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론 - 잘사는 삶 · 올바른 삶

행복의 조건 / 음식문화의 어리석음과 건강 장수의 원리 / 지식의 무지와 식자우환

일념법진원 2014. 8. 18. 14:56

사실 문명. 문화라는 말 자체가 인간의 어리석음을 대변하는 말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인간이 인간이기 때문에 자연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이라는 전제하에 창조된 말이 문명, 문화라는 말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무한한 어리석음은 불치명이나 난치병, 희귀병 등의 인간들에게 나타나는 모든 질병들이 자연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이해 조차 불가능 하기 때문이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동물들에게는 그런 질병들... 불치병이나 난치병, 희귀 질병들이 생겨나지 않는다는 사실에 대해서 이해 하려 들지 않기 때문에 무한한 어리석음이라고 하는 것이다.

 

사실 인간이 짐승, 동물들 보다 지능이 더 뛰어났기 때문에 스스로 '인간, 사람'이라는 주장은 근거 없는 말이며, 오직 인간의 척도로써만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무한한 어리석음의 소치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자연상태가 지능이 없는 것 같지만, 사실 자연의 입장에서 본다면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물체들 중에서 가장 어리석은 동물이 인간동물이기 때문이다. 

 

자연상태의 짐승들, 동물들에게는 최소한 인간들과 같은 질병들이 없으며, 서로가 명성이나 재물을 얻겠다는 경쟁이나 투쟁도 없다. 생활 능력 또한 그러하다. 생활능력이라는 말은 생명활동을 위한 능력을 뜻하는 말이며, 생명활동이라는 말은 생명유지 본능에 따른 건강한 몸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과 함께 대를 이어 나가는 능력이며, 자연의 섭리와 같은 자연적인 능력이며 또한 자연계의 생태고리와 같은 현상이다. 

 

문명의 발전과 더불어 발전 된 것들이 인간들간의 전쟁이며, 경쟁이며, 더 나아가 범죄와의 전쟁들이며, 개개인들에게는 자신만이 경험하게 되는 질병들과의 전쟁들이다. 최소한 자연계의 생명체들은 자신들의 몸의 건강 만큼은 스스로 온전하게 지킬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뜻이며, 오직 인간동물들만이 자신의 몸에 대한 건강 조차도 남들의 말에, 남들에게 의존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시실 몸 뿐만이 아니라 마음 조차도 편안하게 간직할 수 없으므로 하여 수많은 종교나부랭이들을 비롯하여 명상집단들... 거기에다 무속신앙들 까지, 다양하기만 하지만, 어느것 하나 현실에 만족해 하는 사람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인간의 가장 큰 어리석음 중 하나가. 지식의 수준 즉 학력의 수준에 따라서. 학력이 높은 사람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이 말은 돈이 곧 행복이며, 인간들의 삶의 목적이 겨우 돈을 더 많이 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돈을 벌기 위해서 산다고 생각하는 인간무리들... 정녕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것들은 닭대가리보다도 더 머리가 아둔한 중생이며, 낚시 바늘을 끊임없이 물어대는 붕어 보다도 지응이 더 낮은 어리석은 중생이 아닐 수 없다. 

돈을 많이 번다는 것은 언술이 뛰어나사 어린아이들의 과자를 뺏어 먹는 어리석음과 다르지 않은 것이며, 잔재주를 부려서 남들의 돈을 훔치는 도둑놈들이나 사기꾼들과 다를 것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 만약에 돈이 많아서, 돈을 많이 벌어서 행복한 사람이 있다면 옳은 말일 수도 있다. 돈과 행복을 동일시 한다면, 자연은 불행한 것이며, 문명을 모르던 원주민들이 불행한 것이며, 자연이 불행한 것이며, 빈민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가 불행한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사실 원주민이나 구석기 시대에 살던 사람들에게는 '행복'이라는 말이 없었다. 불행이라는 말이 있기 때문에 행복이라는 말이 생겨난 것이지만, 인간은 불행이 없는 행복이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 같다. 

