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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법의 이해와 오해 그리고 알아차림 - 일념명상과 깨달음 / 사유란?

일념법진원 2014. 2. 12. 13:37

 

이것이 있으면 이것이 있다. 이것이 생기면 이것이 생긴다. 즉 무명에 의해서 행이 있고 행에 의해서 식이 있다. 식에 의해서 명색이 있고, 명색에 의해서 육입이 있다. 육입에 의해 촉이 있고, 촉에 의해 수가 있으며, 수에 의해 애가 있다. 애에 의해 취가 있고, 취에 의해 유가 있으며, 유에 의해 생이 있다. 생에 의해서 노, 사, 수, 우, 비, 고, 뇌가 있다. 모든 괴로움은 이렇게 해서 생기는 것이다.

 

부처님은 모든 일의 연유를 그때의 감흥을 게(偈)로 읊었다.

 

진지한 열성을 다해 사유했던 수행자에게

만법의 이치가 확실해 졌을때

그의 의혹은 씻은듯이 사라진다.

모든 법은 그 원인이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에.

 

 

자설경自說經은 이어서 부처님이 12연기가 소멸해가는 과정을 관찰하고

다음과 같은 감흥게를 읊었다고 쓰고 있다.

 

 

진지한 열성을 다해 사유했던 수행자에게

만법의 이치가 확실해 졌을 때

그의 의혹은 씻은듯이 사라진다

모듬 법은 그 원인이 사라짐을 깨달았기 때문에

 

부처님이 스스로 말한 깨달음의 내용은 한마디로 '연기의 법칙'이다.

 

緣起란 여러가지 설명이 있지만, 한마디로 요약하면 "모든 존재는 관계적 조건 아래서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어떤 존재도 고정불변하는 독립적 존재로는 존재하지 못한다.

모든 존재는 그럴만한 조건이 있어야 생겨날 수 있다.

홀연히 또는 우연히 조건없이 존재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일체의 존재는 그것을 성립시키는 조건이 없어질 때, 그 존재 또한 없어진다.

 

 

이 연기의 법칙으로 불교학자들은

이를 근거로 불교교리의 가장 중요한 핵심을 연기의 법칙이라고 부른다.

 

이 법칙은 부처님이 만든 것이 아니다.

부처님은 다만 이 법칙을 깨달은 분이다.

 

 

연기론을 현대적인 표현으로 말하자면 '상대주의적 존재론"이다.

당연히 절대적인것, 영원한 것, 무조건적인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절대적 존재란, 다른 것들로부터 완전히 독립하여 그 자신만으로 존재하며,

다른 조건에 제약받지 않는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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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思惟)【명사】【~하다|타동사】
1.  생각함.
¶ 논리적 ∼.
2.  『철』 경험하여 아는 사실을 비교하여 그 관계를 정하고, 여기에 기초하여 아직 경험하지 않은 지경에 이르는 정신 작용. 개념·판단·추리의 세 작용을 포함함. 사고(思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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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사고. 사유라는 말에 대한 사전적 의미는 모두 유사하지만 '생각'이라는 말에 중점을 두고 있다. 사실을 사실대로 알지 못하는 앎이다. '사유'라는 말은 '생각할 사'자와 '생각할 유'자로써 사유이다. 생각을 생각하는 것이며, 생각의 이치와 속성, 생각의 원리에 대해서 깨닫는 것이다. 

 

위의 내용은 현시대 최고 수준의 지식인(중생)들의 석가모니의 연기법에 대한 설명이다. 석가모니의 말에 대한 나름대로의 해석이지만, 중생들의 알음알이일 뿐, 올바른 앎은 겨자씨 만큼도 없는 말재간들이라고 아니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인간의 관념으로써는 석가모니의 가장 중요한 말인 '본래무일물'이라는 말의 깊은 뜻에 대해서는 납득할 수 없으며, 말변사라는 말 또한 납득할 수 있는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나는 신도 아니지만 사람도 아니다' 라는 말과 소리와 형상으로 여래를 볼 수 없다는 말, 말, 말 등에 대해서도 이해 하거나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말들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석가모니의 말이라는 12연기법에서 최초로 나오는 말이 '무명'이라는 말인데, 인간은 그 무명에 대해서 기억하거나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무명'이라는 말은 예수의 '너희가 순수의식의 어린아이 시졀에 대해서 기억할 수 없듯이' 라는 말과 같은 뜻으로서 경험자가 없는 경험. 기억할 수 없는 경험에 대해서 올바르게 아는 앎에 바탕을 둔 말이기 때문이다.

