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이곳의 글들 중에 '종교나부랭이들'이라는 말에 대해서 실망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상관 없는 일이다. 사실은 이사람의 말이 아니라 석가모니가 불교라는 종교를 두고 하는 말이며, 예수가 기독교라는 종교를 두고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나머지 종교나부랭이들이야 말할 것도 없으나, 예수와 석가모니를 비유로 드는 까닭은 오직 그들만이 올바르게 도를 깨달아 그 이치를 밝혔기 때문이다. 물론 노자의 말 또한 도를 깨달은 자의 말이지만 노자의 말에는 없는 '깨달음으로 가는 길'을 올바르게 전했던 인물들이 석가모니와 예수이기 때문이다.
책. 깨달음의 실체를 밝힌다와 책. 비밀의 언어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으며, 이곳 카페에도 그들의 본질에 대한 설명이 있으니 이글에서는 생략한다. 사실 그들의 가르침의 주요 핵심이 있다면... 본무(本無) 라는 말로써, 우주천지만물이 '본래 없는 것' 이라는 말이다. 예수가 '하나님이 네 안에 있다'고 말한 까닭이다.
사실 인간들의 삶 자체가 아귀다툼이다.
모두가 이합집산들이기 때문이며, 모두가 철저한 이기주의자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인간의 근본원인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먼저 간 인간들에게 그렇게 길들여졌기 때문에 '도'를 구하려는 이들이 생겨난 것이며, 그 길을 알리고자 했던 인물들이 소위 '부처' '성자' '성인'... 등으로 불리는 인물들이다.
세상에 모든 종교나부랭이들에 대해서 가장 어리석은 자들이며, 가장 무식한 자들이라고 말하는 까닭은 종교나부랭이들이 그들, 소위 궁극에 이른 자들의 진리를 왜곡하고 변질시켰기 때문이다. 물론 인간관념으로써는 감히 미루어 짐작하거나 상상할 수 없는 것이 진리. 도, 깨달음이기 때문에 왜곡되고 변질됨은 차라리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모르는 것에 대해서 안다고 억지 주장을 죽는 날까지 고수하는 것들이니... 무식하고 어리석은 짓이 아닐 수 없다.
종교나부랭이들만이 서로가 자신들만이 진리라는 주장으로 소통이 불가능하다. 다른 이합집산들은 그나마 균형을 이루기 위해서 안타까운 몸무림이라도 치는 것 같은데, 그것들에게는 그럴 가능성 조차 찾아볼 수 없다.
요즘 석가모니의 가르침이라는 금강경 사구게의 "약이색견아. 이음성구아. 시인행사도. 불능견여래' 라는 구절에 대해서 설명한 바 있다. 물론 사구게의 내용을 한글로 표현한다면 노자의 도관과 같은 뜻의 다른 표현으로써 "언어로 표현될 수 있는 도는 참다운 도가 아니다" 라는 말이다. 언어로 표현될 수 없다는 말이다.
그것은, 도는... 하나님도 아니며, 부처님도 아니며, 불성도 아니며, 신도 아니며, 영혼도 아니며... 언어로 이름지어져서는 아니된다는 뜻이다. 있는 것과 없는 것의 기원이기 때문이다.
소리와 형상... 언어로 표현될 수 없다는 말이다. 그 말이 어떤 말이든지간에...
모양이라는 말도 언어이며, 형상이라는 말도 언어이며, 우주라는 말도 언어이며, 깨달음이라는 말도 언어이며, 소리라는 말도 언어이며, 불경이라는 말도 언어이며, 종교라는 말도 언어이며, 하나님이라는 말도 언어이며, 부처라는 말도 언어이며, 영혼이라는 말도... 어떤 말도 언어가 아닐 수 없다. 이런 말이 꼭 불경에만 있는 말이 아니라, 예수의 가르침에도 불경의 내용들과 똑 같은 뜻의 다른 표현으로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상이라는 말도 언어이다.
수행이라는 말도 언어이다.
깨달음이라는 말도 언어이다.
언어가 없다는 말도 언어라는 점을 감안해 본다면... 도, 진리, 깨달음에는 길이 없다. 길이 없기 때문에 '대도무문'이라는 말이 창조된 것이며, 언어로 표현될 수 없기 때문에 '언어도단'이라는 말이 창조된 것이며, 문자로 표기될 수 없기 때문에 '불립문자'라는 말까지 창조된 것이다. 만약에 일념을 깨친 자라면, 이런 말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는데, 언어가 상대적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나부랭이들은 서로가 진리라고 주장하니... 어찌 세상에서 가장 무식하고 가장 어리석은 자들이라고 아니할 수 있겠는가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말한다.
