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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극?! 몽상! 혼돈! 봉암사 적명스님? 입적? 다비식?/ 영원한 행복?/ 조실? 선방? 참선? 화두? 수행? 깨달음? 중도? 고집멸도? /비도불행.. 진리의 길

일념법진원 2019. 12. 30. 07:23

"중생은 어떤 모습으로 드러나도 중생"이라는 말이.. 달마의 이야기의 요지일까? 

이 이야기는.. '도'의 이야기이다. 

진실된 일념법구도자들을 위해서이며, 진실로 '붓다, 예수, 소크라테스, 노자, 장자'와 같이 "인간이상의 존재"로 거듭나기 위한 진실된 일념법구도자들을 위한 수행론으로 본다면.. 이시대의 현자이다. 


어차피, 광신자 맹신자들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니, 우이독경이 아닐 수 없을 것 같다.  


명제의.. 아래의 이야기들을 보니, 참으로 어리석은 중생들의 '헛된망상' 망언들이기 때문에.. 못내 안타까워.. 진실로 도를 구하는.. 진실된 '구도자'들을 위해 설명하려는 것이다. 


물론, 두권의 책.. '깨달음의 실체를 밝힌다'와 "비밀의 언어"에 수행방법과 그 과정에 대해서 여러 방편을 들어.. 자세히 설명된 이야기들이지만.. 


아래의 이야기들.. 

"영원한 행복을 위해서 수행, 참선한다"는 말이.. 참으로 어리석은자들의 망상. 망언이기에.. 


붓다의 진언들.. 광명진언들 중에는 아래와 같은 구절이 있는데.. 


"비구여.. 구도자든지, 누구든지.. 내가 이렇게 되기를 원하거나, 내가 저렇게 되기를 원하거나, 다른 사람들이 이렇게 되기를 원하거나, 남들이 저렇게 되기를 원한다면.. 그것은 괴로움이다"는 말이다. 


"일체처, 일체시.. 행주좌와 어묵동정" 이라는 구절에 대해서 설명한 것과 같이.. 앉아서 50분, 포행 10분.. 그리고 쉬는 날이 있는 게 아니라... 잠에서 깨어나서부너 다시 잠들때까지... '일념법의 일념삼매'에 들라는 뜻이며... 예수의 말과 같이.. '하루종일 일념에 들라'는 말이라고 본다면.. 이시대의 현자이며.. 머지 않아서, "언제 죽을지 모르지만.. 죽기전에 내가 나라도 알고 죽어야 할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때, 비로소... 죽기전에 꼭 해야 할 일이 "나는 찾는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며... 그 때 비로소.. 목숨걸고 해야만 하는 일이.. "도"를 공부하는 일이며.. "생사대사"를 해결하기 위한 일로서.. 더 이상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와같이 알고.. 아래의 '뉴스'의 글을 본다면.. 

하근기 중생들의 무지와 어리석음의 한계를 여실히 볼 것이다. 


--- 아   래 ---

 


적명 스님 떠난 봉암사…그곳엔 불자도 ‘수장’도 없었다
봉암사 수좌 적명 스님은 생전에 ’행복하자고, 영원히 행복하자고 수행한다“며 ’아무리 힘든 상황에 처해도 기꺼이 받아들일 때 주인으로 선다“고 강조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봉암사 수좌 적명 스님은 생전에 ’행복하자고, 영원히 행복하자고 수행한다“며 ’아무리 힘든 상황에 처해도 기꺼이 받아들일 때 주인으로 선다“고 강조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경북 문경의 봉암사는 대한불교 조계종단에서 37년 전에 ‘종립특별선원’으로 지정됐다. 수행 스님의 참선을 위한 수도도량이다. 부처님오신날에만 일반인 출입을 허락한다. 여기에는 역사적 배경이 있다. 1947년 성철·청담·자운·월산·혜암·성수·법전 스님 등이 “부처님 법대로만 살자!”며 봉암사에서 결사를 했다. 이를 계기로 독신 출가승이 중심이 된 조계종단이 우뚝 서게 됐다. 스님 사이에서 ‘봉암사에서 한 철(동안거 또는 하안거) 났다’고 하면 고개를 끄덕이며 제대로 수행했음을 인정한다.
 

