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종사 제 3 - 6 편...
仲尼曰(중니왈) : 중니는 말했다
同則無好也(동칙무호야) : 도와 하나가 되면 좋다 하는 것이 없어지고
化則無常也(화칙무상야) : 변하면 한 군데 집착하지 않게 된다
而果其賢乎(이과기현호) : 너는 정말 훌륭하구나
丘也請從而後也(구야청종이후야) : 나도 네 뒤를 다라야겠다
------------------------------------------------
세간에 '생사일여' '몽중일여' 라는 말에 대해서 안다는 상을 내는 머리깎은 중생들이 천국과 지옥에 대해서 당연하게 여기는 까닭에 천도제를 지내기도 하며, 육도윤회를 주장하기도 하며, 하늘나라를 주장하기도 하며 재생이나 환생을 주장함에 대해서 당연시 하는데... 이런 말들에 이끌려 다니던 사람들이 일념을 깨닫고 나면 웃어버릴 수밖에 없는데 그 까닭에 대해서 일념의 뜻을 모르는 사람들은 어떤 말로 설명하더라도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데, 그 이유는 일념수행을 통해서 스스로 깨달아 알아야만 올바른 앎일 수 있기 때문이다.
'도와 하나되면' 좋다하는 것이 없어지고...' 또한 '한군데 집착하지 않게된다' 라고 하는데.
'도'를 알게되면... 좋은 것이 없어지기 때문에 '집착'이 사라진다는 뜻이다.
여기에서 '좋은 것이 없어진다'는 말은... '좋은 것이 없어진다'는 말과 상대적인 '나쁜 것이 없어진다'는 말이 상대적이기 때문에 사실상 '좋은 것과 나쁜 것'이라는 분별심이 본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사라진다는 뜻이다.
이 말은 세상 만물에 대한 욕망과 집착이 사라진다는 뜻으로써 불교라는 종교의 '해탈'이라는 말과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며 예수의 말이 왜곡되어 전해지는 '구원'이라는 말과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다.
예수를 믿는 자들의 '오직 악에서 구원... ' 이라는 말이 있는데, 선과 악이 본래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달아 아는 앎을 이르는 말이며, 석가모니의 가르침이라는 반야심경에 나오는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 무노사 등의 상대적인 언어가 사실이 아니라는 말과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라고 설명한바 있다.
'본래무일물' 이라는 말에 대한 비유법 중의 일부이다.
천지만물이 본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서 지적 이해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말에 대해서 설명한 바 있는데... 지적으로 이해하는 것과 일념을 깨달아 아는 것과의 차이가 곧 올바른 앎과 분별된 앎, 그릇된 앎의 차이이다.
하늘과 땅이 본래 있는 것이 아닌데, 인간의 관념으로써는 하늘과 땅이 '없는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하지만 인간을 제외한 짐승이나 기타 생명있는 모든 것들은 '하늘이나 땅이 있다'는 앎이 없다고 설명한바 있듯이...삶과 죽음 또한 오직 인간들의 분별된 앎에 의한 고통과 괴로움일 뿐, 실체가 없는 것이며 실제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서 설명하는 말이 위의 '좋은 것이 없어진다' 라는 말의 본래의 뜻이다.
그대의 마음을 자세히 관찰해 보라.
희로애락과 생로병사의 끊임없는 반복 순환됨이 인간의... 아니 그대의 마음의 작용이기 때문이다. 만약에 실제하는 것이라면 어찌하여 그토록 잠시도 흔들림 없이 고요한 마음을 유지할 수 없을 수 있겠는가? 끊임없이 좋은 것도 없으며, 끊임없이 나쁜 것도 없는 것이 마음에 대해서 '좋은 것이 없다'는 말로 표현되었다는 말이다.
작은 바람결에도 끊임없이 흔들리는 갈대와 같은 마음에 대해서 '나' 라고 주장하는 인간들의 아귀다툼이 곧 지옥과 같다는 말이 왜곡되면서 죽은 다음에 천국이 있다고 주장하는 어리석은 지식, 앎이라는 것들... 그대는 어찌 생각하는가?
지금 이 글을 보고 있는 그대의 마음은 흔들리는 갈대와 어떻게 다른가?
머리깎은 중생들이 '如如' 라는 말을 인용하는데... '여여' 라는 말은 '같을 여'자로써 '좋은 것과 나쁜 것'이 없는 이치, 즉 '본래무일물'의 이치를 깨달음으로써 삶과 죽음, 천국과 지옥, 고통과 슬픔... 등의 상대적인 언어에 흔들림이 없는 마음을 뜻하는 말이며, 항상 같은 마음상태에 있다는 말이며, 변함없는 마음을 일컷는 말이다.
도를 아는 사람들의 삶이란...
'좋다하는 것이 없어진다' 는 말과 같이 근심걱정, 불평불만이 없는 삶, 가난하지만 부족함이 없는 삶이기 때문에 항상 긍정의 미소를 지니는 사람이며, 그런 마음으로 여여하게 존재하기 때문에, 언제 어느때 갑자기 죽음이 다가오더라도 '나는 기쁘다' 라는 말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마음에 대해서 '여여한 마음'이라는 말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이다.
만약에 그대가 누군가를 좋아하거나 또는 누군가를 위해서 산다면... 그런 올바른 앎으로써 여여해야 한다는 뜻이니...