 

 

12가지가 연기한다는 연기법의 설명에서 최초로 시작되는 말이 '무명'이라는 말이다. 

무명에 의해서 행이 있고 행에 의해서 식이 있다. 식에 의해서 명색이 있고, 명색에 의해서 육입이 있다.

그 다음 내용들이 복잡한 구조로 설명되는데... 중생들은 이런 말, 말, 말에 묶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석가모니의 말은 끊임없이 왜곡될 수밖에 없는 것이며, 우상숭배 사상으로 전락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어차피 인간의 지식으로써 납득될 수 있는 말은 아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어린아이의 '무명'에 대해서 미루어 짐작하거나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식'이라는 말에 대해서 만큼은 설명을 통해서 이해가 가능한 말이다. 왜냐하면 중생은 '식'이라는 말에 대해서 신비스럽게 생각하여 '육식 칠식 팔식' 등의 말을 창조 하게 되었으며, 육도윤회 등의 말들로써 '육식'에 대한 말들에 대해서 혼란 스러워 하는데... 사실상 육식, 육입이라는 말의 본래의 뜻은 '다섯가지 감각기관과 감각기관에 의해서 알게되는 느낌(뜻)을 포함하여 여섯가지의 앎이 끊임없이 반복 순환되는 사건에 대해서 '육식'이라는 말로 표현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경에 등장하는 모든 '식(識)'이라는 낱말의 뜻은 단순한 말이며 '앎'이라는 뜻이다. 느낌이라는 말도 느낌이라는 앎이며, 감각기관이라는 말 또한 감각기관이라는 앎이기 때문이다.  

 

이런 설명으로써도 알아 들을 수 없다. 다만 '무명'이라는 말에 대한 설명으로써 이해에 근접할 수 있다. '무명'이라는 말은 순수의식의 어린아이의 상태를 일컫는 말이다. 예수의 말과 같은 뜻으로써 '너희가 어린아이 시절에 대해서 기억할 수 없기 때문에...' 라는 말과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다.

 

'무명'에 의해서 행이 생겨난다는 말은 어린아이와 강아지가 함께 눈밭에서 뛰어 놀지만, 어린아이에게는 내가 강아지라는 생각이 없으며, 강아지 또한 내가 어린아이라는 생각이 없다. 강아지에게는 내가 강아지라는 생각이 없으며 어린아이 또한 내가 어린아이라는 생각이 없다. 생각이 없다는 생각도 없으며 생각이 있다는 생각도 없으며, 나와 너라는 상대적인 생각이나, 선과 악이라는 생각이나, 삶과 죽음이라는 생각이나, 하늘과 땅이라는 생각이나... 등등의 상대적인 생각이 없는 행위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위자연이라는 말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이다.

 

무명에 의해서 행이 생겨났다는 말은 옳은 표현은 아니다. 무명이라는 말은 앎(지식)이 없음을 일컷는 말이다. 어린아이에게는 지식이 없다. 상대적인 지식이 없지만 행위는 있다. 그러니 무명의 행위 즉 무위라는 말이다. 그런 행위를 통해서 '식(앎)이 생겨난다는 말이다. 물론 '앎'이 저절로 생겨난 것은 아니다. 앎이 생겨난 이유는 타인들의 말과 행동을 듣고 보고 배움으로써 생겨나게 된 것이다. 다만 인간은 자신들의 기억된 생각으로 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순수의식의 어린아이의 상태에 대해서 미루어 짐작하거나 상상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분별된 생각인 마음이 있기 때문에 마음이 없는 상태에 대해서 상상하거나 짐작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마음이 있다는 생각도 기억세포에 저장된 생각들 중 하나의 생각에 불과한 것이며, 마음이 없다는 생각 또한 경험에 바탕을 둔 기억세포에 저장된 하나의 생각에 불과한 또 다른 생각일 뿐이다.