봉암사 수좌 적명 스님 다비식
조실 거부하고 11년 빈자리 둔 채
“영원히 행복하자고” 수행 매진

“깨달음은 일체가 자기임을 보는 것”
진정한 사랑 화두 남기고 떠나

28일 봉암사에서 적명 스님의 다비식이 열렸다. 적명 스님은 봉암사의 수좌다. 봉암사의 최고 지도자는 ‘조실’이다. 그런데 봉암사에는 조실이 없다. 11년 전에 봉암사 대중이 적명 스님을 조실로 추대했다. 그러나 적명 스님이 “나는 그럴 위치에 있지 않다”며 거절했고 지금도 공석이다. 이것은 그야말로 ‘큰 용기’다. 만약 조계종단에 ‘깨달음을 이룬 큰 스승’이 없다면 종정 자리를 공석으로 비워둘 수 있을까. 그런 ‘빈자리’를 되새기며 모든 수행자가 절치부심하면서 수행할 수 있을까. 조계종단에 과연 그만큼의 ‘큰 용기’가 있을까. 아니면 법에 대한 안목보다 원로 스님들의 ‘투표’와 ‘밀어주기’로 수장의 자리를 뽑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적명 스님의 입적은 급작스러웠다. 올해 80세, 법납은 60세다. 적명 스님은 후배 도반들과 함께 봉암사 선방에서 동안거를 나고 있었다. 안거는 여름과 겨울 석 달씩 산문 출입을 하지 않고 선방에서 참선에만 매진하는 불교 수행을 일컫는다. 적명 스님은 지난 24일 동료 수행자들과 희양산에 올랐다.
 
희양산에는 마애불이 있다. 암벽 계곡의 바위에 새겨진 고려 말 양식의 불상이다. 적명 스님은 그 마애불 뒤에 있는 관음봉을 보고파 했다. 그래서 “천천히 가겠다. 먼저들 올라가시라” 하고선 홀로 갔다. “오랜만에 가보고 싶은 곳을 간다”며 무척 좋아하셨다고 한다. 적명 스님은 높은 곳에서 발을 헛디뎌 실족사한 것으로 보인다.
 
28일 적명 스님의 다비식이 거행됐다. ’스님, 불 들어갑니다“하는 외침과 함께 장작더미에서 불길이 솟아올랐다. [사진 봉암사]

28일 적명 스님의 다비식이 거행됐다. ’스님, 불 들어갑니다“하는 외침과 함께 장작더미에서 불길이 솟아올랐다. [사진 봉암사]


적명 스님은 평소 수행의 이유를 명쾌하게 말했다. “행복하자고, 영원히 행복하자고 수행한다.” 그랬다. 90일간 선방에 갇혀서 대중과 함께 50분 좌선하고 10분간 포행(걸으면서 하는 참선)하는 안거는 적명 스님에게 ‘행복을 좇아가는 행복한 일’이었다. 그것도 잠시 맛보고 사라지는 ‘소멸의 행복’이 아니라, 눈을 떠도 서 있고 눈을 감아도 서 있는 ‘영원한 행복’ 말이다.
 
적명 스님은  ‘기꺼이 받아들임’을 강조했다. 그게 임제 선사가 설한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 어디를 가든지 주인이 되면 서있는 그곳이 진리가 되리라)’의 요지라고 했다. “삶이 죽도록 힘들다고 해서 절대 포기하면 안 된다. 그렇게 끊으려고 해도 끊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업장(業障, 우리가 지은 업으로 인한 장애) 때문에 결국 다시 태어나 고통을 반복해야 한다.” 그런 상황의 처방전을 내놓았다. “상대가 지독한 악인이라 해도 소중한 인연으로 여겨보라. 따뜻한 말 한마디부터 해보라. 내가 착해지면 그도 착해진다.”
 
