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 강진구 기자·유소정 인턴기자 | 입력 2016.06.28. 14:50
 
[경향신문] ‘알파고’ 열풍이 한참인 지금, 한국의 화두는 제 4차 산업혁명이다. 지난1월, 다보스 포럼에서 클라우스 슈럽 박사가 인공지능의 발달이 이끌고 올 혁명적인 산업구조의 변화를 예고한 후, 한국 사회는 기대보다는 우려를 표했다. 일자리의 대부분을 인공지능과 로봇이 대체하게 될 것이라는 걱정 때문이다. 시티뱅크와 옥스포드 대학에서 발표한 연구자료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이 보유하고 있는 일자리중 평균 57%가 멸종할 위기에 처해 있다고 경고해 충격을 안겨주기도 했다. 심지어 제 2차 러다이트 운동 예측까지 나오기 시작하며, 사람과 경쟁하기도 벅찬 청년들은 졸지에 ‘기계와의 싸움’을 시작해야 할 판이다.

이런 전망과 우려를 배경으로 서울시는 지난 20일 은평구 청년 허브에서 청년일자리포럼 ‘4차 산업혁명, 미래일자리 재앙과 탄생 사이- 청년 내-일의 길을 묻다’를 개최했다. 1부에는 정재승 KAIST교수가 인공지능 시대가 가져올 인재상의 변화를 이야기하고 2부에는 청년패널 세명이 합세해 제 4차 산업혁명을 앞두고 청년들이 가지는 불안과 대안방안에 관해 이야기했다.

서울시가 6월20일 은평구 청년허브에서 개최한  포럼 ‘청년  내일의 길을 묻다’에 참석하기 위해  등록절차를 밟고 있는 청년들
서울시가 6월20일 은평구 청년허브에서 개최한 포럼 ‘청년 내일의 길을 묻다’에 참석하기 위해 등록절차를 밟고 있는 청년들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사회상>

정 교수는 “기본적으로 미래사회의 모든 사람들은 프리랜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포럼을 시작했다. 청년들이 흔히 꿈꾸는 ‘평생직장’ 대신 프리랜서를 미래상으로 제시한 것이다. 이는 미래사회는 순수하게 자기가 만들어내는 사회적 가치가 경제적 활동의 기초가 될 것이라는 진단에 기반한다.

정 교수는 ‘어떻게 좋은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 내는 사람이 될 것인가’를 진지한 화두로 제시했다. ‘스펙 쌓기’만을 강조하는 사회의 모습과는 다소 다른 제안이다. 그는 “사회가 요구하는 가치를 이해하고, 그 중 ‘자신만이 생성할 수 있는 가치‘를 생각해내는 것이 앞으로 청년들 고민의 핵심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1부 순서에서 강연을 하는 정재승 한국과학기술원( KAIST)교수
1부 순서에서 강연을 하는 정재승 한국과학기술원( KAIST)교수

정 교수는 미래의 사회원들이 직면할 제 4차 산업혁명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오프라인에서 추출된 빅데이터를 인공지능이 관찰 및 해석을 해, 맞춤형 예측서비스가 가능해진다는 것이 정 교수가 말하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이다. 책을 주문하기도 전에 포장이 완료되어있는 세상, 막히지 않는 길로 네비게이션이 안내해주는 세상이 찾아오는 것이다.

동시에 최근 영국의 두 학자는 연산과 정보 처리를 기본으로 하는 7만여개의 직업이 기계로 대체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해 제 4차 산업혁명이 몰고 올 어두운 단면을 예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 교수는 이러한 입장이 “지나치게 기술결정적인 사고관”이라고 지적하며 “기술이 세상에 등장하기 위해서는 기술적으로 가능할 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 그 기술이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했다. 노동력을 기계로 대체하는 과정에서, 기술적인 요인만큼이나 해당 사회의 욕구가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기술들은 사회적 양상을 바꾸고 있으며, 이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그 예시로 실리콘 밸리에서 최근에 공개된 ‘햄버거 만드는 로봇’을 들었다.

