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구를 만들면서 시작된 인간의 문명, 그리고 명색이 문명사회를 주장하는 지성체들의 어리석음은 우주보다 더 무한한 것 같다.
사실 인간들은 자연상태에서 벗어남에 대해서 문명이라고 주장하며, 도덕성을 주장하지만, 어떤 인간도 도덕을 따를 수 없으며, 사실 도덕이라는 말의 뜻 조차 정의할 수 없는 것들이 소위 지성체라고 자부하는 중생무리들이다.
분명한 것은 언어, 말, 말, 말을 창조한 것은 인간이다.
인간이 언어를 창조한 것이며, 한글은 세종대왕이 만든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식하고 어리석은 자들은 말, 말, 말 까지도 '하나님이 만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하며, 신이 만든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 신, 영혼, 부처, 귀신, 신경.... 이라는 말, 말, 말들... 모두 인간이 만든 말이며, 허구적인 것들이다. 물론 그대의 마음이라는 것 또한 그러하다. 근거가 없다는 말이며,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는 말이며, 허구적이라는 말이다.
그것이 무엇이든지... 말, 말, 말로써만 존재하는 것들일 뿐, 사실적인 것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말들 또한 하근기 중생이 듣는다면 웃어버릴 수 밖에 없는 말이며, 상근기 인물들만이 이해가 가능한 말이다. 다만, 지적으로나마 도를 이해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으며,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대해서 이해 하기에 앞서, 먼저 자신의 마음을 이해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사실 타인의 마음에 대해서 절대로 이해 할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이해 하는 사람들, 그들에 대해서 많이 아는 거룩한 인물들이며, 상근기 인물들이라고 하는 것이다.
'道'는 자연의 모태이며, '德'은 자연의 배풂과 같은 것이다.
자연의 배풂이라는 말은 전에 들어본 적이 없는 말이겠지만, 무위자연의 존재 자체를 이르는 말로써 생물들의 존재에 필수적인 요소들을 이르는 말이다. 본래 '덕'이라는 말은 '지 수 화 풍'의 작용과 같은 '무위의 행'을 일컷는 말이다.
노자의 도관에는 '도'에 대한 설명과 함께 '덕'에 대한 비유들이 있지만, 인간 관념으로써는 납득할 수 없는 말들이다. 하지만 '덕'에 대한 올바른 이해란 무위자연의 도리와 같이 '내가 행위한다'는 사고방식의 행위와는 달리 '내가'라는 주체가 없는 행위를 일컷는 말이다. 그에 대해서 '무위의 덕'이라는 말로 표현된 것이며, 욕망이 모두 사라진 상태의 행위를 이르는 말로써 오직 인간들을 위해서 존재하는 (소위 도를 깨달은 인물들)'성인, 성자' 들의 행위를 일컷는 말이다. 그 대표적인 인물들이 소크라테스이며, 노자와 장자이며, 석가모니이며, 예수 등으로써 '불이일원'을 역설했던 인물들이다.
인간은 항상 자신을 볼 수 없기 때문에 남들을 본다. 남들을 봄으로써 자신을 이해 하려는 것이다. 그렇게 길들여졌기 때문이며, 그렇게 듣고 보고 배웠기 때문이다.
'도' 란... 신비를 추구하는 일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 완전하게 이해 함을 이르는 말이다. 왜냐하면 '일체유심조의 더 깊은 뜻'에 대한 설명과 같이 천지만물이 인간보다 더 먼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에 의해서 창조된 것이 천지만물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는 '네 안에 하나님이 있다'고 말한 것이며,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했던 것이다.
사실 인간들의 언어는 소통의 도구가 아니라, 다툼, 논란, 논쟁의 도구이다.
어제 '은주'와 '화원'과의 대화 중에 나온 말들인데, 올바른 앎이 무엇인지. 일념수행과 더불어 지적으로 분명히 이해 하는 많이 아는 거룩한 인물들의 '올바른 앎'의 정도를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인간들의 도에 대한 이해는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황당한 것들이며, 허무맹랑한 것들이다. 가장 보편적인 도에 대한 이해는 다른 것이 아니라, 인간들이 수천 수만년 동안 추구해 왔으나, 지금도 추구하는 '행복한 세상, 평화로운 세상'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 환상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이해 하는 것이다.