오직 나의 말이 진리라고. 오직 나의 말을 믿고 그 길을 가라고 한다.
그 길에 대해서 유일한 길이라고 하는데.
그 유일한 길. 방법이 성경과 불경에 기록되어 있다.
한글로 표현된 말이 '일념명상법'이며, 일념법 수행이다.
책과 카페에는 그들의 가르침의 본질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존재하던 시대의 언어가 아니라, 현시대에 가장 보편적인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다.
무식하고 어리석은 자들이 '사이비' 라는 말로써 다른 종교들을 비난하지만, 사실상 종교라는 것들 모두가 사이비가 아닐 수 없다. 만약에 종교나부랭이들이 그들, 성인, 성자들의 가르침에 대해서 겨자씨 만큼이라도 이해 하여 스스로 그런 사실에 대해서 납득할 수 있다면... 최소한 종교간의 갈등이나 갈등에서 비롯되는 전쟁은 사라질 수 있는 것이며, 소통이 가능해질 수밖에 없다. 진리란 그런 것이다. 깨달아 알고나면 누구에게나 공통적인 앎이며, 이견이 있을 수 없는 진실된 말이기 때문에 진리이며, 영원 불변인 앎이기 때문에 올바른 앎이라고 한다.
인간이 인간의 기원에 대해서 모른다고 주장하는 것들이 소위 지식이라는 것들이며 지성체들이다. 인간의 기원이 무엇인지도 알 수 없으며, 언어의 기원이 무엇인지도 알 수 없는 것들이 '지식인'이라고 주장한다. 그 지식인이라는 중생들은 지식이 끝이 없는 이유조차 이해 할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러니 식자우환이라고 하는 것이다.
사실 지식은 '지식'이라는 낱말의 뜻 조차 올바르게 정의할 수 없다. '지식'이라는 말의 한자의 뜻을 보니. '알 知' 자와 '알 識' 자이다. 대체 무엇을 아는 것에 대해서 '지식'이라고 하는 것일까?
마음이 무엇인지도 모르며, 인생이 무엇인지도 모르며, 삶이 무엇인지도 모르며, 죽음이 무엇인지도 모르며, 행복이나 자유 평화가 무엇인지 조차 올바르게 정의할 수 없는 것들이 지식이라는 이름의 무지無知이며 어리석음이다.
인간들은 누구나 '내가 사람이다'라는 앎(지식)에 대해서는 누구에게나 동등한 앎이다. 만약에 올바른 앎이라면 누구에게나 동등한 앎이라야 한다. 행복이라는 말이나, 자유라는 말, 평화라는 말, 삶이라는 말, 죽음이라는 말, 정의라는 말, 용기라는 말, 사랑이라는 말에 이르기 까지 누구에게나 동등한 앎이라야만 올바른 앎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인간들의 지식은 서로간의 주장만 난무할 뿐, 인생에 해답이 없듯이 아무것도 올바른 앎이 없다는 것이다.
몸에 좋은 음식이라는 말 또한 그러하며, 몸에 좋은 약이라는 말 또한 그러하다. 만약에 몸에 좋은 것이 있다면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공통적으로 좋은 것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사실 진리. 도. 깨달음의 앎이 그러하다.
인간들의 무지로써는 진리, 도, 깨달음이라는 말에 대해서 상상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무식하고 어리석으나 언술이 뛰어난 자들에 의해서 종교나부랭이들이 창조된 것이다. 그리고 그들, 도를 깨달은 인물들의 말은 올바른 앎에 바탕을 둔 방편설들이다.
인간의 어리석음은 그들의 말의 본래의 깊은 뜻에 대해서 이해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방편설에 대해서 이해(=오해)한 결과물들이기 때문에 논란만 가중되는 것이며, 갈등을 넘어 피를 흘리는 전쟁까지도 서슴치 않으니... 세상에서 가장 무식하고 가장 어리석은 자들이 종교나부랭이들이라고 하는 것이다. 종교나부랭이들 뿐만이 아니라, 서로가 깨달았다고 주장하는 자들이거나, 명상단체 나부랭이들 또한 이와 다르지 않은 어리석은 중생들이다. 올바른 앎이 아니면서 서로가 옳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석가모니의 가르침과 예수의 가르침, 그리고 노자의 가르침에 공통적으로 표현되는 말이 곧 "소리와 형상으로는 여래를 볼 수 없다" 는 말이며, 이와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 '언어로 표현될 수 없는 것'이라는 말이다.
