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올바른 앎으로 본다면 위르겐-하버마스. '미셀-푸코'의 지식과 일반인들의 지식과의 차이는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속담에 '도토리 키재기'라는 말이 있는데, 적절한 표현인 것 같다. 왜냐하면 사람들 누구나 자신의 기억속에 저장된 낱말들 중에서 일부분을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며, 그들 또한 또한 그와 같기 때문이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언어의 다양성과 조금 정교화된 언술, 말재간 뿐이다.
인간들의 지식의 바탕에는 모두가 똑 같은 공통점이 있는데, 변할 수 없는 공통점에 대해서 '고정관념'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것 같다. 그 고정관념의 첫째는 '내가 있다' 이며, 둘째는 '내가 사람이다' 이며, 셋째는 '내마음이 있다' 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남녀노수를 막론하고 인생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정의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들 누구나... 인간이 왜 인간인지, 인간의 근본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무지하기 때문이다.
사실 신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으며, 신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으며, 신이 죽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모두 올바른 앎이 아니기 때문에 주장만 하는 것일 뿐, 여전히 해답은 없다. 그대가 인생의 해답을 모르는 것과 같이, 그들 또한 인생의 해답을 모르는 것은 똑 같다는 사실. 모두 올바른 앎이 아니라 타인들로부터 들었던 것들... 기억세포에 저장된 말들을 조합하여 자기를 합리화 시기 위한 주장들이다. 말들은 무성한데, 정작 근거 없는 말들이며 잘 꾸며져 있다보니. 속을 수밖에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올바른 앎이란 단 하나도 없다.
여기서 말하는 올바른 앎이란, 이원성이나 다양성을 주장하는 지식이 아니라 이원성이나 다양성 등으로 포장된 그들의 주장들이 근거 없는 허구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이해 하는 앎을 이르는 말이다. 언어의 상대성에 대한 통찰을 뜻하는 말이다. 언어의 상대성에 대한 설명은 그들의 말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다시 설명될 것이다.
인문학의 거장이라는 사람들과 보통 사람들의 앎의 차이에 대해서 이해 해야만 한다.
사실 그들 또한 마음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이며, 보통 사람들 또한 마음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이다.
사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말은 '마음'이 구체적으로 무엇이냐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내가 있다' 고 주장하며, '내마음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사실상 자세히 관찰해 보면. '마음이 있다'는 말에는 아무런 근거가 없다. 더 나아가 '내가 사람이다'는 말 또한 근거가 없다.
세상 인구가 70억이라는데. 그 모든 사람들이 당연하다는 듯, '내가 사람이다, 내가 있다, 내마음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지금 어떤 사람이. 그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70억 인류가 당연하게 여기는 말들에 아무건 근거가 없다고 주장한다. 아니 단정 짓는다. 근거가 없다고. 지성체들의 모든 앎이 사실무근이라고 단정 짓는다.
'내가 사람이다' 라고 단정 짓는 앎이 올바른 앎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과연 사람일까? 아니면 다른 무엇일까?
'마음이 있다'고 단정짓는 앎이 올바른 앎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과연 마음이 있는 사람일까. 마음이 없는 사람일까? 이런 글을 쓰는 걸 보면, 그 또한 분명히 사람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내가 사람이다' 라는 앎과 '마음이 있다'는 앎은. 당연하다고 여기지만... 육하원칙으로 더라도 근거가 없는 말이다.
이런 사실에 대해서 설명하기 전에 지적으로나마 먼저 이해 해야 할 것이 있다.
'마음'이라는 것은 다른 무엇이 아니라 '욕망'의 다른 표현이며, 스트레스라는 말 또한 다른 것이 아니라, 욕망의 억제됨에 따라서 드러나는 정신적 소득이 아니라 정신적 억압에 의해서 나타나는 질병들이다. 사실 희귀난치병 또는 모든 정신적 질병들과 '신경'이라는 말로 시작되는 모든 질병들의 원인이 '스트레스'이며, 그 스트레스는 다른 것이 아니라, 욕망(소망, 희망, 욕구)의 억압, 억제 등에 의해서 나타나는 것이며 "생각의 작용"에 의해서 드러나는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생각의 원리" 라는 말을 염두에 두어야만 한다. 그것이 모든 것이며, 모든 것의 기원이기 때문이다.
학문에는 육하원칙이라는 원칙이 있다. 그 원칙에 바탕을 두어야만 논리적이라는 말이 성립된다. 하지만 논리적이라는 말 또한 논리적이라는 근거가 없다. 왜냐하면 언어의 근원, 원리를 이해 할 수 없는 것이 지성체이기 때문이다.