 

행복이 없는 불행도 있을 수 없는 것이며, 불행이 없는 행복 또한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사살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이해 할 수 있다면... 지식을 초월한 올바른 앎이며, 이런 앎에 대해서 참된 이치, 진리, 올바른 앎이라고 하는 것이며, 광명의 지혜 라는 말 등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인간의 무한한 어리석음은 학력 수준이 높은 자들이 학력수준이 낮은 자들보더 돈을 더 많이 벌기 때문에 행복한 것이라고 단정 짓는 다는 것이다. 대체 어떤 기준으로서 행복을 규정하는 것일까? 그렇다. 인간들의 행복이라는 말, 그 행복이라는 말에는 어떤 분명한 기준이 없다. 그렇다면 인간들의 행복에 대한 몇 가지의 조건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인간에게 행복의 조건이 있다면 그 첫째는 돈이 아니라 건강한 몸이라고 가정한다면, 학문수준이 높아서 정신노동이라는 말로 표현하는 연구직에 종사하는 사람들과 육체노동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육체 노동자들의 경우 돈을 많이 버는 자들의 차이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사실 치매 또는 정신질환의 일종인 우울증, 그리고 암을 비롯하여 신경성 질병들 그리고 혈액관련 질병들은 육체노동을 하는 사람들 보다 정신노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더 많이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만약에 지식이라는 것들이 올바른 앎이 겨자씨 만큼이라도 있다면, 돈이나 명성 따위와 행복이 동일한 것이라고 주장하지는 않을 것이며, 행복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서 증명할 수 있는 조사가 진행 되었을 것이다. 가령 육체노동자와 정신노동자와의 몸의 건강상태에 대해서 조사 한다든지 등으로써.

 

사실 정신노동자들은 식자우환이라는 말과 같이 지식으로써 해답을 찾을 수 없는 인생에 대한 고뇌가 더  많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한 돈을 많이 버는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돈을 적게 버는 사람들보다 질병이 더 많은 까닭은 욕망이 더 크기 때문이며, 근심걱정이 더 많기 때문이다. 

 

돈을 많이 버는 사람들에게 상대적으로 질병이 더 많은 까닭은 몸에 좋은 음식을 탐하기 때문이며, 그만큼 더 많은 영양소의 음식물을 과다 섭취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행복이나 평화로운 삶을 위한 가장 종요한 조건이 있다면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건강한 몸을 유지하는 일이다. 그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 그리고 그 건강의 기준은 어떤 특별한 인간들이 아니라 자연계에 존재하는 동물들과 같은 건강함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인간 또한 본래 인간이 아니라 그것들과 다르지 않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가령 한달에 백만원을 버는 사람은 한달에 이백만원을 버는 사람을 부러워 하며, 한달에 이백만원을 버는 사람들은 한달에 오백만원을 버는 사람들을 더 부러워 한다. 그렇다고 하여 한달에 천만원을 버는 사람들 또한 자신의 삶에 만족할 수 없기 때문에 재벌을 꿈꾼다. 그리고 재벌이 되면, 그것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에 도전하고 싶어진다는 것이다.

인간의 욕망이 그러하다.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이 착각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무한한 어리석음이라고 하는 것이다. 

 

 

인간들의 무한한 어리석음이란 남들의 말, 말, 말들, 정보 등의 사실적이 아닌 것들, 즉 통념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잘먹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는 말 자체가 무한한 어리석음이라는 뜻이다. 옛날 음식이 더 좋다는 사고방식을 비롯하여 음식문화라는 말이 창조된 것을 보면, 자연상태에서 벗어난 인간들의 어리석음의 무한함을 엿볼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말인 것 같다. 왜냐하면 인간들에게 나타나는 모든 질병들의 원인이 곧 몸에 좋은 음식, 맛 있는 음식, 보양식, 임금님이 먹는 음식 등으로 표현되는 음식문화가 현대인들에게 나타나는 모든 질병의 근본 원인이기 때문이다. 

 

 

소위 비타민이 필수적인 영양소라고 떠들었던 인간들, 지식인들, 의학계들... 불과 몇 년 전에만 해도 당연하다는 듯이, 전문가라는 것들까지 동원하여 주장하던 것들이... 지금은 아니라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인간들이 건강식품에 집착하는 까닭은 죽음이 두렵기 때문이며, 더 잘살겠다고, 더 오래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짓들 또한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라.... 삶이 기쁨이거나 즐거움이라서가 아니라 경험할 수 없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사실 인간들에게 필요한 것은 지식이 아니라, 올바른 앎이다.

