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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무엇인가? 14>명상론(暝想論) - 무엇을 명상이라고 하는가? / 명상의 유래와 명상의 올바른 뜻

일념법진원 2014. 1. 30. 09:31

명상. 무엇을 명상이라고 하는가?

 

국어 사전에는 명상이라는 낱말에 대해서 "눈 감고 차분한 마음으로 깊이 생각함. 또는 생각."이라고 설명 되어 있다.

 

한자의 뜻으로 본다면 '어두울 명'자와 '생각할 상'자로써의 '溟想'이다.

생각은 생각인데, 어두운 생각이 명상이라는 말이다.

 

한글사전과 한자의 뜻을 섞어서 표현 한다면 '눈을 감고 차분한 마음으로 어두운 것을 생각 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명상'이라는 말 또한 인간이 무엇인지 모르는 인간들에 의해서 창조된 말이다. 말, 말, 말... 언어는 인간이 무엇인지 모르는 인간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소통의 도구이다. 하지만 모든 말들이 그렇듯이 '명상'이라는 말 또한 그 뜻이 분명치 않다. 사실은 인간이 무엇인지 모르는 인간들의 말들 모두가 그러하다. 인생이라는 말이 있으나 인생이라는 말에 대해서 해답이 없는 이치와 같다. 행복이라는 말이 있지만 절대적인 행복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언어가 상대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인간이 무엇인지 모르는 인간은 언어를 알지만 언어의 기원에 대해서는 아는 바 없다. 그렇기 때문에 말만 무성할 뿐, 인생사, 세상사 모든 일에는 분명한 해답이 없는 것이다. 서로간의 주장만 있을 뿐이기 때문에 말이 많으면 많은 만큼 논란만 가중될 뿐이다.

 

인간이 우주보다 더 어리석을 수밖에 없는 까닭은 언어가 상대적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조차 인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이 행복이나 자유, 평화를 누릴 수 없는 까닭은 행복이라는 말이 불행이라는 말과 상대적이듯이 모든 말들이 상대적인 것들임에도 불구하고 주입된 교육에 의해서 한쪽 면만을 사실로 여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위자연으로 회귀할 수 없다면. 순수의식으로 회귀할 수 없다면 인간에게 자유란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 깨닫는 길 이외에는 자유의지가 없다고 한 것이다. 

 

말, 말, 말은 인간이 무엇인지 모르는 인간들의 창조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무엇인지 모르는 인간들에 의해서 만드어진 말이기 때문에 '마음'이라는 말이 있지만 마음이 무엇인지 아는 인간은 있을 수 없다. 생각이라는 말이 있지만 생각이 무엇인지 모른다. 몸이라는 말이 있지만 몸이 무엇인지 모른다. 아무것도 올바르게 아는 앎이 없다보니 '영혼'이라는 말을 창조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영혼이라는 말 또한 딱히 무엇이라고 정의할 수 없는 말이다. 말만 무성할 뿐이다. 서로가 진리라고 주장하듯이.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어떤 사고방식으로 살아 가거나 어떤 방식으로 죽거나, 인간이 무엇인지 모르는 인간들의 인생에 해답이 없는 것이다. 인생에 해답이 없는 까닭은 인간은 스스로 내가 사람이라고 아는 나 자신에 대해서는 올바른 앎이 겨자씨 만큼도 없기 때문이다. 그대가 태어남을 경험할 수 없듯이 죽음 또한 경험할 수 없다. 하지만 그대는 태어남과 죽음에 대해서 안다고 생각 한다. 올바른 앎이 아니다. 타인들로부터 들어서 아는 앎이기 때문이다. 어린아이 시절에 대해서 기억할 수 없으니...  

 

만약에 인간이 무엇인지 모르는 인간에게 인생에 해답이 있다면, 이 또한 말은 말이지만 말도 안되는 소리이다. 아니 그러한가? 인간이 무엇인지 모르는 인간이기 때문에 인생에 해답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이 인간이기 때문에 인생에 해답이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 아니한가?

