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도단(言語刀斷)이라는 말의 의미는 깊고도 깊다.
우리말로는 언어로 단정짓지 말라는 말이며, 큰 의미가 있다면 도(깨달음)에 대해서 이렇다거나 저렇다거나 또는 다르다거나의 어떤 분별도 용납될 수 없다는 뜻이다.
소위 궁극에 이른 인물들, 즉 예수, 석가모니, 노자 등의 인물들에 대해서 사상으로 분류하거나, 그는 이렇다, 그는 저렇다, 그는 이랬을 것이다, 그는 저랬을 것이다.... 아마 그럴 것이다, 라는 등 관념(기억된 생각)으로써 그들을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들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헛된 것이라는 말이며, 그들에 대해 의심이 일어난다면, 아니.... 어떤 의심이 일어나더라도 "그 의심을 일으키는 나는 누구인가" 라는 방법으로 자신의 나를 찾아나가야만 한다는 뜻이다.
인간류의 모든 고통과 괴로움, 슬픔, 부정에서 비롯된 모든 의심은 자신이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의구심이 그 원인이기 때문이다.
깨달음. 그것은 그런 모든 의심에서 해방되기에 더 이상 알아야 할 것이 없다.
언어도단.
일상생활에서도 그러하다.
단정짓지 말라는 말...
이름짓지 말라는 말이며,
규정하지 말라는 말이며,
이것이 옳다, 저것이 옳다라고 논쟁하지 말라는 말이며,
나는 이럴 것이다, 그는 저럴 것이다, 라고 상상하지 말라는 말이다.
항상 자신의 나를 바라보라는 말이며 오직 일념의 끈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인간은 자신의 마음을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없기 때문에 타인의 마음을 움직이고 싶어하며, 타인의 마음을 움직이게 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 하는 것이다.
자신의 나를 모르면서 타인의 나를 알려는 망상에 의해서 고통을 겪는줄도 모르는 것이니 무한한 것이 인간의 어리석음이라고 아니할 수 없지 않겠는가?
인류 모두에 대해서 어리석다 할 수 없으니, 이에 대해서 진아무지라고 해 두자.
인간은 자신도 모르는 자신의 생각의 속성에 이끌려 살아갈 수 밖에 없다.
그렇다 보니 가장 두렵고, 가장 비참하고, 가장 비통하면서도 회한만을 남겨야만 하는 죽음을 향해 달려나가야만 하는 것이니 참으로 어리석은 것이 인간의 삶이다.
그렇기에 꿈에서 깨어나라고 하는 것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자유와 평화 행복을 갈망한다.
편안함을 소망하지만 무엇이 편안함인지에 대해서는 정의할 수 없다.
육체가 행위하지 않음이 편안함인가?
육체가 행위함이 편안함인가?
육체가 행위하지 않음이 편안하지 않은 것인가?
육체가 행위함이 편안하지 않은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적당히 행위함이 편안함인가?
그렇다면 적당히 행위함은 어떤 행위인가?
왜, 분명한 해답이 없는가?
인간은 왜, 끊임없이 평화로울 수 없는 것인가?
왜, 인생에는 해답이 있을 수 없단 말인가?
그렇다.
내가(육체=나) 행위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육체=나) 행위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육체=나) 행위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육체=나) 행위한다고 생각하는 한 인간에게 자유와 평화란 있을 수 없다는 뜻이다.
그대는 그대가 나(육체=나)라고 아는 것들에 대해서 분명히 정의할 수 있는가?
그대가 지성인이라면...
그대는 그대가 자신의 나에 대해서 분명히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 숙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곰곰히 생각하다 보면...
기억된 생각들에 대해서 나(육체=나)라고 알고 있다는 사실을.......
지금 바쁘게 달려 나가는 곳.
그곳이 어디인가?
가는 세월은 잡을 수 없고, 오는 세월이 두려운가?
무엇이 두려운가?
두려운 것. 그것의 실체가 무엇인가?
두려워 하지 말라.
지금 이 순간, 순간, 순간....... 자신의 나를 지켜보라.
그대의 참 나. 그것이 모든 것의 기원이다.
그것이 우주의 기원이다.
그것이 신의 기원이다.
진리. 그것이 너희를 자유하게 할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