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연기법은 고통의 원인이 마음이며, 그 마음이 어떤 과정에 의해서 생겨나게 된 것인지 그 과정에 대한 설명이다. 본래 사람이 아닌 것... 그것이 순수의식의 무명의 행으로 시작되어 앎(생각. 말)이 생겨나는 것이며, 그 식(앎. 識)이 다른 것이 아니라 '명색'을 동일시 하는 앎이며, 명색이라는 말의 뜻은 '이름과 형상'으로써 인간의 말, 언어, 낱말을 일컫는 말이다. 그리고 육입이라는 말은 육식과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라는 설명과 함께 '마음'의 작용이라는 설명 까지가 전편의 개략적인 내용이다. 그것(순수의식)이 '내가 사람이다'라고 아는 앎이 생겨나게 된 과정이며, 12연기법으로 왜곡된 석가모니의 가르침이다.
전편까지에서 가장 중요한 말이 있다면 명상이라는 말의 본래의 뜻인 '사유'라는 말이다. '사유(思惟)라는 낱말이 기억된 생각. 즉 인간의 경험에 바탕을 둔 사고방식으로써는 미루어 짐작하거나 상상할 수 없는 말인 까닭은 '사유'라는 낱말의 뜻이 '생각할 사'자와 '생각할 유'자로써 '생각을 생각함'이라는 말이기 때문이다. 물론 자신의 삶에 대한 잡다한 생각들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라는 말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석가모니가 말하는'사유'라는 말의 뜻은 '무상한 것은 나(我)가 아니다 그것을 관찰하라'는 말로써의 '사유'로써 자신의 생각이지만 잠재의식에 기록된 '나는 무엇인가'에 대해서 생각하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내가 사람이다'라는 앎에 대해서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경험에 바탕을 둔 사고방식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류이다. 하지만 '내가 사람이다'라는 주장에는 아무런 근거가 없다. 굳이 원인이 있다면 '타인들로부터 들어서 아는 것'일 뿐이라고 했다. 그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명상'이란 개체적 자아들(개개인. 중생)의 이상이나 사상이나, 이념 따위에 세뇌 당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나의 본성을 찾기 위한 정신적인 행위이다. 자신이 깨닫게 되면 곧 신을 보는 것이기 때문이며, 신이기 때문이다.
종교와 명상의 차이기 있다면 종교는 시작부터 우상숭배사상으로 세뇌(주입식 교육)시키는 것이며, 세속에서 가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을 '신'으로 여기게 하므로써 세력을 구축하게 된 것이며, 명상은 '마음을 치유'하겠다는 목적이기 때문에 그나마 생활에 여유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목표로 삼고 있지만 결국에는 또 다른 우상숭배 사상에 세뇌 당하여 종교화가 되는것 같다. 본래 명상이란 자신의 생각과는 색다른 다른 사람의 사고방식에 이끌려 다니거나, 이상 사상 이념 등에 물들거나, 최면에 걸리거나, 자아 도취에 빠재게 하는 자들에게 이끌려 어떤 광신자나 맹신자가 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아니라, 자신의 본래성품이라는 자신의 마음의 근원을 찾음으로써 통찰의 지혜를 얻기 위한 것이다. 그 결과 삶과 죽음이 본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알아차리기 위한 것이다. 마음이 본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전편 까지는 12연기법 중에 '무명, 행, 식, 명색, 육입 까지 설명 되었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말들이 '촉 수 애 취 유 생 노사'이다.
이것이 오류이다. 불경이라는 경전에는 12연기에 대해서 위와 같이 열 두가지가 연기의 원인이라고 설명되지만, 사실은 '육입'이라는 말부터가 그릇된 앎에 의해서 기록된 것이다. 왜냐하면 '명색'이라는 말은 이미 말을 아는 앎으로서 감각기관과 감각기관에 의해서 알게 되는 뜻(앎, 생각, 말)을 포함한 것이 '육식'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육식이라는 말과 명색이라는 말은 같은 뜻의 다른 표현으로써 인간들의 모든 앎이 '명색'이다. 인간의 모든 앎은 명색의 동일시이며, 명색의 동일시는 감각기관에 의한 앎에 의존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그 앎을 총칭하는 말이 '마음'이며, '촉 수 애 취 우 생 노사'는 마음에 의해서 나타나는 감정 느낌등을 표현하는 말이다.