 

그러니 무명에 의해서 해이 생겨난 것이 아니라, 무명의 행위에 의해서 식(앎)이 생겨났다는 말이라고 이해 한다면 올바른 이해이다. 석가모니의 가르침이 왜곡된 말에 대해서 바르게 다시 설명하는 것이다.  

 

식에 의해서 명색이 있고, 명색에 의해서 육입이 있다는 말이 있는데, 사실은 석가모니의 연기법이라는 말에서의 가장 중요한 말이며 석가모니의 가르침의 핵심이다. 왜냐하면 '무안이비설신의'라는 말과 '무색성향미촉법이라는 말이 곧 순수의식의 어린아이의 상태를 뜻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또한 반야심경의 모든 말들이, 곧 깨달아 알게 될때, 사실을 사실 그대로 알게 됨을 이르는 말로써 그때(무명, 순수의식의 어린아이시절)에는 감각기관의 작용이 없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식'에 의해서 '명색'이 있다는 말은, 무명의 어린아이가 타인들의 말을 알아듣고, 말의 뜻에 대해서 이해 하기 시작하면서 알게 되는 앎이 올바른 앎이 아니라 '명색'을 아는 것일 뿐, 사실을 사실 그대로 아는 앎이 아니라는 뜻이다. 중생은 이 '명색(名色)'이라는 말에 대한 한자의 뜻에 대해서 오해 함으로써 무수히도 많은 말들을 창조하게 된 것이다. 

 

석가모니의 말의 핵심은 '명색'의 동일시의 착각에서 깨어나라'는 것 모든 가르침의 요지이다. 인간들의 언어 자체가 '명색의 동일시'일 뿐, 올바른 앎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런 사실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는 말이 있다. 명색이라는 말에서의 '명'자는 '이름 명'자로써의 소리를 뜻하는 말이며, '색'이라는 글자의 뜻은 '빛'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 '형상(모양)'을 일컷는 말이다.

 

석가모니의 말 중에 '소리와 형상으로 여래를 볼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여기서 '소리와 형상'이라는 말은 인간들의 말, 말, 말... 언어를 일컫는 말이다. 인간들의 말은 뜻이 없는 '소리'와 '형상, 모양'을 동일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증거하는 말이 '별은 별이 아니다'라는 말이다. 이 말은 이름이 없는 어떤 것에 대해서 '별'이라는 이름을 지은 것이라는 말이며, '별'과 '어떤 것'에 대해서 동일시 하는 것일 뿐, 그것은 그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소위 '명색이 사람인데...' 라는 말이 있으며, '달이 뭐라 카드나' 라는 말이 곧 명색의 동일시를 뜻하는 말이다.

 

중생들의 앎이 무모한 것은 '명색'이라는 말의 '색'에 대해서 빛으로 해석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소위 머리깎은 중생들이 삼매를 경험했다고 주장하는데, 상매를 경험했다는 자들 대다수가 삼매에서 '빛'을 보았다고 한다는 것이다. 자등명이라는 말이나 법등명이라는 말에서의 '명'이라는 글자는 물론 밝을 명자로써 올바른 앎을 일컫는 말이다. 하지만 '명색'이라는 말에서의 '색'은 빛이 아니라 '모양'을 뜻하는 말이며 '광명의 빛'이라는 말 또한 '빛 광'자와 '밝을 명'자로써 무명과 무지를 벗어난 올바른 앎을 일컫는 말이다. '무지'라는 말은 인간들의 모든 앎이 모두 상대적인 것들일 뿐, 올바른 앎이 아니라는 말로써의 '無知'라는 말이다.