지성체는 언어의 시작 지점도 모르며, 언어의 끝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교육은 시작은 있으나, 그 끝이 없다. 지식은 왜 지식이 끝이 없는지에 대해서 조차 이해 할 수 없다. 지식의 바탕이 이미 어긋나 있기 때문이다. 본래 '사람이 아닌 것' 에 대해서 '사람이다'라는 가정하에 창조된 것이 지식이기 때문이다.
지성체들의 모든 원칙들 또한 어떤 원리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라, 근거가 없는 '내가 사람이다, 내가 마음이 있다'는 근거가 없는 말에 바탕을 둔 '원칙'이다. 논리적이라는 말이 있지만... 논리적이라는 말 자체가 논리적인 말이 아니다. 인간이 인간의 기원을 모르기 때문이다.
인류가. 아니 그대가 자유할 수 없으며, 평화로울 수 없으며, 행복할 수 없는 원인이다.
인류의 역사가 그런 사실을 증명한다. 역사이래 단 하루도 고요하고 평온한 날이 없었기 때문이다.
육하원칙이라는 말의 뜻을 보니.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이다.
육하원칙에 의하여 분명하다면, 논리적이라는 말에 합당한 말이다.
'내가 사람이다, 내게 마음이 있다, 신이 있다'는 말에 대해서만이라도 육하원칙에 의거하여 사실적인 것인지, 허구적인 말인지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다면.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이해 할 수 있다면. 지성체는 인류가 추구하는 평화로운 세상이 '문화'로써는 절대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다.
어려운 말도 아니며, 환상적인 말도 아니며, 현학적인 말도 아니다. 사실을 사실 그대로 설명하는 것이다. 꾸며진 말이 아니라 사실에 바탕을 둔 사실적인 말이다. 한글을 이해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며, 부인할 수 없는 말이다. 다만 전에 들어본 적이 없는 말이며, 인간세상에서는 처음으로 공개되는 말이다. (물론 책. 깨달음의 실체를 밝힌다. 그리고 책 비밀의 언어'에 소개된 내용이다)
'호랑이 담배피우던 시절, 달나라에 옥토끼가 있다고 믿던 시절' 그 이전에... 이런 사실에 대해서 설명했던 인물들이 있었다. 유일하게 석가모니와 예수의 말들 중에 있는데, 단 몇구절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그들의 말은 이제 달나라 계수나무아래 옥토끼가 옛말이듯, 그시대의 유물이며... 아이들의 동화에 지나지 않는다. 이중삼중 사중 오중으로 왜곡되고 변질 되어 근본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 그대는 '내가 사람이다' 라고 알며, '내 마음이 있다'고 안다. 그런 사실에 대해서 불변의 진리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불변의 진리는 진리가 아니라, 아무런 근거 없는 낭설이다. 지금 그 사실에 대해서 설명하려는 것이다.
물론 그대는 그대의 어린아이시절에 대해서 기억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지금부터의 설명을 통해서 이해는 가능한 일이다. 아니. 이해가 가능한 것이 아니라, 사실을 사실 그대로 알게 될 것이다. 너무도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아주아주 단순한 질문을 통해서 시작된다.
하나. 그대는. 지성체는 누구나 '내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내가 있다' 는 앎에 대한 주장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왜, 알게 된 것일까?
그대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내가 있다'고 알게 된 것인가?
어떤 연유에 의해서 그것에 대해서 사실적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대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내마음이 있다'고 알게된 것일까?
그 앎은 사실적인 것일까?
사실 인간은 누구나 자기를 주장한다.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하지만 그 마음이 언제 생겨났는지에 대해서는 기억할 수 없다. 분명히 마음이 있는데, 그 마음이 언제 어느때 어떤 사건에 의해서 생겨난 것인지에 대해서는 분명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마음'이라고 주장한다.
"내가 사람이다, 내 마음이 있다" 는 말. 근거가 있는 앎(말)인가?
대체 어떤 근거로 '내가 사람이다, 내마음이다' 라고 주장하는 것일까?
그대가 '내가 남자다, 여자다' 라는 앎 또한 그러하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내가 사람이다'라고 알게 된 것일까?
내가 사람이다라는 앎에는 근거가 없다. 사실무근이다.
사실 아무런 근거가 없다.
인간들의 '내가 사람이다'라는 주장에는 어떤 근거도 없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내가 사람이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마음이 있다는 주장들 또한 그러하다.
그렇지 아니한가?
근거가 없는 말이라는 말은 정녕 말도 안되는 소리인가?
아니다. '내가 사람이다'라는 말(앎, 지식, 뜻)이 사실상 근거가 없는 말이다. 어불성설이다. 말은 말이지만 말도 안되는 소리이다.