'촉 수 애 취 우 생 노사'는 '생사우비고뇌'와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며, 희로애락의 반복 순환과 함께 생로병사를 겪어야만 하는 인간들의 삶이 모두 고통이며, 고통의 원인이 마음이라는 설명이다. 그렇기 때문에 석가모니의 가르침이라는 경전은 석가모니의 가르침이 아니라 석가모니를 우상으로 숭배하게 하기 위한 중생들의 해석일 뿐, 올바른 앎이 아니다. 마음을 없애기 위한 방법이 석가모니의 명상법이기 때문이다.
중생들은 석가모니의 말을 경험된 지식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우상숭배 사상으로 전락 될 수 밖에 없다. 반야심경에는 '무안이비설신의'라는 말과 '무색성향미촉법'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다섯가지 감각기관에 의존하여 아는 앎에 대해서 '意(뜻)'이 생겨난 것이지만, 그것들이 본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인간의 관념으로써는 '본래 없는 것'이라는 말과 '없는 것'이라는 말의 차이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없다. '본래 없는 것'이라는 말은 주체와 대상이 없는 것을 일컫는 말로써 '나와 우주'가 없다는 말이기 때문에 '주체가 나'라고 아는 인간의 관념으로써는 이해를 넘어선 말이며, '없는것'이라는 말은 '주체가 있기 때문에 대상'이 있을때, 즉 주체가 있을때 대상이 없다는 말이다. 보는자가 있기 때문에 대상. 우주가 있을 뿐, 보는 자가 없다면 우주 또한 본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팔만대장경이 함축된 '반야심경'의 본래의 뜻은 '반야바리밀다 심경'의 준말로써 반야의 지혜 즉 통찰을 얻은 지헤로 본다는 뜻이며 '심경'이라는 말은 '깊고 깊은 뜻'이라는 말로써 말은 똑 같은 말이지만 통찰을 얻은 지혜로써만 이해 할 수 있다는 말. 뜻이다.
반야심경의 첫번째 글귀가 '오온이 공이다'라는 말이며, 나머지의 구절들은 오온이 공이라는 말에 대한 부연 설명들이다. 여기서 '오온이 공'이라는 말이 곧 '본래무일물'로 표현되는 '주체와 대상이 없음'을 일컫는 말로써 '본래 없는 것'이라는 설명과 같은 뜻이다. 우주가 본래 있는 것이 아닌 바와 같이.
그 다음에 이어지는 말이 일념을 깨닫고 더 나아가 많이 아는 거룩한 인물인 '사라자'라는 제자에게 설명하는 말이다. 올바르게 깨달아 알고 보니... 라는 말이 행심바라밀다시, 어쩌구 저쩌구 라는 말이며, '도일체고액'이라는 말로 시작된다. '도일체고액'이라는 말은 '오온이 공'이라는 말과 같은 뜻으로써 다섯가지 감각기관이 본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과 같이(12연기법의 설명과 같이) 너희가 (순수의식의 어린아이 시절에 말, 말, 말로써 가공되어 만들어진) 마음에 의해서 겪는 '모든 고통이 본래 있는 것이 아니며, 모든 재앙이 본래 있는 것이 아니며, 고통과 재앙을 없애는 법도 까지도 본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 말이다.
순수의식의 어린아이 시절 즉 '무명의 행'일때에는(말을 배워서 말의 뜻을 알기 이전에는) 마음이 없었으며, '나는 사람이다'라는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고통과 재앙이 없었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이 있기 때문에 생로병사의 고통을 겪는다는 말이다.
이 말은 또한 '생각의 원리'에 대한 설명과 같이 생각에 의존하여 나와 대상이 있으나, 생각이 없다면 나와 대상 또한 본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인간은 감가기관에 의해서 보고 느끼지만, 보고 느낀다는 말은 '보았다는 생각이 있다는 말이며, 느낌이라는 생각이 있다'는 말이다. 지난 날에 대한 생각들이 모두 그러하다.