 

'명색의 동일시에 대해 한 가지 더 사례를 든다면... 사과는 사과가 아니라는 것이다. 어떤 것의 이름이 사과일 뿐, 그것의 이름을 '고구마'라고 이름을 바꾸더라도 형상(모양)은 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종이에다가 '사과'라는 글씨를 쓴 것과 실물인 '사과'는 다르지만... 종이에 쓰여진 글자도 사과이며, 과실도 사과지만... 종이에 쓰여진 글자나, 사과라는 말(소리)이 열매(형상) 자체는 아니라는 말이다.

 

석가모니의 가르침의 핵심은 '명색의 동일시에 대한 착각에서 깨어나라'는 가르침이다. 하지만 이렇게 설명한다고 하더라도 쉽게 이해 될 수 있는 말은 아니다. 왜냐하면 '별은 별이 아니다'라는 말은 더 나아가 '나는 나가 아니다' 라는 말과도 다르지 않은 뜻이며, '사람은 사람이 아니다'라는 말과도 같은 맥락이기 때문이다. 석가모니의 초기경전에는 '나는 사람도 아니다'라는 말이 있는데... 올바른 사유로써 깨달아 아는 앎일때, 그때에는 그 말 또한 보편 타당한 앎이며 올바른 말이며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다.

 

 

연기법에 '명색'에 의해서 '육입'이 생겨난다는 말이 있다.

중생들이 가장 왜곡 시키기 좋은 말이며, 석가모니의 말이 우상숭배사상으로 왜곡되게 된 주된 말이다. 인간들의 관념을 초월한 말이기 때문에 이해 될 수 없는 말이다. '육입'이라는 말과 '육식'이라는 말, 그리고 육바라밀이라는 말, 육도윤회라는 말 등을 비롯하여 '육식, 칠식, 팔식... 아뢰야식, 무몰식... 등의 수많은 말이 창조된 까닭은 무식하나 언술이 뛰어난 자들의 알음알이 상이 높은 까닭이다.

 

만약에 인간의 관념으로써 석가모니와 예수의 말에 대해서 올바르게 이해 할 수 있었다면, 우상숭배사상으로 전락된 종교나부랭이들은 사라졌을 것이며, 이제서야 명상학이라는 학문이 생겨나듯이, 오래전에 이미 인간들의 가장 기본적인 도덕관으로 도입되었을 것이다.

만약에 석가모니와 예수의 가르침에 대해서 올바르게 이해 할 수 있다면 인간세상이 끊임없는 논쟁과 경쟁, 투쟁과 전쟁으로 이어질 수 없었다는 뜻이다.

 

일념을 깨닫고 더 나아가 많이 아는 거룩한 인물들에게 다툼이 없는 까닭은 자신의 마음의 실체에 대해서 깊이 이해 할 수 있기 때문이며, 더 나아가 마음이 실제로 있는 것이 아니라 허구라는 사실에 대한 앎을 바탕에 두고 사실을 사실 그대로 깨닫기 위한 삶, 가치 있는 삶을 영위하기 때문이다.   

 

앎(식)에 의해서 명색이 있는 것이 아니라, 말을 알아 들음이 곧 명색이라는 뜻이다. 말을 모르던 어린아이가 타인들의 말, 말, 말에 의해서 '내가 있다'라고 알게 되는 최초의 앎이 명색의 동일시라는 말이다. 어린아이가 어떤 것에 대해서 '원숭이'라고 말을 구사한다면 그것이 '명색'의 동일시이다. 어떤 것에 대해서 '엄마'라고 한다면 그 또한 명색의 동일시이다. 어떤 움직이는 물건(동물)에 대해서 '엄마'라는 이름을 동일시 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은 인간들의 모든 앎이 '명색의 동일시'에 대한 착각에서 비롯된 말, 말, 말들이다. 명색의 동일시에서 벗어난 말 중에 대표격인 말이 '별은 별이 아니다'라는 말이다. 이런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설명함으로써 이해에 가까울 수는 있겠지만, 별은 별이 아니듯이 이해 또한 이해가 아니다. 지식으로써 이해한다는 말은 그럴 것이다라는 추측일 뿐이기 때문이다. 올바른 앎이란 추측이나 상상이 아니라 사실을 사실 그대로 아는 앎이며, 추호도 의심이 없는 앎이라는 말이다.

