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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 - 보편타당한 앎 [4]

일념법진원 2011. 8. 10. 09:17

이해라는 말과 지식이라는 말 그리고 상식이라는 말이 있다.

소위 "도"를 알기위해 세상을 온통 뒤지고 다니는 사람들은 그것이 세상 어딘가엔 분명히 있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이 자신의 내면, 자신의 마음속에 있다고는 믿지 못하는 까닭이겠지.

자신이 자신의 마음을 알 수 없다보니...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의구심에서 벗어날 수 없다보니 자신 이외의 다른 곳에서 찾으려할 수밖에 없는것 같다.

 

소위 도, 진리를 구하려는 사람들이거나 그것에 대한 오해로 인하여 종교에 종속된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자신의 내면 깊이 있다고 믿지 못한 어리석음의 소치라는 말이다.

그런데, 그들 스스로는 석가모니를 비롯한 종교의 교조들에 대해서 거의 다 안다고 생각해버린다는 것이다.

 

견성, 견성오도, 대오, 확철대오... 등의 깨달음이라는 말과 같은 뜻의 다른 표현들은 무수히도 많다. 그리고 그들은 그런 말들에 대해서 이해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일념"이 무엇인지 이해조차 불가능한 것 같다. "일념즉시 무량겁, 무량원겁 즉일념" 등, 불경에는 "일념"에 대한 말이 무수히도 많지만....... 

 

깨달음. 그것은 알고나면 그져 "보편타당한 앎"이다, 라고 말했던 인물이 석가모니이다. 

그 보편타당한 앎이라는 말이 참으로 신비스러우며 미묘하지만... 

 

카페 글들을 통해서 "일념"을 깨친 인물들에게는 일념이라는 말이 그져 보편타당한 앎이라는 뜻이다. 그 보편다당한 앎의 결과가 무엇인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몇 가지 사례를 들어본다. 

 

물론 일념을 깨친 후부터 유상삼매의 평온함을 느낄수 있을 때까지의 과정에서이다. 

일념을 깨우침만이 일념이라는 낱말에 대해서 분명히 이해하는 것이라는 전재하에서이다. 

 

일념의 깨침에 의해 아는 보편타당한 앎이라는 것은... 

 

1. 내생각이라고 알던 내생각이 결코 내생각일 수만은 없다는 앎에 대한 당연함이며, 이에 대해서 보편타당한 앎이라고 한 것이며. 

 

2. 내마음이라고 알던 내마음이 "기억된 생각"에 불과하다는 것에 대한 앎이 또한 보편타당한 앎이라는 뜻이다. . 

 

3. 일념을 이해함 이후 조금 더 깊어지면서 아는 앎이 "말변사"에 대한 이해이며, 이 또한 보편타당한 앎일 뿐 특별한 것이 아닌데... 이 말에 대한 사례를 들자면 수차례 반복되는 말이지만. 석가모니가 깨달음 과 동시에 이치를 밝히는 첫마디인 "별은 별이 아니다" 라는 말이 당연한 말이며 보편타당한 앎이라는 뜻이다. 

 

세상에 부처 제자라는 사람들은 무수히도 많지만 위의 말들 가운데... 단 한구절도 이해할 수 없으니...

 

일념... 일념이 깊어지고 깊어지면서 점차로 더욱 더 분명한 앎이 드러나는데... 그러한 앎은 도의 경지가 깊어지면 깊어지는 만큼 명색의 동일시에 대한 이치에 밝아진다는 뜻이다. 이것이다, 저것이다라고 단정지을 수 없으나... 별은 별이 아니다, 라는 말은 곧 지옥은 지옥이 아니다, 사과는 사과가 아니다, 천국은 천국이 아니다, 정도는 정도가 아니다,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하늘나라는 하늘나라가 아니다, 좋은 것은 좋은 것이 아니다... 등으로써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언어" "말"로만 존재하는 것일 뿐, 실체가 아님을 깨달아 나가게 된다는 뜻이며... 궁극에는 육체가 나라는 생각일 뿐, 실재하는 것이 아님을 알아차림이라고 설명하였다. 이에 대해서 무아, 무위, 무위자연... 등의 수많은 말이 창조된 것이라고 안다면 올바른 앎이다. 