 

 

'명상'이라는 낱말에서 '명'이라는 글자의 뜻이 '어두울 명'자이며 '상'이라는 글자의 뜻은 '생각할 상'자이다. 어두울 명자로 쓰여진 까닭은 인간의 감각기관으로 느낄 수 없는 것에 대해서 알게되는 앎이기 때문이며, 생각할 상자로 쓰여진 까닭은 '생각'을 통해서 그 이치를 깨달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명상'이라는 말은 인간이 무엇인지 모르는 인간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말이기 때문에 명백한 뜻이 있을 수 없다. 도를 깨달은 자만이 사실을 사실 그대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모든 낱말들의 뜻이 그러 하듯이. 

 

사실은 인간이 무엇인지 모르는 인간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모든 말들이 끊임없는 논쟁이나 논란일 수밖에 없는 까닭은 말, 말, 말, 언어라는 것이 인간의 근원이 무엇인지 모르는 인간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언어가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상대적이기 때문에 언어. 말. 말. 말... 모든 말들은 논란일 수밖에 없는 것이며 논리적일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이 무엇인지 모르는 인간은 지식과 나를 동일시 하는 것이다. 소위 지성체이다. 지성체는 이런 말에 대해서 선뜻 이해 할 수 없다. 옳지 않다고 주장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선뜻. 쉽게 이해 할 수 있는 말은 아니다. 전에 들어 본적이 없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온전하게 이해 할 수 없다. 만약에 이런 말에 대해서 온전히 이해 할 수 있다면, 이해 할 수 있는 인간이라면 일념명상의 실천으로써 '일념'을 깨닫고 더 나아가 많이 아는 거룩한 인물들 뿐이다. 

 

인간은 인간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사실에 대해서 조차도 올바르게 이해 할 수 없다. 인간이 무엇인지 아는 인간이 없기 때문이다. '명상'이라는 말은 인간이 무엇인지 모르는 인간들에게 인간이 무엇인지 알아차리게 하기 위한 방법이다. 자아를 탐구하기 위한 방법이다. 인간 세상의 모든 인간들은 인간이 무엇인지 모르는 인간들이다. 그런데 그 중에 인간이 무엇인지 아는 인간이 있었다. 그는 우주의 근원을 알며, 인간생명의 비밀을 아는 인간이다. 인간의 관념으로써는 인간이 무엇인지 아는 인간들 또한 인간으로 여길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인간이라고 한다. 사실은 인간은 인간이 무엇인지 아는 인간들에 대해서 신으로 여기기도 하며, 하나님으로, 부처님으로, 성령으로, 불성으로 여기지만, 무한한 어리석음이 아닐 수 없다. 그들 또한 사람으로 태어났으며 스스로 깨달아 인간의 기원, 우주의 기원, 언어의 근원을 알게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언어가 사실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서 알기 때문에 '나는 사람도 아니다'라는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무엇인지 아는 인간에 대해서 '지인'이라는 말로 가정한다면, 명상은 지인이 지성체에게 인간이 살아가는 동안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방법과 삶과 죽음이 본래 없는 이치를 깨닫게 하기 위한 방법을 가르친 것이다. 하지만 지인들의 말은 인간의 관념으로써는 이해를 넘어선 말들이다. 예수의 '이웃을 네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이나 또는 '네 안에 하나님이 있다'는 말과 같이, '지인'들의 말은 지성체의 상상을 초월한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방법에 대해서 설명한 것들이 '명상'이라는 말로 표현된 것이다. 예수가 말하는 명상법은 '하루종일 기도하라'는 말이다. 그런 방법으로써 깨달아 알아야만 그의 말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이해 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일념을 깨닫고 더 나아가 많이 아는 거룩한 인물들이 그들의 말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이해 할 수 있는 것과 같아.