 

지식은 허구이다. 상대적이 아닌 올바른 앎을 알기 위해서는 일념명상법, 일념법수행으로써 생각의 이치와 속성이라는 말에 대해서 우선 납득해야만 한다. 생각의 원리에 대해서 깨달아 알지 못한다면 아무리 설명한다고 하더라도 우이독경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수천년 역사를 자랑하는 머리깎은 중생들의 수행 역시 공염불일 수밖에 없는 까닭, 그들이 석가모니의 말에 대해서 단 한구절도 올바르게 이해 할 수 없는 까닭은 석가모니의 가르침의 근본 조차도 이해 할 수 없는 무지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알음알이를 두지 말라는 말과 소리와 형상으로 여래를 볼 수 없다는 말에 대해서 알아들을 수 없기 때문에 우상을 숭배하는 것이며, 석가모니의 말, 말, 말에 묶여 그 말 속에서 다른 말을 찾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어리석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참고로 진리에 의존하라는 석가모니의 말의 뜻은 '일념법명상'에 의존하라는 말이다. 그런 사실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는 자가 있다면 그는 일념을 깨닫고 더 나아가 많이 아는 거룩한 인물이다.

 

 

'명색'에 의해서 육입이 있다는 말이 어리석은 중생들에 의해서 가장 난잡하게 표현되는 말이다. 

본래 의미는 '명색에 의해서 육입이 있다는 뜻이 아니라, 어린아이가 말을 알게 됨 자체가 명색의 동일시에 따른 착각이라는 뜻이다. 인간들의 모든 앎이 명색의 동일시에서 비롯된 착각이라는 것이며, 다섯가지의 감각기관이 있다는 앎과 감각기관에 의해서 느끼는 감촉을 포함하여 '육식'이라고 한 것이다. 순수의식의 어린아이에게는 감각기관이 없으며 감각기관에 의해서 알게되는 느낌이나 감촉도 없다는 뜻이다.

어린아이가 성장과정에서 말을 배움에 따라서 음식의 맛을 분별하고,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분별하는 등의 감각기관의 작용과 감각기관에 의해서 느끼는 감촉 등에 대해서 6식(識)이라는 말로 표현된 것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일념법으로 깨달아 아는 앎은 감각기관과 촉감 등이 그것 자체로써 느끼는 것이 아니라 생각의 윤회작용에 따른 착각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알아차림에 대해서 깨달음이라는 말로 표현된 것이다.

 

인간이 무엇인지 모르는 인간들의 모든 앎은 앎이라는 생각이다.

인간은 현제가 있으며 현실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제를 경험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이다. 인간은 과거가 있다고 믿고 현제가 있다고 믿고 미래가 있다고 믿는다. 과거가 있다고 믿는 까닭은 과거가 실제로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대에게 과거가 있다는 말은 기억된 생각이 있다는 말이다. 기억세포에 저장된 생각에 대해서 기억하는 것이다. 기억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실제로 눈을 통해서 보거나 만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기억세포에 저장된 생각 속의 일부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이다. 생각 속에서의 생각이기 때문에 환상이다. 미래 또한 경험된 기억에 바탕을 둔 기억된 생각 속에서 또 다른 생각들로서 상상의 나래를 펴는 것일 뿐, 생각 속에서 다른 생각을 하게 되는 생각의 윤회에 속수무책으로 속는줄도 모르고 속는 것이다. 

 

지금 그대가 경험할 수 있는 것들 또한 이와 같다.

내가 지금... 이라고 말하는 순간, 생각하는 순간 이미 지나간 생각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이다. '석가모니의 말 중에 '사유'라는 말이 있지만 인간은 '사유'라는 낱말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없다. 사유라는 말은 '생각할 사'자와 '생각할 유'자로써 생각을 생각함이라는 말이기 때문이다. 생각의 이치와 속성, 생각의 원리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을때, 그때 비로소 '사유'라는 말의 뜻에 대해서 올바르게 아는 앎일 수 있다는 말이다.

