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들이 신비주의이며 어떤 사람들이 현실주의일까?
굳이 신비주의자가 있다면 '도를 깨달은' 사람들이며, 그들의 말이 신비스럽다는 말이겠지만, 사실상 진짜 신비스러운 것은 끊임없이 자신을 주장하는 인간이 '내마음'이라고 당연시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마음에 의해서 고통을 겪는다는 것이다.
그들 즉 석가모니, 에수, 노자와 장자... 등의 불이일원론을 역설했던 인물들에 대해서 신비주의자라고 한다면, 그들의 관점에서 본다면 인간들의 자기주장이 신비주의이며 신비스럽기만 하다는 뜻이다.
그들은 스스로 신비주의자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에 그들이 신비주의자라면 신비스러운 말을 하겠지만... 그들의 말은 납득할 수 없겠지만 인간들에게는 스스로 행할 수 없으되 너무나도 당연한 말들이며, 인간의 관념이라고 할지라도 옳지 않은 말이라고 감히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지식으로써는 그들의 논리에 접근조차 할 수 없다.
그들의 앎에는 분명한 근거가 있기 때문이며, 인간들의 앎에는 분명한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인간과 신비주의자들과의 앎의 차이라고나 할까?
지식과 지식을 초월한 지식, 즉 통념과 통찰의 차이라고나 할까?
몇일 전... 수원과 화원과의 대화 중에, '그렇다네, 모든 이치가 그러하다네' 라는 말 끝에 수원이 했던 말이 있는데... 스승님 말씀은 모든 말들이 사필귀정이 아니라 '사필귀도'라고 하여 웃었는데... 인간의 앎이라는 지식이라는 것이 오직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수단이거나 이기주의적일 수밖에 없는 자신을 주장하기 위한 도구일 뿐, 진정한 자유와 평화 행복을 위한 것은 결코 아니라는 뜻이다.
궁극적으로 인간이 추구하는 것은 자유와 평화, 그리고 행복한 삶이겠지만... 세상 어느 누구도 '나는 행복하여 평화로우며 자유하다'는 사람은 있을 수 없는데... 인간은, 인간의 지식, 앎으로써는 그 원인이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한다는 것이 문제이다.
인간의 어리석음에 대해서 우주보다 더 무한하다고 하는 까닭이 무엇일까?
너무나도 당연한 이치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인데, 그 당연한 이치에 대해서 한가지만 사례를 들자면...
인간이 역사를 기록한 이래 지금 이순간 까지도 욕망을 채움으로 하여 '나는 행복하거나 평화롭거나 자유를 누린다'는 사람이 단 한사람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인간세상의 모든 가르침이라는 것들... 서로가 욕망을 채우라는 것들이다. 인간과 인간이 서로서로가 싸워고 이겨서 승리해야 한다는 가르침이라는 것이다. 더, 더, 더 잘해야만 된다는 가르침들... 더 더 더 잘해서 누가 누구와 싸워서 이겨야 한다는 말일까?
너 자신을 이겨서 승리한 자가 되라는 가르침이 곧 인류 성인들의 가르침이다.
아이들에게는 싸우면 안된다고 가르치는데...
인간들끼리는 서로가 사랑하라고 가르치는데...
그러면서도 인간세샹의 모든 가르침에 따른 삶들이 논쟁이며 경쟁이며, 투쟁이며 전쟁이라는 명백한 사실에 대해서조차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인간들의 인생이라는 것이니... 해답이 있을수 없다는 말이다.
물론 그렇게 세뇌당한 탓이니...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으며 누구를 탓할 수도 없겠지만, 좀더 자세히 볼 수 있다면,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이 아니다. 물론 인간의 관념으로써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말들이 대부분인데, 예를 들자면 '예수의 말과 같이' '네 안에 하나님이 있다'는 말이거나 또는 '본래무일물'이라거나 또는 인간세상에 대해서 '꿈과 같은 환상의 세계'라는 말들이 그러하다는 뜻이다.
사실상 올바르게 볼 수 있다면 신비주의자가 곧 현실주의자이며 인간세상에 존재하는 사람들이 신비주의자들이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근거도 없으며 근원도 없는 것들에 대해서 '있다' '없다'라는 분별속에서 논쟁, 투쟁, 전쟁을 일삼기 때문이다.
자신의 마음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타인의 마음을 유린하려하기 때문이다.
왜?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겠지.
남들은 죽든말든 오직 자신의 이기주의적일 수밖에 없는 욕망을 위해서... 그러니 종교나부랭이들과 유사집단들에 대해서 무식하고 어리석은 자들이라고 아니할 수 있겠는가?