올바른 앎이란 인간들의 그런 모든 정보들이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 허구적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이해 하는 앎이다.

비타민이 몸에 필수적인 영양소의 공급원이라고 주장하던 자들이... 소위 지성체들이며, 소위 의약, 의료, 음식... 등의 전문가 또는 박사.. 또는 교수... 라는 자들이며, 명색이 세상에 이름을 알리려는 자들이며, 부와 명성을 쫒는 자들의 대표적인 자들이다. 그리고 지금은 그것이 아니라고 떠드는 것들 또한 전문가라는 것들이다.

 

몸에 암이 생기면 그것을 떼어 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들 또한 그것들이다. 자연의 입장에서 본다면 가장 무식하고 아리석은 자들이 소위 '박사' 라는 자들이며, 더 어리석은 자들이 종교나 학문을 연구한다는 자들이다. 

 

왜, 그런 인간들에 대해서 가장 무식하고 어리석은 자들이라고 하는가 하면, 수천년 동안이나 연구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여전히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사실은 해답이 없는 것에 대해서 연구하기 때문에 무한한 어리석음이라고 하는 것이다. 

 

소위 지성체라는 것들의 주장은 끊임없이 이어지지만 정작 그것들은 지식의 시작도 모르며, 지식이 왜 끝이 없는 지 조차도 이해 할 수 없는 자들이다. 그런데 그런 사실에 대해서 왜 이해 할 수 없는지에 대해서 조차 이해 할 수 없으니. 무한한 어리석음이 아니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생명이 끝이 분명한데, 지식이 끝이 없다면... 그 이유라도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말이다.

 

개인에게는 자신의 생명이 가장 소중한 것이다. 그렇다면 지식은 그 생명체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라야 한다. 그런데 그대 자신의 생명은 그 끝이 있는데, 그대가 지닌 지식은 끝이 없다면... 그대의 지식은 그대를 위한 것인가, 아니면 그대가 그 쓸모 없는 지식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인가?

이런 사실에 대해서 이해 조차 불가능한 지식은... 과연 쓸모 있는 것들인가?

만약에 지식이 쓸모 있는 것이라면, 과연 어디에 쓸모가 있는 것일까?

 

그대는 어찌 생각하는가?

쓸모 없는 것이라면, 버려야 하는 것 아닌가?

그대의 지식들... 버려야 하는 쓰레기들을 끓어 안고 있는 것은 아닌가?

지식들, 정보를 끌어 모든 다는 것은 쓰레기를 끌어 모으는 것과 같은 것들이다.

이제 쓰고 버릴 때가 되었기 때문에 그 길을 알리려는 것이다.

 

사실 여기서 하고자 하는 말의 주요 내용은 건강을 위한 비법이며, 돈을 절약하면서도 건강하게 오래 살아갈 수 있는 비법이다. 사실 '도' 라는 말에 대한 이해가 시작되거나 또는 일념을 깨닫고 더 나아가 많이 아는 거룩한 인물들에게.  마음의 평화를 넘어서 육체적이거나 생활적인 면에서 더 큰 소득이 있다면... 생활비용, 가계비용이 대폭 절감된다는 것이다. 

 

건강이 악화 되거나 건강한 몸을 위해서 소위 '유기농'이라는 식품만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있다. 돈을 많이 버는 사람들 뿐만이 아니라, 돈이 부족하더라도 매스컴에서 떠들면... 비타민이 양양소라고 주장했던 것과 같이 값비싼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는 것이며, 또한 문명발전의 이기물질들일 수밖에 없는 그릇 등의 생필품들 까지도 몸에 해로운 물질이 생긴다거나, 세균이 많다거나... 등등의 이유로써 끊임없이 더 소모적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식자우환이며, 아는 것이 병이라는 말이 생겨난 것이다. 

