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바라밀과 윤회, 육도윤회등에 대해서는 앞의 설명을 통해서 관념으로나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또한 일념을 깨쳐야만 분명히 아는 앎일 뿐, 이해로써는 또한 오해일 뿐이다. 여기서 말하는 일념의 깨우침은 옛 선사들에 의해서 쓰여진 십우도, 심우도의 4단계인 견성을 뜻하는 말이다. 견성이라는 말은 자신의 성품을 본다는 뜻이며, 자신의 성품을 본다는 말은 자신의 마음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분명히 이해한다는 뜻이다. 일념이 더욱 더 깊어짐에 따라 마음이 생각에 불과한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분명히 알아차리게 되며... 이때 비로소 "석가모니의 가르침"들 모두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다.
팔정도라는 말이나, 육바라밀 따위의 말들은 석가모니의 말도 아니며, 석가모니가 수행과정에서 염두에 두었던 말도 아니다. 석가모니의 수행과저은 참으로 지리하여 6년여의 고행으로 알려져 있다. 그 덕분?에 수많은 사람들, 특히 티벳 등지에서는 고행을 통해여 깨달음을 갈구하는 사람들이 많으며... 그들의 행위야말로 극심한 고통일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행위에 대해서 분명히 알지 못한다.
인간의 모든 행위는 자신이 생각한다고 아는 생각 이전의 의식으로 표현되거나 잠재의식으로 표현되기도 하는 관념에 의해서 이루어지지만... 인간의 관념으로써는 그것에 대해서 이해할 수 없다. 오직 일념을 깨우칠때에 비로소... 깜짝 놀라게 될 것이다.
석가모니의 가르침이라고 왜곡된 경전을 통해서 공부하는 사람들은 무수히도 많다. 이 나라에도 몇천만명이 불교신자라 하니... 세계적으로 본다면 얼마나 많은 숫자일지는 모르겠으되... 이 나라의 승려들과 추종자들의 수가 얼마나 많은지는 모르겠으나, 그들 중 어느 한 사람도 "마음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분명하게 정의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지. 석가모니의 가르침이 왜곡된 탓이다.
그대가 불교인이며, 불교라는 종교가 석가모니의 올바른 가르침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단언할 수 있다면... 그대는 그대의 앎이 올바른 앎인지, 아닌지에 대해서 확인해 볼 수 있다. 지극히 간단한 질문 한마디면 알아차릴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
세계의 모든 승려들에게, 또는 그대가 존경할 만한 큰 스님?들에게, 또는 세계의 스승이라는 인물들에게... 아니면, 이 나라에서 글깨나 쓴다는 지식층들에게, 아니 아니... 가능하다면 대한불교라는 굴레에 속해 있으면서 서로가 부처라고 시비하는 자들이거나... 세계를 상대로 포교하는 사람? 들, 승려들에게 질문해 보면 알 수 있다는 말이다.
무슨 질문을 해보라는 것일까?
불가에서는 누구나 아는 말이다.
석가모니가 보리수 나무 아래에서 깨달음 이후 처음 했던 말이다.
"별은 별이 아니다"... 라는 말.
석가모니 부처님은 왜, 달은 달이 아니다, 라고 하신 것입니까? 라고 물어보라는 말이다.
석가모니의 수행은 위빠사나 따위를 하지도 않았으며 팔정도 따위의 행위를 하지도 않았다는 뜻이며, 여러가지 방법들을 찾다가... 그 여러가지 방법 중의 하나가 "호흡의 관찰"이며 행위의 관찰이라는 것이다. 그 방법 또한 옳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왜, 그런 행위를 해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하는 행위의 결과들이 현시대까지도 "별은 별이 아니다"라고 말을 한 뜻에 대해서 이해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별은 별이 아니다"라는 말의 뜻에 대해서는 12연기법의 설명에 "名色"으로 표기되어 있다.
명색이라는 말의 뜻과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 말변사이며 말변사와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 말로 지어진세상이라는 말이며, 또한 이와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 성경의 첫구절인 "태초의 말씀"이라는 말, 말, 말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화두라는 말은 무슨 뜻이겠는가?
앞서 설명된 바 있겠지만... 태초의 말씀이라는 말과 같은 뜻으로써 본다면 언어 이전의 세상을 뜻하는 말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면 화두는 언어 이전의 소식에 다다르기 위한 한구절의 말이라는 뜻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반야심경이 석가모니의 말 중에서 가장 요약된 경이라고 한다면, 그곳에 분명히 설명되는 말이 있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 라는 말이 신비한 주문이라는 말이다. 왜 신비한 주문이라고 설명하였을까?
이정도의 설명에서 아하, 그렇구나. 라고 아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는 일념을 깨친 인물이거나 "깨달음의 실체를 밝힌다, 또는 비밀의 언어"라는 책을 조금 이해한 사람일 것이다.
참으로 신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모든 종교들이 그러하지만... 석가모니의 제자라고 상을 내는 사람들은 무수히도 많은데, 그들은 명색의 뜻이 무엇인지에 대해서조차 이해할 수 없다보니... "별은 별이 아니다" 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보니..."오직 모를 뿐", 이라거나... "모르는 마음이 참마음"이라는 말로 알음알이 상만 키우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생각의 이치를 이해하여 "일념"을 깨친 인물들에게는 "별은 별이 아니다" 라는 말에 대해서 의심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니... 참으로 신비한 일이 아니겠는가?
이런 말들... "별은 별이 아니다" 라는 말의 뜻에 대해서 분명히 아는 앎, 이치... 지식으로써는 말도 안되는 소리이니... 에고의 윤회되는 생각의 영역을 초월한 앎이기에 참다운 앎이다. 지식을 초월한 앎이기에 지혜라는 말로 표현된 것이다.
아마도 질문과 답변란에 "견성, 견성오도, 확철대오" 등의 말에 대해서 질문을 한다면 어김없이 수많은 답변들이 쏟아질 것이다. 그런데... 그들의 알음알이 또한 무지에서 비롯된 쓸모없는 것들이다. 그곳에 "별은 별이 아니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질문해 보더라도... 여전히 수많은 답변들이 있겠지. 허헛
책에는 이런 사례에 대해서 까지 분명히 설명되어 있으며, 그에 대한 비유설명을 통해서 지식. 관념으로나마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깊이 잠들었을때, 생각이 휴식에 들었을때에 육체는 행위할 수 없듯이... 생각 없는 행위는 있을 수 없다는 뜻이다. 오직 자신의 마음, 자신의 생각... 그것의 근원에 조금 접근했을때 그것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이며, 일념을 깨침에서부터 참으로 잘 사는 길에 들어선다는 뜻이다.
낙타가 바늘 구멍에 들어가는 길이 보인다는 뜻이다.
그대의 참나. 그것이 부처이며 성령이다.
부처가 되기 전까지는 만족해 하지 말라는 말이다.
진리. 오직 그것이 너희를 자유하게 할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