그대의 마음에 꼭 드는 사람을 찾을 수는 없다. 그대와 함께 하는 사람 또한 그러하다. 그대의 마음에 들지 아니하는 사람 또한 그대를 마음에 들어하는 사람은 아니라는 뜻이다. 자신의 마음 조차도 자신의 마음에 들 수 없는 것이다. 하물며 어찌 남들의 마음에 들기를 원하며, 남들이 자신의 마음에 들기를 원하는가?

 

그대 자신의 마음이 무엇인지부터 찾아 내야만 비로소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말이며, 단순한 삶이 아니라, 올바른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이며, 그런 사람을 공경하고, 존경하고, 존중하는 사람들의 삶만이 가치 있는 삶이라는 뜻이며, 올바른 삶이라는 뜻이다.

 

 

인간세상에서 그런 사람을 찾기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사실 예수가 그런 사람의 대표적인 인물이며 석가모니 또한 그러하다.

 

예수는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 대해서 길잃은 어린 양새끼와 다르지 않다고 한다. 과연 너희가 짐승보다 더 뛰어난 것이 있는가라는 질문과 함께.

 

 

사실 예수의 올바른 앎에 대한 가르침이 '선악과를 따먹었기 때문에 원죄를 지었으니, 하나님께 기도하라'는 방식으로 왜곡된 것이 성경이다. 사실은 선과 악을 분별하는 분별심 자체가 죄이며, 어리석음이기 때문에 '하루종일' 기도하여 그 어리석음의 분별심에서 벗어나라는 말이다. 마음에서 벗어난 해탈로써 깨어나라는 말이다.

 

석가모니의 말은 또 어떠한가? 

예수의 말은 선과 악의 분별이 죄라는 뜻이며, 석가모니의 말은 그와는 조금 다르게 표현되어 전파되었다.  '탐 진 치' 삼독에서 벗어나라는 말이다. 원리전도몽상에서 깨어나라는 말이다. 언어가 상대적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깨달아 알아야만 중생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말이다.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의 본래의 뜻이다. 

 

소크라테스 말하기를. 

철학은 무지에서 시작되는 것이라고 한다. 

지성체들은 이런 말의 뜻 조차 이해 할 수 없기 때문에 '철학'이나 '인문학' 등의 수많은 학문들은 오직 자기만의 상상력으로써 환상을 주장하는 어리석음에서 한치도 벗어날 수 없는 무지에 묶여 있는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철학은 무지에서 시작되는 것'이라는 말은 가장 단순할 말이며, 보편타당한 진실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인생의 해답을 모른다'는 기초적인 생각에 바탕을 두고 성찰하므로써 '철학'이라는 말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현세상에 그대가 존중해야 할 만한 사람을 찾아볼 수는 없다. 

다만, 그대가 그대 자신을 스스로를 존중할 수 있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게 해야만 한다는 뜻으로 이해 하는 편이 더 나을 것 같다. 

일념법명상으로써 그대가 그대 자신의 마음에 대한 분명한 이해가 다가올때, 그때 비로소 이런 말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며, 그때 비로소 단순한 삶이 아니라 올바른 삶을 실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올바른 앎을 실천하는 사람들의 삶은 중생들의 삶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올바르게 볼 수 없기 때문에 별반 달라보이는 것도 없다. 다만 보이는 것들 중에서 조금 다르게 보이는 것이 있다면, 그들에게는 다툼이 없다는 것이며, 이견이 없다는 것이며, 탐심이 없기 때문에 진심이 없는 것이며, 진심이 없기 때문에 어리석은 짓을 아니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삶은 언제나 어느 곳에서나 자신의 이익을 위한 삶이 아니라, 중생들의 이익을 위해서 사는 삶이라는 것이다. 그것을 이름하여 곧 하늘의 도, 이며, 성인의 도 라고 하는 것이다. 

 

인간세상에 서 '도'를 가르칠 수 있는 사람들... 일념을 깨닫고 더 나아가 많이 아는 거룩한 인물들. 그들만이 가치 있는 삶, 올바른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항상 스스로 평온하므로써 말이 없더라도 이웃에게 그 평온함이 전해지기 때문이다. 

 

마음이 어디에 있는가?     

그대에게 평화 있기를...

 

 

일념명상의 집 '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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