“젊은이들이 미래를 위해 준비하는 기간동안 생계형 알바를 뛰잖아요. 그런데 이제 이런 로 스킬 잡(low skill job)들이 사라지는 거에요. 이럴 때 인간은 어떻게 생을 꾸려나가야 하는가. 이런 시기를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가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할 문제인거죠.”

정 교수는 ‘사회적 합의’ 를 강조하면서도 “안타깝게도 한국 사회에서는 이것을 기대하기 힘들다”고 덧붙였다. 한국은 기업이 이윤을 위해서 노동력을 기계로 대체하는 비율이 가장 높은 ‘테크노피아’ 국가로써, ‘돈’ 이외에 사회적 합의가 들어설 공간이 매우 협소하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변화하는 사회상에 대해서 ‘사회적 합의’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변화하는 사회상에 대해서 ‘사회적 합의’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기계와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이런 사회에서 살아가는 한국의 청년들은 기계와 경쟁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정 교수는 “우선 로봇이 못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제시한다. 로봇이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들을 만들어 자신의 사회적 가치를 높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청년들이 받아온 교육들은 그들이 가야할 방향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한다. 정 교수는 우리 교육 시스템이 로봇이 얼마든지 인간을 뛰어넘을 수 있는 언어, 논리적 추론, 연산 등, 좌뇌 중추의 영역만을 중시한다고 비판한다. 그는 “대한민국의 교육은 인공지능으로 쉽게 대체될 수 있는 어른들을 양산하는 교육”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그는 제 4차 혁명 시대에 필요로 하는 인재상이란 ‘뇌 전체를 골고루 사용할 줄 아는 인간’이며, 앞으로의 교육 방향도 그 쪽에 맞추어 져야 한다고 말했다.

“굉장히 이과적이고, 그런데 문과적이고, 그런데 예술적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인간에게 진짜 필요한게 뭔가를 고민하고,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를 깊이 고민해서 세상에 필요한 아이디어를 내고, 그 아이디어를 스스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거죠. 그 결과물이 세상 사람들이 모두 가지고 싶도록 디자인되어야 하는 거에요.”

정 교수는 “제 4차 산업혁명이 도래했을 때, 전뇌적 인재가 되어야만 살아남을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정 교수는 “제 4차 산업혁명이 도래했을 때, 전뇌적 인재가 되어야만 살아남을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청년들 공통의 정서는 ‘불안’>

하지만 포럼 참석자들은 정 교수의 강의에 공감하는 한편 자신들이 과연 전뇌적 인간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오늘 공작소 신지예 대표는 “나는 이과적으로도 문과적으로도 예술 쪽으로도 미래적 인재가 될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강의를 들으며 그렇다면 어떻게 대안을 찾아가야 할까, 이런 고민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청년 유니온 김민수 위원장 역시 정 교수에게 물었다. 그는 “취업하려면 봉사시간을 따야 하고, 그 다음에는 예술도 할줄 알아야 하고, 코딩도 할줄 알아야 한다”며 “기업이 요구하는 인재상이 전뇌적이라는 것은 오히려 청년들을 불안하게 만든다”고 했다.

청중들이 패널에게 던진 질문들에서 묻어나는 핵심적인 정서 역시 ‘불안’이었다. 남들과 비슷한 길을 걸어가야만 안정감을 느끼기에 쉬운 한국 사회에서, 자신만의 길을 걸어갈때 느끼는 불안감을 어떻게 감당하면 좋으냐는 것이다.

정 교수는 불안함에도 불구하고 딛고 일어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것이 행복의 근원이에요. 불안에 잠식되지 않고, 자기가 재능이 있고 하고 싶은 일을 해 가는 것이 최선인 것 같아요. 재능이 있고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여러분 삶에 증표가 있는 거에요.”

청년일자리 포럼에 참석해 강의와 토론을 경청하며  메모를 하는 청년들.
청년일자리 포럼에 참석해 강의와 토론을 경청하며 메모를 하는 청년들.

