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순수의식의 평화, 의심과 부정의 어리석음

일념법진원 2011. 7. 22. 07:45

사람은 누구나 나이가 들면서 철없던 시절의 즐거움, 평화로움을 그리워한다. 

왜, 어린시절을 동경하게 되는지 분명하지 않지만 아련히 떠오르는 그런 시절이 가장 행복했었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는 뜻이다.

어린시절에 대한 그리움이란... 마음이 형성되기 이전의 시기로써 근심과 걱정이 없었던 시절이기 때문이다. 결과로 보면 근심과 걱정이 없었던 시절... 순수의식이 지식에 의해서 가리워지기 이전이며 순수의식의 평화로움에 대한 경험(기억된 생각)을 기억하며 그리워하는 것이다. 

 

어린시절 말, 말, 말... 낱말을 배우기 이전에는 분별함이 없었기에 어떤 의구심도 일어날 수 없었다. 낱말을 배우면서... 의심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며 모든 것이 의심이지만, 어떤 의심에 대해서도 분명한 해답이 없다보니 타인으로부터 듣고 배웠던 모든 앎이 의심이 된 것이며 분명한 해답이 없는 의심의 끝은 부정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사람들은 자신의 대부분의 언행들이 부정적이라는 사실조차 인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살아오는 동안에 보고 들어서 아는 앎... 지식을 포험한 모든 앎이 분명하지 않은 앎임에 대해서도 인식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자신의 앎이 올바른 앎이 아님에 대해서 인식조차 할 수 없기때문에 끊임없이 대상을 의심하는 것이며 올바르지 못한 앎(무지)이 드러남에 대한 두려움을 감추기 위해서 또 다른 새로운 지식을 갈구하게 되며 더 많은 그릇된 앎으로 자신의 나를 무장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 결과물들이 자신도 모르게 마음깊이 저장된 두려움이며, 그에 따른 근심과 걱정이며 대상과의 경쟁, 투쟁으로 왜곡된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가 고통과 괴로움의 원인이라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니 무한한 어리석음이라고 한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모든 생각이 의심이며 부정적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이해하기 조차 쉽지 않은 듯 하다. 스스로 일어나는 모든 생각들은 자신의 관념에 바탕을 둔 것이며, 관념에 의해서 일어나는 모든 생각들은 대상에 대한 의심이며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끊임없는 의심과 부정적인 생각으로 행복, 자유, 평화를 소망하고 있으니 말이지만 말도 안되는 말들을 당연스럽다는듯이 하고 있다. 

인간들 모두가.......  

 

진정한 자유와 평화를 소망한다면... 자신의 앎이 진정으로 올바른 앎인지, 분명히 알아야만 한다. 

인류의 발전이라는 것들... 지식들... 철학 과학 의학 종교학... 등의 언어와 문자로 표현될 수 있는 모든 앎은 또 다른 의심이며 의심의 연속이다.

 

지금 그대가 알고 있는 어떤 앎도 올바른 앎이 없다는 뜻이다.

지식, 앎, 알음알이가 많으면 많은 만큼 의심이 많아진다는 뜻이다.

인생의 결론은 죽음이다. 지금 죽음을 향해서 바쁘게 달려나가고 있지만 항상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근심과 걱정, 초조와 긴장감에서 해방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렇게 살다가 죽음 앞에 다다르게 되니... 그것이 어떠한 삶이든 인생의 결론은 고통과 회한만이 남겨질 수밖에 없질 않겠는가?

 

그렇다면 무엇이 참다운 앎이겠는가? 

참다운 앎이란 세상 어느것에 대해서도 의심할 것도 없으며 부정할 것도 없는 앎이다. 

세상 어떤 것에도 부정하지 아니하며 수용할 수 있는 앎이다. 

어린아이의 순수의식... 수용하는 앎이 참다운 앎이라는 뜻이며 "육체가 나"라고 아는 인간. 경험에 바탕을 둔 사고방식으로써는 이해하거나 해석할 수 없는 참다운 앎이다. 

 

경험에 바탕을 둔 사고방식(관념)으로써는 이해할 수 없기에 해석이 불가능한 말들을 했던 인물들의 전해져오는 말들이 그것을 증거할 뿐이다. 

성경과 불경을 비롯한 경전들이 그들을 증거하는 말들이지만 이미 우상숭배사상으로 왜곡되어 전해지면서 그 길, 그 방법은 더욱더 가리워져 있다.  

 

그들이 인류에게 전하고자 했던 가르침의 핵심이 "일념"이다.  

"비밀의 언어"라는 책과 이곳의 모든 글들이 그들 가르침에 바탕을 두고 있으니....... 

진정한 자유를 원한다면 그 길을 가면 된다.

그대의 참나를 찾는 일이다.

순수의식으로 회귀하기 위한 길이다.

 

인간의 본성이 그것이다. 

그것이라는 말로 표현하는 이유는 그것은 상대적일 수밖에 없는 언어로는 표현될 수 없다는 뜻이다. 

그것이라는 말의 다른 표현이 있다면 "언어 이전의 소식"이라고 하였다. 

"아무것도 없는 것의 완전함"이라고 하였다.

 

세상에 언어 없이 존재(표현)할 수 있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러니 그것에 대해서 상상할 수 없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서 역설했던 인물들의 가르침이 "불이일원론"으로 표현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나를 분명히 알고 습관을 고쳐나가는 일이다. 

자유와 평화 행복을 원한다면 오직 그 길밖엔 없기 때문이다. 

 

일념, 일념, 일념을 깨치지 못했다면 그대의 모든 앎은 올바른 앎이 아니다. 

인간의 모든 생각은 그 바탕이 의심이기 때문에 이런 글마져도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대에게 자유와 평화 행복은 없다. 

 

의심에서 비롯된 부정의 결과물들이 "욕망"으로 왜곡되어 나타났음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종국에는 욕망의 노예로써 존재하다가 죽음앞에 다가서게 될 것은 자명한 일이 아니겠는가. 

 

올바른 길이 오직 하나 있다. 

그것에 대해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했던 인물이 도를 깨달은 예수이며, 본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라고 했던 인물이 석가모니이다. 그리고 그들의 유언이 "진리에 의존하라"는 말이다. 

 

결론이다. 

진리의 길에 대한 설명이다.

지금 의심과 부정적인 습관을 수용과 긍정으로 바꾸어 나가라는 것이다. 

일념, 일념, 일념이 가장 빠른 길이지만... 욕망은 또 다른 고통을 초래할 뿐이니 수용과 긍정하는 습관을 바탕으로하여 일념공부를 지어나가야만 자유와 평화에 다가설 수 있다. 

 

세상이 변해가는 것이 아니며, 세월이 가는 것이 아니다. 

순수의식의 어린아이에게는 세상도 우주도 있는 것이 아니다. 

끊임없이 변해가는 것은 오직 그대의 마음이다. 

마음이 어디에 있는가? 하고 찾다보면 마음은 실체가 없기에 사라진다. 

 

그대의 생각, 의식, 잠재의식, 영혼 이전에 그것이 있다. 

오직 일념만이 그곳으로 데려다 줄 수 있다.  

그대의 참나. 

그것이 모든 것의 기원이다. 

진리. 그것이 너희를 자유하게 할 것이니.   

 

 http://cafe.daum.net/husimwon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