 

'도'를 이해 하기 시작하거나 일념을 깨닫고 더 나아가 많이 아는 거룩한 인물들에게는 그런 분별심이 사라진다. 유기농을 찾던 사람들이 가장 값이 싼 곡식아니 식픔을 먹더라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까닭은 올바른 지식이 분별일 뿐, 올바른 앎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알기 때문이다. 

간혹 수행자들과의 만남에서 하는 말이 있는데, '음식을 잘 한다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라 사실상 큰 죄를 짓는 일'이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그 맛이 있는 음식들, 요리 솜씨가 좋다는 음식들이 모든 질병의 근본적인 원인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도를 이해 하는 사람들은 아픈 몸, 건강을 잃은 몸을 치유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분명히 알기 때문에 올바른 앎을 알면 아는 만큼 근심 걱정은 사라진다. 왜냐하면 불치병이라고 하더라도 자연의 섭리에 바탕을 둔  '도가의 약식'으로 온전히 치유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며, 설령 시한부 생명이라고 하더라도 단식과 병행하므로써 모든 질병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분명한 앎에 따른 신념이 있기 때문이다. 

 

 

불행이 전제되지 않은 행복이 있을 수 없듯이 좋은 것이라는 것들 또한 나쁜 것이 있기 때문에 있는 것이다. 절대적으로 좋은 것은 있을 수 없다는 뜻이며, 모두 상대적인 언어, 말, 말, 말에 구속된 것이며, 언어의 한계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고통을 겪는다는 뜻이다.

 

올바른 앎이란 절대적인 행복이 있을 수 없듯이 절대적인 불행 또한 있을 수 없다고 아는 앎이다. 유일한 선은 올바른 앎이며, 유일한 악은 지식이다 라는 소크라테스의 말 또한 이와 같은 맥락이다.

 

행복을 느끼는 것은 몸이 아니라 마음이다.

자신의 마음이 올바른 앎으로써 스스로 부족함이 없이 행복하다면, 타인들의 시선 따위에 관심이 없다는 뜻이다. 사실 먹고 산다는 일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다만 타인의 눈, 시선을 두려워 하는 까닭에 쓸모 없는 낭비기 많기 때문에 돋을 많이 벌어야만 행복한 것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사실 겉모습을 화려하게 꾸미는 자들이 가장 어리석은 자들이며, 세상에서 사장 비천하게 사는 자들이다. 왜냐하면 올바른 앎으로써 내면에 부족함이 없는 평화로운 사람이라면 남들의 시선 따위에 아랑곳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하나의 올바른 앎으로써만도 가능한 일이다. 왜냐하면 그대가 자신의 마음을 알 수 없듯이 남들 또한 그대의 마음을 이해 할 수 없다. 하지만 그대가 그대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 이해 하기 시작하면, 그대가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 이해 하는 만큼 남들의 마음에 대해서도 이해 하게 된다.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 온전하게 이해 하는 사람은 남들의 마음에 대해서 온전하게 이해 하기 때문에 그들, 즉 남들의 어떤 말에 대해서도 자신의 마음을 이해 하듯이 온전하게 이해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마음을 이해 하는 사람은 결코 자신의 겉모습에 관심이 없는 것이며, 꾸미지 않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가난한 소크라테스의 모습이며, 단별신사였던 예수의 모습이며, 짚신을 새끼줄로 묶어서 신고 다녔다는 노자와 장자 등의 도와 간격이 사라진 사람들이다. 그들의 앎은 단순한 앎이다. 자연과 자아와의 분별이 사라진 것 뿐이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근심과 걱정, 불안 초조 긴장에서 벗어날 수 없는 까닭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첫째 원인이며, 둘째는 타인들로부터 들었던 앎들, 경험에 바탕을 둔 사고방식들에 대해서 허구적인 것이 아니라 사실적인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그것이 착각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도. 진리. 깨달음 등으로 표현되는 참된 이치, 올바른 앎이란... 남들로부터 들어서 아는 앎이 아니라 스스로 깨달아 아는 앎으로써 마음의 평화를 누리는 것이며, 무위자연의 자유와 같은 자유라는 말이 없는 자유를 누리는 것이다. 

 

그대에게 평화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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