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물론(濟物論) 제 5 장
장자의 제물론 제 5 장의 요점은 인생이 왜 무상한 것이며, 인간들의 삶이 왜 다툼과 경쟁, 투쟁일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설명이다. 본래 언어라는 것은 실체가 없는 것이라는 말에 대한 설명과 함께 이해와 오해는 같은 뜻일 뿐, 인간들의 모든 앎이 허구라는 사실에 대한 비유이다.
'인생무상'이라는 말이 있는데... 인생에는 형상이 없다는 뜻이다.
'정신세계' 라는 말이 있지만 인간의 관념인 경험에 바탕을 둔 사고방식으로써는 '정신'이라는 말과 '마음'이라는 말 그리고 '자존심'이라는 말 등의 유사한 말들에 대해서 조차 분명히 정의 할 수 없다. 하지만 자존심에서 비롯된 자기 주장들은 아득한 옛날이나 문명이 발전되었다는 현 시대나 다를 바 없기 때문에 삶 자체가 다툼이며 경쟁이며, 투쟁이니... 어찌 평화로운 삶일 수 있겠는가?
부디 장자의 제물론에 대한 해석을 통해서 자신의 모든 앎이 분별일 뿐, 가치 있는 앎, 검증된 앎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인정하고 인지할 수 있을때, 비로소 진정한 행복과 평화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성인들의 가르침이다.
'도'를 공부함으로써 '내가 진정 올바른 길을 가고 있으며, '도'와 함께 하는 삶이 가치 있는 삶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을때, 도와 함께 하는 삶으로써 항상 미소 지을 수 있을 것이며 항상 긍정하라는 말의 뜻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게 될때, 그때 비로소 '도'에 대해서, 무위자연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며, 무위자연의 자유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우며 신의 뜻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겠지.
-----------------------------------------------------------------------------------
제물론 제 5 장의 내용들을 통해서 장자의 말을 들어보자.
夫道未始有封(부도미시유봉) : 무릇 도는 한계가 없는 것이고
言未始有常(언미시유상) : 말에는 정해진 내용이 없는 것이다.
爲是而有畛也(위시이유진야) : 자기주장을 함으로써 다툼이 생기는 법이다.
--------------------------------------------------------------
- 도는 한계가 없는 것인데, 도를 아는 사람에 대해서 '이를 지' 자와 '사람 인'자로써 '지인'이라고 하는데... 이는 세상 천지만물이 '본래 없는 것'이며 '본래 없는 것'을 있게 하는 '어떤 것'에 대해서 '도' 라고 이름지은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아는 사람에 대해서 '지인'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으며... 인간은 그들에 대해서 '성인'이라거나 '성자' 또는 '도통군자' 라고 이름 지었는데... 신, 하나님, 영혼, 성령... 등의 모든 이름들 또한 자신의 마음을 모르는 사람들에 의해서 지어진 이름들일 뿐, 형상이 없으며 실체가 없다는 말이 '말에는 정해진 내용이 없다'는 말이다.
사실상 말, 언어를 자세히 관찰해 볼 수 있다면, 어쩌면 이해???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사실상 언어라는 것이 '도'에는 한계가 없다는 말과 같이 시작도 없으며 끝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언어에 속을 수밖에 없으며... 언어를 사실로 여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옛 말에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 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어떤 근거나 원인이 있기 때문에 소문이 난다는 말이며, 근거나 작은 원인도 없다면 말이, 소문이 날리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사실은 언어라는 것 자체가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는 것'과 같이 근원, 원인, 근본이 없는 것이다.
도를 깨달았다는 말도 말이며, 도를 깨닫지 못했다는 말도 말이다.
고통이 있다는 말도 말이며, 고통이 없다는 말도 말이며, 고통을 해결할 수 있다는 말도 말이며 고통이 본래 없다는 말도 말이다. 그대가 산다는 말도 말이며, 그대가 죽었다는 말도 말이며, 세상이 있다는 말도 말이며, 세상이 없다는 말도 말이기 때문이다.
말이 있다는 말도 말이며, 말이 없다는 말 또한 말이니... 말만 무성할 뿐, 말에는 진실이 없다는 말이다. 말에는 진실이 있다는 말도 말이며, 말에는 진실이 없다는 말도 말이니... 말 속에서 말을 찾기 위해서 헤매다가 죽는 것이 인간이며 인생이니... 자신의 나를 모른다면 살아갈 가치도 없다는 소크라테스의 말과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다.