<‘인간이 결정하고 로봇이 행동한다’…결국 중요한 것은 시민의 견제>

그러나 긍정적인 마음가짐만으로 미래의 불안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기술변화의 속도와 방향을 인간이 통제하기 위한 사회적 필요성’에 대한 합의는 그래서 중요할 수 밖에 없다. 김민수 위원장은 “사회적 필요를 궁극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누구”냐는 질문을 던졌다. 결국 ‘사회적필요성’에 대한 결정 역시 권력의 문제가 개입할 수 밖에 없는 것 아니냐는 질문이었다. 정 교수 역시 ‘중립적인 과학기술’은 신화에 불과하다는 입장에 공감을 표시했다. 그는 “흔한 믿음과 달리, 과학기술은 중립적이 아니다. 기술은 자본을 대어주는 사람의 욕구에 맞추어 발전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는 시민단체가 자본과 권력을 견제해, 궁극적으로 과학이 인간의 존엄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갈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 교수는 한국 사회에서 이런 시민단체의 활약이 제대로 발휘될 수 있을지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사회 안전망조차 전혀 구축되지 않은 상태에서 고용의 유연화를 부추기고, 노조가 강성이라고 말을 하지만 실제로 정규직 노조의 비율이 다른 나라의 5분의 1밖에 안됩니다. 정보가 잘 공유가 된 상태에서 논의가 되어야 하는데, 언론은 일방적인 의견만 대변합니다. 이런 사회에서는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기대할 수 없죠.”

청년 일자리 포럼에 참석한 패널들. 왼쪽 두번째부터 정재승 교수, 조정훈 카페 50 대표, 신지예 오늘 공작소 대표, 김민수 청년유니온 위원장.
청년 일자리 포럼에 참석한 패널들. 왼쪽 두번째부터 정재승 교수, 조정훈 카페 50 대표, 신지예 오늘 공작소 대표, 김민수 청년유니온 위원장.

하지만 신지예 대표는 역설적으로 정 교수의 말에서 ‘희망을 가졌다’고 말한다. 자신을 비롯한 많은 젊은이들이 편협한 한국 사회를 변혁할 방안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 대표는 “알파고에 대응해 개개인이 강해지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 내부에 ‘최소의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고민이 필요하다”며, “청년세대가 이런 고민을 통해서 제대로 대안을 만들어 내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경쟁에서 이기는 것만이 대안이 아니라, 불필요한 경쟁에 휘말리지 않고도 인간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기반을 다져나가는 것도 알파고 시대의 답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신 대표는 ‘고용임금’ 때문이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에 할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부흥주택이라는 공간에 어르신들을 만들면서 녹취를 하고 인생을 받아적어 연대기를 만드는 일을 하는 청년들이 있었어요. 무급이고, 지원도 받지 않는데, ‘아 인간이기에 할 수 있는 일을 하는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고용임금이 아니라 다른 일을 해서, 인간이기에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고 있다는 전제에 기본 소득을 받을 수 있다는 전제가 받쳐진다면 알파고 시대에 우리의 안전망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어요.”

카페 50의 조정훈 대표 역시 “일자리의 감소의 문제가 아니라 소득이 감소하면 인간적인 삶을 영위할 수 없게 되는 것이 핵심적인 문제”라고 말한다. 그는 “어떻게 한정된 수입으로도 인간적인 삶을 영위해 나갈 수 있을지 생각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결국 포럼의 참석자들은 제 4차혁명을 앞둔 지금, 막연한 불안감에 휩쓸리기 보다 ‘인간의 본연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 교수는 이 질문들에 하나의 정답’이란 없다고 강조한다.

“제가 정답이라고 말하면 그건 더 이상 답이 아니게 되는 거죠. 답을 얻으려고 하기 보다는, (인간의 본연에 대해) 의미 있는 질문들을 던지는 게 더 중요합니다.”

 

<강진구 기자·유소정 인턴기자 kangj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