인간은 지성체다.
지식으로 구성된 물체라는 뜻이다.
그리고 지성체의 모든 지식들은 허구적인 것이다.
수많은 지식들, 기억세포에 저장된 생각들에 대한 사유로써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이해 할 수 있다. 그것도 너무나도 분명하게.
그대가 이해 할 수 있는 말이다.
그것도 희미한 기억이 아니라. 명명백백하게.... 분명히, 변할 수 없는 사실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다.
그대가 기억할 수 없는 어린아이시절이 있다.
누구나 경험하는 시절이지만 다만 기억할 수 없다. 경험은 경험이지만 기억할 수 없는 경험이기 때문에 '경험의 오류'라고 했다. 그대가 '내가 있다, 내 마음이 있다'는 말(앎, 지식)은 경험의 오류에 대해서 기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그 경험의 오류에 대해서 기억할 수 없기 때문에 타인드의 말, 말, 말에 대해서 사실적이라고 믿는 것이며, 착각하는 것이다. 그 착각. 단지 타인들의 말, 말, 말... 들었던 말에 의해서 '내가 사람이다, 내가 미음이 있다'고 아는 것이다.
인간은. 지식은. 지성체는 '경험의 오류' 시절에 대해서 '무의식' 또는 '잠재의식' 또는 '순수의식'이라는 말로 규정한다. 하지만 기억할 수 없다. 그런 말을 창조하고 그런 말들에 대해서 상상하는 것이다. 그런 말들의 뜻에 대해서 이해 하는 것이 아니라, 말, 말, 말에 대해서 상상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환상들에 대해서 서로가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 주장들에 대해서 지식이라고 하는 것이며, 지식이 허구적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밝히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그대가 '내가 사람이다' 라고 아는 말(=앎=識)은, 다른 육하원칙의 원리에 의거하여 아는 것이 아니라, 단지 타인들의 말을 듣고 알았다는 것이다. 그 타인들은 그대의 부모일 수도 있으며, 다른 사람들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 타인들 또한 그대가 기억할 수 없는 어린아이시절과 똑 같은 방법으로 다른 타인들로부터 '내가 사람이다'라고 알게 된 것이며... 그런 사건이 수천수만년 반복되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내 이름'이 있다고 알며, '내가 태어난 날'을 안다고 주장한다. 그 또한 착각이다. 자신이 경험한 것이 아니라, 타인들로부터 들었던 앎에 대해서 기억(생각)하는 것이다. 기억세포에 저장된 것은 비단 '나이와 이름' 뿐만이 아니라, '마음이 있다'는 말까지도 포함된다. '나는 사람이다' 라는 말까지도.
인간은 누구나 경험에 바탕을 둔 사고방식으로 사는 사람이라는 말에 대해서 진리라고 여기는 것 같다. 물론 경험이전의 사고(생각)에 대해서 상상할 수 없는 인간으로써는 사실적으로 여기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내가 사람이다'라는 말은 옳은 말인 것 같지만 '남들의 말을 들은 것일 뿐' 근거가 없는 말이다. 사실무근이라는 말로 표현될 수밖에 없다.
물론 경험에 바탕을 둔 사고방식으로써는 기억할 수 없는 사건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내가 있다'는 말과 '내가 사람이다'는 말, 그리고 '내마음이 있다'는 말은 근거가 있는 말이 아니라 타인들로부터 그렇게 듣고 배워서 알게된 앎이다.
그렇지 아니한가?
자. 이런 경험의 오류에 대해서 기억할 수 없기 때문에, 인간들의 언어, 말, 말, 말들 또한 근거가 없는 주장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무에 삶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정의할 수 없으며, 죽음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것이다. 사실을 사실 그대로 안다면, 삶이라는 말과 상대적인 말이 죽음이라는 말이다. 말, 말, 말만 무성할 뿐, 해답이 없는 까닭이다.
지성체의 모든 주장들... 학문, 예술, 문화, 종교, 도덕.. 등의 '내가 사람이다'는 앎에 바탕을 둔 모든 앎들이 이와 같이 근거가 없는 말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해답이 없는 것이며, 생로병사의 고통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인류가 추구하는 것은 자유와 평화 그리고 개개인의 행복이다.
인간들이 상상하는 아득한 예날부터 지금 현 시대까지도 인간세상이 평화로운 적은 없다. 지성체는 그 원인이 무엇인지 조차 이해 하려들지 않는 것 같다.