사실 이런 말에 대해서 이해 조차 불가능한 자들에 대해서 하근기 중생이라고 하는 것이며, 반신반의 하는 자들에 대해서 중근기라고 하는 것이며, 사실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상근기라는 말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말 조차 이해 할 수 없는 하근기 중생들에 의해서 '천국'이라는 말이나 '지옥'이라는 말이 창조된 것이다. 인류의 역사들... 행복한 세상이라는 말은 무성하지만, 우주를 여행 하는 현 시대에도 '행복한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그래도, 그래도, 그래도... 라며 환상을 쫒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날 수 없으니, 중이라고 하는 것이다.
사람다운 사람, 학생다운 학생, 여자다운 여자, 남자다운 남자, 아버지 다운 아버지, 어머지 다운 어머니, 자식다운 자식, 선생다운 선생, 노인다운 노인, 의사다운 의사... 그 기준이 있을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아는 앎이 올바른 앎이라는 뜻이다.
사람은 누구나 상대방의 마음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다는 전제를 바탕에 두고 대화, 토론을 한다. 그 토론은 토론이 아니라 다툼이며, 논란이며, 투쟁이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이해 할 수 있는 사람들... 그들에 대해서 지적으로나마 '도'를 이해 하는 사람이며 상근기 인물이라고 하는 것이다.
사실 인간이 인간에 대해서 믿지 못하고 실망할 수밖에 없는 까닭은... 노인들이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 옹고집이 될 수밖에 없는 까닭은, 죽음 앞에서 회한, 여한이 남는 까닭은,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 할 수 있다는 앎이 착각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인지 조차 할 수 없는 무지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항상 반복 되는 말이 있는데, 자신의 마음을 이해 할 수 없는 사람이 타인의 마음을 이해 할 수 있다고 생각 한다는 것, 그 자체가 말도 안되는 소리이며, 어불성설이라는 말이다.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 이해 하는 만큼, 꼭 그만큼 타인의 마음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어제 대화를 통해서 그들의 앎의 깊이를 여실히 본다.
소위 인문학을 강의하는 자들, 명색이 인문학의 대가, 인문학의 세계 최고의 권위자.. 라는 말로 칭송되는 자들의 말속에서는 감히 찾아볼 수 없는 귀하디 귀한 말이다. 학문의 무지를 올바르게 인식하는 앎이기 때문에 올바른 앎이라고 하는 것이다.
상대의 마음에 대해서 이해가 가능할 거라고 상상하지 말라는 말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은 적정하며, 다른 사람들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자기 최면에 빠져 있다. 자신의 나를 볼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시시비비를 가리려 하기 때문에 중생, 하근기 중생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원성이나 다양성이 모두 허구라는 뜻이며, 올바른 앎이란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 이해 하는 것이라는 말이 대화의 요점이다. 자신의 마음을 이해 하지 못하는 한, 절대로 남의 마음을 이해 할 수 없다는 앎이 참다운 앎이며, 올바른 앎이라는 말이다.
'은주'의 말을 옮긴다면.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관념으로 다른 사람을 볼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남의 마음에 대해서 이해가 가능하다는 사고에 대해서 의심할 수 없다. 그런데 사실은 남의 마음을 이해 할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 분명히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인간들의 언어가 동물들의 언어와 같이 소통의 도구가 아니라, 갈등의 도구, 논쟁의 도구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까닭은 서로가 자기의 사고방식만을 주장하기 때문이다.
서로가... 인간들 모두가 "우리 인간들은 누구나 -인생의 해답을 모르는 사람이다-' 라는 한구절을 큰 글씨로 써서, 탁자 앞에 놓아두고... 그리고 토론을 시작 한다면, 이어 간다면... 그 토론은 갈등이나, 다툼이나 논쟁이나 투쟁의 도구가 아니라, 진정한 소통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정부는 정부의 입장을 말하지만.... 그나마 정부는 다수결의 원칙에 의해서 국민들이 선택한 것이다. 하지만 정부에 대해서 완전하게 따르는 국민은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세상에 모든 이합집산들의 문제 또한 서로가 자기의 이익만을 위해서 투쟁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의 이익을 위해서 경쟁한다는 것은 바꾸어 말한다면... 서로가 서로간의 소득을 줄이기 위해서 경쟁, 투쟁하는 것이다.
선이 선이 아니라, 선을 가장한 악행이 아닐 수 없다는 뜻이다.
사실 인간세상의 모든 법칙들이 그러하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세상에 대해서 '아귀다툼'이라고 한 것이다. '아귀다툼'이라는 말의 본래의 뜻은 '자신의 귀신과의 싸움'이라는 뜻으로써 자신의 순수의식과 자신의 자아의식과의 싸움이며, 자신의 마음의 끊임없는 갈등에 따른 고통을 이르는 말이다.