그대가 지난 날, 즉 과거에 대해서 기억할 수 있는 것은 기억세포에 저장된 생각들 중 일부에 대해서 일어나는 생각이다. 과거에 눈으로 보았다고 주장하겠지만, 지금 기억하는 과거는 지금 그때의 사건에 대해서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봤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지난 날에 보았다는 생각이며, 맛을 보았다는 생각이며, 귀로 들었다는 생각이다. 기억된 생각, 생각, 생각이 없다면 지난 날은 기억할 수 없기 때문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와 같이 그대의 '내가 사람이다'라는 생각 또한 기억된 생각에 의존하여 있다는 말이다.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감각기관은 생각에 의존하기 때문에 있을 뿐, 생각이 없다면 감가기관의 느낌이 없다는 뜻에 대해서 '무안이비설신'이라는 말로 표현된 것이다.
명상이란 이와 같이 자신의 마음의 실체(근본원인)를 깨닫기 위한 목적으로 하는 정신적인 행위이다. 타인들의 말에 이끌려 다닌 결과물이 지금 그대가 '나'라고 주장하는 '나는 이런 사람'이다. 그대의 지금의 마음이다. 올바른 앎에 바탕을 둔 사유로써 자신의 마음의 허구를 알아치리기 위한 방법이 일념법이며, 일념법 명상이며, 일념 윤회법이며, 진원법이다.
만약에 석가모니를 숭배의 대상으로 삼는 사람들이 석가모니의 말에 대해서 단 한구절이라도 이해 할 수 있었다면 불교라는 종교는 사라졌을 것이다. 왜냐하면 석가모니를 믿는 사람들이 석가모니의 가르침의 깊은 뜻에 대해서 올바르게 자각하여 '일념법'이라는 말에서의 '일념'의 뜻만이라도 올바르게 알아 차릴 수 있었더라도 우상숭배 사상 따위에 세뇌 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내가 사람이다'라는 말에 대해서 사실로 여긴다. 하지만 일념을 깨닫고 더 나아가노라면 그런 사실이 사실적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서 깨닫게 된다. 그것을 알아차릴 무렵이면 마음의 고통은 이미 사라지고 없다. 마음이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서 납득할 수 있으므로.
석가모니의 깨달음을 증거하는 말이 '별은 별이 아니다'라는 말이다. 이는 명색의 동일시에서 깨어남을 의미 하는 말이며, '바람에 깃발이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보는 자의 마음이 흔들리는 것'이라는 '육조 혜능'의 말과도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다.
오직 진리에 의존하라는 석가모니의 말과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할 것이라는 예수의 말은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는 말과도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다. 무식하고 어리석은 자들이 예수의 '승리하라'는 말에 대해서 남들과 싸우고 이겨서 승리하라는 말로 인식하는 것 같다. 예수의 말을 자기들의 관념, 길잃은 어린 양새끼와 같은 생각으로 이해 하는 것이다.
예수의 말은... 부폐하고 부폐한 것은 인간의 마음이라. 하지만 네 안에 하나님(신)이 있다. 그러니 그 부폐하고 부폐한 너희의 마음과 싸우고 이겨서 스스로 승리한 자가 되라고 한다. 스스로 승리한 자. 그가 유일자이기 때문이다. 그가 천상천하 유아독존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오직 나의 말이 진실된 말이며 진리라는 예수의 말과, 세상에 나와 비견할 자는 없다는 석가모니의 말.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다. 인간들의 인간들간의 투쟁과 함께 천태만상으로 드러나는 인간들의 다투는 모습들... 시기하고, 갈등하고, 헐뜻고, 경쟁하고, 싸우고, 살인까지도 일삼는 모습들,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어린 양새끼들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올바른 앎이 겨자씨 만큼도 없기 때문에 서로가 싸워야만 하는 것이며 평화로울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은 어떤 상황에서도 결코 만족하여 평화로울 수 없다.
신을 보기 전에는 만족해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신이 되기 전에는 결코 만족하여 평화로울 수 없다는 말이다. '내가 사람이다'라고 아는 한... 무위자연의 자유를 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죽음'이라는 병명의 불치병 환자이다.
'내가 사람이다'라고 아는 한정된 앎이기 때문이다.
올바른 앎에 바탕을 둔 일념명상법만이 불치병을 치유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다.
삶과 죽음은 행복과 불행처럼 동전의 양면과 같이 상존하는 것이다.
어딜 그리 바삐 달려가시는가?
삶의 목적지... 죽음을 맞이 하기 위해서인가?
아니라면.
지금 이 순간, 순간들... 기쁨으로 존재 하시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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