 

 

현 시대의 인간 세상에서 '명상'이라는 말은 누구나 흔히 접할 수 있는 말이다. 하지만 지성체들은 인간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마음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생각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명상에 대해서까지도 서로가 자신의 앎이 옳다고 주장한다. 이는 종교나부랭이들이 서로가 진리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지만, 지성체들의 삶의 전쟁과도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지성체들은 '명상'이라는 말 까지도 욕망을 채우기 위한 상품으로 여기니 말이다. 허긴. 예수의 말과 석가모니의 말을 단 한구절도 올바르게 이해 할 수 없는 것들에 의해서 종교가 '으뜸 가르침'이 아니라 분쟁(다툼, 경쟁, 전쟁)의 도구가 되었으니 말해 무엇하겠는가만은.   

 

인간이 인간이 무엇인지 모른다. 인간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이 인간이다. 인간이 무엇인지 모르는 인간이 언어를 창조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언어가 무엇인지 모른다. 언어의 근원에 대해서 아는 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언어를 알지만 언어의 본래의 뜻에 대해서 알 수 없는 것이다. 언어의 기원을 모르면서 언어를 배웠기 때문에 모든 것들에 대해서 아는 것 같자만 사실상 올바른 앎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무엇인지 모르는 지성체들의 앎에 대해서 '겨자씨 만큼도 올바른 앎이 없다'고 했던 사람들이 '지인'들이며 도를 깨달은 인물 들이다. 

 

인간들의 삶이 경쟁이며 투쟁이며 전쟁일 수밖에 없는 까닭은 그릇된 말, 상대적인 말에 세뇌당했다는 사실에 대해서조차 이해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상. 사상. 이념들... 모두 한 생각의 차이이며 생각의 다른 표현들일 뿐, 생각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들일 뿐이라는 말이다

 

명상은 지인들이 인간이 무엇인지 모르는 인간들에게 인간답게 가치 있는 삶을 살게 하기 위해서 깨달아 알게 하기 위한 방법론이다. 올바른 앎이라면 불평불만이 있을 수 없다는 뜻이다. 올바른 앎이라면, 언어가 상대적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안다면 다툼이 있을 수 없다는 말이며, 서로가 평평하게 화합하여 평화를 누릴 수 있다는 말이다. 무위자연과 같이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말이다.

  

언어, 말, 말, 말의 기원을 모르는 인간들은 끊임없이 다른 말, 말, 말들을 창조해 나간다. 다른 말을 창조해 나갈 수밖에 없는 이유는 어떤 말로서도. 어떤 말들도 자신의 나와 동일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본래의 '나'는 '순수의식'이지만, 경험에 바탕을 둔 사고방식으로써는 결코 그것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언어 속에서 다른 언어를 찾기 위해서 끊임없이 말, 말, 말만 늘어나는 것이다.

 

 

'명상'의 유래는 석가모니와 예수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명상은 본래 '나는 사람이다'라는 상대적인 편견에서 벗어나기 위한 유일한 방법에서 비롯된 말이다. 명상이란 인간이 육체에 얽매인 정신에서 벗어나 무위자연과 분리되지 않는 자유를 누리기 위한 방법이다. 명상은 육체가 나라는 착각에서 깨어나기 위한 방법이다.

 

인간이 무엇인지 모르는 인간에게는 가장 깊은 고정관념이 있다. '내가 있다'는 앎이며, '내가 사람이다'라는 앎이다. '내가 태어났다는 앎이며, 내가 죽을 것이다'라는 앎이다. 시간과 공간이 있다는 앎이다. 생로병사와 희로애락이 있다는 앎이다. 지성체를 제외한 자연계에는 그런 앎이 없다. 그런 앎들이 본래 있었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린아이와 강아지에게는 없었던 것들이다. 어린아이와 강아지는 순수의식에 가까우며 무위자연에 가깝다.

 

하얗게 내린 눈밭에서 뛰어 노는 어린아이와 강아지에게는 '내가 있다'는 생각이 없으며, 내가 강아지라는 생각이 없으며, 내가 사람이라는 생각이 없다. 내가 그것이라는 생각이 없다는 생각도 없으며, 있다는 생각도 없다. 시간이 있다는 생각도 없으며, 공간이 있다는 생각도 없다. 그것은 그것들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 인간동물을 제외한 천지만물 모든 것들이 그러하다. 인간동물들을 제외한 천지만물에는 분별된 생각, 마음이 없다. 마음이 있다는 생각도 없으며, 마음이 없다는 생각도 없다. 그것에 대해서 '중도'라고 한다. 