언어는 이렇듯 상대적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상대적인 모든 것들은 주체가 사라지거나 대상이 사라지거나... 둘 중의 하나가 사라지게 되면 동시에 모두 사라지기 때문에 '아무것도 없는 것'이며, 이 '아무것도 없는 것'에 대해서 '본래 무일물'이라는 말로 표현한 것이다. 석가모니의 '공사상'이라는 말이나, 노자의 무, 장자의 무... '무위자연 사상' 등의 말은 모두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라는 말이다.
'나와 너', '나와 세상', '나와 우주'... 위의 설명과 같이 '나'가 있기 때문에 '대상'들이 있는 것일뿐, 그릇된 나가 사라지게 되면 대상들 또한 본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라지는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알게 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만, 어떤 방법으로 '나'를 사라지게 할 수 있을까?
그 방법에 대해서는 이미 수차례 자세히 설명되었으니... 생략한다. 책에도 카페에도 이치와 방법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기주장을 함으로써 다툼이 생긴다는 말... 위의 설명을 통해서 이해가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설령 일념법 수행을 실천할 수 없는 중근기나 하근기라고 하더라도 이런 말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다면 평화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데... 文明, 즉 문자에 밝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런 말조차 납득할 수 없는 것일까?
살아온 날들... 그리고 지금 그대가 하는 모든 말들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라는 뜻이다.
과연 그대가 하는 말들이 진정으로 옳은 말인가? 누구를 위해서 하는 말인가? 에 대해서 생각해 보라는 뜻이다.
請言其畛(청언기진) : 한 번 논쟁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有左有右有倫有義(유좌유우유륜유의) : 왼쪽이 있으면 오른쪽이 있고, 倫이 있으면 義가 있고,
有分有辯有競有爭(유분유변유경유쟁) : 분별이 있으면 변론이 있고, 다툼이 있으면 경쟁이 있다.
此之謂八德(차지위팔덕) : 이를 <팔덕>이라 일컫는다.
六合之外(육합지외) : 육합 바깥을
聖人存而不論(성인존이불론) : 성인은 그대로 놓아둘 뿐 말하지 않고,
六合之內(육합지내) : 육합 안에 대해서도
聖人論而不議(성인론이불의) : 대강만 말할 뿐 자세하게 논의하지 않는다.
-------------------------------------------------------------
- 인간들의 삶 자체가 다툼이다. 그리고 다툼의 원인은 말, 말, 말이다. 그리고 말이라는 것은 본래 없는 것들에 대해서 '어떤 것'이 '있다'는 가정하에 만들어진 것이다.
석가모니의 말이라는 연기법에 대한 비유의 말이... 왼쪽이 있기 때문에 오른 쪽이 있으며, 언어가 있기 때문에 뜻이 생겼다는 말이며, 그런 분별에 의해서 변론이 있게 된 것이며, 다툼이 있기 때문에 경쟁이 생겼다는 말이다.
성인은 이런 다툼에 대해서 변론하지 아니하며, 다만 위의 설명과 같이 그 이치만 말할 뿐, 자세히 논의하지 않는다는 말인데... 이는 인간들의 모든 다툼이나 경쟁, 투쟁하는 모습들이 못내 안타깝기는 하지만... 인간들의 삶 자체가 '본래 없는 것들에 대해서 있다고 착각'하여 서로 다투는 것들이기 때문에 간섭하거나 시시비비를 가릴만한 가치 조차 없다는 말이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이... 서로가 옳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다툼이 생겨지는 것이지만, 서로가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며 싸우는 사람들은 오직 자신의 경험에 대해서 옳다고 주장하는 것일 뿐, 대상의 관점에서 볼 수 없기 때문에 평화로울 수 없는 것이며, 오직 자신의 관점에 부합하기를 바라기 때문에 행복을 누릴 수도 없는 것이다.
허헛. 아마도 인간들 모두는 '자존심'이라는 말에 대해서 당연하게 여기듯이 자기가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여기는 것이 아닐까?
인간세상에서 가장 용기 있는 자가 있다면... 자신의 그릇된 나를 버리는 자라는 뜻이다. 자신의 마음을 모르는 자가 어찌 대상의 마음을 알 수 있겠는가만은...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 는 말과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니.