어땠을까. 적명 스님이 급작스레 닥쳐올 죽음을 알았다면 기꺼이 받아들였을까. 그렇게 자신의 죽음 앞에서도 기꺼이 주인으로 섰을까. 적명 스님의 입적은 우리에게 또 하나의 화두를 던진다. 갑작스런 고통, 갑작스런 슬픔, 갑작스런 죽음 앞에서 우리는 과연 ‘주인’으로 설 수 있을까. 28일 오전 영결식에서 적명 스님의 법문 중에서 골수를 담은 대목이 소개됐다

[출처: 중앙일보] 적명 스님 떠난 봉암사…그곳엔 불자도 ‘수장’도 없었다



“철저히 각성하라
각성이 곧 변혁이고
변혁이 곧 기회이다”

“중도의 깨달음은 사랑이다
진정한 사랑이다”

“중도는 사랑입니다. 깨달음은 일체가 자기 아님이 없음을 보는 것입니다. 남이 바로 자기자신이며 자신과 다르지 않습니다. 남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느끼는 사람이 깨달은 사람입니다. 중생이 불행하면 자신이 행복할 수 없습니다. 중도의 깨달음은 사랑, 진정한 사랑입니다.”
 
이어서 전국선원수좌회 대표 영진 스님이 ‘적명 대종사 행장’을 낭독했다. “26세에 토굴에서 보조국사 지눌의 『절요』를 읽다가 ‘수행을 하려면 모름지기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는 대목을 읽고 마음에 크게 느껴 무(無)자 화두를 들기 시작했다”는 내용과 “28세에 해인사로 가서 1967년 해인총림이 개설되자 50대 방장 성철 스님이 방장에 추대되어 선풍이 일기 시작하자 가행정진한 이래 평생 선방을 떠나지 않았다”는 대목이 적명 스님 수행의 큰 줄기를 응축해서 보여주었다.
 
장의위원장을 맡은 대원 스님은 영결사에서 물음을 던졌다.
 
“부처님과 조사도 이와 같이 가셨고, 범부와 성인도 이와 같이 가셨으며 오늘 적명 대종사께서도 이와 같이 가셨습니다. 그러나 올 때도 온 바가 없고, 갈 때도 간 바가 없다고 하니 금일 대종사께서는 지금 목전에 있습니까? 없습니까?”
 
전국선원수좌회 공동대표 의정 스님은 조사(弔詞)에서 “불꽃같이 치열했던 수좌 본연의 모습도 모자라, 마지막 탈신의 순간마저도 사무치게 제행무상 생사대사(諸行無常 生事大事)’의 도리를 일깨워 주시니 이 경계가 경사(慶事)입니까, 조사(弔事)입니까”라며 추도했다.

 
“스님, 불 들어갑니다!”라는 외침과 함께 불길이 타올랐다. 출가자와 재가자 대중은 침묵했다. 그 위로 적명 스님이 평소에 던지던 법문이 불꽃이 되어 사방으로 튀었다.
 
“일상과 수행이 다르지 않다!”
 
“철저히 각성하라. 각성이 곧 변혁이고, 변혁이 곧 기회이다!”
 
백성호 종교전문기자 vangogh@joongang.co.kr

[출처: 중앙일보] 적명 스님 떠난 봉암사…그곳엔 불자도 ‘수장’도 없었다


say-the-truth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 불능견여래' '고집멸도' 


'생사대사' "生事大事"가 아니라.. "生死大事"이다. 

중생들에게는.. '사는 일' 보다 더 힘겨운 일이.. '죽는 일'이다. 