------------------------------------------------------------------------------------
輿與子桑友(자여여자상우) : 자여와 자상은 벗이었다
而霖雨十日(이림우십일) : 그런데 장마가 열흘이나 계속되었다
子輿曰(자여왈) : 자여가 말했다
子桑殆病矣(자상태병의) : 자상은 아마 병인 났으리라
裏飯而往食之(리반이왕식지) : 밥을 싸 가지고 가서 먹이려 했다
至子桑之門(지자상지문) : 자상의 집 문앞에 이르자
則若歌若哭(칙약가약곡) : 안에서 노래하는 것 같기도 하고 우는 것 같기도 한 목소리로
鼓琴曰(고금왈) : 거문고를 뜯으며 이르기를
父邪(부사) : 아비지일까
母邪(모사) : 어머니일가
天乎(천호) : 하늘일까
人乎(인호) : 사람일까 하고 읊조리고 있었다
有不任其聲而趨擧其詩焉(유불임기성이추거기시언) : 소리를 내는 것도 힘에 겨운 듯 가사를 서둘러 읊조린다
子輿入曰(자여입왈) : 자여는 들어가 물었다
子之歌詩(자지가시) : 자네의 노래는
何故若是(하고약시) : 어찌하여 그런가
曰吾思夫使我至此極者而不得也(왈오사부사아지차극자이불득야) : 자상이 대답하기를, 난 나를 이런 막바지에 몰아 넣은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지만 전혀 알 수가 없네
父母豈欲吾貧哉(부모기욕오빈재) : 부모가 어찌 내가 가난하길 바랐겠나
天無私覆(천무사복) : 하늘은 공평하게 만물을 뒤덮고
地無私載(지무사재) : 땅은 공평하게 만물을 실어준다
天地豈私貧我哉(천지기사빈아재) : 그러니 하늘과 땅이 어찌 나만을 가난하게 하겠나
求其爲之者而不得也(구기위지자이부득야) : 나를 가난하게 만든 것이 무엇인가 하고 애써 생각해 보지만 전혀 알 수가 없어
然而至此極者(연이지차극자) : 그런데도 이런 막바지에 몰린 것은
命也夫(명야부) : 운명이리라
----------------------------------------------------------------------
평등이라는 말과 공평이라는 말이 있는데... 하늘이 그러하고 땅이 그러하듯이 인간의 마음 또한 본래 그러하다는 뜻이다. 하늘과 땅이 본래 있는 것이 아나라 오직 인간의 가공된 마음에 의해서만 있는 것이라는 말이 전제되어 있는 말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지적으로나마, 관념으로나마 이해할 수 있어야만 노자와 장자의 말에 대해서 조금, 아주 조금 알아들을 수 있을 뿐이다.
인간의 관념으로써는 운명이라는 말에 대해서 '낙천주의자' 라는 말로 표현되기도 하며, 하늘의 뜻이라는 말로 표현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운명이리라' 라는 말로 표현된 것이다.
그대는, 아니 인간은 '나 아닌 것'에 대해서 '나'라고 아는 그릇된 앎에서 벗어날 수 없는것과 같이 백천만겁 난조우의 인연이라는 말과 같이 '도'와 인연이 없다면 상대적인 언어에 세뇌됨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인류의 성인이라는 인물들의 말들 또한 올바르게 이해할 수 없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들의 말을 올바르게 알아들을 수 있기 위해서는 오직 '일념법'수행을 통해서 분별심이 잦아들어야 한다는 것과 함께 그들의 말이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에서의 삶을 통해서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에 대한 이야기라는 사실에 대해서 우선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아니 그대는... 그대와 함께 존재하는 사람들의 어떤 말 한마디에 따라서 웃기도 하며 울기도 하며, 기뻐하기도 하며 슬퍼하기도 하는데... 그 까닭은 그대가 그대의 마음을 모르기 때문이며, 동시에 대상의 마음을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대가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알 수 있는 방법도 없으며, 다른 사람의 마음을 바꿀 수 있는 방법 또한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자신이 끊임없이 변해가는 자신의 마음을 모르기 때문이다. 자신의 마음조차 여여할 수 없는데, 하물며 대상의 끊임없이 변해가는 마음을 어찌 여여하게 할 수 있겠는가?
대상에 대한 그대의 마음이 여여할때, 비로소 대상의 마음 또한 여여할 수 있다는 말이며 '너 자신을 알라'는 말과 같아 자신의 나를, 자신의 마음의 실체를 알때, 그때 비로소 대상들의 마음 또한 모두 알 수 있기 때문에 슬픔과 환상이 모두 사라진다는 뜻이며 여여할 수 있다는 뜻이다.
마음의 변화를 넘어서 삶과 죽음의 한계를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 유일한 길이 있다.
인간류가 존재하는 한 영원히 변할 수 없는 방법이기 때문에 진리이며, 진리의 길이며, 새생명의 길이라고 한다.
일념법, 진원법으로 명명한 일념윤회법이 진리의 길이며 진리와 하나되는 유일한 길이다.
진리. 오직 그것이 너희를 자유하게 할 것이니.
- 장자 대종사 제 3 편 - 끝.
다른 글 보러가기 ====>> http://cafe.daum.net/husimw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