春秋經世先王之志(춘추경세선왕지지) : <춘추>로 세상을 다스리는 것이 선왕의 뜻이었으나,
聖人議而不辯(성인의이불변) : 성인은 이에 대해 명분과 품절만 밝힐 뿐 시비곡절을 따지지는 않는다.
故分也者(고분야자) : 그러므로 나눌 경우
有不分也(유불분야) : 나눌 수 없는 게 있고
辯也者(변야자) : 분별하더라도
有不辯也(유불변야) : 분별할 수 없는 게 있다.
曰何也(왈하야) : 왜 그럴까?
聖人懷之(성인회지) : 성인은 만유를 품어 주지만
衆人辯之以相示也(중인변지이상시야) : 세상 사람들은 분별함으로써 자기 소견을 과시하기 때문이다.
--------------------------------------------
세상 사람들은 분별된 앎으로써 자기주장을 하지만, 그것은 소견이며 편견일 뿐, 올바른 앎이 아니기 때문에 소견이며 편견일 수밖에 없다는 말이며, 성인은 세상 모두를 품지만 시시비비를 가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자신의 모든 말이, 자신이 주장하는 모든 말들이 소견이며 편견이라고 알기 때문에 항상 미소로써 남들을 대할 수 있다면... 많이 아는 거룩한 인물일 것이다.
故曰辯也者(고왈변야자) : 따라서 "변론하는 사람은
有不見也(유불견야) : 보지 못하는 게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大道不稱(부대도불칭) : 무릇 大道는 헤아릴 수 없고,
大辯不言(대변불언) : 참된 변론은 말하지 않고,
大仁不仁(대인불인) : 지극한 인은 어질지 않고,
大廉不嗛(대렴불겸) : 참다운 청렴은 가득 차지 않고,
大勇不忮(대용불기) : 진정한 용기는 해를 입히지 않는다.
-----------------------------------------------
진정한 용기란 무엇일까?
소크라테스가 젊은이들에게 물었다는 말인데... 과연 한 나라에 용기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다른 나라에서도 용감한 사람일까?
진정한 용기란... 어느 누구에게도 해를 입히지 않는 행위라는 말로써 선과 악이, 옳음과 그른 것이 본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살에 대해서 아는 사람만이 행할 수 있다는 말이며, 그때 비로소 자유와 평화를 누릴 수 있다는 말이다.
道昭而不道(도소이불도) : 도를 말로 분명하게 드러내면 도가 아니고,
言辯而不及(언변이불급) : 말이 시비 다툼에 쓰이면 도에 미치지 못하게 되며
仁常而不周(인상이불주) : 仁이 어딘가에 고착되면 아무것도 아루지 못하고,
廉淸而不信(렴청이불신) : 청렴해 맑기만 하면 미덥지 못하고,
勇忮而不成(용기이불성) : 남을 해치는 용기는 참되지 못하다.
五者无棄而幾向方矣(오자무기이기향방의) : 이 다섯 가지는 원래 참된 實德이었으나 점차 한쪽에 치우쳐 모나게 되었다.
故知止其所不知(고지지기소불지) : 그러므로 알지 못하는 데에 그칠 줄 알면
至矣(지의) : 지극한 것이다.
孰知不言之辯(숙지불언지변) : 어느 누가 말없는 변론과
不道之道(부도지도) : 도가 아닌 도를 아는가
若有能知(약유능지) : 만일 이를 알면
此之謂天府(차지위천부) : <천부>라 이름하리라.
注焉而不滿(주언이불만) : 아무리 물을 거기에 퍼부어도 가득차지 않고
酌焉而不竭(작언이불갈) : 마구 퍼내도 마르지 않는다.
而不知其所由來(이부지기소유래) : 그러나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으므로
此之謂葆光(차지위보광) : 이를 보광이라 일컫는다.
-------------------------------------------
언어로 표현될 수 있는 도는 참다운 도가 아니라는 노자의 말과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며, 알지 못하는 데에 그칠 줄 알면 지극한 것이라는 말은 '앎을 모를 줄 아는 앎이 참다운 앎이라는 말과 같은 뜻으로써 '도'는 언어 이전의 소식이라는 말이며 본래는 언어도 없었다는 뜻이다.
이런 말에 대해서 '오직 모를 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오직 모를 뿐'이라는 상을 냄으로써 자신을 드러내는 중생들과 같이 인간들의 앎이란 그토록 모모하기만 하다는 뜻이다. '내가 모른다는 상' '내가 안다는 상'... 모두 경험의 오류에서 비롯된 헛된 망상이라는 그릇된 앎이라는 말이다.
