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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론도담이란?

일념법진원 2011. 8. 9. 08:17

도론도담이라는 말을 쓰고 보니... 그 말 자체가 참으로 우습다.

도론도담이라는 말을 하기 위해서는 "도"라는 것이 무엇인지라도 올바로 알아야 할텐데... 현 세상에서는 이미 진정한 도의 가르침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당신이 말하는 도가 진정한 도, '정도"인가" 묻는다면?

지금 이 글을 보는 그대는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어떤이는... "오직 하나님 말씀"이라고 할 것이며, 어떤이는 오직 "부처님 말씀이니 정도" 라고 할 것이며 "예수의 말도, 석가의 말도" 믿지 않는 사람들은 관심이 없을지도 모른다. 차라리 지식으로라도 "불이일원론을 역설한 인물들의 실상, 삶"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할 말이 없어질지도 모른다.

 

그런데, 또 다른 신흥종교나 집단들에 세뇌된 사람들은 자신들이 믿는 "도"만이 올바른 도라는 착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며, 또 다른 우상을 숭배하게 되니... 현 세상에서 도를 말한다는 자체가 어긋난 말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도"와 "진리"는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지만, 도를 논하기 전에 우선 알아야 할 것은...

우리 말로는 "도를 깨달음"이 "진리"이며 진리를 구하기 위한 "일념공부과정"에 대해서 "도"라는 말로 표현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도, 진리"인가?

도를 구함이 곧 진리를 구함이니... 그것을 구하는 목적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답한다면...

진정으로 잘 살기 위한 올바른 이치이며, 방법이다.

 

"공자"라는 사람은 왜, "내가 오늘 도를 깨닫는다면 내일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말을 할 수 있었는지... 인류의 성인으로 알려진 인물인데, 그는 왜 그토록 목숨을 걸어서라도 "도"를 깨닫고 싶어한 것인지.

또는 "순치황제"가 달마대사의 말을 듣고 "한 나절 동안이나 마음을 찾아보다가"... 황제직을 버리고 출가한 까닭이 무엇인지... 그 정도는 알아야만 "도"에 대해서 논할 수 있으며 "생각의 이치와 속성" 정도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어야만 도를 논하거나 도에 대한 담소를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도를 깨닫는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했던 "노자" 그리고 그것을 찾기 위해서 황제직을 버렸던 "순치황제"와 "전철에서 또는 길거리에서 "믿으면 천국, 불신이면 지옥"이라며 하루종일 떠들고 다니는 사람들과의 차이는 무엇일까?

물론, 예수를 비롯하여 석가, 노자... 등을 우상으로 숭배하는 모든 집단들이 이와 다르지 않지만... 

 

그들 중에 과연 스스로 끊임없이 만족하여 평온하다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는가를 묻는 것이다. 

아마도, 차라리, 어느 집단에 철저하게 세뇌당하지만, 세뇌당한줄도 모른체 갑작스럽게 다가온 죽음앞에서 "나는 기쁘다"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는 과연 행복한 사람일까? 불행한 사람일까? 

 

다른 사람들이, 뭇 사람들이 비웃더라도... 그것이 세뇌일지라도 자신의 삶이 기쁨이라면... 상관 없는 일일까?  

 

우주여행을 하는 시대이니... 현 세상에 "도"의 이치, 생각의 속성과 이치에 대한 설명을 이해하지 못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도, 진리"란 앞서 설명한바와 같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영원불변, 영구불멸인 "참된 이치"라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에게 "참된 이치, 거짓이 없는 말"이란 있을 수 없다. 

언어 자체가 상대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올바른 도의 이치를 모르는 사람들에 의해서 세상은 더욱더 치열한 전쟁터가 되어가는 것이다. 

무엇이 성공이며, 무엇이 실패인가? 

성공한 사람들이 대통령이거나 또는 경제 재벌이거나, 또는 유명 연예인들일 것이라고 단정짓지만... 그들의 삶이라는 것에서 과연 행복하거나, 자유롭거나, 평온함을 느낄 여유가 있기는 하겠는가? 

 

아득한 옛날부터 부귀영화를 모두 버리고 "도"를 찾아 나섯던 사람들은 도를 깨달은 인물들의 비천해 보이는 삶에 대해서 모르는 바 아니었다. "보잘것 없는 모습의 장자"에 놀란 "공자"의 모습이 그러하며... 거렁뱅이의 모습인 "달마"의 말을 듣고 출가했던 순치황제의 사례가 그러하지만... 그들 또한 도를 구하지 못하였으되, 그들의 삶은 예전의 삶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평화로웠을 것이다. 

 

도를 공부하는 길이 그러하다는 뜻이다. 

결코 채워질 수 없는 욕망의 노예로 비참하게 살다가 죽어야 할 것인가? 

채워도 채워도 채워질 수 없는 마음에 속아서 살다가 갑자기 다가오는 죽음 앞에서 한탄할 것인가? 

아니면... 

그것이 대체 무엇이기에, 예로부터 그것을 찾는 사람들은 기꺼이 목숨까지 버릴 각오로 그것을 찾고자 하였는가에 대해서 이해라도 하고 살아간다면 어떠하겠는가? 

 

왜, 진리의 말은 수천년 세월이 지나도 변함없이 올바른 말일 수 있는가? 

그렇다.

인간의 본성, 자성, 본질이 그것이기 때문이다. 

영원불멸, 불생불멸, 우주의 창조자.... 그것이 그대의 순수의식이기 때문이다. 

 

도를 구하는 일.

진리와 하나가 되는 일...

더 이상 알아야 할 것이 없으며, 세상사 모르는 것이 있을 수 없는 앎으로써의 여여한 즐거움... .

도를 구하는 일이 현 시대에서는 인연이 아니며, 우연이 아니다. 

그져 "생각의 이치와 속성"에 대해서 이해하고, 체험으로 일념의 뜻에 대해서 분명히 알때, 비로소 그 길이 보인다는 뜻이다. 

 

도, 진리를 구하는 일... 

석가의 걸식, 예수의 초라한 외투, 노자와 장자의 묶여진 신발... 그들의 삶. 

비천해 보이는 그들의 삶이 천국이며, 욕망에 찌든 에고의 삶, 욕망의 노예가 되어 죽을 때까지 투쟁해야만 하는 삶에 대해서 지옥이라고 했던 인물이 바로 어떤 에고들의 우상인 "예수"이다. 

 

정도라고 말한다면 정도가 아니다. 

서로가, 자신의 앎만이 정도라고 우기기 때문이다. 

정도라면 왜, 정도인지... 그 원인이 밝혀져야만 하지 않겠는가? 

 

생로병사의 고통. 그 고통의 원인을 찾는 길을 알리는 것이다. 

그대의 나라는 생각.... 그것이 고통의 원인이다. 

생각의 이치와 속성에 대한 이해, 그리고 일념의 경험이 그것을 증명해 줄 것이며... 그때 스스로 그것이 올바른 길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명백하게 알게 될 것이다.

 

네 마음안에 하나님이 있으며, 네 마음 안에 부처가 있다고 하였으니...

 

진리. 오직 그것이 너희를 자유하게 할 것이니. 

 

http://cafe.daum.net/husimwon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