그대 또한.. 누구든지.. 위와 같은 헛소리들을 지껄이기 위해서 산다면... 살아갈 가치가 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더군다나.. 석가모니를 가장 크게 모독하는자들... 석가모니를 욕보이는자들의 대포적인 인간들.. 중생들이.. '불교'를 믿는 광신자 맹신자들이며.. 이와같이... 예수를 크게 모독하는자들.. 욕보이는자들 또한 '천주교 개신교'등의 광신자 맹신자들이라고 본다면.. 이시대의 현자이다. 


속담과 같이... "달을 보라 하니, 달을 가르치는 손가락만 보며.. 사방에서 마구 지걸여대는 중생들"이.. 세상 모든 광산자 맹신자들이라고 본다면.. 이시대의 현자이며, 진실된 일념법구도자들이겠지만... 


사실은.. '삶'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과 같이.. 

'죽음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일체가 다 고통이라는 뜻으로.. '일체중생 일체개고'라고 설명한 것이며.. '고집멸도' 즉, 그런 삶과 죽음의 모든 고통의 소멸법이 있노라며.. '여래'를 보라며.. '즉견여래' 즉, 즉시 여래를 볼 수 있다며.. '내세득작불' 즉 '살아생전에 여래'를 볼 수 있다고 설명한 옛 진실된 일념법구도자가.. '석가모니'이다. 


'유유상종'이라는 말과 같이.. 

중생들은.. 여러 부류로 나누어서 서로가 다 아는체 한다. 

불교.. 천주교.. 기독교.. 과학, 의학, 한의학 그리고 철학.. 문학.. 정치학.. 고고학에 이르기 까지, 더 나아가 '문화, 예술, 스포츠.... 등의 서로 다른 무리들... 제각기 '내 인생'이라며.. '성공해야 한다'며.. 서로 싸우고 이겨서 승리해야 한다며.. 서로간의 경쟁, 투쟁.. 전쟁을 일삼다가 위의 어느 중생과 같이.. 비참하게 죽어가는 짓들에 대해서.. '인생'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렇지 아니한가? 


그러니.. 모두가 다 헛된 삶을 사는 것이며, 삶을 허비하는 것이다. 


say-the-truth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 불능견여래' '고집멸도' 


사실.. 인간들은 모든 것을 다 아는체 하지만.. 자신에 대해서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사유할 권리나 능력이 없다. 


막연히 자신의 인생이기 때문에.. 내가 살고, 내가 죽는다고 알 뿐, 자신의 이름 조차도 자신이 지은 게 아나라는 사실.. 자신의 나이 조차도 남들로부터 듣고 배우고 익혀서 아는 것이며.. 이와 같이,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도 자신이 모르고.. 자신이 운명도 자신이 모르지만.. 술에 취한 듯, 마약에 취한 듯이.. 막연히 자신에 대해서 안다는 '자아도취'에 빠져 있는 것이.. 일체중생들이다.  


사실, 서 너 살 된 아이들에게는.. '성별'에 대한 관념이 없다. 

그대 또한 어린아이시절에는.. "내가 남자"인지.... '내가 여자'인지 조차 구분할 수 없었던 것과 같이...그대의 이름 또한 타인들에 의해서 지어진 것이며, 그대의 나이 또한 어린아이시절부터 남들에게 듣고 배워서 아는 것일 뿐... 자신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스스로 아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즉, 자신에 대해서 아는 앎.. 즉 자신에 대한 지식이.. 모두 다 타인들로부터 듣고 배운 지식이기 전부이기 때문에... 정작 "너 자신을 알라"는 말 조차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지 아니한가? 


이 비밀의 언어의 해석을 발견하는자.. '불생불멸의 여래'를 볼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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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 참. 

머리깎은 중생들.. 과연 무엇을 위해서 사는 것일까? 

석가모니를 위해서 사는 것일까? 

중생들을 위해서 사는 것일까? 

자신을 위해서 사는 것일까? 


붓다는... 삶과 죽음이 없는 이치를.. '불생불멸'의 이치를 깨달아 알라고 가르치는데.. 