'도는 도가 아닌 도를 아는 사람'에 대해서 천부라 이름짓겠다는 말... 하늘이 내린 사람이라는 말이니 말은 말이만 말도 안되는 말이다. 하지만 인간이지만 '나는 사람도 아니다' 라고 말할 수 있으니... 그를 어찌 상상할 수 있겠는가만은.
'도는 도가 아니다' 라는 말과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 있다면 석가모니의 깨달음을 증거하는 말인 '별은 별이 아니다' 라는 말이다. 이 말은 또한 '나는 나가 아니다' 라는 말과 같은 뜻이며, '사람은 사람이 아니다' 라는 말과 같은 뜻으로써 '나는 사람도 아니다' 라는 말이다.
불경의 '아상 인상 수자상 중생상'이면 여래를 볼 수 없다는 말과 같은 뜻으로써 언어 자체가 본래 있는 것이 아닌 것이며, 언어로 표현되는 모든 것들이 본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나는 사람도 아니다' 라는 말에 이어서 이름하여 '불타'니라... 라는 말은 또한 부처는 부처가 아니라는 말과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다.
문명이라는 학문은 이에 대해서 부정철학이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하지만... 어디 그런가?
언어를 부정하는 것도 아니며 세상을 부정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인간들의 문명이라는 앎이 올바른 앎이 아니라 분별에서 비롯된 시시비비일 뿐, 그릇된 편견이라는 뜻이다.
문명의 발전... 만약에 문명이 인간들에게 자유와 평화로운 삶을 살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면... 어찌 수천년 살아온 인간들의 삶이 이토록 비참하고 초라할 수 있겠는가?
겉모습은 화려해 보이지만... 서로가 경쟁, 투쟁하는 전쟁을 치르는 것과 다르지 않으니, 안타까울 밖에...
끊임없는 자기 주장과 다툼, 경쟁으로 일관하면서도 경쟁을 당연하게 여기는 삶 속에서 자유와 평평하게 화합해야 한다는 말, 말, 말들... 옳은 말이란 말인가?
전쟁을 통해서, 경쟁을 통해서 평화를, 행복을, 자유를 찾겠다는 어리석음... 우주보다 더 무한한 어리석음이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는가?
지금 그대의 주장들... 자기를 주장하는 이유 또한 경쟁을 당연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자기가 옳다는 주장, 자기들만이 진리라는 주장, 주장, 주장들... 행복과 자유, 평화를 위해서라면 가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무한한 어리석음이라는 말이니...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다음편에 제물론 5 - 1 장으로 계속하자.
故昔者堯問於舜曰(고석자요문어순왈) : 옛날에 요가 순에게 물었다.
我欲伐宗膾胥敖(아욕벌종회서오) : "나는 종, 회, 서오 세 나라를 정벌하려 하네.
南面而不釋然(남면이불석연) : 그러나 임금 자리에 있으면서도 어쩐지 마음이 확연하지 않으니
其故何也(기고하야) : 왜 그런 것일까?"
舜曰(순왈) : 순이 말했다.
夫三子者(부삼자자) : "세 나라는
猶存乎蓬艾之間(유존호봉애지간) : 아직 쑥 풀이 무성한 미개한 부족 국가입니다.
若不釋然何哉(약불석연하재) : 마음이 꺼림칙한 것은 어쩐 일이십니까?
昔者十日竝出(석자십일병출) : 옛적에 10개의 태양이 일시에
萬物皆照(만물개조) : 만물을 샅샅이 비춘 일이 있습니다.
而況德之進乎日者乎(이황덕지진호일자호) : 하물며 마음의 덕이 태양보다 밝다면 무슨 꺼리낌이 있겠습니까?"
齧缺問乎王倪曰(설결문호왕예왈) : 설결이 왕예에게 물었다.
子知物之所同是乎(자지물지소동시호) : "선생님은 만물이 하나임을 아십니까?"
曰吾惡乎知之(왈오악호지지) : 이르기를, "내가 어찌 알겠나."
子知子之所不知邪(자지자지소부지사) : "선생님은 자신이 알지 못하는 바가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曰吾惡乎知之(왈오악호지지) : 이르기를, "내 어찌 알겠는가."
