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과 중도 · 방편설 - 말변사

삶과 죽음에 대한 사유/ 인간의 조건 - 가치 있는 삶과 가치 없는 삶 - 소크라테스의 철학과 싯다르타의 철학과 진리에 대한 사유

일념법진원 2015. 7. 19. 07:40

사실, 예수의 말과 같이... 하늘(우주)의 입장에서 본다면, 인간세상 인간들의 삶이라는 것은... 땅속에 집을 짓고 사는 개미무리들을 보는 것과 같아서, 인간들의 존재에 대해서 굳이 가치를 부여할 만한 가치도 없는 것이다. 

 

사실, 개미무리들에게는 인간들과 같이, '내가 있다, 내가 개미다, 내가 산다'는 등의 자아의식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인간들 스스로 '자아'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개미 무리들에 대해서도 삶, 죽음이 있다고 믿겠지만, 인간들이 개미 무리들의 삶에 대해서 관심 두지 않듯이... 인간들의 삶에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다. 

 

사실, 개미 무리들과 인간무리들의 존재에 있어서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개미 무리들은 완전하게 무의식적인 행위로써 '내가 행위자'라는 생각이 없다는 것이며... 인간무리들 또한 대부분이 자신이 감지 할 수 없는 습관, 버릇에 따른 언행(言行)으로써의 무의식적인 행위로써 삶이지만... '내가 행위자'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삶이 고통이 아닐 수 없는 것이며, 더군다나 삶의 결과가 죽음이 아닐 수 없기 때문에... 인간들의 삶이라는 것에는 선택이 있는 것 같지만, 해답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신비스러운 일은... 그런 사실을 사실 그대로 올바르게 아는 지혜로운 앎으로써 인간의 한계에서 벗어난 인물들이 있었다는 것이며, 인간들에게 삶과 죽음이 없는 이치에 대한 설명에 대해서 '진리'라는 말로 전해져 온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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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세상은 영원한 것 같지만... 개개인들의 삶은 죽음이 전제된 한정된 것으로써 찰나지간이 아닐 수 없는 것이며, 살아 있는 인간이 많은 것 같지만... 사실 이미 죽어서 흙이된 인간류의 숫자와는 비교 조차 할 수 없는 극 소수에 불과한 것이며, 이와 같이 인간류의 삶이란... 자연계를 사실 그대로 올바르게 본다면 가치를 부여할 만한 가치도 없는 것이다. (인간류의 삶 자체가 아득한 옛날이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는... 사랑이나, 평화가 아니라, 삶의 전쟁과 같이 언쟁, 논쟁, 투쟁, 전쟁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들의 삶이라는 것을 사실 그대로 올바르게 본다면... 죽는 날까지 행복이나 평화, 자유... 사랑을 추구하며, 인생을 찾고자 노력 하는 것 같지만... 결코 만족하여 평화로울 수 있는 인간이 있을 수 없는 까닭은, 삶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과 같이 죽음이 무엇인지 조차 알 수 없는 삶의 결과는... 누구나 똑 같이, 모두가... 늙음과 병듦, 그리고 죽음이 아닐 수 없는 것으로써 투쟁만 있을 뿐, 헛된 삶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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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해답이 없을 것 같은 인간류의 존재에 대한 해답을 찾아 앎으로써... 삶과 죽음의 한계를 벗어난 인물들이 있었다는 것이며, 그들의 이야기가 어리석은 인간들의 뛰어난 언술로써 왜곡되었으나, 그 본질이 현시대까지 전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 이야기는 그들의 이야기이며, 단지 문자가 발전된 현시대의 가장 보편적인 언어로써 사실을 사실 그대로 설명하는 것이며, 가치 있는 삶, 검증된 삶, 즉 진리를 갈망하는 인연있는 진리와 인연있는 모든이들을 위한 삶의 지침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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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인간이 말은 같은 말이지만, 인간의 관념으로써 결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 있다면, '언어가 본래 없었다'는 말이다. 

 

"언어가 없다"는 말을 알아들을 수 없는 것이 아니라... 감각기관이 있기 때문에 그 말, 즉 '언어가 없다'는 말은 듣고 생각할 수 있는 말이지만, 언어가 없음을 아는 것이 아니라... 단지 '언어가 없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며, '언어가 없다'는 말의 뜻에 대해서는 이해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사실... '언어가 본래 없다'는 말은, '우주'가 없다는 말이며, 사람이 없다는 말이며, 영혼이나 귀신이 없다는 말이며, 인간세상이 없다는 말이기 때문이며, 더 나아가 자신의 나 조차 없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이 있기 때문에 언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언어가 있기 때문에, '인간'이라는 말이 있는 것이며, 인간이라는 말이 없다면... 인간이 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뜻이다) 

 

사실, 진리란 이토록 단순한 것이며, 지극히 논리적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둔한 자가 아니라면... 누구나 이해 할 수 있는 것이며, 알고 보면 너무나도 당연하기 때문에... 절대로 변할 수 없는 앎으로써의 불변의 진리 라고 하는 것이다.