또한 그들이 인간들에게 전하고자 했던 공통적인 말이 '인간의 지식에 대해서 겨자씨 만큼도 올바른 앎이 아닌 앎'이라는 말이며, 그렇기 때문에 '중생'이며, 그렇기 때문에 '길잃은 어린 양'이며, 그렇기 때문에 그런 인간들에 대해서 '짚으로 만든 개처럼 취급해야 한다'고 한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진리의 길을 가라고 한 것이며, 진리에 의존하라고 한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진리. 그것이 곧 일념법이며, 일념명상법으로 명명한 일념법 수행이다.
올바른 앎, 진리란... 인간이라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누구에게나 똑같은 앎이라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변할 수 없는 앎이라고 한 것이며, 불변의 진리라는 말로 표현된 것이다.
그들, 도를 깨달은 인물들의 공통적인 가르침은 인간 관념으로써는 감히 미루어 짐작하거나 상상할 수 없는 말이다. 대도무문이라는 말에 대해서 '백쳔만겁난조우의 인연'이라는 말로 표현하는 까닭은 그 방법이 인간의 관념으로써는 상상할 수 없는... 말도 안되는 소리처럼 여겨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금 이런 말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상근기 인물이며 일념법으로써 일념을 깨달을 깨달아 '일념'이라는 낱말의 뜻에 대해서 올바르게 인식하는 많이 아는 거룩한 인물이다.
인간이 어리석어서 "언어로 표현될 수 없는 것이 도" 라는 말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인간의 어리석음이란 "언어가 없다"는 말에 대해서도 이해 할 수 있다고 여긴다는 것이며, 空 이라는 말이나, '無' 라는 말에 대해서도 이해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인간이 이해 한다는 것은 '공'을 이해 하는 것이 아니라, '공'이라는 말에 대해서 상상하는 것이며, '무' 또한 '무'라는 말에 대해서 상상하는 것이다. '행복'을 아는 것이 아니라 '행복'이라는 말에 대해서 상상하는 것과 같은 것이며, '평화'를 아는 것이 아니라 '평화'라는 말에 대해서 상상하는 것이며, 자유를 이해 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라는 말에 대해서 상상하는 것일 뿐, 자유에 대해서 아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일념'이라는 말 또한 한글로써는 '한생각'이라는 단순한 낱말에 불과하기 때문에 누구나 이해 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이 '자유나 평화' 라는 말에 대해서 상상하면서 그것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다고 착각하듯이 '일념'이라는 낱말 또한 그런 방식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우이독경'이라고 하는 것이다.
만약에 인간이 '일념'이라는 말의 뜻에 대해서 올바르게 이해 할 수 있다면, 그때 비로소 '진리'라는 말에 대해서 상상하는 이해가 아니라, 진리라는 말의 본래의 뜻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다는 뜻이다.
도가의 일념법 강좌의 내용들이 '명색의 동일시에 대한 착각'에 대한 내용들과 함께 '언어의 상대성'에 대한 내용들이다. '도가'의 '화원'의 강의와 함께 기초 수행에 필요한 주요 문구 중 하나를 소개한다면... 석가모니의 "무상한 것은 나가 아니다, 수상행식도 이와 같다"는 '일념법 명상수행' 내용과는 달리 좀더 직접적인 내용들이기에 한구절만 소개하는 것이다.
"나는 나가 아니다" 라는 말로 시작되는데, 한구절만 인용하자면 "나는 나가 아니다, 나는 나라는 생각이다, 생각으로 이루어진 것은 본래 없는 것이다" 는 문구이다.
사실 인간은 인간이 무엇인지 모르며, 언어의 기원이 무엇인지 조차 이해 할 수 없다. 더 나아가 인간은 누구나 '내가 있다'는 자존심만 강할 뿐, '내가 있다, 나는 사람이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 라고 주장하지만... '내가 사람이다'라는 말에는 말만 무성할 뿐, 그 근거조차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이해 조차 불가능하기 때문에 인생에 해답이 없는 것이며, 지식이 지식이 아니라 무지이며, 무지이기 대문에 식자우환이라고 한 것이다.
일념법으로써 무지에서 벗어나 올바른 앎이 드러날때, 그때 비로소 '진리' 라는 낱말의 깊은 뜻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는 것이며, 도가의 선식 한가지만으로써 모든 질병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다. 도가의 가르침은 상대적인 편견, 단견, 소견을 떠난 올바른 앎이다. 올바른 앎이란 진리라는 말과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며, 진리란 인간 생명체의 원리에 대해서 이해 하는 것이다.
올바른 앎일때, 그때 비로소 근심과 걱정, 환상, 슬픔, 고통과 괴로움이 사라지는 것이다.
삶과 죽음이 상대적인 언어일 뿐, 본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진리의 길로써 그대에게 평화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