然則物无知邪(연칙물무지사) : "그렇다면 아는 게 없으십니까?"
曰吾惡乎知之(왈오악호지지) : 이르기를, "어허, 어찌 알겠나.
雖然嘗試言之(수연상시언지) : 비록 그렇기는 하지만 어디 한번 말해 보기로 하지.
庸詎知吾所謂知之非不知邪(용거지오소위지지비부지사) : 안다고 하는 게 알지 못하는 것이 아닌 줄 어찌 알겠는가!
庸詎知吾所謂不知之非知邪(용거지오소위부지지비지사) : 또한 내가 모른다는 것이 아는 게 아닌 줄은 어떻게 알겠나!
且吾嘗試問乎汝(차오상시문호여) : 이제 자네에게 한번 물어보겠네.
民濕寢則腰疾偏死(민습침칙요질편사) : 사람은 습한 데서 자면 허리 병으로 반신불수가 되어 죽게 되지만
鰌然乎哉(추연호재) : 미꾸라지도 그렇던가?
木處則惴慄恂懼(목처칙췌률순구) : 사람은 나무 위에 있을 경우 벌벌 떨지만
猨猴然乎哉(원후연호재) : 원숭이는 무서워하던가?
三者孰知正處(삼자숙지정처) : 셋 가운데 어느 쪽이 바른 거처를 알고 있는 건가?
民食芻豢(민식추환) : 사람은 초식 동물의 고기를 먹고
麋鹿食薦(미록식천) : 순록은 풀을 뜯고
蝍蛆甘帶(즉저감대) : 지네는 뱀을 맛있게 먹고
鴟鴉嗜鼠(치아기서) : 올빼미는 쥐를 즐겨 먹지.
四者孰知正味(사자숙지정미) : 넷 가운데 어느 누가 올바르게 맛을 아는 것일까?
猨猵狙以爲雌(원편저이위자) : 원숭이는 편저를 짝으로 하고
麋與鹿交(미여록교) : 고라니는 사슴과 교배하고
鰌與魚游(추여어유) : 미꾸라지는 물고기와 함께 놀지.
毛嬙西施(모장서시) : 모장과 서희는
人之所美也(인지소미야) : 세상 사람들이 미녀라고 칭송하지만,
魚見之深入(어견지심입) : 그들을 보면 물고기는 물속 깊이 달아나고
鳥見之高飛(조견지고비) : 새는 하늘 높이 날아오르며
麋鹿見之決驟(미록견지결취) : 순록과 사슴은 결사적으로 달아나지.
四者孰知天下之正色哉(사자숙지천하지정색재) : 넷 가운데 누가 천하의 미인을 아는 것일까?
自我觀之(자아관지) : 내가 보건대
仁義之端(인의지단) : 사람들이 인의仁義와
是非之塗(시비지도) : 시비의 길을
樊然殽亂(번연효란) : 어지럽게 주장하는데
吾惡能知其辯(오오능지기변) : 나라고 어찌 그것들을 가려낼 수 있겠나!
齧缺曰(설결왈) : 설결이 물었다.
子不知利害(자부지리해) : "선생님은 이해를 모르시는데
則至人固不知利害乎(칙지인고부지리해호) : 지인은 참으로 이해를 모르는 것입니까?'
王倪曰(왕예왈) : 왕예가 대답했다.
至人神矣(지인신의) : "至人은 심묘한 사람이라네.
大澤焚而不能熱(대택분이불능열) : 커다란 연못을 다 태워도 그를 태울 수는 없으며,
河漢冱而不能寒(하한호이불능한) : 황하와 한수를 꽁꽁 얼려도 그를 얼릴 수는 없다네.
疾雷破山而不能傷(질뢰파산이불능상) : 사나운 우뢰가 산을 부수더라도 상하지 않고
飄風振海而不能驚(표풍진해이불능경) : 태풍이 파도를 몰아쳐도 그는 눈 하나 꿈쩍하지 않지.
若然者(약연자) : 이런 인물은
乘雲氣(승운기) : 구름을 타고
騎日月(기일월) : 해와 달을 부리면서
而遊乎四海之內(이유호사해지내) : 四海 바깥에서 노닌다네.
死生無變於己(사생무변어기) : 생사로도 그를 움직일 수 없거늘
而況利害之端乎(이황리해지단호) : 어찌 이해 따위에 꿈쩍이나 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