 

사실, 싯다르타의 비유법을 보니, 아래와 같은 이야기가 있었는데, 삶과 죽음이 사실 허상(虛想)이라는 뜻에 대한 설명이다. 

 

 

어느 하근기 수행자가 '싯다르타'에게 ... '사람이 죽으면 어디로 가는 것입니까' 라고 물으니. 싯다르타...  설명 하기를...  

 

"이곳에 모닥불이 있다, 그런데 연로가 다 타고나니 모닥불이 꺼졌다. 그렇다면... 활활 타던 불이 사라졌는데... 그 불이 동으로 갔는냐, 서로 갔느냐, 남으로 갔느냐, 북으로 갔느냐, 하늘로 갔느냐, 아니면 땅으로  갔느냐" 라고 물으니, 중생 답하기를... 그 물음은 옳지 않습니다, 라는 이야기이다.

 

그러자, 싯다르타 다시 말하기를... 너의 그 질문, 즉 '사람이 죽으면 어디로 가느냐'는 질문이 이와 같이 옳은 질문이 아니다'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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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이겠는가?

인간의 삶이라는 것과 죽음이라는 것... 본래, 원인 없이 나타난 것이기 때문에 원인없이 사라지는 것이라는 뜻이다. 왜냐하면 인간이 본래 있는 것이 아니라, 생각에 의존하여 생겨난 것이기 때문이며, 우주만상만물들 또한 그러하기 때문이다.

 

다만 인간은 생각의 생멸의 윤회현상에 대해서 스스로 깨달아 알 수 없기 때문에.... 그 원인, 삶과 죽음의 원인에 대해서, 신, 하나님, 절대자, 영혼 따위의 이름들을 창조하게 된 것이다는 뜻이다. (언어, 말, 말, 말을 창조한 것은... 다른 것들이 아니라, 한글을 세종대왕이 창재했다는 말과 같이, 인간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뜻이다)

 

 

사실, 그렇기 때문에... 살아 있는 동안에 '네 이웃을 네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과 같이, 다툼, 경쟁, 투쟁하는 삶이 아니라... 공격하거나, 방어하거나, 회피하는 삶이 아니라... 존재 자체로써 순간 순간을 기쁨으로 존재할 수 있어야만 한다는 뜻이며... 올바른 앎으로써 가능한 일이라는 뜻이며, 그 방법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이다.

 

 

사실, '소크라테스의 철학' 또한 표현 방법이 다를 뿐, 싯다르타의 설명과 똑 같다는 뜻이다.

 

사실, 예수의 진리가 언술이 뛰어난 자들에 의해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말로 왜곡되어 종교나부랭이들의 탐욕을 위한 욕망의 도구로 전락된 것과 같이... 플라톤이라는 중생의 어리석음에 의해서 왜곡된 것이며, 언술이 뛰어난 자들의 말재간으로써 변질되었으나, 본질은 똑 같다는 뜻이다.

 

 

사실, 소크라테스는 인간이 가치 있는 삶을 위해서는 자신의 나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는 방식으로 설명하는 것이며,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을 인용한 것이지만... 사실 인간들에게 '너희는 모든 것을 다 아는 것 같지만, 정작 자신의 몸과 마음에 대해서 아는 것이 단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 알아야 한다'고 설명한 것이며, 인간들의 사랑에 대해서 신을 비유로 들어 설명하거나... 진정한 정의, 진정한 용기에 대해서 사유해 보라는 방식으로 설명한 것이다. (인간은 인간으로서 동등해야 하기 때문이며, 누구나 평등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지식이라는, 언술이 뛰어난 자들에 의해서 종교들이 생겨나서 전쟁을 하는 것과 같이... 국가간의 전쟁이나, 개개인들의 경쟁 또한 지식의 산물이 아닐 수 없다는 뜻이다, 소위 '깨달음, 도, 진리'에 대해서 무지하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에 대한 남겨진 글들을 보다 보니...  '철학'이라는 말은 본래, 그리스어 '필로소피아(Philosophia)'를 번역한 말인데, 이 필로소피아 라는 말은 '필로스(사랑)'와 '소피아(앎)'가 합해져서 이루어진 말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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앎을 사랑하는 사람은 적어도 자기가 무엇인가를 모른다는 사실만은 알고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곧, 자기 자신의 무지를 자각하고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앎을 사랑하는 사람, 곧 철학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학교에 다니면서 끊임없이 모르는 것을 새로 배워 알게 된다고 해서 우리를 철학자로 부르는 사람은 없으니, 플라톤이 이야기하는 '앎의 사랑(철학)'에서 뜻하는 '앎'이란 우리가 보통 생각하고 있는 앎과 딴판인 앎이 아닐까요?