마음의 갈등이 올바른 앎으로써 모두 사리지는 것이 곧 자유이며, 평화이며, 고요함의 경지이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자식의 입장에서 자식에게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입장에서 자식에게 주장하는 것이며, 자식 도한 아버지의 입장에서 아버지에게 '아버지 답지 못하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관념을 주장하는 것이다, 그대 또한 그러하다. 자신의 마음을 이해 하지 못하면서 타인의 마음을 이해 할 수 있다는 착각에 의해서 다툼이나 갈등이 생겨나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입장을 고집할 수밖에 없다. 그런 사실에 대해서 이해 하는 앎이 올바른 앎이며, 도를 이해 하는 것이다. 그런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이해 하기 때문에, 자신을 주장하지 아니하는 것이며, 자신을 고집하지 아니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바른 앎일 때에는 죽음 앞에서도 목숨을 구걸하지 않는 것이니. 소크라테스의 죽음과 예수의 죽음이 또한 그러하다.
'사람다운 사람'은 어디에 기준을 둔 말이겠는가?
'아버지 다운 아버지'는 어떤 기준에 적합해야 한다는 말일까?
'자식 다운 자식'은 어떤 기준일까?
사실 인간세상이 행복한 세상이거나 평화로운 세상이 될 수 없는 까닭은 인간들 모두가... 자신의 마음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무지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마음이 무엇인지 조차 이해 할 수 없는 중생들이 서로가 자신만의 관념이 옳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들의 언어는 소통의 도구가 아니라 갈등의 도구이며, 논란의 도구이며, 투쟁, 전쟁의 도구로 전락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만약에 '길잃은 어린 양과 같은 중생들이' 예수의 말을 예수의 입장에서 이해 할 수 있더라면... 수많은 종교나부랭이들이 생겨날 까닭이 없는 것이며, 석가모니의 말을 석가모니의 입장에서 이해 할 수 있더라면 불교라는 종교 또한 생겨날 수 없는 것이다.
소위 인문학을 강의 한다는 자들이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 라는 말에 대해서 소크라테스의 입장에서 이해 할 수 있다면... 그런 말재간으로써 다른 중생들을 현혹할 수 없는 것이다. 만약에 조금 아주 조금이라도 소크라테의 말에 대해서 이해 한다면... 감히 인문학 강의따위로써 중생들을 현혹 할 수 없는 것이다. 학문이나, 철학 따위의 지식들은 사실 소크라테스의 말에 대해서 이해 조차 불가능한 무지의 소산이다.
'철학은 무지'에서 시작된다'는 말을 했던 인물이 소크라테스이다.
이 말을 이해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도'를 이해 하는 것이며, 많이 아는 거룩한 인물이다. 인문학 등의 인간들의 학문들 모두가 허구적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이해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인간드의 모든 학문 따위들... 자신의 마음이 무엇인지 이해 조차 불가능한 자들의 말재간에 불과한 것들이기 때문에 가치 없는 앎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말하기를... '언술이 뛰아나 나의 말을 옮기는 자들, 그들이 그리스도의 적, 적그리스도' 라고 했던 것이다.
'도, 깨달음, 진리, 참된 이치' 라는 말이 있다.
'네 안에 하나님이 있다'는 말.
'네 본성이 부처'라는 말.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이며, 자신의 마음을 이해 하라는 말이다.
자신의 마음을 이해 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 법에 대해서 '일념법, 일념명상법'이라고 이름 지은 것이다. '생각의 원리'에 대해서 깨달아 알아야만 이해 할 수 있는 말들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 완전하게 이해 하여, 그것으로부터 탈출한다는 말이 '심해탈'이라는 말로써 석가모니로부터 전해져 오는 '해탈'이라는 말이며, 예수의 말이 왜곡된 말이 한글로 '구원'이라는 말로 전해진 것이다. 자신의 마음을 완전하게 이해 하여, 그것으로부터. '자신으로부터 승리하는 자가 되라'는 말이 예수의 진언이다.
세상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그대의 마음이 변하는 것이다.
세월이 가는 것이 아니라, 그대의 마음이 가는 것이다.
시간과 공간이 본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행복과 자유, 평화는 그대의 마음에 대한 이해에서 시작될 수 있는 것이다.
그대의 자신을 보라.
일념법이 진리이다.
일념의 무념처에서 깨달아 아는 것.
지식이 묻힌 곳.
언어가 사라진 곳.
그것이 모든 것이며, 정신적인 것들과 물질적인 것들의 기원이기 때문이다.
그대와 인류에게 평화 있기를...
일념명상의 집 '도가' 에서 --->> http://blog.daum.net/powwr116/?t__nil_login=myb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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