 

그렇다면, 일념의 힘, 위력은 어느정도일까? 

흔히 불가에서 말하는 주력은 주의 집중력을 뜻하는 말이라고 하였으며... 이는 한구절에 온 정신을 집중함을 뜻하는 말이며, 이는 또한 진언의 암송과도 다르지 않으며, 불경의 독송 또한 "일념만년"을 위한 방편이라고 안다면 올바른 앎이라고 하였으니...

왜, "나는 누구인가" 라는 구절만이 궁극에 이르기 위한 화두인지에 대해서는 앞서 충분히 설명하였으니 참고할 일이다. 

 

일념의 위력은 소위 정신통일, 정신집중과 같이, 세상만사 어떤 일에 대해서도 일념을 깨우칠 정도의 정신 집중력, 그리고 유상삼매를 즐길 만큼의 정신집중력은 세상에서 욕망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쓰여진다면 엄청난 위력을 발휘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정신일도 하사불성??? 이라는 말이 그것을 뜻하는 말이지만...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이겠는가? 

일념이 깊어지면 깊어지는 만큼 지혜가 드러나는데... 불경에는 이에 대해서 자등명, 법등명이라는 말로 표현되기도 하는데, 그것은 세상만물과 인간의 창조의 원인에 대해서 분면히 안다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소위, 언어학자이거나 정신분석학자이거나, 정신이나 육체의 질병의 치유를 목적으로 하는 의학이거나, 인류학이거나, 철학이거나... 등의 인간이 갈망하는, 학문에 바탕을 둔 모든 문제들에 대해서 불을 보듯이 분명하게 그 이치를 안다는 것이다. 

 

인간이 일념을 깨치고... 일념이 더욱 더 깊어지는 과정에서는 가끔씩 그들의 조언만 듣는다고 하더라도 인간세상의 모든 학문에 있어서 최고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런 일들이 참으로 부질없는 짓이라고 아니... 휴식을 취할 뿐이겠지.

 

인간의 모든 행위는 마음의 평화를 위함이다. 

하지만 마음. 그것은 채워도 채워도 모두 채워질 수 없으며, 버려도 버려도 모두 버려질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도 없으며, 올바르게 아는 사람도 없는 것 같다. 

 

석가모니와 예수를 비롯하여 불이일원론을 역설했던 모든이들이 그 이치를 밝혔지만... 에고의 관념, 기억된 생각, 지식나부랭이로써는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이지만, 옳지 않은 말은 아니기 때문에 수천년이 지나도록 신비스러움으로 남겨질 수밖에 없다. 시공간을 초월하여 진리로 남겨지는 이유가 그러하다는 뜻이다. 

 

그대 자신이 신이다. 

그대의 뜻애로 태어난 것이 아니듯, 그대의 뜻대로 살아질 수도 없으며 그대의 뜻대로 죽어질 수도 없다.

왜, 그런 일들이 일어나겠는가? 

왜, 생로병사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허우적일 수밖에 없겠는가? 

자신이 자신의 마음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대의 마음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는가? 

자신의 나를 찾는 유일 무이한 길이 곧 "일념"을 깨우침이다. 

그때 비로소 인간이 인간의 지식을 초월한 참다운 앎이 드러날 것이며, 불이일원론을 역설한 인물들의 말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다. 

 

알고나면 너무나도 당연하여 보편타당한 앎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우이독경일 뿐이니... 

 

그대의 참나. 

그것이 우주의 기원이며 인간의 기원이다. 

그것이 언어의 기원이다. 

진리. 그것이 너희를 자유하게 할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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