사실 '내가 사람이다'라고 아는 앎 자체가 올바른 앎이 아니다. 내가 사람이다, 라는 말은 내가 사람이 아니다, 라는 말과 상대적인 말이다. 인간들의 모든 언어, 말, 말, 말은 내가 사람이다, 라는 말(앎)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그 앎이 상대적인 말이며, '내가 있다'는 말(앎)이 최초의 분별이며, 그 분별심에 의해서 스스로 고통을 겪는 것이다.
올바른 앎이 아니라, 타인들로부터 들었던 말, 말, 말을 사실적으로 여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내가 사람이다'는 말이 근거가 없는 사실무근인 말인것과 같이 하늘이 있다는 말도 근거가 없는 말이며, 땅이 있다는 말도 근거가 없는 상대적인 말(앎, 지식)이다. 더 나아가 하나님이 있다는 말과 하나님이 없다는 말, 신이 있다는 말과 신이 없다는 말, 영혼, 귀신, 성령, 불성, 순수의식, 천국, 지옥... 등이 있다는 말도 허구적인 말이며, 없다는 주장도 허구적인 주장일 뿐, 분별된 말들이며, 상대적인 말들이다.
이런 말들에 대해서 하근기는 크게 웃어버리거나 부정하려 하겠지만... 부장할 만한 근거는 없다. '하나님 말씀, 말씀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들 또한 '내가 사람이다'라는 착각에서 벗어날 수 없는 자들의 분별심에 바탕을 둔 상대적인 것들에 대한 주장이다. 근거 없는, 사실무근에 바탕을 두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렇지 아니한가?
인간의 마음 또한 그러하다.
개개인의 마음이 다른 까닭은 서로가 다른 타인들로부터 그렇게 듣고 보고 배웠기 때문이다. 자신이 마음이라고 주장하겠지만, 사실 타인들의 말을 듣고 배웠던 말, 말,말들을 종합하고 짜깁기 한 말들에 대해서 '내마음'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타인들로부터 끌어모은 지식에 대해서 '나' 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렇지 아니한가?
이런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인식하는 인물들에 대해서 상근기 인물이라고 하는 것이며, 자기를 주장하는 중생들, 어린 양들에 대해서 하근기라고 하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짐승보다 더 뛰어날 것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이런 사실에 바탕을 두고. 소위 인문학의 거장이라는 사람들의 주장에 대해서 설명하려는 것이다. 그들의 앎이 옳은 것이 아니며, 그대의 앎 또한 올바른 앎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한 설명과 함께 인류가 진정으로 원하는 자유와 평화로운 삶을 위한 방법에 이르기 까지 설명하기 위해서 이 글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사실 그대의 마음이 그대의 마음이 아니라, 타인들로부터 들었던 말들에 대해서 '내마음'이라고 알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그대가 '내마음'이라고 주장하는 모든 앎들... 사실은 타인들로부터 듣고 배웠던 것들이다. 그대 스스로 깨달아 알게된 것이 아니라, 타인들로부터 듣고 배웠던 것들에 대해서 '나, 내마음'이라고 주장한다는 사실. 그런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이해 해야만 진정한 평화를 누릴 수 있다는 말이다.
'내마음이 내마음이 아니라, 타인들의 마음을 내마음이라고 착각하고 있다는 사실. 그런 사실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을때, 그때 비로소 마음의 평화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사실에 바탕을 두고 '위르겐 하버마스와 미셀 푸고의 말'에 대해서 설명하려 한다. 그들 주장의 차이와 허구성, 그리고 그들의 말에 열광하는 사람들의 차이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분명히 설명할 것이다.
한글을 깨친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해 할 수 있는 말이다.
이곳의 모든 말들... 인류의 자유와 평화를 위한 유일한 길이며, 방법이다.
인연있는 자. 그대에게 평화 있기를
일념명상의 집 '도가' 에서 --->> http://blog.daum.net/powwr116/?t__nil_login=myblog
'인생론 - 잘사는 삶 · 올바른 삶'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는 누구인가 / 마음과 깨달음 그 오해와 진실 - (11-2) - 경험자 그 사고방식의 오류 / 나는 왜 나인가? / 행복의 조건 (0) | 2014.09.12 |
---|---|
인문학 열풍의 그 허구 - 위르겐-하버마스 / 미셀-푸코의 통합적 사회구성에 대한 사고방식 (0) | 2014.09.05 |
메뉴추가의 목적 - 인문학, 철학 과학 등... 학문의 허구와 진리 (0) | 2014.08.29 |
도덕 / 도덕성의 허구 / 문명의 함정 (0) | 2014.08.25 |
겁먹은 아이와 엄마의 우문현답 / 에피소드 와 진실 - 현명한 엄마. 현명한 부모란? (0) | 2014.08.23 |