 

육입 이후에 나열되는 말들은 인간들의 복잡 미묘하고 다양한 감정이나 느낌에 따위에 대한 표현들이다. 이를 략히 요약하자면 '희로애락과 생로병사'라는 말과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며, 고통과 괴로움을 만들어 내는 마음의 작용을 일컫는 말이다. 

 

석가모니의 말 중에 가장 중요한 말이 있다면... '무상한 것은 나가 아니다, 수상행식도 이와 같다'는 말이다. 이 말은 '육체가 나가 아니다'라는 말로써 '별은 별이 아니다'라는 말과 같은 맥락이며, '수상행식도 이와 같다'는 말은 '마음의 작용 또한 이와 같이 나가 아니다'라는 말이다. 물론 예수의 말로 전해지는 '어린아이의 순수의식'에서는 그런 말, 말, 말이 없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본래 무일물'이며, '말변사'라는 말로써 세상은 말로 지어진 것들일 뿐,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깨달아 아는 앎만이 올바른 앎이라는 말, 말, 말이다. 지금 이런 부연 설명들 또한 말, 말, 말들일 뿐이기 때문에 '말면사'이다.

 

이런 말들 또한 인간의 '육체가 나다'라는 고정관념으로써는 결코 납득할 수 있는 말은 아니다. 다만 일념을 깨닫고 더 나아가 많이 아는 거룩한 인물들만이 '참으로 옳은 말이구나'라고 알아 들을 수 있는 말이라는 것이다.

 

이곳 카페의 회원들 중에는 불과 2년여만에, 또는 불과 몇개월만에 생각의 이치와 속성, 생각의 원리에 대해서 올바르게 인식하는 인물들이 있다. 그들만이 석가모니의 말에 대해서 올바르게 알아 들을 수 있는 인물들이며, 그들만이 진정한 자유라는 말과 평화라는 말, 행복이라는 말과 진리라는 말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을 뿐이다.

 

명상이라는 말 또한 그들만이 올바르게 알아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왜냐하면 명상이란 예수의 말로 전해지는 '하루종일 일념으로 기도하라'는 말과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며, 석가모니의 말로 전해지는 '무상한 것은 나가 아니다, 수상행식도 이와 같다, 그것을 과찰하라는 말과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기 때문이다.

 

인간들의 '명상'이라는 말들을 비롯하여 수많은 모든 말, 말, 말들은 경험에 바탕을 둔 기억된 생각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수많은 생각들 중의 하나의 생각일 수밖에 없는 '육체가 나다'라는 '하나의 생각'에 바탕을 두고 일어나는 생각의 다른 표현들일 뿐, 사실에 바탕을 둔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보리달마'는 인간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 보이더라도 그것은 중생이다'라고 했던 것이다.

 

무식하고 어리석은 자들의 알음알이로써는 연기법이 진리이며 사성제와 팔정도만이 진리라고 주장한다. 아니다. 그것 또한 올바른 앎이 겨자씨 만큼도 없는 알음알이이다. 왜냐하면 '무고집멸도'라는 말과 '본래무일물'이라는 말과 같이 지식으로 아는 모든 앎은 사실에 바탕을 둔 앎이 아니라 기억된 생각에 바탕을 둔 상대적인 앎이기 때문이다. 육체가 나라는 상대적인 편견이며, 단견이며 소견에 바탕을 둔 앎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주가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

연기법이 진리라고 주장하는 자들...

하나님이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

부처가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

마음이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

마음이 없다고 주장하는 자들...

명상법을 개발했다고 주장하는 어리석은 자들...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더라도 모두가 중생이라고 했던 인물이 보리달마이다.

너 자신을 알라. 그렇지 않다면 살아갈 가치도 없다고 했던 인물이 소크라테스이다.

너희는 짐승보다 더 뛰어날 것이 없는 어린 양새끼와 같다고 했던 인물이 예수이다.

알암알이를 두지 말라고 했던 인물...     

 

思惟 생각할 사. 생각할 유...

事實 일 사, 열매실

專念 오로지 전, 생각할 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