 

 델포이 신탁이 소크라테스를 가장 슬기로운 사람이라고 한 것은 다른 뜻이 아니라, 소크라테스나 그 밖의 똑똑한 척하는 다른 사람들이나 모른다는 점에서는 꼭 같은데,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다른 사람들은 자기가 모른다는 사실조차도 모르는 데에 견주어 소크라테스는 적어도 자기가 모른다는 사실만은 알고 있으니, 자기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는 한 가지 점에서만은 소크라테스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낫다는 뜻이라는 것을 깨우친 것이지요. 이 이야기는 플라톤의 대화록 '소크라테스의 변명'에 나옵니다.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은 본디 델포이 신전의 담벼락에 씌어 있었던 말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가 이 말을 즐겨 인용했기 때문에 이 말을 들으면 우리는 곧 소크라테스를 연상하게 됩니다. 소크라테스는 이 말을 "너 자신이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알라. 그래야만 너는 비로소 참된 앎을 찾아 나서는 출발점에 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네가 정작 아무것도 모르면서 뭔가 아는 척하는 동안은 너는 그 거짓된 앎이나 쥐꼬리만한 단편적인 앎에 만족해서 참된 앎로부터 등을 돌리고 셈인데,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 거짓된 앎을 지니고 있는 것보다 열 배, 백 배나 훨씬 더 낫다." 고 해석한 것이지요.

 

자기가 모른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는 사람만이 알고 싶은 절실한 소망을 갖게 되고, 이 앎에 대한 간절한 사랑만이 우리를 참된 지식으로 이끌어 가는 원동력이 되는바, 철학이란 아까 이야기했듯이 바로 이 참된 자식에 대한 간절한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사랑은 결핍을 느끼는 데에서 출발하는데, 모르는 것은 아는 것이 없는 것, 곧 앎의 결핍이고, 이 결핍상태를 가득 채우고자 하는 욕구는 곧 앎에 대한 사랑을 불러일으켜 우리로 하여금 철학의 길로 들어서게 하기 때문입니다. 


 - 윤구병, '골치 안 아픈 철학 이야기'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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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진정으로 현명한 자라면, 위의 논술, 언술들에 대해서 어리석은 자들의 헛소리라는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이해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소크라테스의 '자기가 모른다는 사실만을 안다'는 말은 사실... 소크라테스는 싯다르타 또는 예수 등과 같이... 인간들이 모르는 것을 나는 안다는 뜻으로써, 인간들의 앎이란... 모든 것을 다 아는 것 같지만, 정작 자신의 몸과 마음에 대해서 스스로 아는 것이 단 하나도 없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들이 결핍을 느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언어'가 본래 없는 것' 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인식, 인지할 수 없기 때문이며, '지식이 없었던 어린아이시절'을 경험 하지만... 경험 이전의 사고에 대해서 기억할 수 없기 때문이며... 언어가 본래 없었지만, 상대적인 언어, 즉 양 극단이 아닐 수 없는 언어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이 언어의 함정, 언어의 늪에서 헤어날 수 없는 까닭은... 자신이 '언어로 구성된' 것으로서 '언어체'이기 때문이며, 지식으로 구성된 '지성체'가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육체가 나라는 생각은 육체가 나가 아니라는 생각과 상대적인 생각으로써의 단견이 아닐 수 없는 것이며, 이와 같이 언어 자체가 상대적인 것으로써... 결코 절대적인 앎이 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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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엄밀히 말하자면... 철학이란 지식이라는 인간들의 앎이, 상대적인 언어로 구성된 것으로써 허구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아 아는 올바른 앎을 이르는 말인 것이며, '이웃을 네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의 말과 같이... 인간들의 인간들간의 진정한 사랑을 위한 올바른 앎으로써의 '진리의 앎'에 대한 가르침이라는 뜻이다. 

 

위의 언술들과 같이... 그들의 말에 대해서까지도 '내가 옳다는 방식'으로 자기를 합리화 시키려는 인간들의 무지와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야만 가치 있는 삶일 수 있다는 뜻이다. 정치든 경제든, 종교든 학문이든... 인간들 개개인들은 자신이 주체라고 생각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세상이 항상 시끄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며, 행복한 인간을 찾아 볼 수 없는 것이며, 사실 행복이 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불행과 상대적인 것이 행복으로써 절대적인 행복이 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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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언어가 본래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뜻이며, 인간은 누구나 언어에 구속되었으나, 그런 사실에 대해서 미루어 짐작하거나 상상 조차 불가능하기 때문에, 인간은, 인간들의 삶이란 항상... 스스로 경험할 수 없는 태어남과 죽음의 중간에 서 있는 것이다. 그런 사실을 깨닫지 못하므로써... 삶이 있다는 생각과 행복이 있다는 상대적인 생각들 중의 한편에 집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본래 나가 아닌 것에 대해서 '나' 라고 알게 된, 육체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생겨난 욕망의 늪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이 번뇌와 망상에서 벗어날 수 없는 까닭은... 자신의 생각의 윤회현상에 대해서 스스로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스스로 알 수 없는 까닭은, 자신이 스스로 아는 것으로써 자신을 인식하게 된 것이 아니라... 어린 아이가 말을 배우는 것과 같이, 남들의 말에 의존하여 자신을 인식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길, 방법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이며, 이곳의 모든 이야기들, 언어에 대한 설명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말이 일념법, 일념명상법이라는 수행방법이며, 자신에 대해서 스스로 알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다.   

 

지식을 넘어선 지혜를 앎으로써 비로소 올바른 사랑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이며, 진정한 행복과 자유, 고요함의 평화로움으로써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진리와 인연있는이에게 영원한 평화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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