중생들은.. 달을 보라 하니, 달을 가르키는 손가락만 본다는 말과 같이... 모두가 다 수행이라는 미명하에.. 거짓말을 일삼다가.. 비참하게 죽어가는 짓들.. 그런 짓들에 대해서.. '인생'이라며.. 사방에서 마구 지껄여대는 것이다. 


자, 지금 이 글을 보는 그대는... 

과연 누구를 위해서 사는 것이며, 무엇을 위해서 사는 것이며, 대체 살아생전에 무엇을 얻기 위해서 사는것인가? 


지금 그대는 무엇을 얻기 위해서 사는 것인가? 

지금까지 얻은 것은 무엇이며.. 나머지 삶을 통해서 얻을 것은 무엇인가 말이다. 

결국, 여러 불치병 난치병을 얻게 될 것이며.. 비참하게 죽어갈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는 뜻이며.. 그렇기 때문에.. 진리를 알고, 진리로 깨어나라는 뜻이다. 


사실.. 인간들.. 중생들..길잃은 어린양새끼와 같은 사람들은... 

모두 다 똑 같이, 진실로 자신을 위해서 사는 것도 아니며, 진실로 남들을 위해서 사는 것도 아니며, 그져 잘 길들여진 축생들과 같이.. 남들의 말에 이리저리 이끌려 다니다가 비참하게 죽는 짓이 '인생'이다 보니.. 모두 다 똑 같이, 삶이 있다지만.. 후회와 여한만 가득 남겨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지 아니한가? 


사실은.. 자신을 위해서 살아갈 수도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왜냐하면.. 자신에 대해서 아는 것이 단 하나도 없다보니, 자신을 위해서 살고자 한다고 하더라도.. 자신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고작 많이 먹고 마시는 일로서.. 병을 얻기 위한 짓들 이외에.. 병을 치료할 수 있는 권능이 없을 뿐만이 아니라.. 마음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것이 '중생'들이다 보니... 마음을 편안하게 할 수도 없는 것과 같이... 


명색이 "스님"이라는 하근기 중생들과 같이... 헛소리만 하다가.. 비참하게 죽어갈 수밖에 없는 무지몽매한 것들이.. '중생들.. 인간들'이라고 본다면.. 이시대의 현자일까만은.. 


say-the-truth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 불능견여래' '고집멸도' 


자, 그대 또한 그러하다. 

만약에 어떤 사람이.. '석가모니'의 진실된 말들.. 즉 '여래진실의'라는 말과 같이.. 예수의 진실된 뜻이나 또는 달마의 진실된 뜻이나.. 또는 '노자, 장자, 소크라테스'의 진실된 말들의 진실된 뜻에 대해서 단 한구절만이라도 올바르게 이해? 해석할 수 있다면... 그런 사람들이 종교를 믿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행주좌와어묵동정'이라는 말의 진실된 뜻 조차 올바르게 이해 할 수 없는... 무지몽매한자들... 어리석은자들이.. 불교에 세뇌당한 광신자. 맹신자들이니.. 더 말 해 무엇하겠는가만은.. )


그런 사람들.. 진실된 일념법구도자들이.. '과학이나 의학, 생명공학' 등의 학문을 믿는다는 것 또한 있을 수 없는 일이며.. 그런 사람들이 철학이나 기타 세간의 학문.학술들을 믿는다는 것 또한 있을 수 없는 일이며.. 


그런 사람들이.. 일념법을 아는 진실된 일념법구도자들이.. '치매, 암' 등의 여러 불치병 난치병에 걸린다는 것 또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의학자들이.. 쥐를 연구하다가 죽는 것과 같이.. 

쥐를 연구하다가 죽는다면, 그것들의 인생은.. 쥐보다 더 무가치한 삶이 아닐 수 없다고 설명한 것과 같이.. '석가모니'의 진실된 뜻에 대해서는 아랑곳 하지 않고.. 어리석은자들끼리 서로 아는체하다가 죽는다면, 의학자들.. 과학자들과 같이.. 그야말로 '쥐 보다 더 무가치한 삶'을 사는것이며.. 그런 어리석은자들이.. 지구에 있는... '세상 모든 광신자 맹신자'들이라고 본다면.. 이시대의 현자이다. 


say-the-truth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 불능견여래' '고집멸도' 


위의 여러 헛소리들... 그럴듯한 거짓말들 중에는... 