 

인간이 무엇인지 모르는 인간들의 세상에는 시간과 공간이 있다. 그런데 '지인'들의 말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 넘어서도 한치의 오차도 없이 똑 같은 말들이다. 인간이 무엇인지 모르는 인간들의 관념으로 볼때 기원전 6세기 경에 존재했던 인물이 석가모니이며, 기원전 1세기 경에 존재 했던 인물이 예수이다. 그들의 가르침의 근본이 '명상'이다.

 

그들은 인간이 무엇인지 아는 인간들로써 인간이 무엇인지 모르는 인간들에게 고통과 원죄에서 벗어나는 방법에 대해서 설명했다. 인간이 무엇인지 모르는 인간들이 그들의 말을 올바르게 알아들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인간들에게는 '육체가 나다'라는 편견이 있기 때문이다.

 

예수의 가르침의 근본원인은 '하루종일 기도하여 깨어나라'는 말이다.

'하루종일 기도하여 깨어나라'는 말은 '일념명상'을 일컷는 말이다. 하지만 '하루종일 기도하여 깨어나라'는 말에 대해서 올바르게 이해 할 수 있는 인간이 없었다. 옛날에도 없었으며 현 시대에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종교나부랭이들이 창궐하는 것이며, 하나님이라는 것이 창조된 것이며 우상숭배사상으로 왜곡된 것이다.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고 했으나... 그 말은 믿을 수 없는 것일까? 

 

하루종일 기도하여 깨어난다면, 깨어나는 날. 그날. '너와 나와 하나님'이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말이다. 어린아이와 강아지가 '나와 너'라는 분별이 없이 함께 노닐듯이 너희들 또한 하루종일 기도하여 깨어나야만 '이웃을 네몸과 같이 사랑할 수 있다'는 말이다.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끼리 사랑하고, 그렇지 않은 자들은 죽여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하나님이 있다고, 내가 옳다고, 하나님을 믿으라고 주장하라는 뜻이 아니라 너희가 하루종일 기도하여 깨어나야만 어린아이와 같이 순수함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는 말이다. 

'하루종일 기도하라'는 말은 일념법. 일념윤회법. 진원법으로 명명한 일념수행, 일념명상을 일컷는 말이다. 

 

'하루종일 기도하여 깨어나라'는 말은 예수의 말이며 예수가 길잃은 어린 양새끼와 같은 인간들에게 전하고자 했던 최선의 가르침이다. 명상법이다. 

일념법. 일념명상법은 예수의 가르침의 근본이다.

'네 안에 하나님이 있다'는 말과 '몸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라는 말 등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책 두권과 카페에 이미 충분히 설명 되었기 때문에 여기서는 생략한다.   

 

물론 예수의 본래의 뜻이 그대로 전달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하루종일 기도하여 깨어나라'는 말에 대해서 하나님께 기도 하라는 뜻으로 왜곡된 것이다. 원죄를 지엇기 때문에 지옥이 있으며 죽은 다음에 천국이 있다고 믿게 된 까닭은 언술이 뛰어난 자들, 그리스도의 적이라는 자들의 말재간 때문이다. 석가모니의 말 또한 신비스러운 세상으로 왜곡된 것이다. 둘 다 우상숭배사상으로 왜곡될 수밖에 없는 까닭은 그들의 말의 깊은 뜻에 대해서 감히 미루어 짐작하거나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명상에 대한 석가모니의 진언이 있다. 진언이라는 말은 진실된 말이라는 뜻과 함께 진리라는 뜻으로써 인간이 무엇인지 모르는 인간들이 존재하는 한 영원히 비밀로 남겨질 수밖에 없는 말이다. 하지만 일념법으로 깨닫고 나면 누구에게나 절대적으로 옳은 말이기 때문에 진리라는 말로 표현된 것이다. 

 

다음 편에 석가모니의 명상법에 대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