인간들의 삶이 참으로 무모하다.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지 아니하고, 시기하지 아니하고... 오직 사랑하는 마음으로만 살아갈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인생이라는 것이 한낱 꿈에 불과한 것들인데, 그렇기 때문에 일장춘몽이니, 허무한 나그네니... 하면서도 죽을때까지 투쟁을 멈출 수 없으니... 모모하기 짝이 없으며 우주보다 더 무한한 어리석음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귀신, 영혼, 지옥, 하나님, 부처님을 주장하는 자들...
인간세상에서 가장 큰 죄를 짓는자들이 있다면 그것들이라는 말이다. 그것들이 주장하는 진리... 그들 신비주의자들의 가르침이 아니기 때문이다.
죄책감이나 책임감 따위에 연연하지 말라는 말이다.
마음 가는데로 살아가라는 말일 수도 있다.
하지만 오해해서는 아니된다.
방종하고 방탕하라는 뜻이 아니기 때문이며 우상을 숭배하라는 말은 더더욱 아니기 때문이다.
'육체가 나'라는 집착에서 비롯된 욕망의 늪에서 벗어나라는 가르침이라는 뜻이다.
인간은 누구나 (그것이 무엇인지 명백하지는 않지만) 무엇인가에 대해서 책임져야 할 '나'가 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자세히 관찰해 보면, 자세히... 꼼꼼히 생각해 보면, 그것이 실체가 없다고 알 수 있다. 책임져야 할 것이 없다는 뜻이다.
다만 그렇게 세뇌당한 탓일 뿐.......
이런 말들... 관념으로써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이다.
하지만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인간의 모든 앎은 그릇된 앎인데... 그 원인이 있다면 '나 아닌 것'에 대해서 '나'라고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데... 사실은 자신의 앎이 올바른 앎이 아님을 깨달아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그들 소위 신비주의자 또는 도를 깨달은 자들이 인간들에게 전하고자 했던 가르침이 일념법이며 일념윤회법이라는 것이다.
그나마 신비주의자 또는 도를 깨달은 자들 중에서 오직 예수와 석가모니만이 그 길을 올바르게 전했는데... 인간의 어리석음에 의해서 우상숭배사상으로 왜곡된 것이라고 했다.
신비주의자. 그들의 앎에 대해서 '통찰'이라는 말로 표현되기도 하는데... 일념법의 정점 즉 일념만년으로 표현된 일념의 무념처에서 깨달아 아는 앎에 대한 표현이 '통찰'이라는 말과 유사한 말인데...
앞서 설명한바와 같이 '마음이 어디에 있는가'라는 한구절, 한생각을 지속함으로써 마음의 실체를 깨달아 알 수 있다고 했는데... 이런 사실에 대해 현실에서 분명히 느낄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설명하려는 것이다.
인간이 추구하는 발전이라는 것이 결국은 '언어'의 발전일 뿐, 인간의 마음의 평화와는 상관 없는 것들이라고 했는데, 그 이유는 아득한 옛날이나 우주를 여행하는 현시대나 인간의 고통의 무게는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행복하여 평화로운 사람이 없으니... 발전이라는 것, 자연을 파괴할 뿐 인간의 자유와 평화를 위한 행위들일 수 없다는 말이다.
발전이 지속되면서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 또한 발전되는 만큼 늘어갈 수밖에 없는데... 자연과 멀어지는 만큼이다.
인간... 본래 자연으로부터 자연과 같이... 원인없이 나타나고 사라지는 것일 뿐, 실재하는 것들이 아니라는 말이다.
한구절에 대해서 명심하고 마감하려는데...
전의 글에서 '마음이 어디에 있는가'라는 구절에 대해서 깊이깊이 몰입하라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말인데, 두통이 일어날 때에 실험해 볼 수 있는 방법이며 지혜있는자만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일상에서 머리에 통증이 일어나곤 하는데... 이에 대해서 두통, 편두통... 등의 이름들이 무수히도 많은 것 같다.
그런 상태일때... 머리가 아플때, 머리가 아프다고 느낄때, 머리가 아프다고 생각될 때.
'머리가 아프다고 생각하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구절... 그 한구절에 대해서 열번이나... 더 나아가 백번을 반복해서 몰입하여 생각하다 보면 통증이 사라진다.
스스로 흐르는 망상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생각의 작용의 한 단면이다.
세상사 모든 일들... 우주, 신... 생각의 작용에서 비롯된 환상물질들이기 때문이다.
본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대의 나, 그릇된 나가 고통의 원인이었다는 사실에 대해서 깨달아 아는 앎이 참다운 앎이다.
일념법, 일념윤회법이 진리이다.
진리. 오직 그것이 너희를 자유하게 할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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