"중도"를 깨댣는다는 것은.. "사랑"이라는 말이 있는데.. 


"중도" = "사랑"이라는 말은.. 대체 무슨 소리일까? 


그렇다. 

예수의 말과 같이.. 하늘에서 보니.. 라는 말과 같이... 

그들, 진리자들.. 도를 깨달은자들.. 도와 간격이 사라진 자들의 여러 방편설명들, 여러 진실된 이야기들은.. 그들의 진실된 뜻을 발견하는 거룩한 인물들에게는.. 크나큰 이익이 따른다는 뜻으로서.. 인간들 모두에게 이익 되는 말이며, '활구'라는 말과 같이.. 삶, 죽음의 한계를 넘어서 진정한 자유와 평화를 누릴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중도"를 깨달은 인간이상의 존재들의 모든 이야기들은... 무지몽매한 지식 너머, 진실된 지식으로서.. 중생들을 위한 '무한한 사랑'으로 표현될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어라석은자들은 그들을 우상으로 숭배하다 죽는 것들이니, 살아갈 가치가 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설명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 


say-the-truth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 불능견여래' '고집멸도' 


이 이야기는.. 중생들을 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리자들.. 인간이상의 존재들의 진실된 뜻에 대해서.. (시공간이 있다는 가정하에..) 21세기로 알려져 있는 현시대의 보편적인 언어로.. 육하원칙에 어긋날 수 없는.. 진실된 이야기들로... 여러 방편을 들어 자세히 설명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일념법 3내지 4단계로서.. '마음이 생각에 불과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그 때 비로소.. 옛 성인들의 진시된 말의 진실된 뜻에 대해서.. 올바르게 이해 할 수 있는 권리와 능력이 생겨나기 때문이며.. 그 때 비로소.. '중도'를 깨닫기 위한.. 진실된 '구도자의 길'을 갈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 길은 좁고, 높고 험난하여 아무나 갈 수 없는 길'이라던.. 나사롓 예수의 말과 같이.. 

'이 법은 무상심심미묘법'으로서.. 백천만겁난조우 인연있는자들만이 갈 수 있는.. '최상승법'이라던.. 석가모니의 말과 같이... 


불생불멸의 여래를 보기 위한.. 

만물의 근원인.. '도'를 보기 위한.. 유일무이한 법이.. '일념법'이다. 


그대 또한.. "나는 나가 아니라, 나는 진리, 빛, 만유, 새생명"이라던 예수와 같이.. 진리자로 거듭날 수 있는 것이며. 그 유일한 법이 일념법이기 때문에.. 여러 방편을 들어 설명하는 것이다.  


say-the-truth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 불능견여래' '고집멸도' 


만약에 인간이.. '생사자유자재'라는 말과 같이.. '생각을 자유자재할 수 있거나, 삶과 죽음을 자유자재할 수 있다면... 삶이든지 죽음이든지.. 두려움과 공포, 고통이 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인간들 모두 다 똑 같이.. '내가 생각할 수 있다'며.. 사방에서 마구 지껄여대지만.. "내가 하나님"이라고 생각 할 수 없는 것과 같이.. "내가 창조자"라고.. "내가 부처"라고.. "내가 신"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것과 같이.. 사실은 자신의 생각 조차 자유자재할 수 없는.. 무지몽매한 것들이.. '명색'이 인간이라고 본다면.. 이시대의 현자일가만은.. 


그러니.. 

무지몽매한 지식의 감옥에서 벗어나라 하는 것이며.. 

일념법을 의존하여 진리의 길을 가라 하는 것이다. 


진리. 오직 그것이 너희를 자유하게 할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